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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너무 한 낮의 연애/김금희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7. 21.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1

인사이동을 통보받았을 때 필용이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십육 년 전 종로의 맥도날드였다. 미국 유학을 준비한다며 어학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필용은 언제부터 맥도날드에 가지 않았더라, 하는 생각에 맥락 없이 빠져들어 갔다. 문책을 받아 영업팀장에서 시설관리팀 직원으로 밀려나는 순간에 왜 맥도날드 생각이 났는가. 그 공장제 프랜차이즈 정크 푸드가.

필용은 사무실을 나와 주차장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웠다. 한 삼 년 조용히 지내다보면 어떻게 되겠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려해도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명함! 그래, 명함 생각부터 났다. 새 학기가 되면 아들 학교의 학부모회에 가서 명함을 돌리며 알은척도 좀 하고 아들 기도 살려주는 게 필용의 연례행사였는데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시설관리 담당이라는 애매한 표현의 명함을 돌리 수는 없었다. 우선 여분의 명함부터 찍어놓아야 할까. 하지만 인상이동이 다 알려진 판국에 갑자기 회사에 명함을 찍어달라고 하면 문제가 될 텐데. 명함 집에 갖다 주면 똑같이 만들어주려나? 그런데 그렇게 하면 문서위조 아닌가. 가짜 명함 아닌가. 가짜는 뭐가 가짜야. 필용은 세 개비째 담배를 피워 물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는데 아무하고도 먹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회사 근처에서 직원들은 무려 오백팔십칠 명이니까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면 이동해야 했다. 가야 했다. 어디론가.

그래서 필용은 종로로 나갔다. 종로에 나가려고 나간 것이 아니라 걷다보니 종로까지 간 것이었다. 필용은 걸으며 울었다. 퀸의 노래를 들으며 울었다. <내 평생의 사랑>을 들으며 울었고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으며 울었고 <구해줘>를 들으면서는 따라 부르다 사례가 들려 크허헉거릴 정도로 울었다. 세이브, 세이브 미, 구해줘, 구해줘. 필용은 지나가는 누구라도 붙들며 하소연하고 싶을 만큼 간절해졌다. 노래를 들으며 걷다보니 어느덧 종로였고 맥도날드였다. 필용은 들어가지 않고 건물을 한 바퀴 돌았다. 맥도날드는 변한 것이 없었다. 벌서 십육 년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의자와 테이블마저 똑같았다. 필용은 매장으로 들어가 피시버거를 주문했다.

“피시버거는 없는데요.”

“없어요?”

“메뉴에 없습니다.”

“아니, 왜 없는데?”

“네?”

아르바이트생은 이 사람 장난하나 하는 떨떠름한 얼굴로 되물었다.

“대표 메뉴였는데 왜 없냐고?”

“몰라요. 전 들은 적도 없는데.”

“아예 없어졌어.”

“없어요. 그런 메뉴는 없다니까요.”

“뭐 다른 걸로 바뀐 게 아니라 없어? 아주?”

돌아가는 길에 필용은 맥도날드에 더 이상 피시버거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했다. 다른 것으로 대체되지 않고 아예 사라져버린 그 메뉴란 것에 대해. 만약 피시버거가 사라지지 않고 뭔가 비슷한 것으로 바뀌었다면 불쾌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주 결연하게 사라졌단 말이지. 이제 맛볼 수조차 없게 아주 그냥 끝. 다신 맛 못봐. 끝, 끝이야. 아주 없어. 이렇게. A가 유사한 A'나 B가 된 것이 아니라 A가 A인 채로 사라져버렸다는 건 햄버거 같은 정크 푸드의 역사에서도 아주 비장한 신이었다. 그리고 그런 비장한 신은 이사한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켰다. 여전히 필용은 퀸의 <구해줘>를 불렀지만 울지는 않았다. 직장에 남으리라 생각했다. 어떤 시련을 이겨내고서라도 여기 있으리라. 풍파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리라. 좌천은 사실상 권고사직이었지만 필용은 버티기로 했다. 못 나간다. 필용은 다짐했다. 하지만 어쩐지 마음이 춥고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필용도 사람이니까.

그날부터 필용은 맥도날드에서 종종 점심을 먹었다. 사무실에서 한 이십 분은 가야 하는 거리니까 가깝지 않은데도 그래야 할 일들이 생겼다. 가슴을 부여잡고 퀸의 노래를 들으면서 시내로 걸어 나가야 할 사건들이 일어났다. 필용이 영업팀장으로 있을 때 어쩔 수 없이 발휘해야 했던 융통성들―주로 돈과 관련한 것―이 징계 사유로 적혀 감봉 처분과 함께 통보된 것, 시설관리팀 직원으로 정말 발령이 난 것, 거기에는 슬프게도 해가 들지 않는 것.

관리동이 있는 지하로 책상을 옮긴 날에도 필용은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사를 하느라 엉망이 된 손을 닦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느라 평소보다 시간이 더 지나 있었으므로 햄버거를 먹을 시간은 단 십 분밖에 없었다. 팀장 시절에는 언제 점심을 먹고 언제 들어가든 별 상관이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물론 아직까지 직원들은 팀장님, 팀장님, 하고 부르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에게 맡겨진 일들은 엘리베이터 점검 날짜를 확인하고 용역 회사에 전화를 걸어 무단결근한 경비원의 계약을 해지하고 회사 건물에 있는 백칠십팔 개의 수도관과 사천 개의 전기회로의 안녕을 챙기는 것이었다. 이제 그런 일들을 하며 근무시간을 보내야 하는 필용의 얼굴은 해쓱했다. 살이 내려 얼굴에 깊숙한 골이 파였고 면도를 안 한 탓에 병약하고 음울한 기운까지 깃들어 있었다. 핍박받는 사람의 얼굴이었고 정말 누군가 구해줄 사람이 필요한 얼굴이었다.

맥도날드에서는 신제품을 내놓고 대대적으로 광고하고 있었다. 1955버거 였다. 1955년은 필용의 어머니가 태어난 해였다. 그 1950년대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메릴린 먼로와 청바지의 시대였다. 그런데 필용의 어머니는 그 시대를 장티푸스의 시절로 기억했다. 시골에서 성장한 어머니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얼굴이 노랗게 제대로 된 채로 일 년을 문 밖에 나가지 못했다고 했다. 기운 없이 해실해실 죽어가는 필용의 어머니를 보다 못한 외조모와 외조부가 둘러업곤 십 리는 걸어가야 있는 나병 환자 촌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나병 환자 촌에는 외국에서 온 수녀들이 환자를 돌보고 있었는데 거기서 얻은 약들, 별다른 것도 아니고 아마 페니실린에 불과했을 그 알약들이 다 죽어가던 필용의 어머니를 살렸다. 파란 눈의 천사, 백의의 천사들이 깡마르고 머리카락 한 올 없이, 마른 고목처럼 죽어가고 있는 어린 어머니에게 백색의 알약들을 내려주는 장면은 필용에게 어떤 부끄러움을 주곤 했다. 그 부끄러움은 필용을 아주 작게 만들곤 했고 그렇게 작아지는 상황은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필용이 겪지 않은, 필용이 태어나기도 전의 일들이지만 그 이야기는 실제이고 사실이므로 다른 어떤 것, 엘비스 프레슬리의 나팔바지나 메릴린 먼로의 금발 같은 것으로 대체되지가 않았다.

