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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구체 음악(具體音樂)이란?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3. 6. 4.

 

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시리즈 49

 

* 구체 음악(具體音樂)이란?

프랑스어로 Musique concrète, 다른 말로 하면 구체 음악(具體音樂)

1948년 프랑스의 방송국 기사인 피에르 셰페르에 의해 처음 시도된 음악이며, 모든 전자음악의 시발점을 끊은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소리들을 오픈릴 테이프로 녹음하고 이를 기계적으로 조작/변형시켜 낸 소리들을 일컫는다. 이는 악기와 연주자 혹은 성악가가 필요했던 종래의 방식을 뛰어넘어, 소리 그 자체와 그것을 합성시키는 방식에 따라 음악을 구성하는 당시의 개념에 정면으로 반하는 음악이었다. 모든 일랙트로니카 음악이 이에 영향을 받았지만, 현대에 있어서는 사운드 스케이프가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1948년경 프랑스 작곡가 피에르 셰페르와 그의 조수들이 프랑스 라디오 방송국 실험 스튜디오에서 개발했다. 구체음악의 기본 원리는 다양한 자연음향을 테이프에 녹음하여(원래는 디스크에 녹음하였음), 그 소리를 조작·조합해서 새로운 음악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작곡 과정을 보면 선택·녹음된 음향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원하는 음향으로 변형된다. 이를테면 녹음된 소리를 역순으로 재생시키거나 테이프를 짧게 자르거나 확대시키며, 에코 효과를 집어넣거나 음높이와 강도를 변화시키는 식이다. 완성된 곡은 다양한 소리 원천들을 조합하여 예술적 통일성을 나타내야 한다.

구체음악은 전자음향을 사용하는 전자음악의 선구적 형태로, 작곡가가 소리 재료를 확대시키기 위해 전자적 수단을 사용한 초기 시도 가운데 하나이다. 실험적인 기계 사용과 음악요소들의 무작위적 선택과 조합, 전통적 의미에서의 작곡가와 연주자의 역할 분담의 탈피 등을 특징으로 한 구체음악은 전자음악과 컴퓨터 음악의 발전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구체음악 작품으로는 셰페르와 피에르 앙리의 한 남자를 위한 교향곡 Symphonie pour un homme seul(1950), 프랑스계 미국 작곡가 에드가 바레즈가 400개의 스피커를 사용해 1958년 브뤼셀 세계박람회에서 연주했던 사막 Déserts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Musique Concrete 구체음악 작곡가들

 

 

 

 

1)

피에르 앙리 마리 셰페르(Pierre Henri Marie Schaeffer, 1910814~1995819)는 프랑스의 작곡가 겸 기술자로서 전자 음악을 처음 도입했다.

경력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 방송국 내에 실험 스튜디오를 설립하여 시인들을 중심으로 실험적인 방송시극 등을 시도하였다. 1948년에는 소음(騷音)을 몽타주하여 음악을 구성하는 뮈지크 콩크레트(具體音樂)를 창안하였다. 이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음을 녹음해 이것을 녹음 기계의 기능을 이용하여 여러 모로 변형시켜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레코드의 원반에 녹음하였으나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전자공학의 놀라운 발달로 생겨난 자기녹음(磁氣錄音) 테이프를 사용, 어떤 음이건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게 하였다. <한 남자를 위한 교향곡>(1948-1952)은 초기의 대표작으로 한 남자가 내는 여러 가지 음과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음을 소재로 하여 구성한 것이다. 그 밖의 <비극의 에튀드>, <철도의 에튀드> 등도 초기의 흥미깊은 작품이다.

1950년부터는 메시앙의 제자 피에르 앙리가 그에게 협력하여 '실험음악 스튜디오'를 조직하여 메시앙, 졸리베, 미요, 불레즈 등에게도 여기서 뮤지크 콩크레트 작품을 만들게 하였다. 그리고 이 스튜디오에서는 이미 몇몇의 젊은 작곡가들이 배출되었으며 그들은 뮤지크 콩크레트(Group de Recherches de Musique Concrete, GRMC- “In search of a concrete music이라는 책 출판했다.)의 새로운 방향을 개척하고 있다. 미셜 필리포, 뤼크 페라리, 프랑수아 베르나르 마세와 같은 사람들이다.

뮤지크 콩크레트는 처음에는 시끄런 소리(騷音), 현실 음만을 소재로 한정시켜 오브제 소노르(음향을 물체로 간주하는 사고 방식)의 의식으로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같은 방법으로 녹음 테이프에 인공적으로 만든 전자음을 구성하는 독일 전자 음악과는 전적으로 대립하는 음악으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근년에 이르러서는 서로 영향을 주어 가면서 소재도 상당히 섞어 가며 쓰이게 되어 그 구별이 없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 양자를 총괄하여 테이프 음악, 또는 전자 음악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는 수많은 교직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특히 파리 음악원에서 1968년에서 1980년까지 부교수로 전자 음악을 지도했다. 만년에는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었다.

”Sound is the vocabulary of nature: 소리는 자연의 어휘이다)“

 

 

 

 

2)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1928822~2007125)은 독일의 작곡가이다. 현대 전위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 전자음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전자 음악과 구체음악(Musique concrete)의 융합을 시도했다. 또한 Serialism(음고, 음색, 지속, 강도등에 음의 방위성, 공간성(spatiality)을 주는 시도를 했다.

