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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시리즈 7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3. 3. 16.

 

 

 

 

이제 신입생으로서 3주 차, 저에게 가장 흥미롭게, 때론 가슴 벅차게 다가오는 수업은 교양 과정의 영화와 정신분석이에요.

 

제가 오랜 기간, 거의 50대 중반까지 타인에게 표가 나진 않았지만 심리적 병을 앓았던 까닭인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왜 이리 늘 가슴 한쪽이 서늘하고 심지어 육체적인 통증까지 동반되는가, 의사의 진단에도 특별한 병명을 찾을 수 없는데, 정신병인가, 나를 의심하기도 했죠. 그러나 여전히 내 삶은 왜 이토록 허무한가, 남들보다 더 열심히 그것도 좀 특별하게 살았는데도 내 세계는 왜 이리 텅 빈 의 세계인 것만 같은가? 제 삶이 외연 상 타인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될 때조차도 저는 자살을 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나 자신과 싸워야 했죠.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집을 떠나 친구나 동생과 잠깐 거주한 적은 있지만 대부분 혼자 생활했고, 심지에 80년대 말과 90년 대의 방콕과 시드니 같은 곳에서의 생활은 만만치 않았죠. 가장 힘들었던 것은 외로움이었어요. 밖으로는 명랑하고 쾌활하고 심지어 상냥하기 까지 했는데 말이죠.

 

저는 그 원인이 그저 남들도 가질 수 있는 인간 근본적인 외로움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더구나 50 중반이 될 때까지 전 제 개인적 심경, 고민 등을 타인들에게 밝히길 무척 꺼렸죠. 가까운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내부에 있는 나 자신을 들키는 것을 극도로 자제해 왔는데 내 내부에 웅크리고 있던 악마를 들키기 싫었을 뿐만 아니라 타인이나 사회로부터도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나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지나쳤다고 할까요? 심지어 나를 내보이는 것은 누구에겐가 내 약점을 드러내는 꼴이기 때문에 나를 꽁꽁 동여맬 수밖에 없었죠. 이러한 자세가 스스로 심리적 병을 키우는 것이라는 것을 50대 중반, 한 친구를 만나고 깨닫게 되었어요. 그 친구로부터 그녀는 30대 초반부터 자신의 심리분석을 통해 많은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속내를 듣게 되었죠. 그때부터 친구의 도움으로 저도 심리학책을 탐독하며 나를 분석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원인 중 하나를 찾을 수 있었죠. 지금은 86세가 되신 제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부모님은 결혼 당시 너무 가난해서 맏딸이었던 저를 외할아버지에게 맡기고 일터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요. 그 시절은 특별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가난하게 살았던 시대 상황이 있었겠지만 특히나 가난했던 제 엄마는 아이를 자신의 아버지에게 맡기고 들로 산으로 품을 팔러 나가 하루의 끼니를 해결했다고 해요. 외할아버지는 끔찍하게 아끼는 외손녀가 울면 아이의 엄마를 찾아 또한 들로 산으로 다니셨겠죠. 아이는 잠깐 엄마의 젖을 빨았다가 다시 외할아버지의 등에 업혀 엄마의 품을 억지로 떠나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는 어찌나 앙칼지게 우는지 함께 일했던 아주머니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해요. 그러던 어느 날부터 아이가 갑자기 울지 않더랍니다. 어느 순간부터 방 안에 앉혀놓은 아이는 처음 엄마가 앉혀놓은 그대로 몇 시간을 자세조차 바꾸지 않고 혼자 앉아 있더랍니다. 어머니마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아이가 자기표현을 하지 않았던 거죠. 아마도 아이는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란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을 것 같아요. 아무리 울어도 자신을 달래줄, 혹은 자신의 결핍을 충족시켜 줄 사람이 없었다는 인식(당시 외할아버지는 거의 알콜 중독 수준이었는지라)은 젖먹이 스스로 견딜 수밖에 없다는 현실 앞에 스스로 어쩌면 마음의 문을 닫았을지도 모르겠어요. 바로 그것이 제가 기억할 수 없는 제가 가진 트라우마였음을 심리학 책들, 혹은 친구와의 대화에서 알 수 있었죠. 참 이상하죠. 자신의 트라우마의 원인을 아는 그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트라우마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지금은 무척 신기하기만 해요.

