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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객관주의 행복론/유럽문화와 사상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3. 10. 21.

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시리즈 71

 

 

유럽 문화와 사상 중 가치론에 입각한 행복론의 마지막,

객관주의 행복론을 요약해볼까?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며, 대중과 지혜로운 자들이 같은 답을 내놓 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인들은 돈 많은 것, 명예를 얻는 것, 즐겁게 사는 것을 행복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러한 행복에 대한 기준의 두 가지, 완전성(수단이어서는 안 된다.) 자족성(다른 것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을 거론한다면 우리는 돈은 다른 좋은 것을 위한 수단이고(수단적 목적), 명예 또한 타인의 인정에서 오므로 타인의 시선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자족적이지 않기 때문에 행복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쾌락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부분적인 쾌락주의(금욕주의자가 아니다.)’인 즉 쾌락의 감정은 무엇인가를 했을 때 따라 오는 무언가가 문제이지, 쾌락의 감정 자체가 목적은 아닌데 젊음에 아름다움이 따르듯이 행복에 쾌락이 따른다는 아리스토 텔레스 같은 학자는 부분적인 쾌락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우리의 삶의 최고의 목적이 행복이라면 그 행복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물론 인간의 바라는 목적은 서로 다르고 같은 사람도 시공간에 따라 서로 다른 개념을 가질 수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 기원전 322)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는 욕망’, ‘좋은 것’, ‘수단과 목적’, ‘행복등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우리는 모두 좋은 것들을 욕망하는데, 좋은 것들 사이에는 수단과 목적의 관계가 있 고 그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이 행복이다.” (수단적 목적이 아니라, 그 자체 목적)

 

고대 그리스인들은 예컨대 돈이 많고 높은 명예를 지닌 사람들,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 을 eudaimon이라고 불렀다.”고 스승 플라톤의 형이상학적인 이데아론에 반기를 들어 형이하학적인 자연 탐구를 중시하는 현실적 입장을 취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잘사는 것, 잘 행동하는 것이 행복이다. (욕망을 달성했을 때 따라오는 만족감이 문제가 아니라, 욕망의 내용이 무엇이냐가 문제이다.) 행복은 주관적 만족감이 아니라 객관적인 성공(성취, 달성)’이다. 만족감(쾌락)은 객관적인 성공에 따라오는 것이다, 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인간인 한에서 인간으로서우리는 무엇을 욕망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기능을 잘 발휘하는 것이 행복 즉 각각의 기능을 탁월하게 발휘하는 것이 각각의 행복이다. 인간으로서의 행복이란 다른 사물, 동물, 식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잘 행동하는 것, 잘 사는 것이 므로 최고의 목적으로서 행복은 인간으로서잘사는 것이고 따라서 인간이 어떤 존 재인지를 알아야, 인간의 고유한 할 일, 인간의 기능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행복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즉 인간에게는 고유한 기능이 있는데 인간의 행복은 인간의 고유한 기능을 잘 발휘하는 것이며 인간은 영양을 섭취하고 성장하는 능력(식물적 기능), 감각하고 운동하고 욕망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능력(동물적 기능), 생각하는 능력(인간의 기능)을 가지고 있고 이 세 번째 생각하는 기능을 잘 발휘하는 것이 인간의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는데 이 생각하는 기능은 두 가지 방향으로 발휘된다. 하나는 순수하게 생각하는 기능, 수학 문제를 풀거나 왜 사는지를 고민하는 것처럼 직접 행동과 무관한 이성 사용(이론이성), 두 번째는 동물적 기능이 올바르게 발휘되도록 통제하는 기능(실천 이성:정서나 욕구를 통제할 때 필요한 이성)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이 둘을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라고 보았다. 이 인간의 탁월성이 발현되는 이성 기능 중에 실천 이성의 기능을 잘 발휘하려면 감정이나 욕망을 잘 통제할 수 있는 중용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같이 객관적 행복론을 주장하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탁월한 행동 (=)이 곧 행복이라고 말한다. 현대적 의미의 주관의 만족감으로서의 행복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객관적 행복의 부수적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즉 주관적 만족감은 객관적 행복에 달려있고 인간의 실천 이성의 기능을 잘 발휘해 감정이나 욕망을 잘 통제하는 중용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때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언젠가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이 객관적인 행복론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은 까닭은 나 자신도 내 인생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사유해왔고 이승의 소풍을 마감하는 날 나는 행복했구나.”라는 생각으로 눈을 감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라파엘로의 그림(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