파리에 유학하였으며 1953년 쾰른 방송국에서 전자 음악을 담당하면서 습작 1·2를 발표하였다. 1960년 전자 음악의 최고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접촉(Kontakt)를 발표, 전자 음악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였다. 1963년 쾰른 방송국 전자 음악 실장이 되었으며, 프랑스의 피에르 불레즈, 이탈리아의 루이지 노노와 함께 유럽 현대 음악의 3대 작곡가로 불린다. 2001년 폴라음악상을 수상하였다.

일대기

쾰른 근교의 부르크뫼드라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오르간·바이올린·오보에 등 여러 악기를 배우며 두각을 나타냈다. 쾰른 음악원에서 프랑크 마르탱에게 작곡을 배웠고, 쾰른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1951년 다름슈타트 하기 강좌에서 벨기에 출신의 카럴 후이바르츠를 만났고, 그와 함께 프랑스 파리로 가서 올리비에 메시앙 (분석), 다리우스 미요 (작곡)를 사사하였다. 1954~ 1956년까지 본 대학교에서 베르너 마이어-에플러와 함께 음성학, 음향학, 정보과학을 배웠다. 한편 1953년 쾰른에 신설된 라디오 방송국에 음악 스튜디오를 설립하여 전자음악을 실험하였다. 1950년대에 유행하던 점묘주의적 작곡법에서 탈피한 작품번호 1 콘트라-풍크테(Kontra-Punkte, '대위법'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점묘주의에 반대(Kontra-)한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도 있다)으로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음악 이론 잡지 Die Reihe('음렬'이라는 뜻)의 편집자로 활동하며 새로운 음악 이론에 대한 홍보활동을 했다. 그 후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연주회와 강습회를 열었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데이비스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초청 교수로 재직했다. 1971년부터 쾰른 음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작곡법도 계속 급격한 변화를 거쳐, 1962~1969년 소프라노, 4개의 합창단과 13개의 악기를 위한 칸타타 모멘테(Momente, 기회, 계기라는 뜻), 1975~ 1977년의 복합음향 작품으로 미국의 지구와 우주 개척자들에게 헌정된 시리우스등의 전위적인 작품을 남겼다.

그의 음렬주의 음악과 전자 음악은 자신이 공부했던 심리학·음향학 기반에서 기초한다고 하였다. 그의 음악은 찬반 논란이 뜨겁지만, 현대음악에서 고전 음악 계열의 작곡가와 대중음악 계열의 작곡가 모두에게 영향력을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보다 훨씬 연상의 연배였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도 콘트라-풍크테의 영향을 받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악장을 작곡했다.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인 백남준도 그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와 공동 작업을 한 적도 있다. Can, 비틀즈, 크라프트베르크, 코일, 비에르크, 소닉 유스, 마일스 데이비스, 프랭크 자파, 허비 행콕 등의 다양한 음악가들도 슈토크하우젠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였다. 테크노의 기술과 힙합의 샘플링과 같은 기법이 생겨난 것도 그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런 가운데 그는 1977년부터 2003년까지, 요일을 소재로 한 7개의 연작 오페라 (Licht)의 작곡에 전념하였다. 그 후로도 계속 창작활동을 하며, 연주회에도 참석했으나 200712월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하였다.

음악

콘트라-풍크테(1953)

소년의 노래(1956): 전자 미사곡, 다니엘서를 음성으로 낭독하여 전자음과 동시에 변조, 합성 하였으며 5개의 스피커를 활용하여 음의 방향성, 운동을 고려했다. 일명 전자음악과 콩크리트 음악을 융합

5개의 목관악기를 위한 다()속도(1956)

전자 음향, 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접촉(1960)

피아노곡I - XIX

모멘테(1977)

헬리콥터 현악 4중주(1994)

 

 

 

 

3)

Iannis Xenakis(1922 2001) 작곡가· 건축가. 그리스인이었으나 1946년 이후 파리에서 활약하였다. 오늘날에 와서는 불레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프랑스 작곡계의 젊은 대표적 존재. 논리적 사고에 의한 작곡과 통계역학이나 수학적인 추계학적 이론과 법칙을 음악에 적용시켜 작곡하고 있다. 관현악곡 <피토프라크타>를 비롯하여, 마르코프 이론을 사용한 <아코리프시스>, 게임의 이론에 의한 2개의 오케스트라와 2인의 지휘자를 위한 <전술(戰術)>, 그리고 컴퓨터를 사용해서 작곡한 <현악 4중주곡>, <에온타> 등 모두가 다수의 음군(音群)을 기체운동이나 기체분자의 운동 속도 분포와 동일하게 간주하여 수학이론을 응용해서 구성한 것이다. 그 음향 에너지가 치열하게 유동하는 음공간은 참으로 독자적인 것이라 하겠다. 또한 실험적인 건축가로서도 저명하며 르코르뷔제 아래에서 몇 개의 뛰어난 건축설계를 한 바도 있다. 또한 Metastaseis(전이 1953 54)라는 작품은 61인의 음악가들을 위한 오케스트라 작픔으로 Glissando ‘to glide’라는 것이 유명하며 이 작품은 도면을 건물롣 완성해 ”The Philip Pavilion“이란 이름의 1958년의 브뤼셀 만국박람회에서의 필립스관의 이색적인 건축은 특히 문제가 되었다. (제나키스의 음악적 작품이 건물로 구체화된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