 

그런 까닭으로 저는 늘 저 자신을 프로이트 측면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가 있는 것 같고 프로이트나 융 같은 정신분석 학자들의 오묘한 지혜를 탐색하는 것을 제 의무처럼 여기기도 해요. 실제로 정신분석이라는 단어만 보아도 여전히 제 가슴이 뛰곤 하죠.

 

지난주, 이번 주의 영화와 정신분석 강의 때는 충족체험이라는 용어를 공부했는데 정신분석학 사전에 나온 해설은 너무 어려웠어요. 그러나 교수님의 강의를 통해 저는 이 정신분석학 용어를 이렇게 정리했답니다.

 

충족체험이란 인간이 젖먹이 초기 배가 고팠을 때 울음과 같은 형식으로 자신의 요구를 알리는데 이에 반응하는 어머니, 혹은 그 대체자가 젖먹이에게 젖을 물리거나 우유와 같은 먹을 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젖먹이는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경험은 물리적인 배고픔을 충족했다는 것에서 오는 현실적인 만족감뿐만 아니라 촉각, 시각, 청각 등의 감각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에 의한 환각적 충족도 함께 만들어지는데 젖먹이의 이러한 경험은 점차 욕망이라는 형태로 환원되어 그 욕망의 실현을 이루지 못하는 실패를 겪으면서 욕망의 형태를 충족시키려는 절심함이 동반되겠고 이것이 젖먹이가 아이가 되고 어른이 되어서도 충족감을 주는 대상을 계속 추구하려는 속성을 낳는다.

 

이것이 제가 정리한 충족체험이라는 정신분석학 용어인데 저도 확실치 않아 교수님께 쪽지라도 보내야겠어요.

 

 

충족체험이라는 용어와 함께 수업은 프로이트가 19099월 미국 메사추세츠주 워체스터 클라크 대학교의 개교 20주년을 기념하는 강연에 관한 내용이 있었어요.

 

특히 프로이트는 비엔나의 의사 브로이어가 처음으로 히스테리로 고생하고 있던 한 소녀를 치료했던 경험을 통해 브로이어와 함께 저술했던 히스테리 연구(1895)”에 대한 소개에요.

 

환자는 21살의 똑똑한 소녀로 그녀의 병은 2년 이상 지속되었는데 중증으로 여겨질 정도로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장애, 특히 우측 팔다리에 감각상실을 동반한 경직성 마비와 안구 운동 장애가 있어 시력도 많이 떨어지고 고개를 가누는 어려움과 매우 신경질적으로 기침을 했고 먹는 것에 대한 혐오감과 몇 주간 아무 것도 마실 수 없는 상태, 때론 모국어를 말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간질성 심신 발작, 정신착란, 망상과 전인격 변질로 악화 되었다고 해요. 소녀의 이러한 증상은 그녀가 헌신적으로 좋아했던 아버지가 병에 걸려 간호하고 있을 때 나타났고 결국 그녀는 자기 자신의 질환 때문에 간호를 포기했는데, 여하튼 의사 브로이어는 그 어떤 비판 받을 만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동정심과 관심을 가지고 놀라운 지적 능력을 가졌던 소녀를 말하자면 대화치료 혹은 농담조로 굴뚝청소라 부르는 방법 혹은 지속적인 최면 치료를 통해 소녀의 증상이 호전시켰는데요. 더불어 그녀의 대부분의 증상들이 정서적인 경험의 찌꺼기, 이를테면 앙금이라는 것으로부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었고 그러한 정신적 외상으로부터의 오는 혐오감 혹은 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보고 하죠.

 

중세나 프로이트의 출현 이전의 근대조차 인류가 정신질환 환자를 어떻게 대해 왔는지를 생각해보면, 가령 정신병 환자의 감금과 격리, 사혈, 치아 뽑기, 관장, 회전의자 돌리기, 구운 쥐 먹이기, 매 타작, 심지어 뇌에 직접적으로 약물을 주입하는 등의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방법으로 정신질환자를 취급했다는 것을 우리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죠.