필용은 창가 자리에 앉아, 회사와 떨어져 혼자 종로에 앉아 있는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이미 넘겨버린 점심시간에 대해, 십 년 넘게 늘 회사에 있었던 평일 한시 이십오 분에 대해. 이 나이대 남자가 한낮에 여기 와 있다는 건 뭔가 비정상이라는 얘기였다. 백수이거나 명예퇴직자이거나 취업준비생이거나 하는, 무슨 말을 붙여도 비극적인 뉘앙스가 사라지지 않는 상황이라는 얘기였다. 물론 필용은 백수도 명퇴자도 취준생도 아니었다. 시설관리팀 직원일 뿐이었다. 일주일 전에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그렇다는 것뿐이었다.

그때 필용은 맞은편 건물에 걸린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세로로 쓴 글씨로 “나무는 ‘ㅋㅋㅋ' 하고 웃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었다. 관객 참여작. 필용은 놀랐다. 얼마나 놀랐냐면 입안으로 집어넣은 감자튀김들을 씹지도 않고 삼켜버릴 정도였다. 그렇게 삼킨 감자들을 더 깊숙이 밀어넣기 위해 콜라를 마시려다가 그걸 또 까먹고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있을 정도였다. 필용은 자기가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을 때 왜 종로의 맥도날드가 떠올랐는지 깨달았다. 자신이 뭣 때문에 여기 와서 점심을 먹고 있는지 완전히 이해했다. 너무 완전해서 마치 하나의 구(球)같은 이해였다. 요리조리 뜯어봐봤자 절대 다른 모양이 되지 않는. 너무 완전해서 그걸 몰랐던 좀 전이 먼 과거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이해였다. 필용이 하필이면 지금 이 시간에 여기 있는 것은 바로 양희와 재회하기 위해서였다.

2

양희라고 부르면 어디에선가 풀냄새가. 아주 늦은 밤에 자유로를 달려서 도착했던 문산의 어느 리(里)가, 여름이 끝나가면서 유순해진 밤의 공기가, 어두워서 보이지 않지만 밭에서 무언가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던 것이, 자라는데 그 자라 있는 것이 어떤 무게감으로 느껴지던 것이 떠올랐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 거기에 있는 무성한 호박이며 오이며 상추며 깻잎 같은 푸성귀 들이 활동하는 물체의 운동감으로 다가온 것이. 그런 야외의 분위기는 그날 밤 필용을 환희로 들뜨게 만들었다. 양희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양희를 찾아간 길이었다. 농가도 몇 없는 어두운 논두렁에서 미끄러지면서도 필용은 급하고 급하게 양희의 집을 찾아가고 있었다. 어둠의 저편에서 느껴지는 무언가의 생장이 일면 외설스럽기도 하다고 느끼면서.

양희는 필용의 과 후배였다. 이름과 얼굴만 겨우 알던 사이인데 종로의 어학원에서 같은 강의를 듣게 되었다. 양희를 만나기 전 필용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구립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어학원 강의를 들었고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도서관에 갔다가 연신내의 집으로 돌아갔다. 양희를 만나고 나서는 강의를 듣고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 맥도날드에서 두세 시간쯤 양희와 대화했다. 대화하지 않는 날에는 목적 없이 함께 몇 시간씩 걷기도 했다. 밤늦게까지 함께 있는 날은 없었다. 그런 일과들은 늦어도 대여섯시에 끝났고 그쯤 되면 지루하고 시들해졌다. 그러면 둘은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필용과 양희는 성격이 전혀 달랐다. 필용이 앞으로 펼쳐질 인생, 그 과정에서 반드시 이겨내야 할 어려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고 나서야 갖게 될 성취와 인정에 대해 상상하며 지냈다면 양희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양희에게는 현재라는 것만 있었다. 하지만 그 현재는 지금 생생하게, 운동감 있게 펼쳐지는 상태가 아니라 안개처럼 부옇게, 분명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게 풀풀 흩어지는 것에 가까웠다. 뭔가 생활 자체가 그랬다.

강의가 끝나고 맥도날드로 와서 필용이 오늘은 어떤 걸로 먹을까 물으면 양희는 그날그날 주머니에서 있는 돈을 필용 손에 쥐어주면서 가능한 걸로요, 하고는 이층으로 사라졌다. 양희의 목소리는 허스키하고 저음이라서 하는 말마다 공허가 은은히 떠 있는 느낌을 주었다.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에서는 아주 듣기 힘든 것이었다. 필용은 처음 그렇게 자기 손에 쥐여진 천원, 이천원을 생경하게, 알 수 없는 감정의 흔들림까지 느끼며 바라보곤 했다. 그때까지 필용은 만났던 여자애들 중 그렇게 부끄러워하지도 뭔가를 숨기려 들지도 않는 사람은 없었다. 양희는 어느 모로 보나 필용의 이상형과 거리가 멀었지만 양희의 손이 주머니에서 구깃구깃한 지폐를 꺼내 필용의 손으로 옮겨오던 그 순간이 필용에게 의미심장했던 것은 분명했다. 웬만해선 남에게 자판기 커피도 사주지 않는 필용이 자기 돈을 보태 세트 메뉴 두 개를 가져가곤 했으니까. 그런다고 양희가 딱히 고마워하지도 않았으니 참으로 대가 없는 선의였다.

양희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왜 즐겁냐면 양희는 필용의 수다를 모두 감당해주었기 때문이었다. 필용은 평소에도 자기 자신에 대해 좀 허황된 거짓말을 하는 편이었고 그때는 젊었을 때라 더했는데 들킬까 안 들킬까 걱정할 필요도 없이 마음껏 자기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양희에게서는 질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양희는 필용의 말을 잔잔한 호수처럼 가만히 듣고 있었고 시선도 늘 부담스럽지 않게 필용을 비껴 있었다.

“나무는 ‘ㅋㅋㅋ' 하고 웃지 않는다”는 바로 그런 양희가 쓰고 있던 대본의 제목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ㅡ‘가 탈락되어버렸지만 현수막의 그 문장은 십육 년 전의 것과 완전히 같았다. 양희는 연극반이었고, 대학노트 세 권을 철해서 가지고 다니며 대본을 썼다. 자기는 배우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니고 배우들의 몸을 움직이는 글을 쓰려 한다고 했다. 쓰는 행위는 필용과 양희가 만났던 구 개월 동안 꾸준히, 양희치고는 아주 열의 있게 지속됐다. 필용이 보여 달라고 하면 아무 말 없이 노트를 건넸는데, 거기에는 꼭 양희처럼 희미하고 몽롱한 인물들이 나와서 대화를 주고받았다. 남녀 두 명만 나오는데도 주인공들은 왜인지 남자1과 여자1로 불렸다. 한 사람이 사건이라고 할 만한 어떤 일들, 섬으로 휴가를 간다든가, 개를 잃어버린다든가, 술을 마신다든가 하는 일들에 대해 말하면 한 사람은 그냥 응응, 아니 아니, 그럼 그럼 같은 반응만 했다. 정말 더럽게도 재미없는 대본이었다.

