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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에세이

르네 지라르의 욕망 이론과 서사의 이해: 욕망은 나의 것이 아니다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5. 5. 21.

 
 

 
 
이 문장들 중 일부는 수업 교재로 쓰인 오탁번, 이남호 저자의  <서서 문학의 이해>에서 가져왔다.
 
 
르네 지라르의 욕망 이론과 서사의 이해: 욕망은 나의 것이 아니다
 
1. 욕망의 삼각형 구조
어제는 현대소설론 수업에서 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싶어졌다. 이 글을 쓰고 나서 나는 어쩌면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작은 이렇게 해보고 싶다.
 
욕망은 삶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원동력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늘 충족되지 않는 욕망의 갈등 속에서 살아왔고, 그 욕망이 도대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왜 나는 그것을 좇아왔는지 스스로에게 오래 묻고 또 물어왔다. 돌이켜보면, 나의 욕망의 기원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 나는 수많은 책을 읽으며, 상상 속 주인공들의 갈망을 나의 갈망인 듯 따라했다. 그러나 단지 이야기 속 인물들만이 나의 욕망을 매개한 것은 아니었다. 그 이야기를 써 내려간 작가들의 말을 선택하고, 구조를 만들고, 마침표를 찍은 그들이 어쩌면 진짜로 나의 욕망을 불러일으킨 매개자였는지도 모른다.
 
살아오면서 나는 어쩌면 한때, 나 자신의 욕망을 타인의 삶 속에 숨기거나, 혹은 어떤 타협과 의무 앞에 잠시 미뤄두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이승의 소풍이 마무리되어 가는 어느 시점에서 나는 문득 깨닫는다. 그 오래된 욕망은 여전히 내 무의식, 혹은 의식의 가장 깊은 층위에서 살아 있고, 여전히 나를 갈증나게 하고, 좌절시키기도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일상을 반짝이게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욕망을 채우기 위해 무엇을 하며 살아왔던가. 파티를 열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낯선 곳을 여행했다. 이 모든 일상은 단순한 즐거움의 나열이 아니라, 사실은 내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무의식적인 실천이었음을 나는 이제야 서서히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행위의 집결이 지금 내가 두드리는 이 자판 위, 하나하나의 문장 속에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녹아들고 있음을 느낀다.
 
르네 지라르(René Girard, 1923–2015)는 프랑스 태생의 문학비평가이자 인류학자, 종교이론가로, 인간 사회와 문학, 종교의 구조를 욕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분석한 독창적인 사상가이다. 문학, 성서, 신화, 사회학을 넘나든 그의 이론은 단지 문학 비평에 그치지 않고 인간 본성과 사회질서를 이해하는 하나의 철학적 도전이었다. 문학에서 출발해 종교로, 그리고 다시 현대사회의 심리구조로 이르는 그의 사유는 매우 입체적이고 통섭적이다.
 
지라르의 사상의 핵심은 ‘모방적 욕망(mimetic desire)’이라는 개념이다. 그는 인간의 욕망은 스스로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을 모방함으로써 발생하는 구조적이고 매개된 욕망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원할 때, 사실은 그 대상 자체를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욕망하는 타인을 따라 욕망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의 욕망은 항상 삼자적 구조를 가진다. 지라르는 이 욕망의 구조를 “욕망의 삼각형(triangular desire)”으로 도식화한다. 그 삼각형은 욕망의 주체, 욕망의 대상, 그리고 욕망을 매개하는 타자로 구성된다.
 
르네 지라르는 이 욕망의 삼각형 구조를 보다 정교하게 설명하기 위해 매개자의 위치와 성격에 따라 두 가지 유형의 욕망 구조를 구분한다. 이를 그는 외적 매개와 내적 매개로 나눈다.
 
2. 외적 매개와 내적 매개
외적 매개는 주체와 매개자 사이에 뚜렷한 거리감이 존재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때 매개자는 주체가 접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 예컨대 신이나 영웅, 우상과 같은 인물들이다. 주체는 이 매개자를 경외하며, 자신의 욕망이 그로부터 유래했음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이러한 욕망의 구조는 비교적 안정적이며, 욕망의 대상에 도달하기 위한 갈등이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돈키호테는 기사소설 속 영웅 아마다스를 모방하며, 그가 이상으로 삼는 기사가 되고자 한다.
 
