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과 복수 전공, 현대 소설론의 다음주 토론 작품은 장류진 작가의 단편 소설 『잘 살겠습니다』 이다. 처음 접하는 작가이기에 잠깐 작가에 대해 살펴보았다.
장류진은 1986년생 대한민국 소설가이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경희사이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학원을 거쳐 동국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를 수료하였다. 대학 졸업 후 약 10년간 판교의 IT 회사에서 직장인으로 일한 경험이 있으며, 이때의 경력이 그녀의 작품 세계에 구체적인 현실감을 더해주었다. 실제로 그녀의 등단작 「일의 기쁨과 슬픔」은 IT 회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로, 해당 업계 종사자들의 큰 공감을 얻으며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후 2019년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을 출간하였으며,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2021), 두 번째 소설집 『연수』(2023), 에세이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2025) 등을 발표했다. 특히 『달까지 가자』는 온라인 플랫폼 ‘문학3’과 ‘스위치’에 연재되었고, 단행본 출간 직후 드라마 판권이 팔려 2025년 MBC 방영이 예정되어 있다.
장류진의 소설은 20~30대 직장인의 현실, 감정, 노동의 조건 등을 밀도 있게 그려내며 많은 독자들의 공감과 지지를 받고 있다. 그녀는 “오늘의 한국사회를 설명해줄 타임캡슐을 만든다면 넣지 않을 수 없는 책”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동시대성과 사실성을 담보한 서사를 펼쳐 왔다. 소설가 정이현과 권여선은 그녀를 두고 “현실의 언어로 삶을 명확하게 포착하는 작가”, “천생 소설가”라고 높이 평가한 바 있다.
현재 장류진은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며, 꾸준한 집필과 출간을 통해 현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녀는 젊은작가상(2020), 심훈문학대상(2020) 등을 수상하였으며, 출간한 작품들은 여러 해에 걸쳐 예스24, 알라딘, 교보문고 등의 '올해의 책'에 선정되는 성과를 이루었다.
장류진의 단편 소설 「잘 살겠습니다」 독후감
이번에 토론할 작품 장류진의 단편 소설 「잘 살겠습니다」는 현대문학 2018년 12월호에 처음 실렸던 작품이라고 한다.
작품 개요
장류진의 단편소설 「잘 살겠습니다」는 결혼을 매개로 드러나는 인간관계의 미묘한 균열과 윤리적 딜레마를 다룬 작품이다. 결혼식이라는 통과의례와 청첩장이라는 사소한 사물은, 효율 중심의 사회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계산하는 주인공의 태도를 통해 감정의 억제와 내면의 혼란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된다. 작품은 겉으로는 예의와 친절을 유지하려는 인물이 실제로는 얼마나 타인을 배제하고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며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며, ‘잘’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 ‘나’와 빛나 언니의 대조를 통해 관계의 진정성과 사회적 거리 두기의 아이러니를 예리하게 포착한 이 작품은, 관계의 온도와 인정 욕망의 복잡한 감정을 날카롭고도 섬세하게 그려낸다.
2. 줄거리
결혼을 앞둔 ‘나’는 예비 남편 구재와 함께, 이걸 왜 나한테 줘 하는 눈빛을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래서 최대한 보수적으로 돌리기로 마음먹고 정말 가까운 사람에게만 청첩장을 주기로 했고 줄까 말까 싶으면 안 주는 쪽으로 하객 명단을 만들었다. 그래서 평소 왕래가 없던 회사 동료 ‘빛나 언니’는 당연히 제외되었지만, 뜻밖에도 언니가 먼저 청첩장을 요구해 오며 둘의 묘한 관계가 다시 시작된다.