소극장에서 양희가 썼을 것이 분명한 연극을 발견하고 필용은 더더욱 자주 종로로 나갔다. 음악은 듣지 않았다. 음악을 듣지 않아도 마음의 열도는 유지됐고 그것이 신명을 불렀다. 시설관리팀의 유일한 본사 직원인 김주임이 저녁 회식은 못하더라도 점심이라도 함께 먹자고 했지만 필용은 거절했다. 영업팀에 있을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회식과 숱한 만남들을 계획하던 필용이었지만 이제 그러지 않았다. 필용은 자연스럽지 않은가 생각했다. 이제 필용이 상대해야 할 것들은 시설이 아닌가? 시설들에게는 말이 없고 시설들에게는 응시가 없다. 시설들에게는 관계가 없고 시설들에게는 터치가 없다. 필용의 얼굴에서는 서서히 무언가가 지워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양 입가를 팽팽하게 견인하고 있던 긴장이 사라졌다. 그 긴장은 언제라도 무슨 존칭, 무슨 웃음, 무슨 헛기침, 무슨 지시, 무슨 권유, 무슨 답변 등을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당분간은 필요 없었다. 십 년 넘게 얼굴을 차지하고 있던 긴장이 사라지자 필용의 얼굴은 말개지는 게 어닌가 젊어진 듯 한 인상을 주었다.

양희의 연극은 직장인들의 문화생활을 위해 열두시 십 분부터 열두시 오십분까지 사십 분 동안 진행되는 미니 극이었다. 칠천 원짜리 표를 사면 샌드위치와 생수를 제공한다고 했다. 며칠 동안 필용은 되도록 빨리 걸어 종로까지 갔지만 아무리 서둘러도 시간은 열두시 십 분을 넘어 있었다. 나흘째 허탕 치던 날, 필용은 시간이 넘었지만 입장할 수 없겠느냐고 매표소 아가씨에게 부탁했다. 그다지 남을 친절하게 대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아가씨였는데 역시 단칼에 안 된다고 했다.

“괜찮아요. 좀 못 봐도 괜찮은데.”

“흐름이 끊어져서 안 돼요.”

“괜찮거든. 중간 좀 못 봐도 나는 괜찮아.”

“아니, 안 돼요. 아저씨가 문제가 아니라 관객 흐름이 끊겨요. 관객 참여형 연극에 문 열어서 빛 들어가면 홀딱 깨면서 아주 꽝, 그냥 망하는 거라고요.”

그렇게 거절당한 필용은 마침내 어느 목요일, 회사에서 열한시 오십육 분쯤 택시를 타고 종로로 나갔다. 열두시 이분쯤 극장에 도착해 표를 샀다. 제시간에 왔다는 데 들뜬 필용이 오늘은 안 늦었죠? 괜찮죠? 하고 말을 붙였는데 아가씨는 C열입니다. 하고 무뚝뚝하게 대답하고는 샌드위치와 생수를 내밀었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니 필용을 빼고는 겨우 세 명의 관객이 앉아 있었다. 시간이 되자 무대에 핀 조명이 들어오고 스크린에는 회색 톤의 배경이 깔렸다. 그리고 전신 타이츠를 입은 배우가 들어왔다. 눈만 빼고는 모두 검은 쫄쫄이 복에 가려져 있었다. 연극은 뭐 어떤 것이든 상관없었다. 필용은 커튼콜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때는 작가와 배우. 스태프들이 다 나와 인사를 하니까 양희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배우는 핀 조명을 받으며 서 있다가 갑자기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샌드위치를 먹고 있던 은행원 복장의 여자 관객을 무대 위로 올렸다. 관객은 당황해서 어떡해. 어떡해, 하면서도 끌려 올라갔다. 같이 왔던 친구가 아, 대박, 하면서 키키키키 웃었다. 배우는 조심스럽달까, 정중하달까, 다정하달까, 아무튼 몸이 어떻게 그렇게 나긋나긋할 수 있을까 싶게, 모시는 동작을 하며 관객을 안내했다. 의자 두 개가 놓이고 배우는 여자를 앉혔다. 자기는 맞은편에 앉았다.

“저, 저, 어떻게 하면 돼요?”

관객이 어리둥절해하며 계속 웃었다. 어떻게 하면 되는가. 필용이 하고픈 말이었다. 어색해서 온몸이 오그라들 것 같았다. 배우는 관객을 바라보고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관객도 웃음을 그치고 배우와 눈을 마주치기 시작했다. 극장 안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설마 연극이 여기서 끝은 아니겠지. 필용은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무려 대학노트 세 권 분량의 대사가 있었는데 여기서 끝일 리가 없지. 속사포처럼 쏘아붙여도 사십 분 동안 쉼 없이 몰아칠 양인데. 그런데 가만있자……연극이 양희가 쓴 게 맞을까. 필용은 처음으로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포스터에 쓰여 있는 ‘수변’이라는 닉네임이 양희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나무는 ‘ㅋㅋㅋ' 하고 웃지 않는다.” 라는 연극 제목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이 문장을 알고 있는 다른 사람이 대본을 썼을까? 아니면 연극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유명 작가의 문장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 그 생각을 왜 못했을까.

연극은 그것이 끝이었다. 마주보다가 불이 켜졌고 구석에 앉아있던 남자 관객 하나가 일어나 짤깍짤깍짤깍 박수를 쳤다. 필용은 긴장한 채로 커튼콜을 기다렸다. 이윽고 불이 꺼졌다 다시 켜지며 배우와 매표소 아가씨, 이렇게 달랑 둘이서 무대 인사를 했다.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땀을 닦으며 타이츠의 머리 부분을 벗고 있는 배우는 분명 양희였다.

3

양희와 필용의 허무하고 특별한 것 없던 관계가 다른 색채를 띠게 된 건 양희의 느닷없는 사랑 고백 때문이었다. 그날도 필용이 자기 이야기에 도취해 한창 떠들어대고 있었는데 조용히 듣고 있던 양희가 선배, 나 선배 사랑하는데, 했다. 양희는 그 말을 감정의 고저 없이, 천원, 이천 원을 쥐어 주며 햄버거 주문을 부탁하던 톤으로 했다. 필용은 당황해서 어어, 하고는 웃어버렸다.

“사랑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

“어떻게요?”

양희가 뭐 그런 걸 묻느냐는 듯이 되물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거지.”

“그런 걸 뭣 하러 생각해요.”

