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란 무엇인가: 유발 하라리와 현대 철학을 통한 사유"
겨울 방학 동안 군산대 독서 모임 필담에서는 두 번째 책으로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 석기시대부터 AI까지, 정보 네트워크로 보는 인류 역사』를 선택했다. 600쪽이 넘는 방대한 양을 소화하기에 적절한 기간이지만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을 어떻게 소화해 내야 할지 고민하다 택한 방법은 책을 읽으며 그의 사유를 나의 사유로 어떻게 소화해 내야 할지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했다.
책을 읽으며 의문이 생길 때마다 그것에 대한 나름의 고찰을 해보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리고, 그 첫 번째 의문으로 그가 제시한 “무엇이 진리인가?”라는 물음을 내 식으로 사유해 보는 일이다.
하라리는 이 물음에 직접적인 답을 제시하지 않고 다만 “현실을 최대한 사실 그대로 기술해도 현실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재현에는 무시되거나 왜곡되는 측면이 있기 마련이다. (중략) 현실에 대한 어떤 기술도 100퍼센트 정확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술은 다른 것들보다 진실에 가깝다.”라고만 언급한다.
그렇다면 현대 철학에서는 무엇이 진리인가에 대한 물음에 어떻게 대답할까? 궁금했다.
현대 철학에서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다양한 관점과 이론으로 접근되며, 철학자들마다 상이한 답을 제시하기도 한다. 여기서 잠깐, 현대 철학에서 진리에 대한 대표적인 접근 방식과 주요 철학자들의 견해를 정리해 보았다.
첫 번째로는 진리는 현실 세계와의 일치를 통해 성립하며, 어떤 진술이 사실(fact)과 일치하면 그것이 참이다. 라는 진리 대응 이론 (Correspondence Theory of Truth)인데 주요 철학자로서, 진리는 언어와 세계 사이의 대응 관계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던, 예컨대, "눈은 하얗다"라는 진술은 실제로 눈이 하얗다는 사실과 일치할 때 참이라고 주장한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을, 상식적 직관을 기반으로, 외부 세계에 대한 명제를 사실에 기반하여 평가하려 했던 G. E. 무어(G. E. Moore)을 거론할 수 있겠다.
두 번째 진리는 명제들이 서로 논리적으로 일관되고 정합적일 때 성립한다고 주장하는 진리 정합 이론 (Coherence Theory of Truth)인데, 특히 진리는 전체적 체계 내에서 다른 진술들과 조화롭게 연결될 때 성립한다고 했던 프리드리히 헤겔(Friedrich Hegel), 진리는 독립된 사실보다는 관념의 정합성을 통해 이해되어야 한다고 보았던 브래들리(F. H. Bradley)를 들 수 있겠고,
세 번째로는 진리는 실질적인 효과와 유용성을 기준으로 평가되며 어떤 명제가 유용하거나 실제적 결과를 낳는다면 그것이 참이라는 진리 실용주의 이론 (Pragmatic Theory of Truth)을 전개하는, 즉 진리는 인간의 경험과 실천 속에서 유용하게 작용할 때 성립한다고 보았던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와 진리는 지속적인 탐구 끝에 도달할 수 있는 합의된 결론이라고 보았던,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 진리는 상황적이고,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구로서 기능한다고 주장했던, 존 듀이(John Dewey)등을 거론할 수 있으며,
네 번째로는 진리는 절대적이거나 보편적인 것이 아니며, 권력 관계나 담론 체계에 의해 구성된 사회적 산물인 진리 탈근대적 관점 (Postmodern View of Truth)을 들 수 있는데, 진리는 권력과 지식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고, 진리란 특정한 시대와 맥락에서 "권위 있는 담론"으로 인정된 것일 뿐이라는 주장을 폈던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와 "대서사(meta-narrative)"를 거부하며, 진리는 단편적이고 다원적인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보았던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등을 말할 수 있으며,
다섯 번째로는 진리는 어떤 실체적 속성이라기보다 단순히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진리 탈실재론 (Deflationary Theory of Truth)으로 진리는 언어적 구조 내에서, "T-문장(T-sentence)"이라는 형식적 구조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며 그 예로써 "눈은 하얗다"라는 진술은 눈이 실제로 하얗을 때 참이다. 라고 말했던 알프레드 타르스키(Alfred Tarski)와 진리 개념은 과도하게 형이상학적일 필요가 없으며, 경험적 맥락에서 기능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윌라드 반 오먼 콰인(W. V. O. Quine) 등이 있으며,
여섯 번째로 진리는 고정된 상태라기보다는, 특정 사건이나 맥락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인식했던 진리 사건 이론 (Event Theory of Truth)이 있는데, 알랭 바디우(Alain Badiou)는 진리는 사건(event) 속에서 등장하며, 인간이 이를 충실히 따를 때 진리에 참여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진리 개념을 바탕으로, 나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성찰하며 나만의 진리를 탐구해 나가야 한다는 의무감에 젓는다. 더불어 이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작은 힘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다 보니, 나는 특히 전통적인 철학적 진리관에서 벗어나 프래그머티즘과 탈근대적 관점을 결합하여 진리와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던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 1931년 ~ 2007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리처드 로티는 진리를 절대적이거나 객관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으며, 오히려 진리를 인간의 대화와 공동체적 실천 속에서 구성되는 실용적 개념으로 이해했다. 그의 진리관은 철학적 전통을 넘어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진리를 바라보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로티에게 있어 진리란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다. 그는 진리를 고정된 실재를 반영하는 객관적 사실로 보는 관점에 반대하며, 진리는 인간이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발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리는 객관적 세계와의 대응이나 사실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 관습, 문화적 담론을 통해 구성된다는 것이다. 로티는 진리를 언어적 창조물로 간주하며, 모든 진술은 특정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만들어졌다고 보았다.
