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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송, 국내가요 등

To 엘리엇 7. 그대의 안녕을 기원합니다./바람과 나/한대수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7. 29.

   빳빳한 볕살과 경쟁이라도 하듯 매미가 빽빽 울어대는 아침입니다. 산책을 다녀온 후 오롯이 앉아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들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어딘가를 향해 힘차고 빠르게 달리는 발자국 소리가 있는가 하면 오래되고 헐거운 유모차에 의지해 분명 목적지를 향해 마음만 종종거리는 노인들의 소리도 있습니다. 때론 땡볕에도 굴하지 않고 오늘도 굴착기를 작동하며 땅을 파대고 있는 노동의 소리도 있습니다. 이 모든 소리들이 삶이라는 궤도 안에서 저마다 무엇인가 의미를 이루며 일상을 꾸려나가는구나, 생각하니 가슴에 뭉클 다가오는 것이 있습니다. 왜 진즉 삶의 현장성, 현실성에 주목치 않고 일상성을 배제한 더 높은 곳, 그 어딘가 공허한 세계로 나 자신을 내몰았을까, 가만 들여다보는 시간입니다. 아마도 현실에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것은 한마디로 내 자신의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어쩌면 루저일 수밖에 없는 자신을 인정할 수 없어 더 높은 곳을 꿈꾸는 것은 아닐까, 가끔은 내 자신에게 묻기도 합니다. 때론 끄덕이다가도 때론 갸우뚱거리며 내 심연의 것들을 퍼 올리는 시간, 늘 그 앞에는 ‘너는 써야한다. 써야한다.’라는 자기 암시가 먼저 등장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조건 써야한다, 써야 한다가 중요한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나의 비루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단 하나의 방법인 것이라는 사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은 가슴에 면도칼을 들이대며 피를 보고야 말겠다는 심정과 같습니다. 물론 작은 생채기에 불과하겠지만 어쩌면 핏물이 배어나오는 그 순간에 뭔가 자신이 납득할 만한 답들을 찾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기 오늘 나 자신을 위한 릴케의 조언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투시하라.”

   <자기 자신의 안으로 들어가시오. 당신이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근거를 깊이 더듬어 보십시오. 그것이 당신의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박고 있는지 어떤지를 살펴보십시오. 만일 당신이 쓰는 것을 그만둔다면 죽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지 어떤지를 자기 자신에게 냉철하게 물어보도록 하시오. 다른 무엇보다도 이것을 먼저 당신의 밤의 가장 조용한 시각에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시오. 나는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가 하고 깊은 대답을 찾아서 자기의 안으로, 안으로 파내려 가 보시오. 그리고 만일 이 대답이 긍정적인 것이라면, 만일 당신이 힘찬 단순한 한마디 ‘나는 쓰지 않으면 안된다’를 가지고 그 진지한 물음에 대답할 수가 있다면 그때 당신의 생애를 이 필연에 따라 세워주시오. 필연에서 태어날 때 예술작품은 좋은 것입니다. 이러한 기원의 모습에야 말로 예술작품에 대한 판단이 있는 것이며 그 밖의 판단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헐, 이것은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적당한 시기에 나에게로 왔을까요? 수없이 물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찌 이리도 명쾌한지요. 필연적으로 쓸 수 있을 때 진정한 예술작품이 나오며 오직 그것에 대한 판단만이 진정 예술인지, 아닌지를 결정한다는 그의 말에 용기를 얻습니다.


“있잖아요, 왜 늘 색깔이 비슷할까요? 그건 한계인가요? 답답치 않아요?”

   무렴한 여자가 남자에게 물었죠.

“저, 그건 필연이에요. 저에게서 나오는 진짜니깐요. 뭐 제 한계이고도 하고요.”

   남자의 겸손에 여자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오래 생각했다. 이제야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다니, 그의 생애의 기원에서 끌어온, 즉 그의 필연에서 탄생한 작품을 너무 쉽게 말했던 그 순간이 여자는 한없이 부끄러웠다.


   너도 나도 삶의 궤도 안에서 각자 최선의 삶을 살고 있구나, 가만 생각해보면 누구의 것이 좋다, 나쁘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문제입니다. 판단하지 말고 그저 가만 응시하며 응원해줄 일입니다. 너도나도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 그 존재가 의미가 있다는 것은 인력에 의해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 받고 그 안에서 서로의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것, 이러한 삶, 생명의 이치가 신비하기도 하고, 또 어딘지 이치가 맞는 듯도 하여 오늘은 빳빳한 볕살에 굴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적해서 고즈넉한 오후,

  마음 가득 차 오르는 그리움이란 단어에 기대어,

  오늘도 무엇인가를 위해 땀을 흘리고 있을 그대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한대수 - 바람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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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끝없는 바람
저 험한 산 위로 나뭇잎 사이 불어 가는
아 자유의 바람
저 언덕 위로 물결 같이 춤추던 님
無名 無實 無感한 님
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 지녀 볼래 지녀 볼래
물결 건너 편에
황혼에 젖은 산 끝 보다도 아름다운
아 나의 님 바람
뭇 느낌 없이 진행하는 시간 따라
하늘위로 구름 따라
無目 여행하는 그대
인생은 나 인생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