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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영화와 정신분석학 기말 시험 대비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3. 6. 5.

 

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시리즈 50

즐겁던 영화와 정신분석 수업도 기말고사가 끝나면 goodbye다.

평소 관심이 많았던 주제였기에 낱말 하나 하나 나에게 스며들어 파장을 일으켰던 수업이었다.

특히 프로이트를 접하면서 즐거웠다.

알라딘을 검색하다 프로이트 전집을 간행했다는 것을 알았다. 생활비를 몇 달 절약해 모두 구입하고 싶다는 충동이. 물론 이승의 소풍을 마감할 때까지 읽지 못할 수도 있지만, 소장 가치만으로도 충분하기에...

 

 

영화와 정신분석학 기말 시험 대비

1)

Oedipus complex(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창시한 용어로 이름의 유래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 오이디푸스다. 어린 남자아이가 어머니를 독차지하려고 하는, 혹은 아버지를 경쟁 상대로 보고 콤플렉스를 느끼며 증오하는 심리를 말한다. 다만 현대에 와선 이런 이론 자체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반박 의견도 많다.

남근기(3 ~ 5)에 나타나 잠재기에 억압되어 해소되지만, 그 이후에도 삶 전체에서 무의식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남자아이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처음 만나는 이성이므로 사랑을 갈구하고 집착하며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자신보다 우월한 아버지에게 반항할 경우 남근을 거세당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아버지를 두려워하면서도 증오한다. 이러한 갈등을 겪다가 결국은 남근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고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선망으로 바꾸어 자신과 동일시하는 방식으로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성장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어떤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부추기거나 자제하는 초자아(超自我)가 발생하여 성장한 후에도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프로이트는 이 이론이 어린 아이라면 누구나 겪는 과정이라고 주장했으나, 현대에 와선 반박 주장도 많다. 남근이란 신체조건에서 발생하는 보편적인 심리가 아니라 부계 중심의 문화, 즉 아버지의 권위가 강한 동시에 아이와의 정서적인 교류가 약한 경우에 주로 발생하는 것이라는 주장 등이 그것. 더 나아가 주류심리학에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넘어 프로이트의 발달이론 거의 대부분을 정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이론은 반대로 여자아이가 동성인 어머니를 증오하고 이성인 아버지에게 집착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이를 바탕으로 엘렉트라 콤플렉스라는 개념도 생겨났으나 프로이트 심리학에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단어를 계속 사용한다.

심리학문적인 부문 외에서는 브라더 콤플렉스, 시스터 콤플렉스처럼 어머니에게 비상하게 집착하거나 아버지에게 비상하게 반항하는 요소, 혹은 둘 다 나타나는 요소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빗대기도 한다.

문학을 포함한 인문 관련 비평에서 자주 쓰이는 개념이다. 아버지, 어머니, 유아의 삼각구도를 상징적으로 해석한다. 예를 들어 서사 장르 중 성장물의 서사구조에서는 기본적으로 미숙하거나 트라우마에 걸린 주인공(유아)이 현실(아버지)에 직면하면서 과거의 트라우마나 미숙한 모습(어머니)을 극복하고 어른이 된다. 이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개념으로 설명하게 되면 인물과 서사구조의 분석이 명확해진다. 두고 그 계보나 기제를 따질 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욕망의 삼각구조를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재미있게도 신화에서의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아버지와 복잡한 갈등을 겪은 일이 없다. 그냥 우연히 길에서 시비 붙은 사람이 사실 자신의 친부였고, 그걸 몰랐던 오이디푸스가 홧김에 죽여버린 것이다. 그의 이름을 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아버지에 대한 시기심 등의 복잡한 심리를 설명하는 용어가 된 반면, 정작 본인은 별 생각없이 행인을 때려죽였을 뿐이다.

정작 이 말의 어원이 된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가 본인의 어머니인지 전혀 몰랐고, 라이오스가 아버지인 줄도 모르고 죽였으며, 그 사실을 알자 스스로 장님이 되었으므로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프로이트의 저작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나타나는 것은 1910년도 이고 그것은 그 경험의 복잡성에 비하면 단순화되거나 도식화된 게에 지나지 않는다. 남자 아이는 아버지에 대해 양가적 태도를 보이며 어머니를 애정 어린 대상으로 선택하기도 하고 동시에 여자 아이처럼 행동하면서 아버지에 대해선 여성적인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고 어머니에 대해선 질투 섞인 적개심에 해당하는 태도를 나타내기도 한다. 프로이트에게서 인간 내부의 지형학의 발생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구성적 역할은 그 콤플렉스의 쇠퇴와 잠복기로의 진입과 관계가 있다. 그에 따르면 그 과정은 억압 이상의 것이다. 이상적인 경우에 그 콤플렉스의 쇠퇴는 그 콤플렉스의 파괴와 제거를 뜻한다. 자아가 그 콤플렉스를 억압하는 것 이상을 할 수 없을 때 그것은 그거 속에 무의식의 상태로 남는다. 나중에 그것은 병을 일으킨다. 프로이트는 그러한 쇠퇴를 일으키는 여러 가지 요인을 언급하고 있다.

