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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戀書 - 60 - 7번국도 Revisited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6. 27.

김연수 “ 7번 국도 Revisited

작가 김연수의 작품을 모조리 읽어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번에 읽은 책은 그의 장편소설 ‘7번 국도 Revisited'이다. 이 소설은 1997년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 ‘7번 국도’의 개정판이다. 1997년 판에서 뼈대만을 남겨두고 꼬박 1년 가까이 문장을 바꾸고 13년의 시, 공간을 오가며 새롭게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한다.

 

20대의 터널을 한창 내달리고 있는 두 남자, 이미 답답한 터널 속에서 진짜 사랑을 갈구하다 상처를 입었던 재현과 나의 이야기이다. 역시 Route 7이 인연이 돼 세희를 만났고 함께 사랑한다. 나와 재현은 욕하고 싸우다가 7번 국도를 따라 자전거 여행을 떠나고 7번 국도에서 죽은 유령들을 만나고 동시에 세희와 이별을 한다. 1997년의 뼈대 속에 13년 뒤에 작가 김연수가 직접 등장해 7번 국도를 다시 찾고 떠나간 세희가 다시 나와 그 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도 한 10여 년 뜸 전에 7번 국도여행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포항에서 강릉까지 드라이브여행을 떠났던 기억이 새롭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들은 이름조차 낯선 소박한 어촌마을들의 풍경들이었다. 특별한 것도 없었던 다소 지루할 듯한 삶의 파편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정경들에서 왠지 모를 애틋함, 따뜻함 그래서 낯설지만 낯설지 않았던 모습들이 고스란히 내 기억 속에 추억이란 이름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김연수의 많은 작품 중에서 익숙한 제목의 이 책을 먼저 집어 들었나 보다.

 

읽으면서 이쪽저쪽을 넘나드는 구성과 시간의 흐름을 따라잡느라 다소 혼란스럽기도 했다. 나중에 책을 덮으면서 내 혼란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로 13년 전의 청년 시절의 김연수와 지금 김연수의 시점들이 얽혀서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군데군데 김연수의 인생관을 느낄 수 있었던 부분들을 발췌해봤다.

 

“사람이 늙으면 의욕과 열정은 사라지고 예감만 들어맞을 때가 많소. 그러다 보면 세상 이치가 다 눈에 보이면서 과연 내가 살아온 인생이 옳았는가,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다오. 젊은이들은 아직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할 게고, 지금은 또 알 필요가 없겠지. 우리는 인생을 단 한 번 살아가니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믿어야만 하니까. 하지만 자신을 믿어 원하는 삶을 살았다고 해서 그게 옳은 인생이라는 뜻은 아니오. 그게 바로 내 인생이었소. 평생 나는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며 살았소. 나는 고립되는 한이 있어도 삶의 의미를 원했소. 친구도 애인도 모두 사라지고, 살던 고향도 떠난 지 오래였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가 옳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소. 하지만 옳다고 해도 그건 결국 죽은 삶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됐지.

 

서로 연결되지 않는 길을 죽은 길이라고 말할 수 있듯이. 제아무리 숭고하다 한들 고립돼 있다면 그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라오.” “사람은 모두 은어와 같은 것이다. 동풍이 불고 나면 다시 서풍이 불어온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서 벗어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게 바로 우리 생이다. 네가 나를 떠났다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 것처럼 우리가 이생을 한 번 살아간 뒤에 다시 한 번 그 생은 반복된다. 하지만 벗어난 자리도 바로 너의 자리이고, 돌아온 자리도 바로 너의 자리다. 난 이제 곧 죽게 된다. 하지만 이 끝없는 윤회 앞에 도대체 죽음이란 없다. 나는 그저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일 뿐, 불생불멸, 그 무엇도 없다. 숨결 없이. 그 본성으로 숨 쉬는 단 한 가지. 그것 말고는 도대체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복수하기 위해 사랑한 게 아니다. 우리는 단 하나의 희망을 품기 위해 사랑했다. 희망은 당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당신의 복수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당신의 운명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지금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우리는 단 하나의 희망을 위해 서로 사랑할 것이며, 당신이 다시 복수를 시작한다고 해도 그 단 하나의 희망을 위해 서로 사랑할 것이다. 거기 의미가 있다고 해도 우리는 서로 사랑할 것이며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해도 우리는 서로 사랑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할 때, 오직 맹목적일 것이다. 서로 사랑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살아남았다.”

 

이런 각각 말들은 작중인물들을 통해 김연수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김연수가 말하는 인생의 꽃들인 사랑, 우정, 존경, 친애, 다정함으로 넘쳐나는 그런 삶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던 이 끝없는 윤회의 세계에 영원히 반복되는 간절한 소망들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