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곡선 위의 노래」 - <인사이드 르윈>을 보고
르윈은 실패한 음악가일까. 아니면 아직 성공하지 못했을 뿐인 음악가일까?
연휴에 영화 한 편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러 나가는 일조차 귀찮았다. 결국 서가에 앉아 혼자 영화를 한 편 관람했다. 영화관도 아니고 집도 아닌 책들 사이에서 본 영화는 <인사이드 르윈>이었다. 이동진 평론가의 '삶의 폐곡선에 물처럼 고인 우수'라는 한 줄 평에 혹해서였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이상하게 마음에 걸리는 문장이었다. 무슨 뜻인지 알 것도 같고 아직은 알 수 없을 것도 같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그 문장이 자꾸 생각났다.
<인사이드 르윈>은 2013년 코엔 형제가 만든 영화다. <파고>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만든 조엘 코엔과 에단 코엔이 함께 쓰고 함께 연출했다. 그해 칸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어 심사위원대상을 받았고 한국에는 이듬해 1월에 개봉했다. 배경은 1961년 겨울 뉴욕 그리니치빌리지다. 포크 음악이 막 피어나던 시절이고 밥 딜런이 아직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직전이다.
르윈 데이비스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전혀 없던 사람은 아니다. 코엔 형제는 그 시절 그리니치빌리지에서 노래하던 포크 가수 데이브 반 롱크의 회고록에서 많은 것을 빌려왔다. 르윈이 찾아가는 음악계의 거물 버드 그로스먼은 밥 딜런의 매니저였던 앨버트 그로스먼을 떠올리게 한다. 그가 만들고 있다는 트리오는 피터 폴 앤 메리를 닮았다. 르윈은 오스카 아이작이 연기했다. 영화 속 노래를 그가 직접 부르고 기타도 직접 친다. 캐리 멀리건이 진을,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짐을, 존 굿맨이 롤랜드 터너를 연기했다. 버드 그로스먼은 F. 머리 에이브러햄이 맡았다. 음악은 코엔 형제와 오래 함께해온 티 본 버넷이 만들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실패한 가수의 이야기이면서 성공한 사람들이 등장하기 직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역사가 기억하는 이름들 바로 옆에 기억되지 못한 누군가가 있었다.
르윈 데이비스는 포크 가수다. 노래를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기타도 잘 친다. 목소리에는 쓸쓸함이 있고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자기 앞에 놓인 삶보다 훨씬 큰 사람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계속 제자리다. 돈이 없고 살 집도 없다. 친구의 소파를 전전하며 잠을 잔다. 자신이 녹음한 음반은 팔리지 않고 공연을 해도 생계가 해결되지 않는다. 한때 함께 음악을 하던 친구는 세상을 떠났고 그 뒤로 르윈은 혼자 음악을 계속하고 있다.
르윈은 자신이 형편없는 음악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세상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르윈을 보고 있으면 안쓰럽다가도 금세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는 가난하지만 가난한 사람처럼 굴지 않는다. 도움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다른 사람의 소파에서 자면서도 그 사람들의 사정을 헤아리는 데에는 인색하다. 무엇보다 자존심이 세다. 그 자존심이 르윈을 지켜주는 것인지 르윈을 계속 같은 자리에 묶어놓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영화에서 르윈은 계속 어딘가로 간다. 친구의 집으로 가고 누군가의 소파로 가고 동생을 찾아가고 시카고까지 간다. 하지만 어디를 가도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시카고까지 간 것은 어쩌면 마지막 기회였을 것이다. 그는 음악계에서 영향력 있는 버드 그로스먼을 찾아가 혼자 기타를 들고 노래한다. 르윈의 노래는 좋다. 적어도 우리가 듣기에는 그렇다. 그는 노래를 못해서 거절당한 것이 아니다.
그로스먼은 냉정하다. 르윈의 솔로 음악에서 돈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신 자신이 만들고 있는 트리오에 들어오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길 하나가 열린 셈이다. 하지만 르윈은 거절한다. 그 순간 나는 르윈이 실패한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는 음악으로 성공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성공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혼자가 아니라 셋이 되는 것과 자신의 음악이 아닌 다른 방식의 음악을 하는 것과 자신의 이름이 가장 앞에 놓이지 않는 것은 르윈에게 성공으로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르윈에게도 한때 파트너가 있었다. 마이크는 조지 워싱턴 다리에서 뛰어내렸고 르윈은 여전히 그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 흔적은 르윈을 종종 재워주던 교수 부부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드러난다. 사람들의 청에 못 이겨 르윈은 마이크와 함께 불렀던 'Fare Thee Well'을 부른다. 교수의 아내가 마이크가 맡았던 화음을 따라 부르자 르윈은 노래를 멈추고 화를 낸다. 식탁은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그 화음의 자리는 여전히 마이크의 것이다. 어쩌면 르윈은 마이크를 잃은 뒤 혼자가 된 것이 아니라 혼자가 되는 것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혼자라면 누구에게도 자신의 실패를 나눠 가질 필요가 없다.
