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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戀書 - 58 - 소풍끝내는 날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6. 26.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귀천(歸天) ~ 천상병

 

 

젊었을 시절 여행사에서 일했던 덕분으로 난 참 많은 곳을 여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대부분 패키지여행 이어서 수박 겉핥기식 이었지만 나름 그때생각하면 참 즐거운 생활이었다. 지금 그렇게 추억된다. 내가 한 여행 중에 특히나 내 인생에 많은 생각과 감성에 영향을 준 것을 뽑으라면 단연코 배낭여행들 이다. 그중에서도 방콕에서 태국북쪽인 치앙마이로의 여행...12시간밖에 되지 않는 기차여행, 저녁에 출발해 아침에 도착했던 여행에 불과했는데...

90년대 초반, 딸랑 배낭 하나에 일본어로 된 안내책자, 카메라 하나 태국말도, 영어도 서툴러 의사소통의 불편함도 있었지만 무슨 배짱에 그렇게 서슴없이 혼자서 그것도 기차에서 잠을 자는 여행을 했는지...지금도 그 시절의 내가 참 대견스럽다. 밤기차여행 내내 겁이 나 위쪽 칸의 침대를 예약했지만 호기심 많은 여행객들이 탄 좌석덕분으로 많은 시간을 깨어 있어, 서툰 일본어로, 영어로, 태국말로 끝없는 수다를 떨 수 있었다.

 

인도차이나,

 

바로 인도차이나의 한 부분을 기차로 가로 지르는 여행을 통해 나는 세계인이 되었구나 하는 미묘한 자만심 조차도 달콤했다. 그때 보았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아름다움을, 아니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밤기차여행이라 고작 서 너 시간 밖에 밖을 볼 수 없었지만 면면히 흐르는 흙탕물 투성이의 긴 강들... 물소들이 한가히 노니는 풍경들... 야자 나뭇잎들 사이로 그림처럼 놓여있는 아열대의 집들... 황토빛깔의 삼모작이 가능하다는 끝없는 논들... 무엇보다도 도착하는 역마다 조그마한 소쿠리들에 먹을 것을 잔뜩 담고서 여행객들을 상대로 음식을 팔고 있던 해맑은 어른, 아이들... 그 영상이 아직도 그림처럼 고스란히 남아있다.

 

참 아름다운 지구다. 참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첨으로 이렇게 사는 사람들 속에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던 순간들이었다. 딱히 기억할 만한 일도 없었건만 그때 만난 영상들이 지금까지도 날 행복하게 한다는 일이 신기하기만하다. 그 후 그곳을 떠나 있으면서도 그 모습들이 보고 싶으면 나는 이런 영화들을 본다. 씨클로, 인도차이나, 그린파파야 향기, 굿모닝베트남, 하늘과 땅, 연인 그리고 Three seasons...

 

젊은 한 시절 이런 추억을 되새김질 하면서 나는 내 소풍이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고 생각해 본적이 있다.

그렇다. 소풍이다. 우리 삶이 소풍인 것이고 여행인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 가셨다. 외할아버지의 손에 의해 자라서 그런지 외할아버지와 나는 참 각별한 사이였나 보다.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밥상머리에서 누가 방귀만 뀌어도 밥을 토할 정도로 비위가 약했던 나였는데도 불구하고 외할아버지가 치매로 누워계신 몇 년 동안 그 많은 가래침 뱉은 재털이를 꼬박꼬박 치웠다고 하니 참 대견타는 칭찬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의 영상이 아직도 남아있다. 외할아버지에겐 딸이 둘 있었는데 엄마와 이모. 그리고 사촌들이 그 동네에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려는 아침에 빨리 나에겐 당숙인가 그분을 모셔오란 심부름을 갔었는데 돌아와 보니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했다.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믿기지 않았으니깐....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슬프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그 조용하던 집안에 일가친척들이 모여들고 인절미 치는 떡메소리, 부침개를 부치는 기름 냄새, 멍석위에서 시끌벅쩍 화투를 치는 동네 아저씨들,,, 나에게 그날이 작은 잔치처럼 여겨졌다. 어느 때쯤 되니깐 동네 어떤 어른이 할아버지의 하얀 옷을 훨훨 지붕위로 던지는 것 이었다.그 모양이 마치 나비처럼 나풀나풀,,, "아, 할아버지의 혼령이 저렇게 지붕위로 날아서 어디론가 떠나나보다..."

 

그런 몽상을 하였던 것 같다. "그래 바로 몸을 떠난 혼령이 어디론가 소풍을 가는 거야." 애써 그런 상상을 하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슬픔을 차단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아버지의 제삿날도 나에게는 작은 잔치가 되었고... 또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날조차 나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지 못했다. 미친 여자처럼 그렇게 끝임 없이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고 힘들었다. 나 자신 조차도 이런 내 모습이 혹시나 정신병의 시초가 아닌가하는 약간의 두려운 생각조차 퍼뜩 들었다. 나는 왜 그렇게 정상적인 슬픔을 느껴야할 순간에 그렇질 못했을까 가끔씩 내 정신세계가 의심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인도 영화 ‘청원’을 보았다. 아하!!! 그런 것 이었구나.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인공이 어머니의 장례식 현장에서 'What a wonderful world'의 노래를 부르지 않든가? 죽음이란 슬픈 것만은 아니구나.

