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23]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를 맞닥뜨리는 아브젝시옹의 체험>
[원 문장]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 철학』 중 줄리아 크리스테바, 혐오스러운 매력의 영역으로, 조광제 씀
“아브젝트는 우리 자신의 존재의 밑바탕이자 근원적인 지평을 형성하기에, 그 역사성에 있어서나 편재성에 있어서 워낙 근본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를 맞딱뜨리는 순간 섬뜩한 혐오감을 불러 일으키는 동시에 강렬한 매혹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아브젝트를 맞닥뜨리는 아브젝시옹의 체험이 우리에게는 과연 어느 정도로 다가와 있는지요?”
나의 문장)
위 인용문은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Abject)’ 개념을 명확히 보여준다. 아브젝트는 단순한 ‘더러움’이나 ‘추함’이 아니라, 주체 형성의 근원에서 작용하는 심리적·존재론적 힘이며, 우리 존재의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강한 거부감과 매혹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아브젝트가 단순한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부패한 사체, 피, 배설물 등은 우리가 사회적으로 기피하는 것들이지만, 그것들은 단순히 물리적 혐오를 넘어서 우리 존재의 경계를 흔드는 역할을 한다. 즉, 그것들은 우리가 필사적으로 분리하고자 하는 ‘비자기(非自己)적 요소’이며, 동시에 우리가 결코 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오히려 강한 매혹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조광제의 질문—“이 같은 아브젝트를 맞닥뜨리는 아브젝시옹의 체험이 우리에게는 과연 어느 정도로 다가와 있는지요?”—에 대한 답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각자의 삶에서 아브젝트가 어떻게 체험되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우리는 모두 개인적인 차원에서 아브젝트를 경험한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독립하며 느낀 불안과 두려움, 죽음을 목격했을 때의 감각, 사회적 금기로 여겨지는 것들과 마주했을 때의 복합적인 정서 등이 아브젝시옹(abjection)의 경험이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매체를 통해 소비되는 폭력적 이미지, 혐오스럽지만 눈을 뗄 수 없는 뉴스, 예술 작품 속 불쾌하지만 강렬한 아름다움도 일종의 아브젝시옹의 체험이라 할 수 있다.
나의 경우, 글쓰기 과정에서도 이러한 경험을 한다. 때로는 내가 회피하고 싶었던 감정, 말로 정리하기 어려운 불쾌한 진실, 사회적으로 금기시된 주제와 마주할 때 글쓰기의 방향이 흔들리고 불안을 느낀다. 하지만 그러한 순간이 오히려 창조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나는 그동안 간과해왔다. 크리스테바가 말한 것처럼, 아브젝트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언어화하는 과정이야말로 새로운 의미와 주체성을 생성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오류였다.
결국, 아브젝트와의 조우는 단순한 공포나 혐오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가장 깊은 지점과 만나는 경험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존재 방식과 사유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고 어디 그것이 글쓰기만에 국한 시킬 수 있을까? 아마도 모든 예술분야는 바로 우리가 마주한 아브젝트들을 창조적 원동력으로 삼은 아브젝시옹의 경험의 총체가 아닐까, 라는 사유의 지점까지에서 만난 크리스테바의 조언을 나는 결코 잊지 않겠다. (끝)
2025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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