밥 한 끼를 빌미로 청첩장을 건넨 ‘나’는, 언니가 자신의 결혼 준비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조언을 구하자 마지못해 준비 노하우와 엑셀 파일까지 공유한다. 그런데 언니는 막상 결혼식에 나타나지 않았고, 축의금조차 보내지 않는다. 화가 난 ‘나’는 언니가 선물을 하고 싶다며 보낸 “갖고 싶은 거 말해줘”라는 메시지를 모른척하지만 빛나 언니는 밥이라도 사겠다고 하며 한정식집으로 이끌었는데, 1인식 25,000원짜리였다.
그런데 빛나 언니는 자신의 청첩장을 직접 건네주지 않고 컴퓨터 패드 아래에 깔아놓고 간 것에 흥분한 나는 빛나 언니에게 보통 관계의 축하비인 50,000원에서 자신의 밥값 25,000원과 찻값 13,000원을 뺀 12,000원 선물을 하겠다고 결정하고 11,000핸드크림에 카드 1,000원용 선물을 준비하고 카드에
“빛나 언니 결혼 축하해요.
10년 뒤에 우리 더욱 성장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요.”
라는 짧은 문장이 적힌 손편지를 건넨다. 그러나 빛나 언니는 예상치 못한 감정으로 울며 ‘나’를 껴안고 이 손편지는 이내 언니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으로 바뀐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책상 위에 놓인 빛나 언니의 결혼식 답례떡 상자를 발견한다. 상자에는 “축하해 주신 마음 잊지 않고 잘 살겠습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고, 따뜻한 경단 하나를 씹으며 마지막으로 “빛나 언니는 잘 살 수 있을까. 부디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고 생각한다.
3. 인물 분석
1) ‘나’ : 지나치게 냉정한 현실감각과 은밀한 연민 사이
성격 및 태도
주인공인 ‘나’는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지만, 실제로는 현실적이고 계산적인 성향이 강하다. 결혼식 하객 선정 기준을 ‘내가 이 사람의 결혼식에 기꺼이 갈 수 있는가’라는 경제적·정서적 비용 중심의 논리로 판단하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또한, 연봉 공개 이후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회사 내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통찰을 통해, 그녀는 자기반성적인 시선을 지닌 인물이다.
관계 및 심리
‘빛나 언니’를 단순히 민폐 캐릭터로 여기지만, 점차 그녀가 겪은 사기 피해나 메리지 블루, 눈물 등에서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정작 그녀는 언니를 이해하지 않으면서도, 누군가 자신을 무작정 따르는 감정에는 미묘한 책임감을 느낀다. 마지막에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은, 그녀 내면의 은밀한 연대의식을 드러낸다.
상징적 의미
'나'는 우리 사회의 중간 계층 여성 직장인의 초상을 대표한다. 비교와 계산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이자, ‘잘 산다’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현대적 자아이다.
2) 빛나 언니: 이상하고 아픈 ‘타자’의 얼굴
성격 및 태도
외모는 화려하지만 정작 ‘사회적 감각’이나 실용적 센스는 부족한 인물이다. 자꾸 지각하고, 말투는 유치하며, 긴 머리를 고집하고, 실수로 사내 메일을 전체 회신하는 등의 행동을 보면, 그녀는 주변과 어긋나는 ‘비주류’적 존재이다. 그럼에도 순수하게 타인의 친절을 기대하며, “우리 둘이 따로 만나자”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건넨다.
관계 및 심리
타인에게 부담을 주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녀 역시 불안하고 외로운 사람이다. 이중계약 사기를 당한 후 울고, 결혼을 앞두고도 메리지 블루를 겪으며, ‘나’의 선물에 진심으로 감동한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메신저 상태 메시지는, 그간 그녀가 얼마나 ‘받고 싶었던 감정’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상징적 의미
‘빛나 언니’는 ‘잘 산다’는 기준에서 늘 벗어나 있는 인물, 즉 사회적 기준에서 미숙하거나 뒤처지는 존재이다. 그러나 소설은 이 인물에게서도 사랑, 성장, 진심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한다. 그녀는 ‘나’에게 묵시적으로 말한다. “나도 잘 살고 싶다”고.