남자 아이의 경우, 아버지에 의한 거세의 위협이 근친상간의 대상을 단념하는데 결정적이다. 여자 아이의 경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거세 콤플렉스의 관계는 아주 다르다. 남자 아이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거세 콤플렉스에 의해 침식되는 반면에 여자 아이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거세 콤플렉스에 의해 가능해지고 도입된다. 여자 아이의 경우 남근의 단념은 보상을 얻으려는 시도 이후에나 실현된다. 여자 아니는 이른봐 상징적인 등가물의 기릉 따라 남근에서 아기로 이동하고 그녀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버지의 아기를 선물로 얻으려는 오래 유지되는 욕망에서 정점을 이루낟. 결과적으로 여자 아이에게서는 그 콤플렉스의 쇠퇴 시기를 명확히 표시하기 힘들다.

 

2)

전의식 (前意識, 독일어:Vorbewusste)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유래하는 심층심리학의 개념으로, 통상은 의식에 오르지 않지만, 노력하면 의식화할 수 있는 기억 등이, 저장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무의식의 영역이다.

무의식의 영역에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기억이나 감정, 구조는 통상, 의식에 오르지 않는다. 그럼에야말로, 그러한 기억이나 구조는 '무의식적이다 (눈치채지 못했다, unconscious)라고 해진다.

그러나, 확실히 알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었는지 생각해 낼 수 없는 기억이라든지, 지식 등은 존재한다. 생각해 내려는 노력을 통해서, 그러한 기억이나 지식이 의식에 되살아나, 생각난다는 경험도 다수 있다.

혹은, 완전히 잊어 떠나고 있던, 또는 그런 경험 따위 한 적도 없다고 생각한 것이 생각치 못한 무엇인가의 계기로 기억에 되살아나, 생각해 낸다는 일도 자주 있다.

무의식 (Unbewusste)의 영역에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떠한 노력이나 계기로 두고 의식에 오르는 기억이나 지식, 감정 등은 '의식의 영역''무의식의 영역'의 양쪽 모두의 영역에 존재하게 된다. 거기서, 이러한 '마음의 영역'의 특정 부분을 '전의식의 영역'이라고 칭해, 생략하여 전의식 (Vorbewusste)이라고 부른다.

프로이트의 개인의 무의식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억압하는 무의식'으로, 무의식 자체에는 어떤 목적성도 없고, 자아와의 관련으로, 심리역동적으로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무의식의 영역에 있는 기억이나 지식은 의식에 오르는 일은 통상 없지만, 자유 연상 등을 통해서, 의식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억압되고, 무의식 영역에 있던 기억 등이 생각나는 것은 자유 연상을 통해서, 억압 기억이 우선 전의식으로 이동해, 거기로부터 더욱, 의식의 영역으로 이동해, 의식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는 것으로, 무의식의 '억압 구조'가 변화해, 억압에 의해서 생기고 있다고 여겨진 신경증의 증상등이 치유한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치료 이론이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개인의 마음'에서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가정된 구조의 영역이다. 이에 비해, 정신 분열병 (조현병) 등의 연구에서 심층심리학의 이론을 구상한 카를 융은 무의식 중에는 개인의 마음을 넘은 민족이나 문화나, 혹은 인류 전체의 역사에 관계하는 정보나 구조가 포함되어 있는 영역이 있다고 했다.

융은, 이러한 무의식의 영역을 '집합 무의식'이라고 명명해 거기에는 세계의 여러 가지 신화에 공통되어 출현하는 고대적인 전형 (고태형)이 구조로서 역동작용으로서 존재한다고 했다.

융에 의하면, 집합 무의식의 내용은 결코 의식화되지 않는다. 전의식의 현대심리학적인 해석으로서 전의식의 내용이란 장기적 기억이 된다. 그러나, 융의 집합적 무의식이 그 하나라고도 생각되지만, 인간의 대뇌에는 선천적 구조가 존재해, 고차 정신 기능에 관계하는 이러한 구조로서는, 예를 들면, 언어 능력을 들 수 있다.

