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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내 안의 어린아이와 만나기.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1. 11.

얼마전 에리카,J 초피크/ 마거릿 폴의 저작

"내안의 어린아이" 라는 책을 읽다가

그동안 접했던 다량의 심리학 그 어떤서적보다도 그 이 책에 경도되었던 적이 있었다.

 

내 안의 무의식의 세계 즉 쉽게 말하면 내 안의 어린아이를 인식하는 순간에

 내 고통과 풀리지 않는 맘의 요동침 , 미칠 것 같았던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들

이런것들을 해결할 수 있으리란 희망에  접선했던 경험이 되었다.

 

그렇다면 내 안의 내면아이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

그 치유를 향한 구체적 나의 행동은 무었이 되어야 할까?

책에서 예시하는 방법을  실천해보기로 연습중이다.

 

한때 나는 정말 몹시도 내가 어린아이 같았었적이 많이 있었다.

 

곁에 있었던 누구에게

쉼없이 매달렸던 경험말이다.

 

놀아달라고, 나 미치게 쓸쓸하니 같이 있어달라고.

 여행하고 수다도 피우고 음악도 듣고, 같은 책을 읽고 같이 밥먹고 차 마시고...

그런 단순한 일들을 함께 해달라고 징징거리던 경험말이다.

난 그땐

그 모습이 내안의내면아이였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다큰 어른이 말이다.

 

아마도 난 어린아이였을 적

누구에게도 그런 시도를 해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떼를 써본 기억도 없었던 것 같다.

난  단 한번도 내가 응석박이였다는 기억이 없다.

 

모든걸 혼자서 해결하느라 힘에 부치게 끙끙 거렸을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도피해 상상의 세계속에서 또 다른 해결책을 찾았을 거다.

그렇게 사는 게 씩씩하고 강하고 또 옳게 사는 방법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어느날 내 안의 내면아이가 불쑥 고개를 들때면

난 수없이 자책하고, 윽박지르고,  혼란스럽고 또 고통이었고 그래서  많이 지쳤다고나 할까?

 

어느날 바로 그책을 읽다가 그런 모습들이

놀고싶어하고 자연스럽게 살고 싶어하는  순진무구한 자신의 내면아이 

그 모습이 ' 못난 나 ' 가 아니라

마땅히 사랑받아야할 권리가 있는 내 내면아이라는 것을 인식했을 때의 감격이란!!!

그때의 감격에 난 아직도 가슴이 벅차다.

 

그러한 내 내면아이와 의 다른 모습의 만남이 요사이는 즐겁다.

내가 좀 더 따뜻한 사람이 될 것같은

좀더 다정한 맘으로 살 것같은 희망

그것을 희망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바로 이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을 나누는 것이 마땅히 관계에서 취할 최고의 덕목임을

이제는 알겠으므로...

 

알레인 N. 아론지음 /고빛샘옮김의 저서

 

"사랑받을 권리"

 

내가 요즈음  데이또하는 놈이다.

 

내 생각의 주류를 벌써 이놈은 파악해버렸나보다.

 "능동적 상상을 통해 트라우마 치유하기"

그 방법을 제시한다.

 

동조, 이해, 현재 원인과 연결짓기,  과거 원인과 연결짓기, 감정적 연결 고리 수정하기,

필요한 경우 반대의견 표하기, 고마움 표현하기, 부드러운 태도로 대하기 등등

너무나 구체적이고 확실한 방법으로 접근한다.

 

바로 능동적 상상을 통한 자가 치유

 

맞춤식 해결방법,

ㅋㅋ 어쩜 이럴 수가 있을까?

 

어느날 불쑥 불쑥 특히나 혼자있는 공간에서 솟아나는 자아 연민 때문에

혹은 어떤 상처때문에

가슴이 싸해오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질때

나는 부드러운 마음으로

내 내면아이에게 말한다.

 

"아니야, 넌 잘하고 있어.

그렇게 말하고 행동했던 것은 너의 진심이고

또 설사 그것을 이해받지 못하드라도 그건 그사람 역량이야.

그 사람문제이지, 널 탓하지 마.

진실은 진실이야.

그것은 궂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내 내면아이에게 이야기한다.

 

이런 방법으로 난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동강동강 30평도 안되는 공간에서

하루종일 바둥거리면서도

혼자노는 즐거움을 배워가고 있다.

 

그래도 가끔씩, 쬐금씩  아니 많이 많이 누군가가 보고 싶을때

그리고 이야기가 하고 싶을 때

"보여줘잉" 쬐금 떼도 쓰고

짤막한 카톡메세지를 보내고

내 하루를 보고하는 메일을 쓰고...

 

그렇게 난 잘살고 있고

아마 앞으로 더 잘 살아갈 것을 확신한다.

 

아마 내년에는 또 그 다음해에는

어쩜 내가 좀 더 괜찮은 그런 사람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