또한 로티는 진리의 실용성과 맥락 의존성을 강조했다. 그는 진리를 실용적 개념으로 정의하며, 진리는 단지 "유용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윌리엄 제임스의 실용주의를 계승한 입장이다. 로티는 특정한 아이디어나 신념이 문제를 해결하거나 공동체의 목표에 기여한다면 그것이 진리로 간주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에게 진리는 맥락적으로 정의되며, 한 공동체에서 유용한 것이 다른 공동체에서도 반드시 진리로 간주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로티는 전통적 철학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작업, 특히 플라톤적 진리관을 비판하며 철학적 진리관의 해체를 시도했다. 그는 철학이 더 이상 "진리의 근원"을 탐구하려 하지 말고, 사회적 대화와 연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보았다. 진리를 철학적 형이상학이나 인식론의 문제로 보는 대신, 사회적 실천과 담론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연대(solidarity)'와 진리의 관계에 대해 로티는 진리보다 연대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리를 인간의 보편적 본질이나 초월적 실재와 연관 짓는 대신, 사람들이 서로 대화하고 협력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사회적 합의로 간주했다. 로티는 진리를 "사회적 대화의 성공적인 결과"로 이해하며,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에서 진리가 형성된다고 보았다. 이는 진리를 고립된 개인의 발견이 아니라, 공동체의 협력적 실천의 산물로 보는 관점이다.
로티는 전통적인 철학적 담론이 진리를 추구하는 데 있어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경직되었다고 비판하며, 철학 대신 시(poetry)를 강조했다. 그는 시적 상상력을 통해 진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고 보았으며, 철학자들보다 시인, 예술가, 작가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진리를 표현하고 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로티에게 진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재창조되는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로티는 공동체 중심의 진리관을 제시했다. 그는 진리가 공동체적 합의에 의해 형성된다고 주장하며, 이를 통해 문화적 상대주의와 연결되는 견해를 제시했다. 로티는 하나의 절대적 진리를 찾으려 하기보다는, 각 공동체가 가진 고유한 언어적, 문화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진리가 다르게 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관점에서 진리는 더 이상 객관적 기준에 의해 평가되지 않으며, 사회적 유용성과 공동체의 안정성이 진리의 주요 판단 기준이 된다.
결론적으로, 리처드 로티는 전통적인 철학적 진리관에서 벗어나, 진리를 공동체적 대화와 사회적 실천 속에서 형성되는 상대적이고 유용한 개념으로 재정의했다. 그는 진리를 절대적 실재와 연결 짓기보다는, 연대와 상호 이해를 통해 공동체가 합의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다. 로티의 진리관은 진리를 형이상학적 탐구의 대상에서 벗어나 인간의 실천적 삶 속으로 가져옴으로써, 진리의 개념을 사회적이고 맥락적인 차원에서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사회에서 진리와 지식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확장시키고, 다원화된 세계에서 공존과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처럼 현대 철학은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단일한 답변을 제시하지 않는 대신, 철학적 전통과 문제의 맥락에 따라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 중요한 것은 각 이론이 진리를 어떻게 정의하고 그 정의가 우리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성찰하도록 돕는다는 점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나로서 진리를 정의하는 것은 복잡하지만 의미 있는 작업으로 진리는 다양한 관점과 맥락 속에서 나타나는 다층적이고 유동적인 현상이므로 절대적 진리보다는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는 진리들을 존중해야 하며, 진리는 나와 타인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진리는 실질적인 유용성을 가질 때 의미가 있으며, 진리는 열린 마음과 비판적 사고로 끊임없이 검증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고정된 상태가 아닌 지속적인 탐구와 질문을 통해 도달할 수 있다는 점에 특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더불어 진리는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이끄는 길잡이로 윤리적 차원에서 진실을 말하고 행동하는 것과 진리는 시대, 문화, 권력 구조에 따라 형성되며, 다원적이고 상대적인 것으로 다양한 관점을 고려하는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요소이겠다.
따라서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은, 진리란 단일한 정답이 아니라 각자의 삶의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서로 다른 관점과 경험을 포용하며, 공동체와의 대화를 통해 발전해 나가는 과정 그 자체라는 것이다. 진리는 실천 속에서 타인과 연결되고, 나 자신을 성찰하며, 궁극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길잡이로 작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나와 타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공감과 연대를 바탕으로 진리를 공동으로 탐구하며, 그것이 현실에서 어떤 윤리적,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지를 꾸준히 질문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진리는 단순한 지적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삶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실천적이고 유동적인 진실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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