양희는 방금 자기가 얼마나 중요한 말을 했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나른해하더니 노트를 펼쳐서 뭔가를 적었다. 필용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고백한 사람은 양희인데 그 몇 분 사이에 그 사랑에 목매는 사람은 자기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아닌데, 필용은 생각했다. 비록 백수 비슷한 유학 준비생 처지이지만 양희와의 연애가 그렇게 간절하지는 않았다. 양희는 언제나 펑퍼짐한 건빵 바지 차림이었고 남자들도 잘 입지 않을 것 같은 국방색 야상을 걸치고 다녔다. 신발도 언제나 운동화, 가끔만 갈색 로퍼로 바꿔 신었다. 머리는 언제나 숏커트였고 화장도 거의 하지 않은 맨얼굴이었다. 필용도 건강한 이십대이니까 언제나 여자에 대해 생각했고 여자가 중요했지만 그래도 양희는 아니었다. 여자친구라고 생각하면 결격사유가 많았다. 평소에 장점이라고 생각한 양희의 위대한 듣기 능력, 필용으로 하여금 없는 얘기도 떠들게 만드는 훌륭한 청자로서의 자세도 문제였다. 필용이 알기로 모든 관계는 받아치는 맛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관계의 활력을 만들어낸다. 저렇게 말없이, 모든 것에 초연한 채 수용만 하는 여자 친구는 구체관절인형과 뭐가 다른가. 필용은 그 짧은 순간에 양희와 하게 될지도 모를 섹스에 대해서까지 상상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온몸이 축축 처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아니……네가 날 사랑한 댔잖아. 킬킬킬킬……그 고백을 들은 거잖아, 지금.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앞으로 우리 어떻게 되는 거냐고.”

“모르죠, 그건.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고.”

“알 필요가 없다고?”

“지금 사랑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는데, 내일은 또 어떨지 모르니까요.”

필용은 황당했다. 얘가 지금 누굴 놀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한다며?”

“네. 사랑하죠.”

“그런데 내일은 어떨지 몰라?”

“네.”

“사랑하는 건 맞잖아. 그렇잖아.”

“네, 그래요.”

“내일은?”

“모르겠어요.”

필용은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가 났다. 모욕당한 기분이었다. 떠드는 걸 다 받아주는 것 같더니만 사실은 우습게 본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건 아예 면전에서 왜 이렇게 ‘구라’가 심하냐고 따지고 망신 주는 경우보다 더 나빴다. 필용도 알았다. 영어 점수가 안 나와 미국의 대학에는 원서도 써보지 못했다는 걸. 자기 일이니까. 자기가 뭐 정신 나간 사람도 아니니까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도 과 후배에게 체면이란 게 있으니까 좀 덧붙여서 얘기했을 뿐인데 그게 이렇게 희롱당할 만큼 나쁜 짓이었나? 그것도 모르고 피 같은 돈, 어머니가 한강변 노점에서 만두와 국수를 팔아 쥐여준 용돈을 보태 점심까지 사먹였다니. 필용은 먹인 탄수화물과 트랜스지방과 미미한 철분이 혈관을 타고 돌도 있을 텐데. 머리카락과 반쯤 감긴 눈과 꺼칠한 피부와 부러질 듯한 손목과 있는 듯 없는 듯 판판한 가슴 곳곳에 필용이 몇 달간 보인 선의가 속속들이 들어차 있을 텐데.

필용이 맥도날드를 나가는데도 양희는 잡지 않았다. 집에 가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어쩌면 물었는데 필용이 듣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필용은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어요> <내 평생의 사랑> <사랑할 누군가> 같은 노래들을 MP3플레이어로 들었다. 퀸의 사랑 노래들이 1999년의 종료 거리에 울려퍼졌다. 왠 단체가 IMF 환란 극복을 위한 모금을 하고 있었다. 탑골공원에서는 노인들이 지루하게 낮을 견뎠다. 노래와 풍경 사이의 간극은 멀었고 그렇게 멀고멀어지면서 필용은 슬퍼졌다. 사랑한다면서 내일은 모르겠다니. 무언가가 필용의 따귀를 갈기고 지나간 것 같았다. 그것이 양희인 건 분명했고 그러니까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지만 마음은 다잡아지지 않았다.

다음 날 양희는 아무 내색 없이 어학원에 나왔다. 강의가 끝나고는 맥도날드까지 따라와 평소처럼 이천원쯤을 꺼내 선배 가능한 걸로요, 하면서 이층으로 올라갔다. 앞줄에 있던 사람들이 주문을 마치는 동안 필용은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도록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대로 돈을 가지고 나가버릴까, 아주 골탕을 먹여버려? 여섯 살이나 위인 성인 남자를 놀리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가르쳐줘? 하지만 그건 정말 좀팽이 같은 짓이라서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필용이 나가면 양희는 굶을 것이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굶을 것이다. 귀찮게 혀를 안 움직여도 되고 안 씹어도 되니 옳다구나 하고 여기 앉아 그 지루해서 누구라도 좀 읽으면 혼절하고 말 대본이나 쓰면서 낮시간을 보낼 것이다. 어제보다 더 마르고 쇠약해지는 줄은 모르고 그냥 무기력하게. 배는 고프고 창자는 쓰리구나 하면서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필용은 용서했다. 자기 안에 소용돌이치는 원망과 분노, 모욕감 같은 것을 이겨내고 선의를 베풀어 평소처럼 버거 세트를 주문했다.

둘 사이에는 전날보다 더 대화가 없었다. 필용이 말을 아꼈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는 양희를 제외한 모든 세상이 흥밋거리이고 이야깃거리였는데 오늘 이렇게 되니 모든 세상에서 오직 양희만이 관심사가 되었다. 양희는 어제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른다는 얼굴로 포장지를 접어내리면서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비가 오네요, 하면서. 오늘 필용은 평소의 십분의 일도 이야기하지 않고 있는데 그런 변화에 대해서는 느끼지 못한 채 날씨 타령이라니.

“오늘은 어때?”

필용은 한 시간쯤 지나 그렇게 묻고 말았다. 묻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오늘은 아는 선배가 극을 올려요.”

“아니, 그것 말고.”

“별일 없는데.”

“아니, 그러니까 네가 어제 말한 그것 말이야. 오늘도 지속되고 있느냐고?”

그렇게 말하고 나서 필용은 자신이 긴장하는 걸 느꼈다. 왜 긴장하나? 필용은 그런 자신이 어처구니없었다.

“그렇죠. 오늘도.”

양희는 어제처럼 무심하게 대답했는데 그 말을 듣자 필용은 실제로 탁자가 흔들릴 만큼 몸을 떨었다.

“오늘도 어떻다고?”

“사랑하죠. 오늘도.”

필용은 태연을 연기하면서도 어떤 기쁨, 대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불가해한 기쁨이었다.

4

필용은 한동안 종로에 가지 않으려 노력했다. 언제까지 사무실 사람들과 안 섞이며 지낼 수는 없으니까 정상적인 샐러리맨들처럼 동료들과 점심을 먹었다. 순두부찌개를 먹었다. 비빔밥을, 내장탕과 다슬기해장국을, 비냉과 물냉 반반을. 업무에도 익숙해졌다. 체념과 어떤 자조가 들어 있기는 했지만 일을 대하는 필용의 태도는 자연스러워졌다. 이 빌딩 몇 층의 배전반이 말썽인지도 알았고 생각보다 엘리베이터가 빈번하게 고장난다는 것도 알았다. 엘리베이터마다 고유한 번호가 있고, 그 번호는 마치 사람의 주민등록번호처럼 중앙의 센터에서 관리된다는 것도 알았다. 시설은 여전히 시설이고 좌천은 어떻든 좌천이었지만 시간은 또 시간이라서 필용은 적응했다. 야근이랄 게 없으니까 저녁 시간에 회계학원에 등록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비록 지하에 내려와 있지만 지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가도 속이 뒤집어지는 순간이 있었다. 영업팀장 하면서 만났던 거래처 사람들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내켜하지 않는데도 기어코 지하로 내려와서 필용을 보고 가는 것, 자신의 까마득한 후배였던 직원이 영업팀장으로 발령난 것. 모두 제 자리에 있고 필용만 빠져나와 있는 그 사무실에 조명 시설 따위를 손보기 위해 올라가야 하는 것, 거기서 누군가가 경쾌하고 상큼하게 갑티슈 한 장이라도 톡 뽑게 되면 필용은 무너졌다. 어쩔 수 없이 종로로 나가야 했다. 열한 시 오십육분에 회사 출입문을 나가서 택시를 잡아타게 됐다. 택시! 택시! 마치 자정을 앞둔 신데렐라처럼 필용은 허겁지겁 택시에 올라 양희에게로 갔다.