내적 매개는 주체와 매개자가 동일한 사회적 영역에 존재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매개자는 주체의 친구, 동료, 형제, 혹은 경쟁자처럼 가까운 관계 속에 있으며, 동일한 대상을 욕망하게 된다. 이때 매개자는 더 이상 단순한 이상향이 아니라 질투와 경쟁의 대상으로 전환되며, 주체는 자신의 욕망이 모방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갈등은 격렬해진다. 주체는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매개자의 존재를 은폐하고, 그와의 거리를 부정하며 끊임없이 대결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적과 흑』의 줄리앙은 레날 시장과 마틸드와의 관계 속에서 바로 이러한 내적 매개의 복합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3. 가짜 욕망과 낭만적 거짓
지라르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자발적으로 욕망한다고 믿지만, 이는 착각이다. 그는 이를 '낭만적 거짓(mensonge romantique)'이라 불렀다. 주체는 자신의 욕망이 순수하고 자율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타자의 욕망을 모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거나 무의식적으로 외면한다. 이러한 모방 욕망은 대상을 향한 열망으로 포장되지만, 실상은 욕망의 매개자인 타자를 향한 감정인 경외, 질투, 경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좋은 문학은 이러한 낭만적 거짓을 폭로한다.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에서 엠마는 로맨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을 모방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욕망한다. 그러나 독자는 그녀의 욕망이 허상임을 인식하며, 그로 인해 그녀가 겪는 비극과 좌절을 목격하게 된다. 좋은 소설은 인물이 가짜 욕망을 자각하고 진정한 삶의 방향을 향해 전환하는 과정, 즉 '개종'을 서사적으로 형상화한다. 반면 통속소설은 이러한 욕망의 허위를 가리거나 부추기며, 독자에게 비현실적 욕망을 주입한다.
 
4. 현대 사회와 욕망의 구조
현대 사회에서 욕망은 더욱 복잡하고 다층적인 방식으로 구조화된다. 평등을 지향하는 민주사회에서는 외적 매개보다 내적 매개의 욕망이 지배적이다. 모두가 같은 것을 욕망하고, 타인이 가진 것을 나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결과적으로 모든 타인이 경쟁자가 되고, 질투와 폭력, 불행이 증대된다. 대중문화, 광고, SNS, 드라마 등은 이러한 욕망을 더욱 자극하고 증폭시키는 강력한 매개자 역할을 한다.
 
지라르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욕망이 끊임없이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게 됨으로써, 사회 전체가 욕망의 혼란 속에 빠진다고 본다. 욕망은 더 이상 개인의 고유한 것이 아니라, 집단적 환상에 의해 만들어지고 조작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인간은 자율성을 잃고, 자기 자신을 타인의 거울 속에서만 확인하게 된다.
 
5. 문학 작품에서의 적용 예시
르네 지라르의 욕망이론, 특히 '욕망의 삼각형' 개념은 다양한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욕망 구조를 해석하는 데 적용할 수 있다. 『돈키호테』의 주인공은 기사도 소설 속 영웅 아마다스를 욕망의 모델로 삼고, 그를 모방해 이상적인 기사가 되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그 욕망은 스스로의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외적 매개자인 아마다스의 삶을 향한 모방에서 비롯된 허구의 욕망이며, 이로 인해 돈키호테는 현실과 괴리된 가짜 영웅으로 전락한다.
 
『보바리 부인』의 엠마는 소녀 시절 탐독했던 로맨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을 동경하고 흉내내며, 낭만적 사랑과 화려한 삶을 자신의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녀가 욕망하는 삶은 현실의 것이라기보다 문학이라는 매개자에 의해 주입된 허상이며, 그녀는 끝내 그 욕망의 실현 불가능성과 마주하면서 파국을 맞는다.
 
