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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십분지 일의 법칙 - 日常茶飯事 22 탄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3. 1. 16.

정신이 말(글)을 지배 하는가? 혹은 말(글)이 정신을 지배할 수도? 아니면 정신과 말의 상호작용으로 때론 정신이 말을 지배하기도 하고 말이 정신을 지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굳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가끔씩 은파를 돌 때, 혹은 하천 주변을 돌 때 마주치는 언 수면위의 얼음장이 깨지는 모습을 보며 마치 그 모습이 누군가의 가슴이 빠개지는 상상과 맞물리는 생각까지 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다고 딱히 내 가슴이 빠개지는 일 같은 것은 당최없으련만 자꾸 눈길이 쏠리는 것은 왜 일까 며칠째 계속되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그런 생각의 연장선속에서 호기심 충만으로 인터넷을 셔핑해 보았다.

 

과연 얼음은 왜 얼까? 그리고 왜 깨지는 것일까? 마치 초등학교 학생이 의문을 가지는 것처럼 이곳저곳을 구구다 본다.

 

"수증기는 0℃ 이하의 온도에서 지상에서는 서리가 되고 구름에서는 눈송이(각각이 얼음 결정임)가 된다(→ 고체화). 0℃ 이하에서 액체상태의 물은 강빙(江氷)·해빙(海氷)·우박 혹은 가정의 냉장고에서 얻을 수 있는 얼음이 된다. 얼음은 다수의 결정이 조밀하게 모여서 이루어지는데, 물에서 성장하는 결정은 수증기에서 성장한 것과는 달리 결정면을 형성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구별할 수 없다. 물에서 형성되는 얼음표본의 전형적인 크기는 1~20㎜ 정도인데 오래된 빙하를 이루는 결정은 장기간 지속된 재결정화의 결과로 지름이 50㎝에 이르는 것도 있다. 녹는 얼음은 0℃를 유지한다. 물의 밀도가 0.9998g/㎤인데 반해 얼음의 밀도는 0.919g/㎤이다. 따라서 같은 질량의 물이 0℃에서 차지하는 부피보다 9% 더 차지한다.있다.이는 송수관이 얼면 파열하는 것과 얼음이 자기 부피의 약 1/10을 수면 위에 노출한 채 물 위에 뜨는 사실을 잘 설명해준다."

 

그리고 사전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얼음이 깨지는 이유는 온도차이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런 것들에 근거하면 인간도 자연생태계를 차지 하는 한 種이 분명하므로 얼음이 수면에 뜨는 부피의 양이 십분지 일쯤이   혹은 칠분지 일쯤이 된다는 글을 접하고 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자기 가슴속의 말이나 생각을 자신 밖으로 얼마쯤을 내 비칠 수 있을까?

 

고것의 답이 십분지 일 쯤은 아닐까? 이런 생각으로 누군가에게 발설해 보았더니  "뭔 십분지 일씩이나요? 백분지 일쯤은 되지 않을까요?"라고 답변을 해서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을 했다.  글쎄 나는 내 가슴속의 것들을 십분지 일쯤 방출하며 살까 생각해 보니 분명 그렇지 못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다. 아마도 이십분의 일, 혹은 삼십분의 일...어쩜 백분의 일쯤?

무의식 저 편에 가라앉은 것까지를 합치면 아마 그보다 훨?

 

이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보니 나는 과연 상대의 내 뱉는 말이나 행동을 그 사람의 전부라고 믿으려 하는 내 생각이 얼마나 어리섞은지, 보여주는 행동과 말의 단면적인 모습만으로 상대를 평가하며 상대를 인식하는 내 오래된 습관이 너무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지 않았을까?

 

그럼 말과 행동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아, 머리 아프다.

 

나 또한 내 내뱉는 말이나 글속에 나 자신을 얼마쯤 드러내며 살았는가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가끔씩은 말이다. 내 글속에서 내 말속에서 내 자신을 포장하려는 꼼수를 읽기도 하며 내 마음과 정반대의 말을 상대에게 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내가 이럴진데 상대는? 이라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해보니 어쩜 나는 가짜 심리학 박사인 내 친구의 말데로 내  자신의 무의식이 투사되는 방식으로 상대를 인식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럼 앞으로 나는 어떻게 상대를 인식하며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을까?

 

내 마음이 흐르는 데로...

 

뭣여? 결론은 결국 자신에게 있다는 말인가?

 

一切唯心造

 

며칠째 계속되는 수면위에 보여지는 십분의 일의 얼음 부피에 대한 글을 읽고 사람 속을 헤아린 다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임을, 내 자신의 속 마저 이해를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타인의 속을 헤아리며 살 것인지 혹은 그동안 내가 보여주었던 사람에 대한 이해의 방식을 이젠 탈피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숙제를 안게 되었다.

 

사실은 적당한 열과 바람을 맞아 얼음장이 빠개지는 일처럼 그래서 얼음 아래 놓인 수많은 생물들이 비로소 햇빛을 받고 바람을 맞으며 각자의 생명의 환희를 즐길 수 있는 봄을 맞이하는 일처럼, 어쩜 말이다.  내 가슴을 열고 내 무의식 저편의 것들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기를 열망하는 어떤 심사가 투사되어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혹은 말이다. 정말 누군가의 마음을 열어보고 싶은 간절한 내 마음의 투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이 아침,

 

나는 누구의 마음을 얼마큼 열수 있을까 , 나 또한 누구에게 내 마음을 얼만큼 열며 보낼 수 있을까? 하루하루 매 순간순간마다 내 열린 마음이 진심이기를 ...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