매표서 아가씨는 이제 필용이 샌드위치 따위엔 입도 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서 생수 한 병만 내밀었다. 필용은 어둠 속에 앉아서 어디서 재미를 느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상야릇한 연극을 지켜봤다. 배가 고프면 생수를 들이켰다. 속이 쓰리거나 신물이 나는 고통마저 환희 속에서 받아들였다. 양희는 무대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필용의 귀에는 들리는 것 같았다. 사랑하죠. 그 공기 중에 은은히 흩어지던 허스키한 목소리……양희가 사랑하죠. 하고 말하면 별안간 맥도날드의 공기가 전혀 다른 온도를 띠면서 필용을 얼렸다, 달궜다, 얼렸다, 하곤 했다. 오직 눈만 내놓고 다른 신체 부위는 없는 것처럼. 무대의 희미한 불빛과 한몸인 것처럼. 의자인 것처럼. 바닥인 것처럼 있는 저 여자가 날 사랑했던 여자야! 객석에는 기껏해야 서너 명밖에 없는데도 필용은 벌떡 일어나 그렇게 외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연극을 열댓 번 보고 나서야 필용은 이 극이 아주 쓰레기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왠 남자 관객이 양복 차림에 서류 가방을 들었는데 체격이 씨름선수만했다. 의자가 작아서 엉덩이를 의자 끝에 살짝 걸쳐서 앉아야 할 정도였다. 남자 관객은 맞은편의 양희와 마주보고 있다가 입술을 꽉 깨물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서는 고개를 숙이고 하지 말라는 듯 한 손을 앞으로 내민 채 다른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단추가 터질 듯이 부푼 배가 같이 흐느꼈다. 그것은 정말 배가 울고 있는 것이었다. 속에서 무언가가 동하면서 격렬하게 슬픈 것이었다. 보고 있자니 필용의 입가도 비쭉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에선가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박수를 치는 또다른 남자 관객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브라보! 하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불이 켜지고 소극장 계단을 올라 지상으로 나왔을 때 필용은 아까 울었던 남자 관객이 누구와 통화하는 것을 보았다. 남자는 아직 어떤 감흥에 휩싸여 있는 목소리로 무대 위에서의 경험을 전하다가 웃긴, 누가 웃어, 하고 화를 냈다.

“아무도 안 웃었어. 너나 웃지 누가 웃어?”

힐링이 콘셉트라고 필용은 이해했다. 교회당에서 목사님 설교를 듣거나 불당에서 백팔배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구나. 하지만 설교나 백팔배는 무언가를, 뭔가 행위를 해야 얻을 수 있는 위안이고 힐링인데 어떻게 저 무대에서는 아무것도 없이 그런 게 되나. 늘 우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부끄러워하거나 황당해하던 사람들도 시간이 흐르면 양희와 눈을 맞췄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떤 벅차오름을 느끼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필용은 양희의 얼굴을 훔쳐보는 것도 훔쳐보는 것이지만 무대에 서서 한번 그 감정을 느껴보고도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건가, 십육 년 전, 연애는 아니더라도 연애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던 사람과 재회해서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건가, 앞으로 어쩌냐는 말이지, 아내에게는 큰 불만이 없는데 아들은 소중한데, 그러니까 안 되었다. 필용이 양희를 볼 수는 있어도 양희가 필용을 봐서는 안 되었다. 시선은 일방이어야 하지 교환되면 안 되었다. 교환되면 무언가가 남으니까 남은 자리에는 뭔가가 생기니까, 자라니까, 있는 것은 있는 것대로 무게감을 지니고 실제가 되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필용은 양희와 마주하고 싶다는 욕망을 이겨내기 힘들었다. 이것이 사랑인지 그리움인지 어떤 괴팍함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욕망에 투항해 점점 무대 가까이에 앉기 시작했다. 양희의 시선을 끌 수 있을 만큼 충분하게 생수병을 부스럭거리거나 으헤헉, 히잉, 하는 헛기침 소리를 내기도 했다. 휴대전화를 끄지 않아서 벨이 울린 적도 있었는데 늘 박수를 치는 남자 관객이 힐난하듯 한소리했기 때문에 그 방법은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필용은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생각은 안 했다. 생수는 싸구려라 페트병이 종잇장처럼 얇아서 그런 것이고, 헛기침은 이 지하의 소극장이 건조하고 먼지가 많아서 그런 것이다. 휴대전화는 어쩌다 우연히 진동으로 해놓지 않아 그런 것인데, 전화가 올 줄은 몰랐다. 물론 그 광고 전화는 매일 같은 시각에 걸려오기는 하지만. 그런 것, 뭔가 양희의 관심을 절실히 원하지만 책임지고 싶지는 않은 것,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확인하고 때론 표현하고 싶은 것, 양희와의 관계에서 우위에 서고 싶은 건 십육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그런 자기 발에 자기가 걸려 늘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펼쳐진다는 점이었다.

5

양희가 사랑 고백을 하고 나서 필용의 생활은 엉망이 되었다. 필용은 유학이고 토플이고 뭐고 오직 양희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종로에 나오는 사람처럼 맥도날드에서의 만남에 집중했다. 정작 양희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특별히 태도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대본을 썼고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도 그대로였고 흩어지는 공허를 통해 아우라를 유지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변수라면 그날그날 점심에 먹는 메뉴 정도였다. 그건 필용이 정했으니까. 필용은 거의 매일,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양희에게 물었다. 물론 그 말만 하지는 않고 여전히 자기 자랑과 불황의 시대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늘어놓았지만 전처럼 그런 이야기가 목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낮의 시간을 지나면, 맥도날드에서 나오면, 양희와 헤어지면, 양희의 외모나 한심스러움, 생기 없음, 무기력함, 가난에 대한 은근한 경멸이 껌의 뒷맛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런데도 다음날 정오가 되면 사랑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장마가 시작되었을 무렵 이런 괴상한 애정 전선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날과 다름없이 햄버거를 먹으며 앉아 있는데 양희가 깜박 잊을 뻔했다는 투로, 아, 선배 나 안 해요, 사랑, 한 것이었다.

“안 해?”

“네.”

“왜?”

“없어졌어요.”

필용은 믿을 수 없었다. 바로 어제만 해도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표정 없는 얼굴이기는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는데 말이 되는가?