3) 구제: 무심한 듯, 그러나 체제의 수혜자
성격 및 태도
말수가 적고, 감정 표현이 크지 않은 구제는 평범하고 온건한 남성 인물이다. 그러나 ‘나’와의 연봉 차이가 천만 원이 넘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는 우리 사회가 남성에게 상대적으로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구조의 수혜자임이 밝혀진다. 그조차도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관계 및 심리
‘나’와 사랑을 나누는 연인이지만, 연봉 차이로 인한 긴장, 결혼 준비 과정에서의 무심함 등은 그가 불균형한 관계의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회피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나’가 빛나 언니에게 복수처럼 선물을 준비하는 행위를 보고 “내가 그냥 내줄게”라고 말하는 장면은, 구제의 무해하지만 맹한 감수성을 드러낸다.
상징적 의미
구제는 겉보기에 나와 평등한 관계를 맺는 듯하지만, 결국 ‘눈치채지 못한 권력’의 대표자이다. 그는 성차별의 직접 가해자는 아니지만, 구조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특권을 누리는 남성의 초상이다.
이 세 인물은 모두 ‘잘 산다’는 말이 누구에게나 다르게 다가오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을 통해 현대인의 불안, 관계의 계산, 그리고 감정의 진심을 보여준다.
4. 키워드
1) 계산된 인간관계
청첩장 배포 기준에서 드러나듯, ‘나’는 인간관계를 철저히 손익의 논리로 따진다. “기꺼이 갈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은 정(情)이 아닌 이성적 거리두기에서 비롯된 것. 인간관계의 감정마저도 가격표가 붙는 현실을 반영하며, “잘 산다”는 말이 지닌 무게를 계산의 언어로 재단한다.
2) 여성 직장인의 불평등
연봉 차이, 백오피스 배치, 경력 단절의 그림자는 주인공의 삶에 깊이 드리워져 있다. 빛나 언니와 ‘나’ 모두 구조적 한계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로, 겉모습이나 성격의 차이를 넘어서 ‘성별’이라는 공통된 조건 속에서 고군분투한다.
3) 의례와 진심의 간극
청첩장, 선물, 답례떡 등은 모두 사회의 ‘형식’이다. 하지만 이 형식들 속에서 ‘나’는 번민하고, 빛나 언니는 감동한다. 형식과 진심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예의’와 ‘정’ 사이의 어긋남이 작품 전반의 긴장을 이룬다.
4) 감정의 경제학
“빛나 언니가 사준 밥값 2만5천 원, 찻값 1,000원 핸드크림 1만2천 원……” 주인공은 끊임없이 감정과 물질을 ‘정산’하려 한다. 감정에도 값이 매겨지는 시대, 인간은 서로에게 무엇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지를 날카롭게 묻는다.
5) 잘 산다는 것의 의미
작품의 제목이자 마지막 문장 속 반복되는 이 말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라 삶의 윤리적 질문으로 작용한다. 누가 ‘잘 살고’ 있는가? 무엇이 ‘잘 사는 것’인가? 이 질문은 독자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조용하지만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5. 작품 분석
장류진의 단편소설 「잘 살겠습니다」는 결혼을 둘러싼 의례적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관계의 미묘한 결, 여성 직장인의 현실, 감정의 경제화, 그리고 ‘잘 산다’는 말의 무게를 유쾌하면서도 날카롭게 짚어내는 작품이다.
1) 의례 속 감정의 비틀림
작품은 결혼이라는 사회적 의례를 매개로 감정과 예의 사이의 어긋남을 정밀하게 포착한다. 청첩장, 밥값, 축의금, 선물 같은 통상적 기대와 관습이 ‘나’와 ‘빛나 언니’ 사이의 감정선을 엇갈리게 만든다. ‘나’는 정중함과 거리두기를 동시에 계산하며 행동하고, ‘빛나 언니’는 예상 밖의 친밀함과 진심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불일치는 현대인의 인간관계가 얼마나 형식적이고 피로한가를 드러낸다.