그런 점에서 르윈은 참 이상한 사람이다. 사람이 필요하면서도 사람을 밀어낸다.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움받는 것을 싫어한다. 성공하고 싶으면서도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타협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해야 하는 순간에는 뒤로 물러선다.
진과의 관계가 그렇다. 진은 르윈과 가까운 사이지만 르윈을 좋아한다고만 말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그녀는 르윈에게 화를 내고 그를 귀찮아하고 때로는 그를 필요로 한다. 르윈 역시 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사랑보다 훨씬 많은 피로가 쌓여 있다. 진이 임신 사실을 말했을 때 르윈이 가장 먼저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현실이다. 아이가 자신의 아이일 수도 있다. 돈이 필요하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 순간 르윈에게는 음악가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삶이 찾아온다. 르윈은 그 삶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계속 음악으로 돌아간다. 음악은 그에게 도피처이면서 동시에 자존심이다. 내가 가진 것은 이것뿐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마지막 것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 중 하나는 짐과 함께 녹음한 'Please Mr. Kennedy'다. 르윈이 음악으로 먹고살겠다고 고집하던 바로 그 시기에 그가 별것 아니라고 여긴 노래가 돈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르윈은 이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스꽝스럽고 가벼운 노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의 일로 당장 돈이 필요해서 녹음한다. 그리고 나중에 그 노래가 큰 인기를 얻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문제는 르윈이 로열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200달러를 받고 녹음 계약을 해버렸다.
참 묘하다. 자기가 진짜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도 사주지 않는데 하찮게 여겼던 노래는 성공한다. 예술가에게 이보다 더 잔인한 일이 있을까. 자신의 작품에 대한 믿음과 세상이 작품에 매기는 값은 전혀 다를 수 있다.
<인사이드 르윈>은 여기서 르윈을 불쌍한 천재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끊임없이 묻는다. 정말 세상이 르윈을 몰라준 것일까. 르윈에게도 자신의 삶을 망친 책임이 어느 정도 있는 것은 아닐까.
시카고에 갈 때 함께 차를 타는 롤랜드 터너는 형편없는 인간처럼 보인다. 무례하고 자기중심적이고 마약을 한다. 포크 음악을 대놓고 깔보고 죽은 마이크를 조롱하기까지 한다. 르윈은 그런 롤랜드를 견디기 힘들어한다. 그런데 둘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둘 다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다. 둘 다 자기 음악만이 진짜라고 믿는다. 르윈이 롤랜드를 그토록 견디지 못한 것은 거울을 보는 것 같아서였는지도 모른다.
고양이 율리시스도 계속 르윈을 따라다닌다. 정확히 말하면 르윈이 고양이를 따라다닌다. 교수 부부의 집을 나서다 고양이가 따라 나오는 바람에 르윈은 고양이를 안고 뉴욕을 떠돈다. 그러다 고양이를 잃어버리고 겨우 찾았다고 생각한 고양이는 율리시스가 아니었다. 시카고에서 돌아오는 밤길에는 차로 고양이 한 마리를 치기도 한다. 고양이는 절뚝거리며 숲으로 사라지고 르윈은 그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 율리시스는 제 발로 집에 돌아와 있다. 르윈은 돌아오지 못했는데 고양이는 돌아왔다. 나는 이 장면이 좋았다. 사람보다 고양이가 자신의 집을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우스우면서도 슬펐다. 르윈에게는 집이 없다. 음악도 사람도 그의 집이 되지 못한다. 그는 계속 떠돈다.
그러다 결국 뉴욕으로 돌아온다. 다시 배를 타려고 밀린 선원 노조 회비를 내고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가 노래를 부른다. 음악을 내려놓고 다른 삶을 살아보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또 일이 꼬인다. 동생에게 버리라고 했던 상자 안에 선원 면허증이 들어 있었다. 르윈은 삶에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버리고 나중에 그것을 찾으러 다닌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면서도 웃을 수가 없다. 우리도 가끔 그렇다. 그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버렸는데 시간이 지나서야 그것이 내게 필요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도 기회도 때로는 마음도 그렇다.