 

 

 

어떤 사람에게는 삶을 찬양케 하는 순간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소풍이 끝나고 다른 세계로의 긴 여행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또 다른 꿈일 수도 있겠구나. 각자 다양한 모습으로의 재조명, 그런 것이 될 수도 있음을 확인했다.

그럼 나에게 죽음이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죽음에 대한 이런 주장을 편 사상가가 있다. 몽테뉴...

 

“인간은 운명에 대항하여 언제든지 자기 자신을 임의로 처치할 수 있다는 최후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 바로 자살이 그것이다. 그렇다고 인생을 부인하는 것도 가치를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단 살아가는 것이 무거운 짐이며 고통이라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보는 것이다. 즉 죽음은 인생에 대해 어쩔 도리가 없는 패배를 뜻함이 아니고, 자기 의사로 인생을 심판하여 자주적으로 인생을 처분하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은 인간이 가진 최후의 무기이다. 죽음이 모든 인간에게 불가피하게 오는 것인 이상, 이 불확실한 인생에서 죽음에 대한 걱정으로 삶의 맛을 나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보다는 살아 있는 동안 생명에 고통을 끼치는 모든 요소를 가능한 한 제거해야한다.”

 

16세기 사상가의 오묘한 말씀을 21세기의 하찮은 한 생명이 곱씹고 곱씹어 보았다. 영화 ‘청원’의 마지막 장면이 기억난다. 안락사를 실행하기 전 파티를 하며 생의 마지막을 환희로 여겼던 장면은

아마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몽테뉴의 죽음에 대한 고찰은 현재 살고 있는 삶에 대한 모든 부정적요소를 제거하고 인생을 누릴 수 있는 지혜를 모으라는 역발상적인 생각으로 전환해 보았다.

그는 사람들이 불행을 끌어오는 원인이 되는 모든 격정을 배격하고 중용과 절도의 길을 권장하며 이성으로 인간은 행복을 찾을 수 있고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모든 면에서 불필요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요소를 고발하는 한편, 자유가 방자함을 초래하지 않도록 중용의 삶을 권장한 조심성 있는 쾌락주의자라고 한다. 나는 어느 날 그저 잠시 그의 철학세계를 유유히 유희 하듯 산책해보았더니 평소 내가 가진 생각의 일부가 그의 세계와의 교집합을 이루는 어떤 모습을 보고 일종의 환희, 쾌감을 느꼈다.

 

또한 중국의 사상가인 장자의 일화를 잠깐 소개해 보면

 

 

그의 친한 친구인 혜시(惠施)가 부인의 상(喪)을 당한 장자를 조문하러 와서 보니, 장자는 돗자리에 앉아 대야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시가 장자에게 평생을 같이 살고 아이까지 낳은 아내의 죽음을 당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따지자, 장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아내가 죽었을 때 내가 왜 슬프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아내에게는 애당초 생명도 형체도 기(氣)도 없었다. 유(有)와 무(無)의 사이에서 기가 생겨났고, 기가 변형되어 형체가 되었으며, 형체가 다시 생명으로 모양을 바꾸었다. 이제 삶이 변하여 죽음이 되었으니 이는 춘하추동의 4계절이 순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내는 지금 우주 안에 잠들어 있다. 내가 슬퍼하고 운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모른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슬퍼하기를 멈췄다."

 

나는 어느 날 부터인가 내 죽음이 어떠해야 하는지 오랫동안 그려왔다. 소녀 적부터 죽음은 나에게 친숙한 소재가 되었었는데 소녀취향 그대로 상당히 감성적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뛰노는 큰 운동장에 가득 넘치는 아이들 소리, 석양노을이 가득 찬 하늘, 그리고 무릎엔 체크무늬 담요를 덮고 흔들의자에 앉아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을 들으며...ㅋㅋㅋ

정말 낭만적인 죽음의 모습이 아닌가? 어라, 단하나 바뀐게 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 대신에 보컬로 듣는 What a wonderful world를 조용히 뇌까리며 그렇게 마지막을 장식해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봤다.

그 소망 뒤에는 내 혼령이 나풀나풀 혼령들의 나라로 소풍가듯 그렇게 발걸음도 가볍게 날아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내 좋아했던 사람들을 모아 한바탕 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이래 뵈도 파티의 여왕이 아닌가?

구상선생님을 모시고 고정희. 오상순, 정공채, 천상병, 김점선 선생님 까지 초대해 부어라 마셔라 급기야 모든 혼령들이 누구라 할 것없이 시끌벅쩍 , 난리부르스 파티를 만드는 것이다.

이 얼마나 근사한가?

 

그래서 이 아름다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그들에게 삶은 참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만큼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

죽음이라는 경계가 있기에 삶이 더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