『적과 흑』의 줄리앙 소렐은 나폴레옹이라는 시대적 전범을 자신의 욕망의 모델로 삼는다. 그는 나폴레옹처럼 신분 상승과 출세를 이루고자 하며, 이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레날 시장이나 마틸드—은 모두 그의 사회적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그러나 줄리앙의 욕망은 외적 매개와 내적 매개가 교차하는 복합적 구조를 띠며, 결국 경쟁과 질투, 자멸의 과정으로 치닫게 된다.
 
이러한 서구 문학 작품들과 더불어, 한국 소설에서도 지라르의 욕망 이론은 유의미하게 적용된다. 오탁번의 『아버지와 치악산』은 대표적인 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엄격하고 이상적인 교육자인 아버지를 욕망의 매개자로 삼는다. 그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전범으로 삼고, 아버지처럼 완벽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내면화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부상 이후에도 끝까지 무너지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주인공은 자신의 욕망이 허상에 불과했음을 자각하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은 곧 그 욕망의 매개자의 상실을 의미하며, 그가 치악산에 다시 오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욕망의 삼각형이 해체되는 순간, 즉 욕망 자체의 소멸이자 주체의 정체성 재구성의 계기로 읽힌다.
 
이청준의 『별을 보여드립니다』 역시 지라르의 욕망 이론을 적용할 수 있는 한국 현대소설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시골 의사는 단순히 의술을 베푸는 것을 넘어, 진실하고 순수한 인간관계를 맺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품고 있다. 겉보기에 그것은 인간적 윤리와 선의의 실현으로 보일 수 있으나, 지라르의 시각으로 보면 그것은 '좋은 사람', '진정성 있는 의사'라는 사회적 규범이 강요한 이상적 인물상에 자신을 동일화하려는 모방 욕망이다. 그는 타자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내면화한 것이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환자들에게 '별을 보여주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 행위는 단지 물리적인 상징이 아니라, 이상적인 위무와 연민의 제스처로 읽히며, 현실과는 다른 이상적 관계를 욕망하는 내적 충동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스처는 근본적인 관계의 회복이나 자기 실현을 가능케 하지 않으며, 반복되는 무기력한 행위로 남는다. 그는 결국 자신의 욕망이 진실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주입한 이상적 모델의 복제였음을 깨닫게 된다. 즉, 이 소설은 순수한 관계에 대한 환상이 어떻게 좌절되고, 그 욕망이 결국 타인의 욕망에 의해 매개된 허상임을 드러내는 서사로 기능한다.
 
6. 지라르 이론의 사회적 확장성과 의의
지라르의 이론은 단지 문학작품을 해석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대중문화, 드라마, 광고, 스타의 패션 등 현대사회 전반에 퍼진 욕망의 모방구조를 분석하는 데까지 확장된다. 모두가 서로를 욕망의 모델로 삼고 경쟁자가 되는 사회, 즉 내적 매개의 사회에서 인간은 자율성과 고유성을 상실하고, 끊임없는 비교와 질투, 경쟁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는다.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일수록 역설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욕망은 더욱 유사해지고, 따라서 갈등은 더욱 격렬해진다.
 
지라르의 욕망 이론은 현대사회의 심리구조와 문화현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인간이 왜 불안한지, 왜 질투하고 증오하며, 왜 욕망이 끝이 없는지를 설명해 주는 이론적 틀이다. 또한 이 이론은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심리와 서사 전개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 있어 강력한 해석 도구가 된다. 무엇보다 이 이론은 독자로 하여금, “나는 지금 누구의 욕망을 따라 살고 있는가?”, “내 욕망은 과연 진짜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이처럼 르네 지라르의 욕망 이론은 인간이 욕망을 통해 고통받고, 때로는 자각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는 문학적·사회적 드라마의 본질을 꿰뚫는다. 모든 서사는 누군가의 욕망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그 욕망이 진실인지, 허상인지에 따라, 그 서사의 결말은 자멸이 될 수도, 구원이 될 수도 있다. 좋은 서사는, 그리고 좋은 독자는 그것을 분별해 내는 힘을 가질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발한다.
 