“없어? 아예?”

“없어요.”

“없는 게 아니라 전만큼은 아니게 시들한 거지. 야, 그게 어떻게 그렇게 단박에 사라지냐?”

필용은 무심하게 냅킨을 쥐었지만 손은 약하게 떨고 있었다. 마음 한편에 불길함이 일고 있었다. 무언가가 오고 있었다. 그래, 쓰나미, 쓰나미, 실연의 쓰나미!

“아닌데, 없는데.”

“바보야, 네가 없다고 착각하는 거지. 그런 감정은 원래 불이 탁 꺼지듯, 불이 탁 켜지듯 그렇게 일순간에 없음이 되지가 않아. 오죽하면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라는 유행가가 다 있겠냐. 지우기가 그렇게 어렵다잖냐. 없어지는 게 아니고 그런 건 그렇게 되는 게 아니고 찌개가 끓다가 끓다가 나중에는 다 졸아서 아예 냄비 바닥을 시커멓게 태우는 양상이 될 때까지 계속되는 거야.”

양희가 동의하지 않아서 필용은 긴장했다. 얘가 어려서 뭘 모르네, 누구를 좋아하는 마음이 어디 그렇게 돼? 하룻밤에? 천하의 카사노바도 그렇지는 않겠다. 개들도 한 두어 번은 더 할 거야, 하고 싶을 거야. 그런데 우리는 한 달 넘게 아니, 한 달이 뭐야, 어학원에서 처음 만났던 때까지 셈하면 거의 구 개월을 야, 구 개월이면 뱃속의 점만하던 세포가 갓난애가 되어 세상에 나올 시간이야.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사랑했으면서 어느 날 갑자기 없다니? 혹시 자기 사랑을 받아주지 않아서 화가 난 걸까, 필용은 생각했다.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어. 그렇게 하루에 한 번씩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내가 겨우 한 것은 햄버거나 사주면서 떠보듯 사랑하니, 안 하니, 물어본 것밖에 없으니.

“야, 너 은근 매력 있어.”

필용이 인심 쓰듯, 달래듯 양희에게 말을 붙였다.

“난 너처럼 꾸밈없고 소박한 애가 괜찮더라고.”

양희에게서 반응이 없었다. 양희가 아무 말이 없자 필용의 상찬이 도를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필용이 은근히 경멸해왔던 양희의 거의 모든 점들이 유니크한 것, 매력적인 것, 평가받을 만한 것으로 거론되었다. 양희의 재미없는 대본마저도. 하지만 양희의 없음은 달라지지 않았고 필용은 그 없음에 목 매달린 개처럼 헐떡거리면서 양희의 머리부터 발긑가지의 모든 것들에 사탕발림을 하다가 돌변해 물어뜯기 시작했다.

“야 너, 최소한이라도 꾸미고 다녀. 널 위해 하는 얘기야. 아이고, 같이 다니면 내 얼굴이 화끈거려서. 젊은 시절 다시 안 와. 좀 있으면 값 떨어져. 그리고 연극도 좋고 가당찮은 대본도 좋은데 밥벌이는 하고 살아. 애가 어떻게 된 게 이천 원으로 하루를 삐대? 야! 나도 어려워! 나도 힘들어! 야이 씨, 너 그동안 나한테 받아먹은 거 다 내놔. 일괄 계산하라고 이 계집애야.”

양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가면 질려갈수록 필용의 말의 수위는 점점 더 높아졌다. 어떤 한계까지 올라 찰랑찰랑거리면서 파탄의 전조를 만들어내는데도 계속됐다. 필용은 퍼부어댔다. 아주 세상이 끝난 것처럼 퍼부어댔다. 양희가 맥도날드에서 나간 뒤로도 필용은 자기 말에 취해 마구 떠들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뒤늦게 깨닫고는 양희를 붙들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양희는 보이지 않았다.

양희는 어학원에 안 나왔다. 하루이틀은 몸이 안 좋은가 바쁜가 했다가 필용은 창백해졌다. 떠난 것이다. 사라진 것이다. 필용은 시름시름 앓았다.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에 걸려서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퀸의 <너무 큰 사랑은 널 죽일지 몰라> 같은 노래를 들으며 고열에 시달려싸. 어머니는 장사를 나가다 말고 돌아와 약이 라도 타다 주랴? 했다. 필용은 됐다고 했다. 안 먹겠다고 했다. 그날 밤 열이 삼십팔 도 넘게 치솟았다. 필용은 오한에 오들오들 떨면서도 병원은 안 가리라 생각했다. 어머니가 장사에서 돌아와, 아직도 시큼한 단무지 냄새와 밀가루 냄새가 빠지지 않은 손으로 필용의 이마를 짚으며 어쩌냐, 병원 안가냐, 하고 안타까워했다.

“어머니,”

필용은 누가 풀무질을 하듯 정신이 들었다 나갔다 하는 것을 느끼며 간신히 물었다.

“그래, 아가, 그래, 왜?”

“어머니는 어떻게 나았어요? 이렇게 아프다가 어떻게 구원이 됐어요?”

“나 말이냐?”

어머니는 필용의 베개를 돋워주며 자부심 있는 목소리로 하느님이 구하셨지, 했다. 그러니까 너처럼 잘난 아들을 안 낳았냐.

며칠 뒤 열이 내리자 필용은 친구에게 차를 빌렸다. 곧 오겠다던 친구는 약속 시간이 훨씬 지난 밤 아홉시가 되어서야 오래된 르망을 끌고 나타났다. 낮부터 내린 비는 다행히 그쳤지만 도시 전체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 젖은 도시의 모습이 필용의 마음과 닮아 있었다.

갈까 말까 필용은 한번 더 진중하게 생각했다. 과 후배에게 들은 바로는 양희는 문산의 본가로 갔다고 했다 거기서 양희네 가족이 오리인가 거위 농장을 하는데 장마로 피해를 봐서 내려갔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필용은 가금류에 밀린 셈이었다. 그래도 가야 했다. 안 갈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문산까지 가서 양희를 만난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그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연애와 사랑, 연민, 속박, 약속, 의무, 섹스의 시작이었다. 있던 게 없어지는 게 아니라 없던 게 생겨나는 것이었다. 필용은 난생처음 무모함에 대해서 생각했고 이윽고 시동을 걸었다. 가는 동안은 당연히 퀸이었다. 내 평생의 사랑, 당신은 나에게 상처를 주었지, 당신은 내 망므을 산산이 부수고 떠났지, 하는 가사에 귀 기울이며 가속 페달을 밟았다. 내 사랑을 되돌려줘, 나에게서 빼앗아가지 말아주오.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필용은 생각했다. 해보겠다고 생각했다. 문산에 가서 말하겠다. 양희야, 너의 허스키를 사랑해, 너의 무기력을 사랑해, 너의 허무를 사랑해, 너의 내일 없음을 사랑해.