2) ‘잘 산다’는 말의 이중성
제목이기도 한 “잘 살겠습니다”는 단순한 결혼식 인사말을 넘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윤리적 질문이자 존재론적 고백으로 기능한다. 주인공은 자기보다 덜 '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불편한 타자인 빛나 언니를 통해, ‘잘 산다’는 말의 진짜 의미를 다시 묻는다. 이는 소설이 현실과 이상, 감정과 계산 사이에서 의미를 재구성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3) 현실감각과 연민 사이의 내면 균열
‘나’는 이성과 감정을 날카롭게 구분하려는 인물이다. 축의금 5만 원에 맞춰 1만2천 원짜리 선물을 사고, 핸드크림 하나에도 가성비를 따진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인식, 억눌린 연대감, 그리고 자신도 타인의 진심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자각이 서서히 스며든다. 마지막에 “빛나 언니는 잘 살 수 있을까, 부디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은, 계산 불가능한 연민이 주인공 안에서 작게나마 틈을 내고 있음을 상징한다.
4) 문체의 경제성과 리듬
장류진 특유의 문장은 간결하고 리듬감 있는 문체, 일상적 언어 속에 숨어 있는 감정의 진폭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데 능하다. 특히 대사와 내면 독백의 자연스러운 연결, 정보량이 많은 묘사 속에서도 유머와 아이러니가 살아 있는 시선은 이 작품을 단순한 직장 여성 서사가 아니라 사회적 감각이 살아 있는 현실 문학으로 끌어올린다.
5) 빛나 언니라는 '타자'의 재발견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빛나 언니’이다. 그녀는 단순히 웃긴 캐릭터나 민폐 캐릭터가 아니다. 오히려 ‘나’와 같은 여성 직장인의 또 다른 모습이자, 연약하고 어긋난 삶을 살아가는 모두의 ‘가능한 얼굴’이다. 빛나 언니의 존재는 ‘나’의 내면에 작은 균열을 일으키고, 독자에게는 “당신은 과연 잘 살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요약하자면, 「잘 살겠습니다」는 관계의 계산과 감정의 진심이 충돌하는 공간에서, 사회적 형식과 개인의 욕망이 어떻게 마주치는지,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도 누군가를 조용히 응원할 수 있는 마음이 무엇인지를 정밀하고도 따뜻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6. 작품에서 발견되는 철학적·심리적 고찰
1) “잘 산다”는 말의 존재론적 질문
작품의 제목이자 마지막 대사인 “잘 살겠습니다”는 단순한 인사말을 넘어서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작동한다. 무엇이 ‘잘 사는’ 삶인가? 경제적 안정? 사회적 인정? 감정의 균형? 이 작품은 그 어떤 대답도 내리지 않지만, 그 질문을 끝까지 지켜보는 태도 자체가 철학적 사유이다.
이는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를 향한 물음’에 가까우며, ‘살아간다’는 말 자체가 곧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윤리적·존재론적 고민으로 연결된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철학의 근본 과제를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묻는 일로 보았다. 그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존재’라는 사실을 깊이 성찰하지 않기 때문에, 철학은 본래의 출발점을 상실했다고 진단하였다. 이에 그는 존재자(사물이나 인간, 현상)에 머무르지 않고, 존재 그 자체의 방식을 탐구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존재는 시간 안에서 드러나며, 삶의 실천과 선택을 통해 이해되는 과정적·현상적 개념이라는 것이 하이데거의 핵심 명제이다. 따라서 존재를 묻는 일은 곧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윤리적·존재론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 「잘 살겠습니다」는 어떻게 ‘존재’와 연결되는가?
