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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흰 이슬이 내리는 날에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9. 7.

  이른 아침, 뒷마당에서 돋아나는 풀어음에 가을이 오긴 오는 구나, 반갑기도 하지만 어쩐지 쓸쓸하기도 합니다.  그토록 검셌던 여름의 태양빛은 예방주사를 맞은 사람모양 시름시름 힘을 잃었고, 소음처럼 들리던 여름매미의 울음은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이처럼 자연계의 순환 과정에 얽혀, 내 인생 또한 늦가을을 향해 쉬엄쉬엄 걷는구나 생각하니, 그 쓸쓸함이 배가 됩니다. 어찌할 도리 없는 시간의 논리, 그 속에서 살겠다고 버둥거렸던 내 여름날의 열기가 오늘은 무척 그립습니다.

   며칠 전, 군여고 100주년 기념책자를 내겠다는 후배들이 찾아와, 책자에 실을 원고의 퇴고를 부탁해왔습니다. 틈틈이 읽으며 수정해가다보니, 내 그 시절들이 하나 둘씩 추억이란 이름표를 달고 달려오더군요. 모든 것이 모호했지만 다가올 미래가 온통 내 손안에만 있을 것 같았던, 내가 원하기만 하면 그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았던, 남들과 다르게 살겠다고 다짐하던 넘치게 뜨거웠던 가슴,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그 시절을 추억하는 것만으로 내 남은 인생을 보내야 할까요?

   아직은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도 예전과 다른 주저함이 나를 사유의 그늘로 이끕니다. 세상 잡사 모두 잊고 태평한 마음으로 땀을 식히며 혼자서 노닥거리거나, 장자를 읽다 나비라도 되어 훨훨 저승으로 날아갈 수 있으면 더 없이 좋으련만, 아직 이승에서 견뎌야 할, 또는 이루어야 할, 그 무엇이 남아있을 것이 분명할 진데, 그 무엇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가 이것인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이것이어야 해, 나를 채비 하는 시간, '더 이상 늦장부리지 말자, 곧 겨울이네.' 가만가만 나를 다독입니다. 오늘은 쓰다만 오래된 이야기를 곁에 두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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