문산 쪽도 비는 그쳐 있었다. 개구리들이 왈왈 시끄럽게 울고 풀냄새, 물냄새, 진창 냄새가 뒤엉켜 뭔가 원시적인 느낌을 주었다. 필용은 문산의 모든 것이 양희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양희의 야상에서 나던 냄새는 어쩌면 지하 자취방이나 극장의 퀴퀴한 냄새가 아니라 문산에서 묻어온 양희의 고유한 채취는 아니었을까. 그러자 양희의 무기력하고 소극적인 태도도 어쩌면 잘못 독해되어왔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모든 것들이 득의 만만하게 생장하고 있는 곳에서 그런 허무가 왔다니, 무기력이 왔다니, 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좀 헤매다가 동네 사람의 안내로 양희의 집을 찾았을 때 필용은 무언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어안이 벙벙했다. 양희의 집은―집안이라기보다는 굴에 가까웠다. 합판으로 지어놓았는데 부엌과 타일 한 장 없이 흙투성이였다. 하수구가 제대로 나 있지 않은지 밥풀이며 퉁퉁 붙은 라면 가닥이며 하는 것이 수챗구멍에서 비탈을 따라 개울로 흘러들었다. 오리는 있었다. 농장이 아니라 개울 한쪽에 철조망을 치고 오리 몇 마리를 가둬 기르고 있었다. 오리가 꽥꽥 울었다. 죄 새끼들만 있는지 소리가 작고 힘없었다.

양희는 가족들과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 필용을 맞았다. 방안에는 양희의 부모가 다 있었는데, 아버지는 키가 꽤 컸지만 병약해 보였고 겉모습만 봐서는 일흔은 되어 보였다. 어머니는 땅딸한 몸에 둥글둥글한 얼굴이었다. 검은 머리를 올려 쪽을 짓고 있었다. 필용을 데려다준 동네 사람은 가지 않고 이웃집 처자를 찾아 늦은 밤 나타난 청년을 구경하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양희가 공부도 잘했지, 도에서 장학금이 내려올 정도로 잘했지. 양희 부친께서는 비록 이렇게 사시지마는 아주 선비셔. 청빈하셔. 돈이 생기면 죄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내고 수재 의연금으로 내고 하셔. 양희 장학금도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쾌척하시고 아주 그냥 선비셔. 비록 몸은 이러셔도 소싯적부터 애국지사셔.”

과연 벽에는 상찬이 적힌 울긋불긋한 감사패들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양희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라니. 이 동네에서도 가장 투구하고 낡은, 집 같지도 않은 집에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복숭아 통조림이 얼음물에 띄워져 들어왔다. 양희의 부모는 필용에게 왜 왔냐, 어디서 왔냐, 누구냐, 어떤 사이냐, 묻지 않았다. 정작 찾아온 건 자기이면서 필용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텔레비전의 개그 프로그램을 함께 보았다. 필용과 있을 때는 단 한 번을 웃지 않더니 양희는 잘 웃었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와 서로의 ‘이마’를 때려대는 개그맨들이 뭐가 웃긴지 웃었다.

“양희야, 양희야, 니 통장에 얼마나 있냐?”

양희의 아버지가 돌아앉으며 물었다.

“삼십팔만원쯤 있어요.”

양희가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돈이 어떻게 그렇게 많냐?”

“그냥 어떻게 있어요.”

“오리 그물 고치려면 얼마나 들까?”

“십만원은 안 들겠어요?”

양희의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러면 양희야, 남은 걸로 쓸데가 생겼다.”

“네네, 그래요, 어버지.”

“그걸 다 찾아다……”

“네네, 아버지 뜻대로 하세요.”

양희는 아버지가 말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여가며 동의했다. 아무런 감정 없이 평온한 얼굴이었다. 삼십팔만 원! 삼십팔만 원이면 얼마나 큰돈인가? 필용은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 어떻게 그걸 다 달라고 할 수 있는가. 당신 딸이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면서, 저 나이에, 이제 스물한 살의 나이에 추레하고 낡은 옷만 입으면서 서울을, 종로를, 그 꽃처럼 화려한 거리를 얼마나 힘없이 걷고 있는지 모르면서. 무언가를 축적할 시간 없이 자꾸만 무언가를 앗아가는, 그렇게 반복된 불행에 익숙해진 사람의 무기력하고 열없는, 견디는, 얼굴을 하고 있는지 모르면서, 삼십팔만원이라니! 필용은 소리치고 싶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필용은 그저 시선을 비꼈다.

돌아갈 때는 양희가 동네 어귀까지 데려다주었다. 이렇게 단둘이 있기 위해 문산까지 왔지만 필용은 할말이 없었다. 양희가 문득 생각난 듯이 그런데 선배는 왜 왔지? 했는데도 그냥 근처를 지나다가 하면서 얼버무렸다.

“부끄러워서?”

양희가 필용에게 물었다. 여태껏 한 적 없는 질문이라는 것이 여기 있었다. 필용과 양희는 마주보았다. 밤이라 얼굴은 거의 지워졌어도 거기에는 양희의 눈이 있었다.

“미안하다. 심한 말 해서.”

필용이 사과했다.

“선배, 사과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이런 나무 같은 거나 봐요.”

양희가 돌아서서 동네 어귀의 나무를 가리켰다. 거대한 느티나무였다. 수피가 벗겨지고 벗겨져 저렇게 한없이 벗겨져도 더 벗겨질 수피가 있다는 게 새삼스러운 느티나무였다.

“언제 봐도 나무 앞에서는 부끄럽질 않으니까, 비웃질 않으니까 나무나 보라고요.”

필용은 양희 뒤에 서서 양희에게로 손을 뻗어보았다. 닿지는 않았다. 앞으로 한 걸음만 더 옮기면 손이 닿을 수도 있었지만 필용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의 얼굴이 간절함으로, 연민과 구애의 감정이 뒤엉킨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다는 걸, 자기 자신만은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필용은 말없이 르망에 올라탔다. 문산까지 오는 동안 필용이 전율했던 사랑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주 뻥 뚫린 것처럼 없어지고 말았다. 필용은 울었다. 울면서 무엇으로 대체되지도 좀 다르게 변형되지도 않고 무언가가 아주 사라져버릴 수 있음을 완전히 이해했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6

인사팀장에게 불려간 필용은 자신의 회사 출입기록이 적힌 서류를 받아들었다. 열두시와 한시를 기준으로 몇 분 이르고 몇 분 늦게 출입시간이 기록되어 있었다. 모두 필용이 양희에게 달려갔던 시간들이었다. 열두시에서 사 분 모자란 열한시 오십육분, 한시에서 몇 분이 더 지나 있는 한시 사분과 오분. 필용은 그 시간들을 모두 암산으로 더해보았다. 아무리 해도 하루 동안의 시간도 안 될 것 같았다. 기껏해야 반나절? 하지만 무거웠다. 인사팀장이 언급하는 그 시간의 무게는 너무 무거워서 필용의 머리를 조아리게 했다. 근태 불량은 인사 평가의 핵심 항목이어서 필용은 최하점을 받았다.

“조심해요, 조심해. 가랑비에도 안 젖게 조심하라고요. 깃털 하나도 어깨에 떨어지짖 않게 조심하라고요. 맘 못 잡는 그 맘도 이해하고 여기서 버티겠다는 그 맘도 이해하지만 어떻든 회사에서 요주의 하고 있다는 걸 명심하라고요.”