장류진의 「잘 살겠습니다」는 ‘잘 산다’는 문장을 통해 삶의 방식과 태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환기시키는 작품이다. ‘잘 살겠습니다’는 결혼식에서 자주 쓰이는 상투적인 인사말처럼 보이지만, 소설의 끝으로 갈수록 이 말은 삶의 무게, 불확실성, 존재의 고유한 형식까지 아우르는 상징이 된다. 주인공은 결혼 준비와 회사 생활, 인간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계산하고 따지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빛나 언니를 향한 마지막 응원의 내면에는 단순한 계산을 넘어선 진심 어린 연대와 응시가 담겨 있다. 이는 곧 존재하는 타자에 대한 응답이며,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의 시작이다.
하이데거가 말한 ‘현존재(Dasein)’는 자기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인식하고, 그 가능성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주인공은 “빛나 언니는 잘 살 수 있을까. 부디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통해, 결국 타인을 향한 윤리적 시선과 함께 자신의 존재 방식에 대해 스스로 물음을 던지는 현존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2) 타자를 향한 미세한 감응: 레비나스적 타자 윤리
주인공은 처음에는 빛나 언니를 이해 불가능하고 불편한 타자로 인식한다.
“왜 저렇게 살지?”, “왜 청첩장을 달라고 하지?”, “왜 축의금도 없이 사라졌지?”
하지만 그 타자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단순히 존재하게 두는 태도, 그리고 마지막에 건네는 작은 연민은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에 대한 응답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은 타자를 동일화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태도,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윤리적 사유를 끌어낸다.
3) 감정의 시장화와 인간관계의 심리적 계산
주인공은 감정을 ‘정산’한다.
“밥값 25,000원”,
“핸드크림 12,000원”,
“차값 13,000원”,
“선물 가격 = 감정의 크기”
이는 자본주의적 교환 논리가 감정과 인간관계까지 침투한 시대의 심리 구조를 보여준다. 감정조차도 가격과 등가로 맞춰지지 않으면 불안, 억울함, 모멸감을 느끼는 구조. 이는 슬라보예 지젝이나 에바 일루즈(Eva Illouz)가 말한 “감정의 자본주의화” 개념과도 연결된다.
4) 여성 주체의 정체성과 구조적 억압
주인공은 구제보다 모든 것이 뛰어나다고 자부했지만, 연봉 차이 1030만 원 앞에서 좌절한다. 이는 여성의 노동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저평가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하지만 더 깊은 심리적 고찰은, 이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이 그것에 길들여졌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 발생하는 복합감정이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살아남아야 하니까.”
“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윤리란 뭘까.”
이 지점에서 주인공은 체제에 복무하면서도 내부 균열을 감지하는 복합적 자아로 드러난다.
5) 마지막 ‘연대’라는 감정: 침묵의 윤리
소설은 결국 ‘빛나 언니는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마무리된다. 이는 말해지지 않은 연대의 방식, 즉 ‘너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잘 살기를 바란다’는 조용한 감정의 윤리이다. 이 마지막 감정은 레비나스의 말처럼 “응답은 의무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관계 속에 놓여 있는 나의 상태에서 비롯된다”는 타자 윤리의 정수를 보여준다.
7. 비판점
1) 안전한 공감에 머무르는 ‘중산층 소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여성 노동 현실, 직장 내 위계, 성차별을 다룬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중산층 직장 여성의 감정 소비에 머무르는 이야기이다. '하객 명단'이나 '핸드크림 선물' 같은 사소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정작 시스템적 폭력이나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문제 제기는 거의 없다. 주인공은 연봉 차이를 발견하고 잠깐 당황하지만, 이후 구체적인 갈등이나 저항은 거의 없이 자기 위안으로 넘어간다. 현실 비판은 얕고, 불편한 구조보다는 사적인 감정선에만 몰두하며, 독자 역시 가볍고 따뜻한 결말로 무마된다. 이는 사회 비판적 소설이 아니라, 사회적 스트레스를 덜 자극하는 ‘힐링 콘텐츠’에 가깝다.
