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내가 결혼할 수 있었다는게 넘 좋았어.
이제까지의 내모든 삶을 스탑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 것
그리고 그 인생은 내가 계획하고 내가 그릴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삶에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더라.
그리고 그사람도 좋았어.
별 말은 없지만 언제나 내 손닿는데 내 맘닿는데
누군가가 날 보살피고 끝까지 책임져줄 사람이 있다는게
눈물이 날 만큼 그렇게 좋더라.
난 이제 혼자가 아니야.
그 사실이 가장 좋았어.
사실 난 이상한 외로움에 치를 떨었거든.
새엄마도 아빠도 또 친구들도 물론 날 사랑하겠지.
그런데도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
세상에 혼자라는 느낌
그것이 때론 가슴의 통증으로 느껴질 때가 있었거든.
결혼, 나에게도 남자가 생겼다는 현실이 확인되는 어느 순간
그 통증들은 어느새 없어졌더라.
나도 모르게 석양을 보아도 아름답게 보이고...
난 그런 느낌들이 너무 좋았어.
가슴이 나도모르게 따뜻해져오는 느낌.
어느땐 말야.
하루종일 남편뒤를 졸졸 따라다녔지. 강아지처럼 말야.
종알종알 난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게
그러고 있더라.
살아가면서 한번도 응석을 부려본일이 없던걸로 기억해.
그냥 어린시절부터
난 모든걸 혼자서 감당해야한다는 이상한 강박감에
아무에게도 응석을 부려본 일이 없었던 같애.
애교도 부려본일이 없었지.
근데 남편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콧소리가 나오고
어느땐 터무니없이 생때를 부릴 때도 있고...
내 인간성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나 자신이 의심할 정도로 난 변하고 있더라고.
근데 말야.
그런 내모습이 변하는 속도만큼
내 남편도 변하드라.
물론 과묵한 성격이라는 걸 알았지만
어느날 밤부터는 저녁을 먹자마자 컴퓨터 방에서 꼼짝하지 않더라고.
주말마다 산에 가고
야근에 회식에 핑계대고 집에 늦게 돌아오고...
그래도 아이들 너댓살이 될때까진 그리 힘들지 않았지.
나도 애들 키우느라 바빴고
그이도 그이 나름의 생활에 바빴고
어느 순간 보니깐
우리사이에 거의 대화가 없더라고,,,
큰아이 네살때부턴가
그때부터 컴퓨터있는 방이 그이 침실이 되어버렸지.
난 애들하고 자고...
그래도 크게 신경쓰이지는 않았어.
왜냐면 나도 애들 때문에 힘들었거든.
어느날 말야,
은행에서 계약일자가 되었다는 오천짜리 대출금 만기 통지서가 왔더라.
황당했지만 퇴근하고 밥먹고 나자 물었지.
알아서 하겠다고 하데.
무엇때문에 그 큰 액수를 대출했냐고 물었더니
그냥 쓸 일이 좀 있었다고 ,,,
원래 난 돈에 그리 개념이 없는 사람이라서
생활비만 타고 그이가 전부 이럭 저럭 했거든.
그렇게 사는게 불편하지 않았으니깐.
아니 오히려 난 그게 편했지 뭐.
막연한 불안감은 있었지만 크게 염려하진 않았어.
그이를 믿었거든.
근데 어느날부터는 그이가 그러데.
가계부를 써달라고...
가계부쓰는 일이 귀찮았지만 써달라고 하니깐
쓰기는 했지.
근데 앞뒤 계산이 맞지 않을 때가 많은 거야.
나 원래 숫자 개념이 없잖니.
신경쓴다고 하는데도 계산이 안 맞을 때가 종종 있었나봐.
짜증을 내더라고...
그게 뭐 짜증낼일이냐고 한번은 쏘아붙였더니
대학나온 사람이 그런 걸 제대로 하나 못하냐고 면박을 주더라고...
그 다음부터 정말 신경써
가계부 꼬박꼬박 계산 맞추느라고 나 꽤 힘들었어.
그렇게 가계부를 몇달을 썻더니
인제 생활비를 빠뜻하게 가계부예산만큼 주는 거야.
그래도 쓸건 쓰고
가끔씩 애들하고 맛있는거도 사먹고 그랬지.
그런것 정도야 뭐 어떻겠어.
어느날 보니깐
이건 가족이 아닌거야.
애들하고 나하고 우리 셋뿐인거야.
그이는 마치 우리가 사는 세상에 없는 사람같더라고.
애들도 아빠하고 있는게 어느 순간 어색해져 버린 상태.
가끔씩 깜짝 깜짝 놀랄때가 있더라고,
어떻게 가족이 이런 모습일 수 있을까?
난 어느날 밤 애들이 잠든사이
그이가 있는 컴퓨터방으로 베게를 가지고 갔지.
그런데 문이 잡겨 있데...
입때껏 한번도 그 방문을 밤에 열어본적이 없었거든.
난 그날 너무 황당했어.
너무 화가났어.
가슴이 철렁하고
뭔가 내 속에서
쨍하고 깨지는 소리 그것을 환청처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몇번 노크했는데도 반응이 없더라.
불은 켜져있었는데...
그 뒤로 한번도 그방을 찾는 일이 없어졌지.
난 심한 우울증이 찾아왔어.
내 꿈 그것이 왕창 부서지고 있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지.
시누이기 이전에 친구를 찾아갔지.
오빠가 이상하게 변해가는 듯하다고...
시누가 그러데...
원래가 그런 사람이라고.
