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국가』 제4권의 이상 국가론과 영혼 삼분설
[100-6] 4기 김은
[원 문장] 『플라톤 국가』 플라톤 지음/박문재 옮김
“사실 정의는 외적으로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이라기보다 내적으로 혼의 세 부분이 조화를 이루어 절제 있고 조화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네. 혼의 각 부분이 자기 일이 아닌 것은 못하게 하고 서로 간섭하지 않게 하며 자기 것을 잘 안배하여 질서정연하게 스스로 통치하는 것이지. 음계를 결정하는 세 흠, 즉 최저음과 최고음과 중간음이 그 사이의 다른 음들까지 결합해 완벽한 하나를 이루는 것과 같네. 혼에서 이런 일이 이루어진 사람이 돈을 벌거나 신체를 보살피거나 정치를 하거나 개인 간 계약을 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정의롭고 아른 다운 행위라 부르고, 그런 행위를 주관하는 지식을 지혜라고 부르지. 반면 그런 상태를 무너뜨리는 것을 불의한 행위라 부르고, 그런 행위를 주관하는 생각을 무지라고 부르네.”
나의 문장)
『플라톤 국가』 4권에서는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작은 형 글라우콘과 큰형인 아데이만토스와의 대화를 통해 ‘이상적인 도시(Kallipolis)’에서 정의에 대한 아이디어를 더욱 발전시키고 이를 개인의 영혼 내의 정의와 비교를 하면서 플라톤의 정의에 관한 대화를 이어간다.
플라톤의 이상적인 국가 이론은 이성에 의해 통치되고 공동선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완벽하게 정의롭고 조화로운 사회를 상상하는데 그는 사회가 사람들의 타고난 능력과 성향에 따라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세 가지 계층으로 나누어야 한다고 믿었다.
즉 철학 교육을 받은 특히 선이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 국가 전체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통치자와 국가를 방어하고 통치자가 제정한 법률을 집행하는 일을 담당하는 용기 있고, 규율이 있고, 통치자들에게 충성스러워야 전사자, 사회를 유지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가장 큰 계층으로, 더 높은 이상에 따라 움직이는 통치자나 전사자와는 달리 자신의 필요와 욕구에 의해 동기를 부여받는 생산자 그룹이다.
플라톤은 정의를 각 계급이 다른 계급을 방해하지 않고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는 조화의 원칙으로 정의라고 하는데 플라톤은 철학자는 물리적 세계 뒤에 있는 참되고 영원한 현실인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고 그들은 국가를 위해 현명하고 유덕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주는 '선의 형태'를 이해할 수 있고, 권력이나 부보다는 지식에 의해 통치되는 사람만이 정의로운 사회를 이끌 수 있으므로 국가의 이상적인 통치자는 철학자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통치자가 국가를 이상적인 형태로 통치하기 위해선 규모가 작은 국가여야만 효율적이라고 언급한다.
이러한 사상을 펼치던 플라톤은 자신의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기 위해 시칠리아의 강력한 도시 국가인 시라쿠사를 향한다. 당시 시라쿠사에는 폭군 디오니시우스(Dionysius)의 통치였고 플라톤의 제자였던 그의 처남 디온(Dion)은 플라톤의 지혜로 디오니시우스의 멘토가 되어 철학자 왕으로 거듭나 통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플라톤을 시라쿠사로 초대한다.
기원전 387년경 플라톤의 첫 번째 시라쿠사 여행은 낙관주의로 가득 차 자신이 상상했던 철학자 왕, 즉 사리사욕이 아닌 지혜에 따라 인도되는 통치자를 만들 수 있는 기회로 여겨 젊은 디오니시우스에게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디오니시우스는 철학에 특별히 관심이 없었으며 처음에는 약간의 호기심을 보였지만 그의 관심은 자신의 권력과 부를 유지하는 데 더 있었고 궁정의 사치스럽고 부패한 환경은 플라톤의 가르침이 뿌리내리기 어렵게 만들었기에 결국 플라톤과 디오니시우스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었고, 플라톤의 첫 번째 방문은 실패했고 그러나 아직 실망하지 않은 채 아테네로 돌아온다.
기원전 367년에 디오니시우스가 죽은 후, 그의 아들 디오니시우스 2세가 그 자리를 맡았고 Dion은 이것을 개혁의 두 번째 기회로 보어 젊은 디오니시우스 2세에게 플라톤을 시라쿠사로 다시 초대하도록 설득했으며, 새로운 통치자가 자리를 잡으면 플라톤이 마침내 자신의 정치 철학을 구현하고 디오니시우스 2세를 플라톤이 꿈꾸던 철학자 왕으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랐다.
