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애독자였던 나는 불현 듯 어느 날 소설을 쓰기로 했다. 2013년 가을, 섬진강 기슭에서의 그 밤, 시인 이원규님이 낭독해주셨던 이 시가 그 출발점이었다.
찔레꽃은 피고
신경림
이웃 가게들이 다 불을 끄고 문을 닫고 난 뒤까지도
그 애는 책을 읽거나 수를 놓으면서 앉아 있었다.
내가 멀리서 바라보면서 서 있는
학교 마당가에는 하얀 찔레꽃이 피어 있었다.
찔레꽃 향기는 그 애한테서 길을 건너왔다.
꽃이 지고 찔레가 여물고 빨간 열매가 맺히기 전에
전쟁이 나고 그 얘네 가게는 문이 닫혔다.
그 얘가 간 곳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랫동안 그 애를 찾아 헤매었나 보다,
언제부턴가 수시로 그 얘가 보이기 시작한 것을 보면.
강마을 분교에서 보았다, 아이들 앞에서 날렵하게 몸을 날리는,
산골읍 우체국에서 보았다, 두꺼운 봉투에 우표를 붙이는,
광산에서 보았다, 뙤약볕 아래서 힘겹게 돌을 깨는.
서울의 뒷골목에서, 항구의 술집에서, 읍내의 건어물점에서
그 애를 거듭 보면서 세월은 가고, 나는 늙었다.
엄마가 되어 있는 그 애를, 할머니가 되어 있는 그 애를,
아직도 나를 잊지 않고 있는 그 애를.
하얀 찔레꽃은 피고,
또 지고.
― 미네르바 2013년 가을호
이 시의 낭독이 끝나는 순간, 나는 짐을 꾸려 자정이 지난 시간,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켜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찔레꽃은 피고 지고”라는 80매용 단편의 초고를 일사천리로 써내려갔고 다음날 동이 틀 무렵 나는 황홀한 꿈을 꾸며 잠들 수 있었다. 2박 3일의 숙고 끝에 맞춤법만을 확인한 단편은 완성되었고 나는 그 해 신춘문예에 응모를 했고 당선은 되지 못했지만 본선 진출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그로 인해 나는 내가 천재적인 소설가가 아닌가라는 자아도취에 빠졌고 연거푸 신춘의 실패를 곱씹으면서도, 아니 또 한 번의 신춘 본선에 내 이름이 거론된 후엔 단편은 물론이고 장편도 몇 편인가를 서슴없이 써댔다. 마치 신들린 무당처럼, 어쩌면 그것은 그 즈음 내가 나로 살 수 있었던 유일한 삶의 선택이었고 내 닥친 인생의 고난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할 수 있었던 유일한 힘이었다는 것을 몇 년 후, 나의 재능 없음에, 나의 나이 듦이라는 현실을 직면하게 되었을 때, 또 불현 듯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한 동안 안 썼다. 아니 못썼다가 더 정직한 말이겠다. 스토리 텔러의 기교로만 남은 나의 글들을 들여다보며 때론 원망하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명확하지 않은 대상들에 지독히 화를 내며 애써 외면하기도 했다. 동시에 아련하지만 그 희미한 불빛, 노력하면 언젠가, 라는 희망을 또 버리지 못하는, 내 주인공들을 수없이 복제하며 밤을 설치고 산책길의 동반자가 되어 함께 걸었다. 너희들 없이는 안 되겠구나, 너희들 없이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니겠구나, 수없이 뇌까리며 오늘에 이르렀다.
소설가에 대한 애착, 그것은 나의 삶의 애착과 등가임이 분명하다고 느끼는 즈음, 나는 황보윤작가의 강연을 만났다. 황작가는 '소설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갈까"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그의 열띤 강의에 보답하자는 심정, 혹은 어쩌면 이 기회를 통해 내가 좀 더 쓰기에 다시 집중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황정은 작가의 “상류엔 맹금류”라는 2014년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 대상 분의 작품을 읽고 다음과 같은 독후감이라기보다는 소설 분석하기를 시도해보았다.
이 단편 한 편, 내 나름의 분석을 해 놓고 보니, 나는 그동안 황정은 작가를 우상처럼 모시던 내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막연했던 황정은 작가를 내 시선으로 다시 보게 되었고, 내가 황정은 작가에게 왜 그리 심취되었었나, 그리고 요즈음 그녀를 더 이상 찾게 되지 않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아마추어작가이자 독자이기 때문에 문학적 맥락에서 깊이 있게 말할 자격이 없다고 먼저 판을 깔아놓고, 이것은 단지 내 취향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집어보니 백의 그림자, 파씨의 입문, 아무도 아닌, 야만적인 앨리스씨, 계속해보겠습니다, 디디의 우산, 그리고 몇 편의 단편을 읽었던 것 같다. 그녀의 건조한 단문의 문체들을 애정했고 질투했다. 그녀가 세상을 바라다보는 따뜻한 시선에 감탄했고 나에게도 그런 시선이 깃들기를 기도했다.
오늘 2014년판 황정은의 단편 “상류엔 맹금류”를 내 나름으로 분석해 본 후, 나는 황정은 식의 자기 복제에 이젠 좀 지루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하고 싶다. 가난하고 외롭고도 삶에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 그러나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썩소를 머금은 그들에게 박수를 치고 싶었던 것은 나의 가식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내가 믿는 세상을 그들도 믿기 때문에 내가 나에게 박수치기를 서슴치 않았던 자위적 자의식이 그녀의 글들에게 향하는 내 마음에 투영되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섬뜩한 삶의 부조리를 앞에 두고 슬며시 고개를 돌려 애써 태연한 척 세상을 살아가는 소시민적 삶의 리얼리티가 여과없이 원색으로 나열된 문장들의 반복에 나는 식상한 것 같다. 물론 여전히 인간에 대한 따뜻함을 근간으로 한 그녀의 시선엔 한결같이 박수를 치고 싶지만.
내가 요즈음 심취되고 있는 소설들이 편혜영과 조해진인 것을 살펴보건데, 나는 삶의 리얼리티의 원색적인 나열이나 상징보다는 약간은 애매모호해서 잡으려고 할수록 멀리 달아나는 아련한 은유적인 것들을 더 좋아하는 성향이라는 것을 발견하다니! 아마도 이런 내 취향이 곧 내 성격이고 우주에 떠돌 수밖에 없는 유목민적 기질을 타고난 내 운명적인 모티브가 아닌가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여하튼 이번 황보윤 작가의 강의와 숙제를 통해 나는 황정은 작가를 바라보던 나의 시선은 물론이고 나의 근간과 내 취향, 나의 지향점에 대한 많은 것들을 숙고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의 문학에의 갈증은 뿌리 없는 나무가 되어 영원히 우주를 떠돌 수밖에 없는 운명일지라도, 그 운명에 결코 지지 않겠다고, 오늘도 산정을 향해 돌을 굴리는 한 명의 시시포스가 될 수밖에 없다는 가혹한 자기분석이 아름다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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