선천적 구조와 의식의 개재

언어에서 구체적인 문장이 어디서 생성되고 있는가 하면, 그것은 선천적 구조의 존재하는 무의식과 의도가 의식적으로 존재하는 의식의 중간의 영역이다. 따라서, 그것은 전의식의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융의 원형이 이미지로서 모습을 구성되는 것도 전의식의 영역에 있어서이다.

심층심리학의 이론은 매우 다채로운 전개를 나타내는 트랜스 퍼스널 심리학은 물론으로서 의식의 영역을 넘은 무의식의 구조가 어떻게 의식의 내용과 작용하는가 하는 것이 과제로서 있다. 이러한 무의식 또는 초의식과 의식 사이를 개재하는 '마음의 구조'로서 전의식의 개념이 적절하다는 것이 알려진다.

 

단지, 용어로서는, 전의식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의 말·개념으로서 사용하는 것이 기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3)

오이디푸스기(정신분석 사전)

이 용어는 프로이트에게 아주 늦게, 즉 그가 여성의 성의 특수성을 밝히고 딸과 어머니 관계의 중요성과 복잡성과 기간을 강조할 때에야 비로소 나타난다. 그러한 시기는 남자 아이에게도 있지만 여자 아이보다 덜 길고 결과가 빈약하며 대상이 동일하기 때문에 오이디푸스기의 사랑과 구별하기 더 어렵다. 전 오이디푸스기에는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돋보인다. 그러한 전 오이디푸스기는 특히 여자 아이에게서 발견된다. 그에 따라 여자 아이에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사랑의 대상의 변화 어머니에게서 아버지로 를 의미한다. 정신 분석가들은 그러한 두 가지 방향에서 여성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특수성을 밝히려 노력하낟.

용어상으로 전 오이디푸스기와 전 성기기는 자주 혼동되는데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이 좋다. 전 오이디푸스기는 인간 간의 상황에 관계된 것이고(오이디푸스기의 삼각형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전 성기기는 성적인 활동의 형태와 관계된 것이다. 물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발달은 원칙적으로 성기 조직의 성립과 함께 끝나지만 성기의 감도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관련된 완전한 대상 선택이 일치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도식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경험에 따르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완성되지 않았는데도 만족스러운 성기의 활동이 있을 수 있고 또한 오이디푸스적인 갈등이 전 성기기의 성적인 영역에서 작용할 수도 있다.

전 오이디푸스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오로지 모자의 양자 관계에만 존재하는 시기가 있을까? 어머니와 관계가 지배적이라 할지라도 아버지는 귀찮은 경쟁자로 존재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여자가 정상적인 긍정적 오이디푸스적인 상황에 이르는 것은 부정적 콤플렉스가 지배적인 선행 시기를 극복한 다음이다.”

이 공식은 프로이트가 보기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신경증의 핵심 콤플렉스라는 개념을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4)

정신분석에 의해서 드러난 몇 가지 인물 유형

: 1) 예외들

 

 

 

 

2) 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하는 사람들

맥베스 부인이 그렇게 갈망하던 왕비에 오르자 몽유병 환자가 되어 자살하는 것에 대해

a)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이 병의 원인이라는 설명에 대해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한 여인으로 하여금 아이가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남편을 광

포한 인간으로 변화시키기에는 부족하다. 이것은 모순으로 보인다. 작품 내부의 미묘

한 관계들이 아이가 없다는 한 가지 이유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맵베스 부인을 이렇게 짧은 시간에 회한에 짓눌려 병이 든 여인으로 변모 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히기는 어려울 것 같다.

b) “그에게는 아이들이 없다.” 맥베스 43, 맥더프의 말이 이 선언이 뜻하는 바는 그

가 내 아이들을 죽일 수 없었다면, 그것은 오직 그 자신이 아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 좌절되기만 하는 아이를 낳겠다는 희망이 한 여인을 망가뜨리고 한 남자

를 광포하게 만들기에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c) 루트비히 예켈스: 세익스피어는 한 성격을 자주 두 인물에 나누어 부여했기 때문에 두

인물을 합쳐서 하나로 만들어야 각각의 인물이 완전히 이해된다는 것이다. 이 발견은 맥베스에도 적용이 가능할 것 같다. 살해를 행동

으로 옮기기 전 칼의 환영에 시달리던 사람은 맥베스였지만 그 이후

정신병에 걸린 사람은 부인이었다. 범죄는 맥베스가 했는데, 정작 손

을 씻는 것은 맥베스 부인이다.

사진들은 알라딘에서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