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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戀書 - 63 - 그건 새였을까, 네즈미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7. 5.

 

김연수의 단편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이다,” 속의  그건 새였을까, 네즈미의 내용이다.

 

‘그녀’는  화자와 동거해온 연상의 여인 세희의 자살한 여동생(세영)이다.  화자인 ‘나’는 일본인 역사학도로 영국에서 유학하며 세희와 동거하고 있었지만 서로 필요에 의한 관계이상이 아니다. ‘나’는 집세를 절약할 수 있고 세희는 외로웠을 것이다.

 

 “언니는 당신 이름이 일본어로는 쥐를 뜻한다는 것도 모르고” 있는 ‘나’에게 세영은 “당신들은 서로 이해하는 척 하지만 서로 아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서로 속이느라 삶을 허비하고 있어”라며  빈축을 보낸다. 함께 살면서도 이름의 의미도 모르는 관계의 허위, 소통의 부재다.

 

세영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남편은 ‘아이를 낳아야만 해’ 라고 말한다. 그러나 세영은 ‘조금만 더’ 라고 무심히 미루었고 어느 날 함께 탄 자동차 사고로 남편은 죽는다. 남편의 아이에 대한 소망은  위태로워진 관계의 암시였지만 세영은 남편을 알지 못했고 ‘평생 사랑하며 살 것 것으로만’ 믿었다가 남편으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고백을 듣는다. 그리고 함께 타고 가던 자동차가 논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고 남편이 죽어 가는데도 가만히 앉아 ‘그 해 봄에 본 벚나무’를 생각하고 ‘벚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렸던’ 것을 생각하고 ‘바람 때문이라 기엔 너무 심하게 흔들린’ 탓이 ‘작은 새였을 거라’ 는 생각만 하며 방치(?)한다.

 

사람은 가끔 어떤 순간, 머리가 하얗게 비는 듯 한때가 있다. 그리고 느닷없이 아무 연관성도 없는 것 같은 어떤 장면들만 가득 채워지는 순간, 그런 것일까아니면 ‘작은 새’가 벚나무를 흔들듯 세영이 남편의 운전대를 흔들어 사고를 자행 한 것은 아닌지배의 밑바닥 3등 객실에 갇혀서 절망적인 상태로 누워 몸이 흔들리는, 그저 흔들림뿐이었다는 그녀의 악몽에서 이 혐의는 짙어진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감을 갖게 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어서” 언니의 남자와 섹스를 한다.  

 

마찬가지로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감을 갖게 하는 일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어서’ ‘나’와 섹스를 한 그녀를 ‘나’ 또한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당연히 세희 또한 자신의 여동생과 섹스를 한 ‘나’를 이해하지 못하며 ‘나’는 세희 에게 쫓겨났고 이어 한국으로 돌아간 세영의 자살소식을 듣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작품속에서 끝임없이 누구에게도 이해 받을 수 없는 밤, ‘요기의 그 어두운 구멍과도 같은 밤에 대한 고찰을 한다. 아마도 인간 내면 속의 어두운 구멍에 대한 고찰이 아닐까?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니, 인간이라는 게 과연 이해받을 수 있는 존재일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소설 속에서 작가는 일본 겐로꾸시대 가인 나이또오 죠오소오의 시를 인용한다.

 

春雨やぬけたままの夜着...

 

아마도 밤의 속살을 적시는 봄비가 아니었더라면, 그 무엇도 잠옷 속의 쓸쓸한 나이또오를 움직이게 하지 못했을 테다. 결국 봄비에 마음이 먼저 움직인 뒤에야 나이또오는 몸의 형상대로 요기(夜着)’의 그 구멍을 보게 됐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모두 그런 어두운 구멍이 있는 법이다. 그 어두운 구멍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구멍인 것이다. 그 어두운 구멍 속에서는 서로를 속이는 것도, 속는 것도 없다.

 

 

소설의 첫 장에서 작가는 이렇게 시작한다.

 

비거스렁이를 몰고 온 땅거미의 세계로 아직 밤의 本隊는 진주하지 않았지만 이 글이 끝날 즈음이면 플레어스커트처럼 검은 장막을 치렁치렁하게 드리우며 우리를 고립시킬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어둠 속으로 젖어들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고독한 존재로 남을 것이다. 서로 다른 해류를 따라 헤엄치는 물고기들처럼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가까워졌다가는 거무레한 얼굴로 이내 멀어질 것이다. 작별인사도 없이. 꿈결처럼. 죽음이나 망각이나, 혹은 그 어떤 공포도 이보다는 더 아득해질 수 없다. 우리가 저마다 자신만의 어두운 구멍 속으로 고립된다는 사실 보다는 , 우리가 그 품 안에 안겨 있을 때는 그 어떤 이해도 불필요하다는 점에서 인간은 어둠에 본능적으로 애착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이율배반적인 애착에 대해 나는 조금 더 생각해본다. 환한 빛, 따뜻한 낮이 아니라 캄캄한 어둠, 서늘한 밤을 향해 우리가 지니는 애착에 대해…”

 

 

삶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이며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 든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열정인가?  또한 지난 일들을 이해해보겠다는 마음으로 기억들을 샅샅이 살펴 본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알아 낼 수 있는 진실은 거의 없는 삶, 그 적나라한 모습들을 짧은 단편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