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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로마의 테라스/파스칼 키냐르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4. 8. 10.

<세상의 모든 아침>, <은밀한 생>의 작가 파스칼 키냐르의 2000년 작품. 이 책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과 '모나코의 피에르 국왕 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그는 2002년 <떠도는 그림자들>(연작소설 <마지막 왕국>의 제1권)로 공쿠르 상을 받은 바 있다.

 

작가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랑하던 여자의 아들을 친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한 남자의 회고담을 재구성한 이야기.' 17세기 바로크 시대를 배경으로, 금지된 사랑을 하던 판화가 몸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는 연인과의 밀회 때문에 얼굴에 끔찍한 상처를 입고, 그로 인해 사랑과 환한 세상에서의 삶을 한꺼번에 잃어버린다. 절망에 빠진 그는, 동판에 연인과 자신의 육체를 새기면서 평생을 떠돈다.

 

사실 이 소설에서 줄거리 자체는 무의미하다. 순차적인 내러티브와 사건 중심의 이야기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당황할 수도 있다. 뜯어놓고 보면 단순한 이야기이지만, 놓치기 쉬운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미치는 작가의 시선을 만날 수 있다.

 

 

주인공이 평생 작업한 판화처럼, 가늘고 단단한 철 끝으로 새긴 듯 견고하고 시적인 언어들로 쓰여 진 소설이다.<알라딘 제공>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구석에서 살아가는 법일세. 사랑에 빠진 사람들도 모두 구석에서 살아가지. 책을 읽는 사람도 구석에서 사는 거네. 절망한 자들은 숨을죽이고, 누구에게 말을 하거나 누구의 말을 듣지도 않으면서, 마치 벽에 그려진 사람처럼 공간에 달라붙어 살아가는 거야.<8쪽>

 

 

사랑이란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이미지들로 이루어지지. 매혹적인 환영들과 더불어 단 한 사람을 향한 끝없는 대화가 시작되네. 우리는 우리가 본 모든 것을 그 사람에게 바치지. 그는 살아있는 사람일수도, 죽은 사람일 수도 있어. 꿈에서는 의지도 이기심도 힘을 잃기 때문에 그의 모습이 꿈에 나타날 수 있는 것이네. 그런데 꿈이란 바로 이미지들이야. 더 정확히 말해 꿈이란 심지어 이미지들의 아버지이며, 주인이네. 나는 이미지들의 습격을 자주 받는다네. 내가 이미지들을 판각하면 그것들은 어둠을 빠져 나오네. 나는 오래 전에 운명적인 사라에 내 전부를 바쳤어. 하지만 그 여인의 육신이 현실에서 사라진 게 아닌데도 더 이상 그녀를 볼 수 없게 되어버렸지. 그녀의 몸을 가질 권리가 좀더 잘난 범부에게 주어졌기 때문일세. 더 이상 길게 말할 필요도 없겠지.<41쪽>

 

 

“만일 이 세상에 드러난 외양이 없다면, 우린 그것의 이미지들을 그릴 수 없을 거야. 그 형상들을 태워버리는 빛만을 그릴 수 있겠지.”

“어떤 빛에 대해 말하는 건가?”

“이 세상을 밝히는 빛에 대해 말하고 있네.”

“그렇다면 자네는 태양이 지구를 밝히면서 태워버린다고 생각하나?”

“그렇다네.”

“자네 말이 맞는 것도 같군.”

“나는 태양빛이 모든 것을 드러내므로 아름다운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하네.”

“헌데 모든 것이 다 타버린다면 그림은 왜 그리는 거지?”

“이 세상을 밝히는 장작더미에 각자 작은 장작을 보태는 거지.”

“나 역시 내 산성액으로 태우는 일을 조금쯤 돕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군.”

"그렇다고 자네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야. 이 세상 특유의 드러내는 방식이라는 게 있거든. 그것은 대체로 꿈이라네. 하지만 때로는 침상의 휘장을 걷어내고 사랑의 행위 중인 두 육체를 드러낼 필요가 있어. 가끔은 다리와 촌락들, 탑과 망루들, 선박과 수레들, 가축들과 함께 주거지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여주어야 하네. 어떤 땐 안개나 산만으로도 충분해. 사나운 바람에 휘청이는 한 그루 나무로 족할 때도 있어. 때론 어둠만으로도 충분할걸세. 영혼에는 결여되어 있거나 잃어버린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꿈이 아니라도 말이지." <44쪽>

 

이유를 대는 것은 사랑을 황폐하게 만드오.

사랑하는 대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거짓에 불과하지.

인간은 살아 있다는 감각이 절정에 달했을 때의 느낌에만 기뻐하기 때문이라오.

또 다른 삶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77쪽>

 

어떤 나이가 되면, 인간은 삶이 아닌 시간과 대면하네. 삶이 영위되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지. 삶을 산 채로 집어삼키는 시간만 보이는 걸세. 그러면 가슴이 저리지. 우리는 나무토막들에 매달려 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고통을 느끼며 피 흘리는 광경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는 하지만 그 속에 떨어지지는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네.<1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