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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소설화

진달래 2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6. 29.

   역사상 가장 섹시한 철학가, 백신이 없고 감염력이 강력한 지적인 병균이라는 프리드리히 니체, 저는 지금 당신이 제시해준 1876년의 니체를 만나고 있어요. 7월 24일 바그너의 초대를 받은 니체는 바이로이트에 가서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의 4부작 공연 전체를 관람하려고 해요. 그러나 그 시연에 실망한 니체는 피로와 지병이 겹서 공연 전 바이로이트를 떠나 보헤미아의 깊은 숲속에 감추어진 클링겐브룬의 상쾌한 고원의 공기 속에 숨게 된답니다. 이곳에서 그는 ‘쟁기날’이라는 전체의 표제로 냉철한 심리학적 고찰을 담은 짧은 문장을 쓰게 되죠. 이것이 바로 지금 제가 읽고 있는 그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최초의 메모가 된 셈입니다.

   보통 책에서는 니체의 사색에 대해 세 시기로 나뉘더군요. 제 1기는 ‘비극의 탄생’과 ‘반대적 고찰’을 포함하고 제 2기는 지금 제가 읽으려고 하고 있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과 ‘서광’ ‘즐거운 지식’을 포함하고 제 3기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로 시작하여 ‘이 사람을 보라’로 끝난다고 하네요.

   니체의 서적들을 꼼꼼히 처음부터 읽으려고 했어요. 그러나 제가 구할 수 있는 책들은 고작 지금 읽으려고 손에 든 책과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도에요. 그래서 우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 책을 집어 들었어요. 서점아저씨가 고등학생이 읽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더군요. 마침 학교에 가는 날이라 교복을 입고 갔었거든요. 전 그냥 웃었어요. 아저씨가 자꾸만 저를 흘끗거렸는데 제가 예뻐서인지, 혹은 너무 어려운 책을 뒤적이는 제가 신기해서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어요. 사실 그런 게 뭐 대수인가요? 두 권의 책을 사들고 나오는데 가슴이 왜 그렇게 뒤설레 던지요? 마치 당신의 머리를 남몰래 안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희죽 웃음이 났어요. 옆으로 스치는 남자가 흘끗거려 얼른 정색을 했지요. 이렇게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당신을 나는 느껴요. 아직은 그 느낌이 위로가 되어요. 그렇지만 언제까지가 될 지, 저도 저를 믿을 수가 없군요.

   부윰한 새벽빛이 창호지문으로 사정없이 쳐들어오고 있어요. 그만 자야겠어요. 몇 페이지밖에 읽지 못했는데 눈도 생각도 피로하군요. 아니 읽었다기보다 씹어 먹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서점아저씨말대로 제가 다 이해하며 읽기에는 버거울 듯하지만 당신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선 이런 일쯤 뭐, 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렇죠? 대답해줘요. 제발.

  지금 당신이 주고 간 노래를 듣고 있어요. 올모스트 불루. 불루, 불루, 불루는 우울한 색이죠? 노래의 색깔만큼 우울해 오지만 그 우울함조차도 사랑스러워요. 왜냐면 그 우울함속에 당신이 있거든요. 당신이 있는데라면 어디라도 좋아요. 지옥이라도?  네 지옥도 천국이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제가 좋아요.  참, 저 자랑할 일 있어요. 지난 가을 교내 백일장 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어요.  그냥 생각없이 끄적거렸던 시 였는데요.  그거 였어요. '결정적 순간들' .  지금은 창피해서 다 말해줄 수 없어요.  당신을 처음 만났던 순간의 느낌을 시라는 형태를 빌려서 말한 것이에요.  다음에 꼭 말해드릴게요. 이 기쁨을 당신과 나눌 수 없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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