2) 진짜 갈등이 없다:모든 것이 너무 조용히 마무리된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약점은 극적인 긴장감이나 인물 간의 갈등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빛나 언니'와의 어색한 관계, '구재'와의 연봉 차이, 하객 명단의 선정…… 이 모든 갈등 요소는 위태로움을 드러내는 듯하다가도 곧바로 수그러들고, 말랑한 감정으로 봉합된다. 현실을 고발하기보다는, 회피하거나 얼버무리는 방식의 서사다. 이런 구조는 독자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고 대신 도덕적 자기만족을 제공한다. 이로 인해 작품은 문제의식을 던지는 듯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는 채 흘러간다.
3) 문장과 서사가 지나치게 평이하다: 장르의 한계인가, 작가의 전략인가
장류진의 문체는 간결하고 직설적이며 읽기 쉽다. 하지만 이 ‘읽기 쉬움’은 때때로 문학적 상상력의 빈곤으로 보일 수 있다. 인물의 심리를 복합적으로 조명하기보다는, 일상 에피소드처럼 흘러가고, 비유나 상징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이는 현대 소설이 가진 리얼리즘의 일상성이라는 미덕으로 포장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진 언어적 실험, 복합적 의미의 구조화를 회피한 결과일 수 있다. 문학이 아니라 SNS적 사고에 최적화된 콘텐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4) '잘 살겠습니다'는 정말 윤리적인가, 아니면 도피적인가?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빛나 언니는 잘 살 수 있을까. 부디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말로 마무리된다. 이는 마치 존재와 삶에 대한 깊은 질문처럼 보이지만, 실은 책임을 유예하고 감정을 소비하는 말일 수 있다. ‘잘 살기를 바란다’는 말은 어떤 실천도 동반하지 않는 감상적 구호로, 타인의 삶에 대해 판단하지 않으면서도 응원하고 있다는 자기 위안이다. 다시 말해, 윤리적 책임의 자리에서 감정적 거리두기를 택한, 미온적인 연대의 말일 수 있다.
「잘 살겠습니다」는 마치 ‘결혼식 하객 명단’처럼 안전하고, 상처 주지 않으며,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문학이란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보다, 고개를 돌리게 만들거나, 불편함 속에 머무르게 해야 할 때도 있다. 이 소설은 너무나 유연하고 착하지만, 바로 그 착함 속에 비판의 칼날을 무디게 하는 위험이 숨어 있다.
8. 나의 사유
나는 문득 생각하게 되었다. “잘 산다”는 말은 왜 이렇게 막연하고 불안한 울림을 주는 것일까. 장류진의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그 인사말 속에 깃든 불확실성과 체념, 그리고 조용한 응원의 감정을 곱씹게 되었다. 누구나 인생의 어떤 시점에서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듣지만, 그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주인공이 결혼을 준비하며 청첩장을 누구에게 줄지, 얼마짜리 선물을 할지를 계산하는 과정은 현실적이다 못해 씁쓸하다. 그러나 나는 그 씁쓸함이 어쩌면 우리의 삶 자체가 가진 정서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우리는 매 순간 타인의 시선과 관계의 비용을 고려하며 스스로를 조율한다. 삶은 늘 셈을 요구하고, 진심은 언제나 뒷순위에 밀린다. 그 속에서 우리가 기대는 말은 결국 “부디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다소 무기력한 축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 말에서 나는 기묘한 연대를 느낀다. 서로를 전부 알 수는 없어도,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남는다.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의 물음처럼, ‘사는 것’은 단지 생존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모두 어느 날 갑자기 혼자가 되고, 또 어느 날 누군가에게 작은 떡 하나를 건네며 ‘잘 살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삶은 정답이 없다. 다만 그 빈틈 속에서, 어떤 인사는 존재의 윤리를 대신한다. “잘 살겠습니다.” 이 말은 나에게 일종의 다짐이자, 동시에 타인을 향한 연약한 다정함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 말을 들었고, 나도 누군가에게 이 말을 건네야 한다. 그러니, 나도 오늘 조용히 되뇌어 본다.
“잘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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