플라톤은 첫 시도의 실패로 인해 조심스러웠지만 결국 두 번째 시라쿠사를 방문한다. 이번에는 Dionysius II가 더 유연하고 철학적 아이디어에 개방적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는 더 희망적이었고 그가 구상했던 정의롭고 조화로운 국가로 만들기 위해 다시 한 번 젊은 통치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디오니소스 2세는 처음에는 플라톤의 가르침에 열의를 보였지만 곧 자신의 권력과 부를 강화하는 데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고 법원은 아첨꾼과 음모로 가득 차 있었고 플라톤은 그러한 환경에서 자신의 철학적 이상을 주입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정치발전에 진전이 없는 것에 좌절한 디온은 공개적으로 디오니시우스와 충돌하여 시라쿠사에서 추방된다. Dion의 지원 없이 플라톤은 자신이 점점 더 고립하게 되고 디오니시우스 2세는 플라톤의 영향력을 의심하게 되었고 플라톤이 바라던 철학자 왕이 되기는커녕 아버지와 동일한 권위주의 통치로 되돌아갔으며 플라톤의 사상을 자신의 권력에 대한 위협으로 여기기 시작한다. 디온은 나중에 망명에서 돌아와 디오니시우스 2세를 타도하려 했으나, 이 반란마저도 플라톤이 상상했던 이상과는 거리가 먼 폭력과 혼란으로 끝났고 시라쿠사는 결코 플라톤이 바라던 모델 국가가 되지 못했고, 마침내 이상적인 국가를 실현하려는 플라톤의 꿈은 무너지고 자신의 노력이 무익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정치 이론과 현실 사이의 격차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가지고 아테네로 돌아온다.
결국, 플라톤의 시라쿠사에서의 실패한 실험은 정치 세계에 철학적 이상을 적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강력하게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고 그의 경험은 지혜와 미덕이 고귀한 목표인 반면, 인간 본성, 권력 투쟁, 확고한 이해관계가 그가 상상했던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종종 방해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어쩌면 시라쿠사로의 그의 여행은 정치 생활의 가혹한 현실에 직면했을 때 철학의 한계를 보여준 일례가 아닐까 한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플라톤은 법을 토대로 한 국가 체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시도한 서양 세계에서의 첫 작업, 『법률』을 완성하게 되고 이는 그의 노년을 바쳐 집대성한 최후의 대화편으로 이어지게 되며 차후 어떤 변화가 있게 되었는지 고찰해 볼 기회를 기대하게 된다.
또한 『플라톤 국가』 4권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국가라는 거대한 틀에서의 논의 후, 개인적인 부분인 영혼에 대한 대화를 펼쳐가는데 플라톤은 영혼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이것을 후대 사람들은 대략 플라톤의 영혼 삼분설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지혜(wisdom)의 이성적인 부분, 용기(courage)라는 감성적인 부분, 절제(temperance)라는 욕구적인 부분이다.
이 세 부분 중 첫 번째의 것, 이성적인 부분은 합리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부분으로 이성적인 부분이 어떤 사람의 영혼을 지배하면, 그 사람은 지혜라는 덕을 소유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며 만약 어떤 사람이 이성적으로 행위 한다면, 그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위의 이성적인 부분과는 반대로, 이성적인 부분보다는 좀 덜 합리적이고 감성적인 부분인데, 기개적인 부분과 욕구적인 부분이 있다.
기개적인 부분에 대하여 설명하자면, 어떤 사람의 정신 혹은 감성적인 부분이 항상 어떤 상황에서 그가 소유한 합리적인 과정에 일치하여 행위 한다면, 그는 용기의 덕을 소유한 사람인 것이다. 설명하자면, 만약 멈춰서 싸움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면, 용기가 있는 사람은 멈춰서 싸움을 할 정신 혹은 감성적인 책무를 지닐 것이라는 의미이다.
다음으로 욕구적인 부분을 살펴보면, 만약 어떤 사람의 욕구가 통제 가능하면, 그 사람은 절제의 덕을 소유한 것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의 욕망이 너무 강하고 욕망이 그 사람의 더 좋은 결정을 불가능하게 한다면, 그 사람은 절제의 덕이 없는 사람인 것이다.
이 세 가지 부분의 조화로서 나타난 정의에 대하여 설명하면 만약 어떤 사람의 이 세 부분의 영혼인 지혜, 용기, 그리고 절제가 서로서로 조화를 이룬다면, 그는 정의의 덕을 소유한 사람이다. 즉 정의로운 사람의 영혼은 완전하게 통합되거나 혹은 통일된다. 따라서 정의로운 사람은 결코 내적 갈등을 경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다. 그 결과 플라톤에게 있어서의 정의는 최종의 결과물이거나, 혹은 가장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덕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플라톤의 영혼의 삼분설은 서양 철학에 영향을 미치고 기초가 되는 사상이지만 인간 심리학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영혼에 지나치게 엄격한 계층 구조를 부과하며, 문화적 편견을 반영되었다는 비판 또한 무시할 수 없으며 현대 심리학과 신경과학의 발전은 이성, 정신, 식욕 사이의 구분이 플라톤이 상상했던 것만큼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은 비록 현대적인 통찰을 수용하기 위해 상당한 수정이 필요하더라도 이성, 감정, 욕망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는 데 귀중한 기초 자료가 되었구나,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은 주말의 한가한 틈을 타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라는 거장들을 방문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행운으로 시작했다. 고맙고 또 고맙다!!!
202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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