가족들하고도 대화가 거의 없었고
겨우 자기하고 가끔씩 아주 가끔씩 필요한 말 몇마디가 고작이었다고...
그러나 책임감은 무척 강하고
또 사리분별이 분명해서 크게 사고 한번 안 쳤다고.
원래 성격이 그러한데
나하고 결혼하면 좀 나아질 줄 알았다고...
그게 내 스토리의 전말이야.
난 어쨋든 두 아이의 엄마이고 또 맏며느리이고 그의 아내이고 하고...
그이가 그렇게 자신의 성벽을 튼튼히 쌓아가는 동안
난 쉼없이 그이의 문을 두드렸지.
도시락을 싸들고 회사를 방문하기도 하고
주말이면 애들맡겨놓고
그이의 산행에 앞장서 나섰지.
단 둘만의 시간을 가져보려고...
그런데 어느날부터 아예 금요일 밤부터 산에 가더라고..
일요일 밤에야 녹초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와 밥먹고 씻고 자기방으로,,,
그세월이 육칠년쯤 되나?
그래도 나도 나름 애들키우면서 내 세계를 가지려고 했어.
남편이 못채워주는 어떤 공간을 내 스스로 채워나가야겠다는 오기
그런게 발동하데...
애들 학교에 학원가는 틈틈히 요리학원도 가고
또 동네아줌마들이랑 수다도 떨어보고
고상하게 그림도 배우러 다니고...
그런데도 이상하게 허전한 내 일상때문에 아마 난 참 많이 울었던거 같아.
그냥 내 운명이려니 그렇게 생각했어.
누구에게 하소연하겠어.
그렇다고 해결될일이 아무것도 없을 텐데...
그렇게 산 세월 어느날 아침
안되겠다 싶어
널 찾아갔던 거고..."
그렇다 . 한참 내가 정신이 없었을 때,
연애를 막 시작했을 무렵 그녀는 어느날 불쭉 나를 찾아왔었지.
그때 난 그녀의 이야길 들었어야 했는데...
내 이야기가 아니라 그녀가 찾아온 이유를 물었어야 했는데...
난 눈치코치없이 줄창 내 이야기만 늘어놓았으니...
" 어느날 남편이 그러데. 이제 회사그만 두었다고...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상의도 없이 회사를 그만 두었냐고 채근하는 나에게 그러데.
안굶길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어떻하겠어. 본인이 이미 결정해 결론이 나고 출근하지 않는다 하니...
그러곤 하루종일 아침에 눈뜨면 밥먹고 씻고 화장실가는 시간이외엔 컴퓨터방에서 꼼짝않는거야.
첨에는 저라다 미치는 거 아니겠어 내심 걱정도 되데.
애들도 아빠가 집에만 틀여밖혀 있으니
긴장감이 도나봐. 발걸음도 고양이 발걸음
웃음도 사라지고 뭐 네 사람이 사는 집이 절간 같았어.
나도 내 좋아하는 음악한번 크게 틀지 못하고...
첨에는 하루 세끼 꼬박꼬박 새밥지어 대령했는데...
어느날 부턴 나도 그게 스트레스인거라.
그래서 밥통에 하루분의 밥을 지어놓고
점심은 간단하게 차려놓고
내가 집을 나가기 시작했어.
같은 공간에 하루종일 같이 있다는 것이 숨막힐 지경이 되었나봐.
그렇게 나는 밖으로 떠도는 주부가 되었고
그이는 하루종일 집안 컴퓨터 방안에만 꼼짝없이 틀여밖혀있고
금요일밤이면 여지없이 산행에 나서고...
그러기를 이삼년을 하다가
중국에 가게 된거야.
옛날에 다니던 회사에 재 취업해 중국으로 발령이 났다고 하드라.
일이 그렇게 된거야."
무슨 황당개소리.
그녀는 나에게 조차 그녀의 결혼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한번도 하지 않았는데...
"큰애 군대가고 둘째애 영국으로 가고
그이 중국으로 가고
나 혼자 남게 됐어..
첨엔 나더라 같이 중국가자데..
나도 그럴까 생각했는데 내가 중국에 가서 뭐하겠어.
숨막히는 그이를 어떻게 견디겠어.
그래서 난 남았고 지금 이러고 있는 거야.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시간때우기를 위해 시작했던 그림그리기도,
또 글쓰기도, 취미가 붙어서
이렇게 육체노동에 시달려도
주말에는 그림도 그리러가고, 글쓰기 모임에도 참석하고
틈틈히 책도 볼 수있고
남들 사는 모습도 엿볼 수 있어서 나름 괜찮아.
근데 요즈음 몸이 자꾸 힘들어지데...
쉬 피곤하고,
아마 내가 안간힘으로 내 자신을 벼티려고 하는 정신력때문에
그나마 이정도라도 할 수 있는 것 같아."
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내 일이 아니었지만 그녀가 혼자서 견뎌냈어야 할
그 절벽같은 시간들...
그녀는 가끔씩 눈을 껌뻑거렸는데 난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어쩜 그녀는 너무 많이 울어서 아마도 눈물샘이 마르지 않았을까?
남의 일처럼 건조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난 다만 목놓아 통곡을 했고
어느 순간에
우리 둘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퍽퍽 퍼질러 앉아 그렇게 한참을 울었나보다.
기실 내가 그녀를 방문한 목적은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난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녀의 설움에
내 답답함에 우리자신들에 대한 연민때문에 밤새토록
눈이 퉁퉁부운채로 그렇게 울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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