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5
어제는 머리가 터질 듯해 집에 돌아오자마자 씻고 잠자리에 들었죠. 집에 돌아오기 전 심란한 마음과 복잡하게 얽힌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30여 분, 바닷가를 거닐었어요.
쌀쌀한 기온 탓에 몸을 웅크리고 걷는데 먼 수평선의 어둑어둑한 물마루 위에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몇 척의 배가 왜 그리 쓸쓸해 보이는지요. 마치 제 마음의 반영이라도 되는 듯 한참을 바라보며 저를 다독거렸답니다. 바람 탓인지 거침없는 파도들이 쉼 없이 해변을 훑고 오고 갔는데 쫘 ~ 쫘 ~ 다정해서 마치 제정신을 애무하며 감싸 안던 그 소리들이 그 순간만은 답답하고 울적한 제 마음을 훑고 가는 소리처럼 싸해 오더군요. 어떻든 제 인생이니까요. 제가 다스릴 수밖에 없잖아요. 먼바다를 한참 응시했어요. 어슬렁거리던 어둠이 속사포로 달려왔어요. 바다는 깊은숨을 토해내듯 점점 사나워지더군요. 저도 그 리듬에 맞춰 깊은숨을 쉬었어요.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저도 모르게 멜로디가 따라왔어요. 늘 자장가처럼 제 심장을 다스리는 멜로디에 휩싸여 어찌할 바를 모른던 제 가슴이 서서히 서서히 잦아드는 것도 같았어요.
어제 아침엔 제법 일찍 눈이 떠졌답니다. 첫 수업이 11시 10분이라 비교적 늦잠을 자도 되었으련만 뒤숭숭한 꿈 때문이었던 같습니다.
생뚱맞게 잊었다 생각했던 그린이었어요. 무릎 때문에 더 이상 필드에 나갈 수 없는 처지라 클럽조차 친구에게 맡겼는데 제가 드라이버를 들고 있었죠. 힘껏 온 힘을 다해 드라이버를 날렸는데 공은 100미터 안팍으로 굴러갔죠. 그것도 홀컵 방향이 아닌, 아니 애초부터 티박스에 선 제가 오른쪽 홀컵 방향이 아닌 직선 방향으로 드라이버를 날렸다 아닙니까, 무슨 이런 황당한 꿈이, 다시 홀컵 방향으로 티박스에 섰는데 도무지 티를 꽂을 수가 없는 거예요. 겨우 티를 꽂았는데 이번에 자꾸 골프공이 티 위에서 굴러떨어지는 거예요. 그때 제 모습을 건너다보던 일행인지 아닌지 확실하진 않지만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좀 우락부락한 남자 한 분이 드라이버를 들고 이렇게 치는 것이라고 훈계를 하는 거예요. 저는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여전히 골프공을 티 위에 올리려고 바둥거리다 꿈을 깼어요.
이 꿈을 꾸다 일어난 이른 아침, 저는 프로이트식으로 제 꿈의 해몽을 했답니다. 아마 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새내기가 아무래도 적응하느라 내 무의식에서 발버둥치고 있구나, 어쩌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름 스트레스를 받는구나, 그런 생각말이에요.
마침 학생 상담 센터에서 일주일 전에 실시했던 MBTI 검사에 대한 상담을 받는 날이라 생각이 좀 복잡했는데 오전수업을 마치고 약속된 상담을 받았답니다. 예상했던 대로 제 MBTI 성격 유형은 INFJ였어요. 제가 MBTI 검사를 받은 이유는 제가 생각하는 “나”와 객관적인 “나”사이의 격차가 몹시 궁금했거든요. 60이 넘은 나이에도 그런 것이 궁금할까 웃으시겠지만 아직도 전 제가 20도 안 된 아직 여물지 못한 성장의 가능성이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도무지 털어버릴 수 없었으니까요.
위 결과지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전 상당히 내향적이에요. 그러나 목표와 의지가 있으면 밖으로 표출해 그 목표와 의지를 타인과 관계없이 성취하려는 좀 저돌적인 면도 있지요. 그렇다고 또 앞뒤를 재지 않는다고 할 수 없어요. 조화로운 구성원이 되기 위해 어느 정도는 참고 인내하다가 그 정도를 넘으면 물러서는 편이지요. 주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고 그 충만함에 중독된, 어린 시절부터 평생을 비슷한 형태로 살아 온 것 같아요.
INFJ 유형은 강한 직관력의 소유자로 창의력과 통찰력이 뛰어나다. 미래지향적이고 통찰력과 영감을 자신과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주로 사용한다. 자신의 내면의 인격을 반영해주고 동시에 자신이 지향하는 이상을 반영하는 일을 하고자 한다. 이들에게 혼자 조용히 생각하며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이들은 말없이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좋아하며, 다른 사람에게 대단히 온정적이고 조화로운 관계를 추구한다. 공동의 이익을 가져오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이 결과지를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죠. 특별한 일이 없다면 대략 인생의 20 프로 정도가 남아 있는 시간 동안 제가 그리는 제 인생의 청사진이 이렇게 확실하게 제 성격 유형 속에 나타나 있는 걸 보고, 상담 선생님과 앞으로의 대학 생활과 그 목표 그 후의 제 인생의 계획들을 말하며 비교적 의미 있는 상담을 진행했답니다.
