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영원히 사라질 포구, 하제...
허물어진 벽마다 빨간 페인트로 "철거"라는 낱말이 부고처럼 즐비했다.
사라져가는 모습이 안타까워 사진을 찍고 내 소설적 배경으로 언급해본다....
영혼이 빠져나간 폐선처럼 석양은 붉지 않았다. 하제의 바다는 깊숙이 밀려났고 드러난 갯벌엔 빈 조개껍데기들과 쓰레기들이 나뒹굴었다. 짙은 갯내를 동반한 바람이 나를 만졌다. 저절로 눈이 감겼다. 어렴풋한 기억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라왔다.
하제를 떠나기 몇 달 전,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옆집 삼촌이 영문도 모르게 사라졌다. 간첩들이 납치해갔다는 소문이 돌았고, 시절을 잘못 만난 천재가 어딘가로 끌려갔다는 말도 있었다. 뿔테 삼촌이 다시 나타날 것 같은 두려움이 가슴을 조여 댔다. 비행기 소리는 더 요란했고, 마을 배가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꿈자리가 사나워 죽을 날이 가까워졌다, 눈물바람을 하던 할머니는 그해 여름을 넘기지 못했다.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나자 외숙모는 빨간 구두와 보라색 원피스를 사 입히더니, 행복보육원이란 이름의 건물로 나를 데려갔다. 낯선 곳에서의 첫날밤은 무섭기만 했고, 나는 소리 없는 울음을 울었다.
“언니. 울지마. 내가 옆에 있어줄게.”
달빛에 반사된 둥근 얼굴의 여자 아이가 가만 가만 내 등을 토닥거렸다.
“언니, 나 봐. 뺑덕어미 같지.”
아이는 손으로 자신의 눈꼬리를 치켜세우며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아이의 큰 눈 아래 검은 점이 아이의 손동작에 따라 춤을 추었다. 나는 울다 웃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외삼촌이 데리러 왔을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가 되어 외삼촌에게 손을 맡겼다. 보육원을 떠나 올 때 간밤에 내 손을 꼭 쥐고 잠들었던 아이가 유리창 너머에서 손을 흔들었다. 여리고 따뜻했던 아이의 손의 온도가 여전히 생생하다.
처음엔 하제에 정착할 예정이었다. 할머니와 지내던 옛집을 찾아 묻고 또 물었다. 집은 흔적도 없었다. 포구마저 사라질 위기라는 선창가 횟집 아주머니의 푸념을 들은 후 하제 대신 해망동을 택했다. 가파른 언덕배기의 맨 꼭대기, 넓은 바다가 보이는. 낯선 곳이었지만 또 전혀 낯설지 않은. 저마다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냄새를 찾아 얼마간 떠돌기도 한다. 나에겐 갯내였다. 바다 냄새. 특히 비오기 직전,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묵직한 냄새. 뿌리 없는 것들을 눌러 앉힐 것 같은. 냄새가 주는 무게감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여하튼 내 존재가 시작된 곳이라면 어떤 상처든 치유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결국 나를 이곳까지 끌고 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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