이제 영화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르윈은 가스라이트에서 노래를 부른다. 영화가 시작할 때 보았던 바로 그 장면이다. 우리는 그제야 처음 보았던 장면이 시작이 아니라 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번에 르윈은 마이크와 함께 부르던 'Fare Thee Well'을 혼자 끝까지 부른다. 20세기 초 텍사스의 강가에서 딩크라는 흑인 여성이 부르던 것을 민속학자 존 로맥스가 채록한 오래된 민요다. 교수 부부의 식탁에서는 끝내 마치지 못한 노래이기도 하다. 노래를 마친 르윈은 골목으로 불려나가 얻어맞는다. 그사이 무대에는 하모니카를 목에 건 젊은 가수가 오른다. 밥 딜런이다. 그가 부르는 노래의 제목도 'Farewell'이다. 영화는 다시 처음의 자리로 돌아갈 것처럼 끝난다. 한 바퀴를 돌았지만 르윈에게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그 옆을 지나가는 시대뿐이다.
그래서 '삶의 폐곡선에 물처럼 고인 우수'라는 문장이 다시 떠오른다. 폐곡선은 끝이 시작으로 돌아오는 선이다. 르윈의 삶도 그렇다. 어디론가 가려고 애쓰지만 결국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온다. 실패했다고 생각하면 다시 음악을 붙잡고 음악을 붙잡으면 다시 실패한다. 사람을 만나지만 관계를 망치고 혼자가 되면 다시 사람을 찾는다.
그런데 그 폐곡선에 고여 있는 것이 절망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수다. 슬픔과 체념과 미련이 섞인 감정이다. 르윈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실패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적어도 그는 노래를 부른다. 아무도 듣지 않는 것 같아도 돈이 되지 않아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계속 노래한다. 어쩌면 그것이 예술가에게 가장 잔인한 일이면서 가장 아름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계속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재능 때문인지 고집 때문인지 미련 때문인지 본인조차 구별하지 못하면서 계속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서가 밖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나는 한동안 꺼진 화면 앞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 한쪽이 서늘했다. 르윈이 나 같아서였다. 아무리 오래 써도 성공이라는 이름 안에는 끝내 들어가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이다. 그 패배감을 조용히 안고 다음 날 다시 책상 앞에 앉는 사람이다.
글을 써온 지 이십오 년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몇 번이나 르윈이었을까. 좋은 문장이라고 믿고 오래 붙들었던 글이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을 때가 있었다. 별 기대 없이 써둔 짧은 글이 뜻밖에 누군가에게 닿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조금 기뻤고 조금 서글펐다. 내가 진짜라고 믿는 것과 세상이 알아봐 주는 것 사이의 거리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나도 르윈처럼 자존심이 셌을 것이다. 이렇게 써야 한다고 고집하면서 다른 길을 외면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 고집이 나를 지켜준 것인지 나를 같은 자리에 묶어둔 것인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계속 쓰는 것일까. 재능이라고 말하기엔 자신이 없다. 고집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억울하다. 미련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오래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르윈이 성공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그 질문이 조금 달라졌다. 성공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계속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르윈에게는 그것이 노래였을 것이다. 나에게는 문장이다.
연휴가 끝나면 다시 원고를 열어야겠다. 아마 르윈처럼 별다른 곳으로 가지 못한 채 원래 앉아 있던 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폐곡선이라도 계속 걷다 보면 어느 날 그 곡선 위에 작은 물결 하나쯤은 생길 것이다.
날개가 있다면
노라의 비둘기처럼
강 위를 날아서
사랑하는 이에게 갈 텐데
그대 잘 지내요
내 사랑 그대
그대 잘 지내요
이른 아침에
이슬비 맞으니
마음 한구석이
시리고 아프더이다
그대 잘 지내요
내 사랑 그대
그대 잘 지내요
오래지 않아
어느 날 아침
내 이름 불러도
난 떠나고 없겠지요
그대 잘 지내요
내 사랑 그대
그대
그대 잘 지내요
(생략)
르윈이 마지막 무대에서 혼자 끝까지 부른 노래다. 처음엔 마이크와 둘이 부르던 노래였다.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에도 그 노래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울렁였다.
그대 잘 지내요. 내 사랑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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