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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인연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2. 16.

"언니, 하얂고 예쁘던 손이 이게뭐냐?  핸드크림 안발라."

"꼭꼭 바르지. 근데 오십초반에 이 정도의 손이면 그래도 아직 쓸만혀."

 

그렇다. 내 몸에서 가장 예뻤던 부분은 손과 발.

그 소릴 가장 많이 들었다.

근데 나이먹고 식당일 하다보니 서툰칼질에 하도 손을 많이 베고

기름솥에서 튀긴 기름방울로 손이 군데군데 상처와 흉터투성이가 돼버렸다.

나는 이런 내 손이 예쁘다.

엄마의 거칠고 뭉뚝한 손모양

내손에서의 삶의 흔적에 자부심조차 든다.

 

그런데 그녀는 몇년만에 변한 내 손을 보고 맘이 상했나 보다.

가고 난 며칠후 좋다고 하는 핸드크림하나가 택배로 배달을 왔다.

뭐실까 택배로 올것이 없었는데... 풀어보니 핸드크림

울컥 가슴한켠이 뜨겁다.

 

그녀와 나는 그녀가 이십대초반

내가 이십대 후반, 방콕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한창 방콕 현지여행사 셋엎작업을 하는중

내 일을 대신하기 위해 한국에서 급파된 직원이었다.

키는 껑충크고 얼굴과 몸매는 이나영급...

지금도 난 배우 이나영을 보면 젊었을때 그녀와 참 많이 닮았다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예쁘고 똑똑한 그녀와 한집식구가 되었다.

난 사무실에서 하던 일을 그녀에게 넘기고 현장으로 뛰게 되었다.

한편으로 내 일을 뺏긴듯 약도 오르고

한편으로는 넘 예쁜 그녀에게 질투도 나고

한편으로 저렇게 예쁜애가 얼마나 이곳에서 견딜 수 있을까 호기심도 나고...

근데 이런 복잡한 감정으로 그녀와 나는 삐쭉빼쭉 잘도 싸우고 잘도 화해하고

... 재밋는 추억도 많이 만들었다.

가끔씩 그 시절 사진첩을 뒤적거리며 함께했던 추억을 되새김질 하는 것도

지루한 일상의 단비...

 

그러던 그녀와의 인연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얼마전에 그녀는 이제 결혼할 사람이라고 한남자를 소개하러 같이 왔었다.

 

"저렇게 예쁘고 똑똑한 여자를,,, 참 남자들은 눈이 삐었지"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진심으로 기뻤다. 이제 그녀가 정말 따뜻한 맘으로 그렇게 살았으면...

 

잠깐 둘이만 있게 되었을 때 그녀가 말했다.

 

" 언니. 참 이런게 인생일까?  사실말야.  난 내가 지금까지 혼자여서 나 한테 남자의 연이

없는 줄 알았어. 그래서 결혼에 대한 생각을 포기했었지.  몇년만 서울생활정리하고

언니에게 내려와 전원카페하고 그렇게 언니의지하고 살려 했었거든..."

 

"어이쿠, 그런 생각까지... 기특하다. 가시네야. 그럼 결혼할 사람이 내 인연 빼앗아간거야,

하하하하!!!. 나한테서 저분이 널 빼았아 간거냐고.,"

 

우린 잠깐 그렇게 함께 행복한 웃음을 나눴다.

 

3월에 시카고에서 결혼한다고 한다.

 가족 제켜두고 날 제1순위로 초청한다고 하는데 대답은 했지만 아마 난 갈 수 없을 것이다.

 

서울로 돌아가면서 그녀와 그녀의 예비신랑은 말했다.

''친정언니, 처형이라고 생각하고 들릴께요."

이게 뭔 고마운 말씀!!!  그렇게 떠나는 그네들의 뒷 모습을 보며 내내 마음이 따뜻해져왔다.

 

나도 그녀도 나름 트라우마 투성이다.

그래서 서로에게 할 말이 많다. 그리고 서로를 넘 잘안다. 친 동생보다 더 가깝다.

서로의 장점, 단점을 모두 꿰뚫어 보고 있다. 그래서 이해하고 포용한다.

좀 삐쳐도, 서운해도 시간에 맡겨버리면 어느새 우린 또 다정한 사이가 되어져있다.

굳이 변명도 설명도 이해도 필요치 않은 그런 사이...

내 인생에 그런 사람들이 몇몇 있다. 그래서 나는 엄청 부자다.

 

이곳에 내려올때마다 내 김영갑사진첩을 뒤적거리는 그녀

급기야,

"언니, 나한테 결혼선물 뭐 할거야. "

"글쎄, 뭐 갖고 싶냐."

"이거"

김영갑 사진첩을 내민다.

"가시네,  내 형편생각해 고작 그거야."  속으로 고맙다.

 

오늘은 알라딘에서 김영갑 사진첩을 그녀에게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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