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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우물이야기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2. 4.

어제는 어떤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평생을 두고 사람들은 감기를 앓습니다.

마음의 감기도 나이를 불문하고 걸리는 피하기 어려운 증상입니다."

그냥 넘어갔으면 좋으련만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왈칵 눈물이...

아마도 마음의 감기란 우리들 모두가 언제나 달고 사는 병인가 봅니다.

주변에  떠도는 인플레인자가  면역성이 약한 몸에만 침입해

감기를 앓게 하는 것처럼

우리의 맘의 감기도 정신이 건강하지 못할 때 여지없이 침입해 

심한 감기몸살을 앓게 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난 쉬임없이 내 정신상태를 점검하며 삽니다.

 

생각해보면 유난히 내 모습을 어딘가에 비춰보는 걸 좋았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래아이들처럼 거울속의 나가 아니라 집앞에 흐르는 또랑물에

옆집 우물물에 마을 언저리의 방죽물에...

그렇게 쉼없이 나 자신을 비춰가며

자신에게 주문을 걸어보곤 하던 어린시절이 생각납니다.

아마 거울에 비친 예쁘지 않은 실제의 내 모습보다

넘실넘실, 흐릿흐릿, 졸졸졸

흐르는 물속에 내 모습을 비춰보던 것을 더 좋아했던 이유는

부끄럽게도 어떤 열등감때문이었지 않았을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런  잔잔한 물결속에 이는 내 얼굴의 파문을

즐기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합니다.

실제의 내 모습보다 조금은 왜곡되어지고 내 상상의 여지를 발견할 수 있는 재미

그것에 도취돼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선명히 떠오르는 우물에 얽힌 그림들이 내 맘에 오롯이 남아있습니다.

 

우리집 마당에는 우물이 없었습니다.

바로 옆집에 우물물이 있긴 하였지만 

 집에서 100M쯤 떨어진 동네의 큰 우물을 이용했습니다.

칠월 칠석날인가 아니면 그 전날인지 ,

그런 날은 우물물을 대청소하는 날이었습니다.

우물물을 바닦까지 싹싹 퍼내고 간단한 마을 제사를 지냈던 기억

그리고 밤새 우물물을 두꺼운 가마니로 덮어놨던 기억

날이 새기 무섭게 가마니덮개를  열었을때

맑은 물이 찰랑찰랑, 넘실넘실하는 순간의 환희...

그리고 그 쌉쌀하고 상긋했던  첫 우물물의 냄세...

그 맑고 푸진물에 고개를 처밖고 내 얼굴을 확인해 보는 순간의 기쁨...

무엇이었을까

어린 나에게 그것이 그토록 심오한 어떤 의식처럼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은...

가끔씩 그런 의문을 품어본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끊임없이 나 자신의 어떤 부분을 확인하고 발견해보고자하는 내 성품중의 하나였나보다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 자신들여다 보기, 

 

요즈음 들어 특히나 혼자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자신들여다보기에 심취해 있습니다.

나를 이해할 수 있기 시작하면서부터 타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여태까지 난 왜 몰랐을까요?

 

마치 나르시시즘에 빠진  나르키소스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몰락을 가져오는 비극의

주인공은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지는 우물에 얽힌 잔잔한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 엄마와 아버지는 참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정말 소설속의 한 대목처럼 정한수 찬물 한그릇으로 혼인식을 대신할만큼

가난한 사람들로 시작한 가정이었다고 합니다. 

가난했지만 건강한 마음과 육체를 타고나서인지

네살터울로 딸둘 아들둘 낳아 열심히 열심히 산덕분에

큰딸인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무렵부터

땅떼기를 하나 둘씩 사실수 있었다고 합니다.

처음엔 문서도 가질 수 없었던 산 중턱의 자갈밭 땅

그리고 두번째 땅으로 심기만 하면 뭐든지 잘된다는 300평쯤 되는 밭...

그 밭안에 작은 우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물이끼로 우물이 보일랑말랑 했지만

물의 양은 심심찮게   쉼없이 졸졸졸 작은  물줄기를 이뤄  

그 밭 한켵에  또랑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어느날인가  아버지는 삽으로 작은 또랑을 크게 파내시고

우물을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둑을 만드시고 고라실밭을 논으로 만드신겁니다.

밭에 한가득 물이 차고 고추나 배추대신에 그 밭엔 벼를 심기 시작하셨습니다.

해마다 넘쳐나는 작은 우물의 물로 우리논은 물론이고 옆집논도 또 그 옆집논도

아무리 심한 가뭄이 와도 부족하지 않는 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번 논을 사실때도 아버지는 그 논옆에 우물을 파셨습니다.

이상하게도 아버지가 파신 우물은 언제나 풍성한 물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단 하나 우리집 작은 마당에 몇번인가 엄마를 위한 우물파기

그것은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돌아가셨기는 하지만...

그렇습니다.

어느땐가 부터 난 우물에 대한 추억이 쌇이는 만큼

내 마음이 우물같기를 바라기 시작했습니다.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우물같은 마음...

 

난 내 맘의 우물속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릅니다.

그 우물을 자꾸자꾸 퍼내보면서 그 우물속에  내 모습을 비춰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아버지가 발견하시고 만드셨던 마르지 않는 우물들...

내 논을 적시고 이웃의 논을 적셔도 남아돌았던 풍성했던 우물물의 깊이를 알 수 없었지만

내심 아마도 아버지가 바라셨던 만큼

내 마음속 우물물도 그렇게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우물이 되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