필용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래, 누구를 탓하겠는가. 감상에 빠져 시간을 보낸 건 바로 자신이었다. 이제는 팔다 팔다 팔 게 없으니까 추억가지 팔아서 어쩌려고. 부끄러웠다. 올라가야 하지 않는가. 원래의 자리로. 그러자면 어둑한 소극장, 의자와 회사원들, 마주친 얼굴과 그 지루한 시간, 짤깍짤각짤깍 하는 박수 소리, 그리고 양희를 잊어야 한다.

필용은 자신을 달가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예 내치지는 않는 회사의 안녕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여름과 가을을 보내는 동안 필용의 몸에서는 종로로 달려가던 시절의 돌출적 에너지와 저항의 충동이 다 빠져나갔다. 긴장은 이제 몸 전체에서 사라져 필용은 말랑말랑해졌다. 치즈처럼. 가볍게, 있는 듯 없는 듯하게, 어떻게 보면 나사가 빠진 듯하지만 안정적으로 회사를 다녔다.

그러다 겨울로 접어들 무렵 필용은 감기에 걸렸다. 출근해서 버텨보던 필용은 이제 약을 쓰지 않고는 감기가 낫지 않는 나이임을 실감하며 병원에 가기로 했다. 한시까지 돌아올 생각으로, 이번에는 당연히 전자결재로 행적을 밝히고 점심시간보다 이르게 회사를 나섰다. 볕은 따뜻하게 내리쬐고 있었지만 추웠다. 추운 날씨였다. 필용은 열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걸었고 어머니 생각을 하며 걸었다. 그러자 어깨가 시려왔다. 소면을 삶다가 문득 어머니가 손묵을 잡으며 시리구나, 에구 시려, 했던 게 생각나면서 더 더 시려왔다. 그런 어머니는 필용이 마흔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이미 그때부터 누구에게도 구원에 대해 물을 수가 없게 되었는지도 몰랐다. 어느덧 필용은 병원이 아니라 종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어쩌다보니 가게 된 것이다. 두 발이 원을 그리면서 서울을 돌다 돌다 세 계절이 지난 뒤에 다시 여기로 되돌아도게 된 것이다. 이윽고 필용은 극장 앞에 섰다. 열두시가 한참 넘어 표를 살 수도 없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괜찮지 않을까. 극장 문을 한번 열어봐도 되지 않을까. 필용은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없이 다만 어떤 거절, 밀쳐짐이 필요한 사람처럼 힘없이 극장 문을 열었다. 필용은 닫혀 있는 공연장 문을 보며 오늘은 누가 무대에 올라가 그 시간을 견디고 있을까 생각했다. 처음에는 견디다가 나중에는 받아들이다가 응시하게 되는 그 시간을. 돌아서 나가려는데 아가씨가 들어가요. 했다.

“열두시 반이 넘었는데.”

“관객이 하나도 없으니까 들어가요. 공연도 연말까지 밖에 안 해요. 이제 보지도 못해요.”

필용은 고민했다. 관객이 한 명도 없다면 그 자리에는 필용이 서야 할 것이었다. 필용은 이마의 식은땀을 닦았다. 이대로 나가버리면 무대 위 의자에 앉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게 거기에 앉지 않으면 또 어떻게 되는 것일까.

매표소 아가씨의 말과는 달리 객석에는 늘 박수를 치던 남자 관객이 앉아 있었다. 남자는 관객이 아닌가? 생각하며 필용은 머플러로 얼굴을 감쌌다. 시작을 알리는 차임벨이 울리고 양희가 등장했다. 보고 있는 필용이 더 추웠다. 양희가 객석으로 내려와 손을 내밀었고 필용은 그 손을 내려다보았다. 선배 가능한 걸로요, 하면서 주머니에서 허공을 거쳐 자신에게로 옮겨오던 그 손을. 필용은 머플러를 풀어서 얼굴을 보여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양희는 다른 사람에게 하듯 필용을 의자에 앉혔다. 그러고는 마주보는 시간이었다. 오래전 맥도날드에서 양희는 언제나 시선을 비스듬히 비껴서 필용과 함께 있는 시간을 견뎠지만 이제는 말이 없으니까. 둘 사이에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 서로를 견딜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견뎠다니, 필용은 그 사실이 슬프고 부끄러워서 얼마간 눈을 맞추다가 이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잠시 후 남자 관객이 일어나 텅텅텅 하고 박수를 쳤다. 자리로 돌아와 필용은 가방을 챙겼고 양희와 매표소 아가씨가 무대 인사를 했다. 그리고 끝이었다. 필용은 씁쓸했지만 요즈음 거의 모든 일에 그러하듯 체념하고 받아들였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점심시간을 이용해 극장에 앉아 샌드위치를 씹으며 위안과 힐링을 바라는 직장인들과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양희가 다르지 않게 대했고 다르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짐을 챙겨서 나가려는데 무대 인사를 끝낸 양희가 들어가지 않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필용이 의아해하며 걸음을 멈췄다. 양희는 그냥 서 있었다. 무대 위에서 필용을 내려다보며. 남자 관객이 또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브라보, 하고 휘파람을 불었는데도 양희는 대기실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다 두 팔을 들어 어깨 너비가 넘게 벌렸다. 그 어느 밤의 느티나무처럼. 그리고 바람을 타듯 팔을 조금씩 조금씩 흔들었다.

회사로 걸어가면서 필용은 울었다. MP3 플레이어도 퀸도 없는 종로 거리에서 필용은 이제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든, 뭐 달리 어떻게 해볼 것이 없이, 더 이상 어디에서도 양희를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일은 어떨지 몰라도 지금은, 오늘은, 그것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이라서 필용은 뒤돌아 극장 쪽으로 뛰어갔다. 우당탕 하고 계단을 내려가니 매표소 아가씨가 비질을 하다가 뭐놓고 갔어요, 하고 물었다. 필용이 말을 못하고 있는데, 박수를 치던 남자 관객이 양동이를 들고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필용과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었다. 조연출, 그거 여기로, 하고 아가씨가 대걸레 쪽을 가리켰다.

“자, 갑니다. 시작해요.”

남자가 대걸레에 물을 착착 적셨고 필용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필용은 다시 거리로 나왔다. 얼마쯤 걷다가 또 극장 쪽으로 향했지만 다시 몸을 돌려 종로에서 멀어졌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누르며 계속 멀어졌다. 양희야, 양희야, 이제 피시버거는 안 판단다. 양희야, 양희야, 너 되게 멋있어졌다. 양희야, 양희야, 너, 꿈을 이뤘구나, 하는 말들을 떠올리다가 지웠다. 안녕리라는 말도 사랑했니 하는 말도, 구해줘라는 말도 지웠다. 그리고 그렇게 지우고 나니 양희의 대본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분이라는 생각이 남았다. 하지만 그건 실제일까. 필용은 가로수 밑에 서서 코를 팽 하고 풀었다. 다른 선택을 했다면 뭔가가 바뀌었을까. 바뀌면 얼마나 바뀔 수 있었을까. 가로수는 잎을 다 떨구고 서서 겨울을 견디고 있었다. 그런 질문들을 하기에 여기는 너무 한낮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정오가 남은 지금은 환하고 환해서 감당할 수조차 없이 환한 한낮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