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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약속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8. 10.

 

“쌤, 저 왔어요.”

훤칠한 키에 늘씬 날씬 오똑한 콧날에 이국적 눈매를 지닌 *이 문을 열어젖히며 들어오자 마자 엉거주춤 서있는 나를 껴안는다. 가벼운 인사차 보내는 다정한 hug임에도 불구하고 알싸 마음이 동하며 토닥토닥!!!

“언제 왔니, 하는 일은 잘돼가, 학교는, 아르바이트 한다며? 우선 무엇 마실래?”

허겁지겁 질문을 퍼붓는다.

“쌤, 저 뭐 생과일 쥬스 주세요.”

“토마토 쥬스 마시렴”

“넹”

신나게 쥬스를 대령하며 또 한번 속사포 수다를 떤다.

“야, 학교는 어떻게 돼가? 알바는 할 만하고, 모델일은 어떻고, 또 사는 곳은 어디야?”

끊임없이 수다가 꽃을 피운다.

 

 

*이는 초등 2학년 때 만나 중3까지 7,8년 정도의 영어선생과 학생으로 만난 아이이다. 그런 인연이 싱가포르와 태국 캄보디아와 베트남까지 함께 해외여행을 다니며 온갖 나의 잔심부름을 마다하지 않으며 기꺼이 내 보디가드 노릇을 서슴지 않았다. 아들 아닌 나의 아들마냥 내 온갖 잔소리를 들으며, 싸우고 삐치고 때론 손찌검을 당한 아이였건만 금세 이렇게 밝은 얼굴로 뜬금없이 나타나 내 마음에 꽃을 피우는 아이 이다. 이제 대학생이 되었고 모델학과에 입학해 가끔씩 런웨이를 서기도 한다고 한다. 요사이 그 아이의 꿈은 기획사를 차려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그 인물에 노력을 한다면 못 이룰 꿈도 아니련만 그런 험란한 세계에 발을 디딘다고 하니 괜실히 걱정이 앞서기만 한다. 언젠가 초등학교 5,6학년 무렵 자기가 유명한 사람이 되어서 꼭 전국TV에서 선생님을 모시겠다고 호언장담 약속을 했던 아이이다.

 

 

그렇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과의 또는 상대와의 수많은 약속들을 한다. 지키지 못할 약속들, 잊혀지는 약속들과는 반대로 기대감을 가지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발걸음은 언제나 희망을 동반하며 일상적인 삶의 추진력이 되기도 한다.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그 약속들이 지켜지거나 이루어 냈을 때의 성취감은 자신의 삶에 대한 자존감이 높아가는 경험하기도 한다.

 

 

나는 그 잊을 수 없는 약속들 몇몇을 지키기 위해, 아니 지켜질 것에 대한 작은 설레임으로 내 미래를 그려볼 때 마다 내 노후의 희망을 발견하곤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이를 낳아본 적도 그래서 키워본 적도 없는, 그러한 사실들에 대한 열등감이 언제나 아쉬움으로 남아있는 사람이다. 조카들마저 내가 한국을 떠나 있었을 때라서 신생아나, 혹은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을 안고 재우고 놀아주는 일생일대의 경험을 놓치고 사는 사람이고 그것이 늘상 내 삶의 아쉬움중의 하나이다. 이런 나의 애틋한 바람을 위해 나는 내가 가르쳤던 몇몇의 아이들에게 강제로 약속하도록 종용하기도 했다.

 

“있잖아, 너네들이 시집가서 아이들을 낳거든 말야, 너네들이 여행이 하고 싶을 때 혹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나에게 맡기면 안될까? 내가 너네 아이들 돌봐줄 수 있을거라고...”

이구동성으로 그애들은 약속들을 했다. 모두 그러겠다고... 그런 약속들을 아직도 그애들은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생생히 7,8년 뒤의 그림들을 이렇게 그리고 있는데 말이다. 부디 내 인생에도 젖 냄새가 풀풀 나는 천사 같은 아이들의 지저귀를 갈아주고 업어주고 때론 응아거리는 아이의 선잠에 나도 잠 못 이루는 그런 날들에 대한 경험을 하고 싶다.

 

이런 것들이 내 미래의 꿈의 한 조각이라면 어떤 이들은 웃을 수도 있겠지만, 어찌 하겠는가, 가져보지 못한,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작은 열망인 것을... 이 작은 열망이 미래의 어느 날 지켜질 약속들이 되기를 희망해 보는 날이다. 오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