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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戀書 - 62 -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7. 4.

 

 

 

 

김연수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속의 단편중의 하나인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주인공은 서른넷의 회사원이다. 우연히 전철에서 여섯 달 전에 이혼한 전처를 재회한는 그녀와 함께 안국동, 가회동, 재동 길을 걷다가 작별인사도 없이 어정쩡하게 헤어진다. ‘는 며칠 동안 그녀와의 만남을 곱씹어본다. 지도를 사서 그날 걸었던 길을 표시하고 되짚어보며 그녀와 나의 관계가 어떤 것이었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느 지점에서 내 삶이 틀어지기 시작한 것인지 반추해본다. 하지만에게 삶은며칠 굶은 짐승의 내장처럼 어둡고 습하고 꾸불꾸불한, 그러나 텅 비어 막히지 않고 계속 어디론가 이어지는 골목길같은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렇게 삶을 반추하듯 골목길을 걸으며 는 생각한다.

시작과 끝, 원인과 결과만을 두고 본다면 세상의 모든 일은 인과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그 사이의 행로는 때로 매우 우연적이고 사소한 것들로 채워지곤 한다. 역사의 인과관계가, 혹은 지나간 일들의 진실이 도중의 사소하고 우연적이고 꾸불꾸불한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단숨에 긋는, 그런 선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그날 걸어간 복잡하고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는 무엇일까? 라고 인생에 대한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또한 미리 통지하고 찾아오는 불운은 없다. 그런 점에서 인생의 모든 불운이라는 것은 자신이 생각했던 인과관계의 규칙에서 벗어난 일들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단어일 뿐이다. 나는 내게 닥친 그 불운이 정말 우연한 것인지, 아니면 필연이 내포된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라고 틀어진 삶의 과정을 되집어 보기를 원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얻은 결론은  그래도는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한번 버텨보면서결코 질문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라고 한다.”

 

소설 속의 를 통해 작가 김연수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600년이 넘은 천연기념물과 고작 서른네살이 된 나의 따분한 인간과의 대비를 통해 결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삶의 우연과 필연의 엮임을 확인해 보고 싶었을까?

그래도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이 삶의 어둡고 습하고 꾸불꾸불한 과정을 벼텨보자는 자기확인이었을까?

 

김연수의 소설들은 단편이든 장편이든 읽기가 쉽지 않다. 한 작품을 쓰기 위해 작가는 어느 만큼의 총체적인 지식을 기본으로 인생의 혜안을 엮을 수 있는 역량을 지녀야 할까?  다시 한번 확인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섣부른 출발선상에 있는 나에 대한 부끄러움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