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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戀書 - 64 - 뿌넝숴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7. 5.

김연수의 단편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이다."속의 한 단편 '뿌넝숴'를 읽었다.

 

노인의 회상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노인은, 그는 젊은 시절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중국 인민국의 병사였다.
선전포고 없이 전쟁에 참여해 조선 인민공화국을 지원해 라는 모택동의 지시에 따라 소리 없이 이름 없이 강을 넘어 전쟁에 참여한다. 그리고 가장 치열했다던 지평리 전투에서 그는 전투 중에 왼쪽다리를 잃는 부상을 당하게 된다. 때마침 조선인 여성 구호원이 인민지원군인 그에게 베푼 수혈로 인해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된다.

 

그리고 그와 조선인 여성 구호원이 탔던 트럭이 미군 전투기에 의해 피습을 받은 후, 두 사람은 가까스로 농가로 피신한다. 거기서 이틀간의 잠에서 깨어나고 그가 조선인 여성 구호원에게지평리에서 무엇을 봤느냐?”라고 묻는다. 그러자 그녀는 뿌넝숴. “말할 수 없어요.”라고 대답한다. 일주일 동안 농가에 숨어 지내던 도중 그가 조선인 여성 구호원에게죽을 만큼 사랑한다.”라고 고백을 하지만 그녀는 그의 고백을 거부한다. 그리고 어느 날 수색대가 두 사람을 발견한다. 그는 살아남았고, 그녀는 그에게 1,000그램이 넘는 피를 수혈하고는 싸늘한 시신이 변해 있었다.

 

그 노인의 말로 풀어 쓰는 한 인간과 역사,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리의 운명을 뿌넝숴라는 한 구절로 설명하기 위해 애를 쓰는 작가의 말들을 걸러본다.

 

인간의 운명은 육체를 닮았어. 끊임없이 바뀌는 것이지. 손금을 읽고 관상을 본다는 건 그렇게 바뀌는 몸을 본다는 거야. 볼 수 있는 것은 그저 지금의 운명일 뿐이지. 지금 자네가 누구인가에 따라 자네의 운명은 미친 듯이 요동치게 마련이야. 그게 바로 삶의 신진대사야. 전선이 끊임없이 오르내리듯, 사람의 육신이 쉼없이 변해가듯 인간의 운명 역시 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여. 한결 같은 운명은 죽은 자의 것 그러므로 운명은 절대로 말로 표현할 수 없어. 말하는 순간, 그 운명은 바뀔 테니까. 뿌넝숴(不能說). 뿌넝숴.

 

전쟁터에서 세 발의 총성을 들을 때, 마음속에 그려지는 그림이란 하나도 없어, 그 순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울부짖거나 정신 없이 달려가는 것뿐이지. 한번만이라도 온몸으로 다른 인간을 사랑해봤다면, 마음에 그림 따위가 그려질 겨를은 없는 거야. 그저 움직일 뿐이지. 뿌넝숴. 운명이 드러나는 순간에 언어 같은 것은 완전히 사라지는 거야,

 

나는 벌써 10년째 여기에 앉아서 점을 봐왔다네. 점이라는 건 간단해. 눈으로 나비를 보고 입으로 봄이 온다고 말하는 일이야. 온몸과 온 마음을 열고 뜨겁게 세상을 바라보거나 귀를 기울이는 일이야. 왜 사람들은 책에 씌어진 것이라면 온갖 거짓말을 다 늘어놓아도 믿으면서 사람이 말하는 것이라면 때로 믿지 못하는 것일까? 인간의 운명과 역사란 결국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온몸과 온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는 일이라는 걸 알지 못하고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말에만 빠져 있는 것일까? 몸소 역사를 겪어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뿌넝숴라고 말해도

 

이제 알겠는가? 봄에는 왜 나비가 날아오르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꿈을 꿔야만 하는지? 나비가 날아오지 않고 찾아오는 봄은 없는 것이야.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 자네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믿기 어려운 애기들을 내게 말해 보게나, 그럼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운명을 타고났는지 내가 말해줄 테니까. 책에 씌어진 얘기 말고,. 자네가 몸으로 겪은 얘기. 뿌넝숴, 뿌넝숴. 그 말이 먼저 나올 수밖에 없는 얘기.”

 

작가의 말처럼 인간의 운명과 역사란 결국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온몸과 온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는 일이라는 것, 지금 내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 평범하기 이를테없는 일상도 삶의 신진대사의 한 장면임을 생각해 본 하루였다. 오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