나는 인간의 욕망이라는 화두에 오랫동안 천착해 왔다. 이 욕망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개인의 내면을 규정하는 심리적 요소에 머무르지 않으며, 인간의 삶 전반에 걸쳐 구체적이고도 다채로운 모습으로 출현해 왔다. 나는 이 욕망이 인간의 삶에 어떤 형태로 등장해 왔는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인간의 삶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혹은 변화하게 되는지를 사유하는 글을 쓰고자 한다.
 
지금 내가 집필 중인 장편소설 『송화강』 역시 그러한 사유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 고유한 욕망을 지닌 듯 보이지만, 그 욕망들은 체제, 역사, 가족, 과학, 윤리라는 이름의 타자에 의해 매개되고 규정되며 종국에는 흔들린다.
 
엔도 신이치의 과학과 혈연에 대한 욕망, 모리야 나오미의 출세 욕망, 극악무도한 실험으로 악명 높은 731부대의 창시자인 모리야 사에키의 권력적 욕망, 체제의 윤리와 과학적 폭력 사이에서 복잡한 욕망을 품는 나오미의 분열, 제이미의 정체성에 대한 갈구, 루시 데일의 증언 욕망 등은 모두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으며,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거나 대리하거나 반항하면서 구성된 복잡한 삼각형 구조 속에 위치한다. 특히 엔도 신이치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던 비인간적 생체실험의 현장을 스스로 파괴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이 체제와 타자의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자각하고 그 욕망 구조에서 탈주하려는 윤리적 결단을 내리는 인물로 그려진다. 나는 이 인물들의 욕망을 따라가며, 이들이 어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는지를 묻고 또 묻는다.
 
이처럼 『송화강』을 쓰는 행위는 단지 한 편의 이야기를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욕망을 어떻게 인식하고, 해체하고, 다시 구성해 나가는 사유의 실천이다. 이 서사는 타인의 욕망에 의해 구성된 세계 속에서 나의 목소리를, 나만의 윤리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글쓰기의 과정은 늘 단순하지 않으며, 내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과 마주하게 된다. 때로는 내가 추구하는 욕망이 진실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타자의 욕망을 모방한 허상인지조차 혼란스럽게 느낀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좌절한다. 하지만 그 좌절의 순간조차 나를 다시 글 앞으로 이끌며, 나로 하여금 욕망이라는 주제를 다시 붙들게 만든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의 욕망을 되짚는 여정이자, 그 앞에서 흔들리는 나 자신을 기록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동시에 나는 글을 쓰는 행위가 단지 나의 내면을 향한 탐색에 그치지 않고, 나를 둘러싼 공동체 안에 화두를 던지는 사유의 행위가 되기를 바란다. 어떻게 욕망과 욕망의 갈등을 회복할 것인가, 어떻게 타인의 욕망을 통해 구성된 나라는 존재를 공동체 속에서 다시 윤리적으로 정립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모든 질문은 나를 향한 질문이자, 나를 둘러싼 타인들을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이 글쓰기는 나의 개인적인 욕망,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타인의 시선 안에서 어떻게 존엄하게 인정받고 싶은가에 대한 부끄러운 고백이기도 하다. 어쩌면 나는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하며, 내가 존엄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글이라는 방식으로 내보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쓰고 난 후, 나는 깊은 한숨을 토했다. 그 한숨은 단순한 피로의 숨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마주한 자가 토해내는 고요하고 묵직한 탄식이었다. 글을 통해 나를 드러낸다는 것은 언제나, 내가 외면했던 나를 다시 꺼내어보는 일이기도 했다. 그 한숨은 어쩌면 이런 감정의 징후일지도 모른다. 진실에 가까워졌다는 두려움, 욕망의 허상에 대한 자각, 타인의 시선에 노출된 나의 내면에 대한 부끄러움, 글이 나를 구원해 줄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기대, 그리고 무엇보다 글을 마침으로써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깨달음. 이 모든 감정이 겹겹이 눌려 있던 숨을 밀어 올려 내게 한숨으로 새어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른 아침 햇살이 5월 청명한 하늘을 가득 채웠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결에 아카시아 향기가 은은하다. 오늘도 발칙한 나의 하루를 기대하며, 나는 다시 문장을 향해 손을 뻗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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