제가 개발해야 할 점으로는 “논의나 토론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현재를 즐기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실제적으로 해야 하는 세부 사항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등이었어요. 이런 점이 앞으로 제 성격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이겠지요.
제 미래에 대한 확신을 안고 다음 주 에니어그램의 결과지를 보고 또 상담을 하겠다며 상담 센타를 나왔어요. 마침 전날 조교님에게서 제 담당 교수님의 상담 요청이 있다고 해서 약속을 잡았었거든요. 아마도 교수님께선 제 대학 생활 혹은 앞으로의 비전을 들어보시려나 보다, 저만의 지레짐작을 안고 교수실을 노크했죠.
잠깐, 요즈음 어떤 심정이냐고 물으셨어요. 저는 거침없이 ”너무 가슴이 뛰고 팽창했어요. 무척 흥분되는 생활이지요.“ 가감 없이 제 기분을 말씀드렸어요. 정말 저는 신입생으로서 기대와 흥분이 아직 애드벌룬을 타고 대기를 날고 있는 상태거든요.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거침없이 세상을 응시하며 혹은 즐기기까지 하며 우주 끝까지 가고 싶은 열망, 제 인생에서 이처럼 황홀할 정도의 뜨거움은 처음인 것 같은 상태라고 한다면 웃으시겠어요?
그런데 교수님의 상담 목적은 절대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김은 선생님은 MZ세대를 조망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들을 알고 싶다고 하셨는데 좀 자제를 하시면 어떠시겠어요?“
물론 그 서두에 기분 나쁠 수도 있을 것 같아 주저하시는 태도를 보이시면서 말씀하셨지요. 저는 머리가 띵했어요. 망치로 세게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했죠. 이게 무슨, 눈동자를 교수님에게 맞추려는데 자꾸 흔들리더라고요. 요점은 수업 시간에 나서지 말고, 조망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앞으로 학생들과 어울리는데 도움이 되며 다른 학생들에게도 생각하고 대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제가 먼저 교수님에게 대답을 하면 다른 학생들의 입을 막는 것이다. 그들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어요. 하실 말씀이 있으면 앞으로 강의실보다는 교수실을 찾아 말씀해달라는 부탁이었죠.
즐거운 논리 이야기 강의가 생각났어요.
사실 제가 논리, 논증, 비판적 사고 영역이 한 참 뒤떨어진 감성적 인간이거든요. 해서 그 수업에 대한 기대치가 있었어요. 교수님은 곧잘 토론식으로 학생들에게 답을 요청하셨죠. 강의실 안 19 명의 학생들, 그중에 저와 한 명의 학생만 교수님의 물음에 대답을 하고 아주 고요해요. 저는 당연히 학생이니까, 강의 도중 교수님의 물음에 제 의견을 제시하는 게 강의를 받는 학생의 태도라는 강한 생각이 있었거든요. 제 나이와 상관없이 대학, 더군다나 철학도의 자세는 거침없는 태도로 모든 것에 대한 발언을 해야 하며 거친 논쟁조차 불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제가 만학도라는 그 이유만으로 이러한 자세가 대학이 요구하는 자세가 아니다는, 학부의 어린 학생들과의 조화를 위해 제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저는 복잡한 심경이 되었어요. 그러나 제 숙제를 제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 좋겠구나, 부풀어 올랐던 제 애드벌룬이 날카로운 바늘 끝에 찔린 기분이 되었답니다. 미세하지만 제 애드벌룬에서 기체가 빠지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저는 지금 기체가 빠지는 제 애드벌룬에 침이라도 발라 그 구멍을 메꾸고 싶은 심정이랍니다.
위에서 쓴 것처럼, 저는 내향적, 그것도 상당히 내향적 인간이에요. 그러나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엔 비교적 거침없는 사람이에요. 누구의 눈치도 필요 없는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하면 제 길을 가만히 가는 편이지요. 그러나 이 경우엔 저는 약자네요. 학우들과의 조화를 위해 강의 시간에 저는 입을 닫아야 한다고요. 조망하고 어린아이들이 더 활발히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요. 네네, 그러지요. 그것이 더 나은 만학도의 대학 생활을 위한 것이라면, 당연히 따라야겠지요. 그런데 왜 이리 씁쓸하고 서럽고, 한편으론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 그럴까요.
어제 정신적인 피곤함에 몰려 그대로 녹아떨어졌는데 새벽 한 시에 눈을 떴어요.
전날 밤 제 꿈은 마치 프로이트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예지몽처럼 저에게 걸어왔군요. 신기하기도 하고요. 침으로 메꾼 구멍은 유효한지, 아마도 제 무의식 속에 쌓일 부정적 요소들이 어느 사이 갑자기 뛰어나와 제 애드벌룬에 구멍을 낼지도 모르겠지요. 그것이 타의든, 자의든.
앞으로 전개될 4년 동안 저는 제 애드벌룬을 타고 이 우주를 무사히 여행할 수 있을까요? 쉽게 부서질지도 모르는 제 애드벌룬은 제 인생의 지향점을 향해 올바르게 날아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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