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북적거리는 일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몇 시간이고 가만히 있곤 한다. 알에서 깨어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스스로 죽어가는 것들 사이에서 평온했던 날들보다 불안했던 날들을 더 좋아했던 나, 봄의 불협화음에 떨었고, 여름의 스콜을 찬미했으며, 가을의 성숙함을 사유하는 내게 곧 겨울의 침묵이 찾아들 것이라는 사실 앞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는 시간, 이제 삶은 산과 바다와 닮은 근원적인 우주의 본성의 한 페이지였음에 매 순간 일분일초가 세삼 귀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겸손함이 드디어 찾아와 있는 힘껏 삶을 뒤쫓기 위해 아무 것도 아닌 내가 뭐라도 되겠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응시하며 몸과 마음을 다해 복닥거렸음에 작은 위로라도 줘야겠지, 그렇게 시작한 여행이었다.
지난해 한국관광공사와 전국관광기관협의회가 선정한 ‘가을 비대면 관광지 100선’에 선정되었다는 익산 금강 용안생태습지는 축구장 93개 면적 규모를 가진다.
수천만 마리의 나비가 햇빛 바래기를 하는 듯, 몽환적인 핑크빛 나비바늘꽃 위로 분홍, 분홍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순간, 드론은 바람을 스치며 하늘을 날고, 그 풍경들에 매혹당한 사람들의 표정은 은빛 햇살의 리듬을 가슴에 안고 춤이라도 추었을 듯...
금강변 습지에 광활하게 펼쳐진 억새의 물결을 배경으로 4.8km에 달하는 제방둑길의 색색의 바람개비들을 따라가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동화 속 흰토끼와 체셔 고양이와 하트 여왕이라도 만날 듯. 짧아서 아쉬운데 또 아쉬워서 아름다웠던 순간을 기억하는 우리의 방식은 이런 꿈을 꾸게 할 것이다.
“어머나, 정말, 오늘은 모든 게 다 이상하네! 어제는 모든 일이 평범했는데 말이야. 밤사이에 내가 변한 게 아닐까?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의 난 어제랑 똑같았던 걸까? 뭔가 약간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내가 만약 어제와 같지 않다면, 다음 질문은 ‘도대체 난 누구지?’라는 거겠지. 아, 이건 정말 엄청난 수수께끼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은빛 햇살이 바람의 멜로디로 노래하는 10월의 어느 하루, 우리는 자연과 한 몸이 되어 소리와 냄새와 색과 파동을 따라가 어린아이같이 우리 앞에 놓인 모든 것들에 긍정의 끄덕임을 부여하며 눈앞에 펼쳐진 세계에 매혹당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시간, 거침없는 수다와 서투른 감탄, 미소어린 호의가 없었다면 길손 식당의 밥상도, 길거리 카페의 아메리카노나 캐러멜마키아토도 그렇게 고소하거나 달콤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맙고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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