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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들

40화. 에피쿠로스학파 — 치유로서의 철학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6. 4. 13.

 

[웹소설] 짜라투스트라 교수님의 철학 수업: F학점은 사양한다.

 

40화. 에피쿠로스학파 — 치유로서의 철학

 

강의실 문이 열리자 짜교수가 들어섰다. 손에는 분필 대신 작은 화분 하나가 들려 있었다. 학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짜교수는 그것을 교탁 위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작고 소박한 허브 화분이었다.

 

“오늘부터 새로운 학파다.”

 

짜교수는 칠판에 굵게 적었다.

[ 에피쿠로스학파 — 치유로서의 철학 ]

진: “교수님, 화분은요?”

 

“나중에 알게 된다.”

 

RM: “에피쿠로스요. 쾌락주의 아닌가요? 즐기는 철학이라고 들었는데.”

 

짜교수는 분필을 들다가 멈추었다. 늘 그렇듯 첫 시간에 나오는 오해였다.

“그 오해부터 시작하자.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말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쾌락은 네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할 것이다.”

 

짜교수는 칠판에 적었다.

[ 기원전 341년 사모스 — 기원전 270년 아테네 ]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41년, 에게해의 섬 사모스에서 태어났다. 아테네 시민권을 가진 아버지를 두었지만, 그의 유년은 불안했다. 헬레니즘 시대의 혼란 속에서 그는 일찍부터 철학의 문을 두드렸다. 열네 살에 철학을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슈가: “스토아의 제논과 거의 같은 시대네요.”

 

“그렇다. 두 사람은 같은 시대, 같은 도시에서 전혀 다른 답을 내놓았다. 아테네는 그 시절 두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리던 곳이었다. 제논은 회랑에서 강의했고, 에피쿠로스는 정원에서 가르쳤다.”

 

뷔가 고개를 들었다.

뷔: “정원이요?”

 

“그렇다.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06년 아테네에 ‘케포스’, 정원을 샀다. 그곳이 학파의 이름이 되었다. 케포스, 정원의 학파. 스토아가 열린 회랑이었다면, 에피쿠로스의 정원은 담장 안의 공동체였다. 그러나 그 담장은 배제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정국: “어떤 사람들이 모였나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구성이었다. 노예도 들어올 수 있었다. 여성도 환영받았다. 부유한 귀족만의 철학이 아니었다. 에피쿠로스의 정원은 상처 입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의 철학을 치유의 철학이라 부른다.”

 

RM: “치유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짜교수는 잠시 교탁 위의 화분을 바라보았다.

“에피쿠로스는 철학을 의학에 비유했다. 몸의 병을 고치지 못하는 의술이 쓸모없듯, 인간의 고통을 치유하지 못하는 철학은 공허하다고 했다. 그가 진단한 인간의 병은 무엇이었을까. 두려움이었다. 신의 벌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고통에 대한 두려움. 에피쿠로스는 이 세 가지 두려움이 인간을 병들게 한다고 보았다.”

 

슈가: “그래서 처방이 쾌락이었던 건가요?”

 

“처방은 쾌락이 아니라 아타락시아였다. 마음의 평온, 흔들리지 않는 고요함. 에피쿠로스가 말한 최고의 쾌락은 감각적 자극이 아니라 고통의 부재였다. 몸에 고통이 없고 마음에 불안이 없는 상태. 그것이 그가 말한 행복의 정의였다.”

 

뷔가 조용히 말했다.

뷔: “스토아는 덕으로 흔들리지 않으려 했고, 에피쿠로스는 고통을 없애서 고요해지려 했군요. 방향은 다르지만 도착점이 비슷한 것 같아요.”

 

짜교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추었다.

“비슷하면서 다르다. 스토아는 세계 한가운데 서서 흔들리지 않으려 했다. 에피쿠로스는 세계의 소음에서 한 발 물러나 정원 안에서 고요를 찾으려 했다. 같은 시대의 두 처방이었다.”

 

진: “에피쿠로스 본인은 어떤 삶을 살았나요?”

 

“그는 자신의 철학을 몸으로 살았다. 정원에서 친구들과 소박하게 먹고 마시며 대화했다. 빵과 물로 족하다고 했다. 사치가 아니라 단순함 속에서 기쁨을 찾았다. 그리고 평생 병을 앓았다. 요로결석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지만, 죽기 직전까지 쓴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짜교수는 칠판에 천천히 적었다.

[ “오늘은 내 몸의 고통보다 철학적 대화에서 오는 기쁨이 더 크다.” — 에피쿠로스, 임종 직전의 편지 ]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학생들은 그 문장을 바라보았다. 정국이 천천히 노트에 받아 적었다.짜교수가 교탁 위의 화분을 가리켰다.

“이것이 오늘의 화분이다. 에피쿠로스의 정원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철학은 강의실 안에만 있지 않다. 정원에서도, 소박한 밥상 앞에서도, 친구와 나누는 대화 속에서도 철학은 살아 있다.”

칠판 한쪽에 덧붙였다.

[ 오늘의 퀘스트: 오늘 하루 내가 불필요하게 두려워했던 것 하나를 적어라. 그 두려움이 진짜였는지 되물어라. 다음 시간에 가져와라. ]

 

짜교수가 학생들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다음 시간에는 에피쿠로스가 남긴 문헌들을 살펴본다. 그가 어떤 글을 썼고, 무엇이 살아남았으며, 어떤 목소리로 우리에게 닿아 있는지를 볼 것이다.”

 

학생들이 강의실을 나갔다. 교탁 위에 허브 화분이 남아 있었다. 봄볕이 그 위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정원의 철학이 작은 강의실 안으로 걸어 들어온 것 같았다.

 

 

철학 해설: 에피쿠로스학파 — 치유로서의 철학

에피쿠로스(기원전 341~270)는 헬레니즘 시대의 혼란 속에서 인간의 근본적 두려움을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신의 징벌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고통에 대한 두려움. 그는 이 세 가지가 인간을 병들게 한다고 진단했고, 철학을 그 치유의 도구로 보았다.

 

그가 아테네에 세운 ‘케포스(정원)’는 단순한 학교가 아니었다. 노예와 여성도 받아들인 열린 공동체였고, 소박한 삶과 깊은 우정을 실천하는 장소였다. 에피쿠로스 철학의 핵심은 흔히 오해되는 감각적 쾌락주의가 아니라, 고통의 부재(아포니아)와 마음의 평온(아타락시아)이다. 이것이 그가 말한 최고의 쾌락이자 행복의 조건이었다.

 

다음 화에서는 에피쿠로스가 남긴 문헌들을 살펴본다. 방대한 저작 중 극히 일부만 살아남은 이유, 그리고 살아남은 텍스트들이 어떤 방식으로 그의 철학을 전하는지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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