 

그러므로 19세기 후반 프로이트의 등장은 위와 같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새로운 시도, 대화나 최면과 같은 심리치료가 등장했고 이로 말미암아 향정신성 약물에 대한 연구가 병행되면서 정신병원이라는 시스템이 정착하기 시작했을 것을 짐작하게 하지요.

 

프로이트의 모든 이론이 현대에 적용되거나 일반화될 수는 없지만 그의 등장은 인류의 휴머니즘을 향한 방향성을 뚜렷하게 하는, 시쳇말로 인류사에 한 획을 긋는 대전환을 이룩했다는 사실은 두말하면 잔소리.

 

이번 주에 여기까지 공부했어요. 다음 주 수업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란 영화를 보게 된다는데 정신분석적 차원으로 영화를 더 몰두해 영화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영화로부터 어떤 정신 분석적 내용을 얻게 될까, 몹시 기대되는데요. 사실 오늘 저는 유튜브를 통해 이 영화를 먼저 보았어요. 마지막 장면들에서는 코를 훌쩍거리며 눈물을 닦았는데요,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였던지라 벌써부터 강의 시간이 기다려지는 군요.

 

영화와 정신분석, 이러한 강의로부터 나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배움으로부터 또 나는 어떤 글들을 쓸 수 있을까요? 제 내일이 무척 흥분되지 않을 수 없겠죠. 더군다나 2학년이 되면 영화와 철학이라는 과목도 있다는데 만학도로서 제 대학 생활은 막 신대륙을 향해 돛대를 올렸던 콜럼버스의 심경과 비견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적 세계를 향해, 제 심장의 돛대를 단, 아직은 부드럽고 때론 다정한 순풍을 느껴요. 제가 발견할 그것들을 위해 미리 축배라도 들고 싶다면, 웃으시겠어요.

 

사실 이순이 넘은, 그리고 이미 4년제 대학을 경험한 적이 있는 제가 대학 1학년으로 더군다나 철학과에 들어갔다니 지인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곤 하죠.

 

, 하필 철학과야?“

 

전 웃으면서 농담조로 이렇게 대답해요.

 

프로이트와 융, 그리고 니체와 친해지기 위해

 

물론 철학과이기에 얼마나 프로이트나 융과 데이트를 할 수 있을지 전 아직 불분명해요. 심리학에서 더 깊이 다루겠지만 여하튼 줄기를 알면 가지 정도야 제가 달 수 있을 것이겠지요.

 

또한 250매가량의 니체라는 동화를 썼어요. 니체의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에서 영감을 받아 니체라는 10살 가량의 아이가 세상을 향해 어쩌면 아주 가만히, 그러나 힘있게 말할 수 있는 그런 류의 동화, 일종의 어른을 위한 동화 정도에 해당 되죠. 제 대학 4년 동안, 이 동화를 퇴고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참 꿈도 야무지죠?

 

일 년 정도 되었을까요? 비슷한 꿈을 자주 꾸어요. 꼭 엄마가 저를 떼놓고 다시 결혼을 한다든가, 없는 엄마를 찾아 울고 있는 내가 자주 보여요. 믿으시겠어요? 육십이 넘은 할머니가 아직도 이런 꿈을 꾸며 헤매고 있다니, 아무래도 저는 영원히 어린 아이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요? 아직도 풀어야 할 것이 저에게 남아 있나 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더 이상 괴롭거나 슬프거나 특별히 외롭진 않아요. 오히려 약간의 흥분상태, 혹은 충만함, 묘한 성취감을 느끼는 제 나날, 사위에 스며드는 봄의 냄새가 제 가슴에도 혹은 인생에도 싹을 틔우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할 것을 믿고 싶은 나날이에요. 누군에겐가 이 말이 참으로 하고 싶네요.

 

고마워요. 당신이 있기에 제 삶 또한 더 빛날 것을 의심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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