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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를 읽다

가을 - 함민복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09. 9. 22.

         가  을

 

당신 생각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함민복 시인은 1962년 충북 중원군 노은면에서 태어났다. 가난했기 때문에 단지 무료라는 이유로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에 들어갔고 졸업 후 경북 월성 원자력발전소에 입사했지만 기계와의 대면이 너무 힘들어 4년 만에 그만두고 서울예전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2학년 때인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성선설’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서울 달동네와 친구 방을 전전하며 떠돌다 1996년, 우연히 놀러 왔던 마니산이 너무 좋아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 원짜리 폐가를 빌려 둥지를 틀었다. 그는 그래도 “방 두 개에 거실도 있고 텃밭도 있으니 나는 중산층”이라고 천진하게 주장한다.


  위에서 밝혔듯이 그는 가난에 이골이 난 사람이다. 그는 없는 게 많다. 돈도 없고, 집도 없고, 아내도 없고, 자식도 없다. 그런데도 그에게서 느껴지는 여유와 편안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모 잡지사와의 대담에서 “가난에 대해 열등감을 느낀 적은 없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난하다는 게 결국은 부족하다는 거고, 부족하다는 건 뭔가 원한다는 건데, 난 사실 원하는 게 별로 없어요. 혼자 사니까 별 필요한 것도 없고. 이 집도 언제 비워줘야 할지 모르지만 빈집이 수두룩한데 뭐. 자본주의적 삶이란 돈만큼 확장된다는 것을 처절하게 체험했지만 굳이, 확장 안 시켜도 된다고 생각해요. 늘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해요.”

  시인은 그러면서도 자기 혼자 걱정 없이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미안하다고 말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인 줄 뻔히 알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삶의 그물망을 넓혀 나가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야말로 성자(聖者)라고 말했다.

 

  소설가 김훈은 그를 “가난과 불우가 그의 생애를 마구 짓밟고 지나가도 몸을 다 내주면서 뒤통수를 긁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의 표현대로 함민복은 세상을 버리지 못하는 은자(隱者)이고 숨어서 내다보는 견자(見者)인 것 같다. 강화도 남쪽 끝자락에는, 가난하지만 마음은 부자인, 이 시대의 빈자, 함민복 시인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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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충북 충주 출생.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졸업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성선설」 등을 발표하며 등단
1990년 첫 시집 『우울씨(氏)의 일일(一日)』이후 『자본주의의 약속』,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간행, 2003년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 간행
2005년 시집 『말랑말랑한 힘』간행
1998년 <오늘의 예술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