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렸을 때 정말 엄마가 싫었다. 우리 엄마가 아니었으면 하고 잠이 들때쯤 꿈속에서 우아하고 세련되고 다정한 여인을 만나곤 했다. 동화속에서 만나는 엄마들과 현실의 내 엄마는 너무 달랐고 그런 엄마가 싫어서 몇 번의 가출도 경험하고 자살에의 충동도 느끼곤 했다. 딱히 엄마가 혹독했던 것도 아니고 그렇고 그런 순박한 시골 엄마였는데 내가 그처럼 엄마가 싫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에 대한 어린 나의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모양이다. 생일날 거나한 생일상을 차려 친구들을 부르곤 하던 친구 엄마의 다정하고 환한 모습을 보면서 눈물도 지어봤다. 한번도 내 생일 상을 받아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쑥버무르기떡은 내 생일 날 단골 메뉴이긴 했다. 워낙 활동량이 많았던 엄마였기에 집안 살림은 내몫이었다. 엄마가 저녁무렵 품앗이에서 돌아오셨을때 마루나 방이 더러워져 있으면 온통 혼나곤 했다. 정말 나의 친엄마일까 생각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독재자 엄마의 부당한 처사에 일일이 말대꾸를 하면 그것 때문에 또 욕먹고... 매를 들때면 처음에는 고집스럽게 맞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턴 빗자루라도 잡는 기색이 들면 줄행랑을 쳐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실컷 엄마의 꾸지람에 말대꾸를 하다 부아난 엄마가 빗자루를 드셨드랬다. 또 도망쳤지만 나보다 더 달음질에 능통한 엄마를 따돌릴 방법이 없어 산속으로 도망쳤다. 숲으로 숨어버렸더니 더이상 엄마가 따라 오지 않더라. 밤이 되었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슬슬 산을 내려와 뒤켵 대나무 밭 속에 있었는데 어찌나 모기가 많았던지... 혹시나 화가 풀리셔서 나를 찾지 않으실까 따-아 -딱 소리나게 모기를 잡았는데 눈치 챈 아버지가 슬그머니 데릴러 오셨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대책없는 아이였나보다. 이런 저런 사연들이 너무 많다. 나와 엄마 사이엔 ...
특히나 잊을 수 없는것 중의 하나가 엄마의 성교육 , 그것때문에 나는 삼십중반이 되어서야 정말 남자란 동물이 늑대만은 아니었구나 그렇게 가슴으로 깨달았으니 결혼이 늦어질 수 밖에 없었겠지. 큰딸인 난 어렸을 때 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남자는 늑대다.' 또 순진한 나는 정말 남자들은 도둑놈이고 늑대같은 동물이라고 너무 확고하게 믿었다. 그렇게 믿었던 여러가지 이유중에 엄마의 몫이 컷지만 사실 초등학교때 놀러간 친구네 집에서 너무나 야한 포로노 잡지를 본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그때 친구네 오빠들이 셋이나 되었고 한창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때 였으니 미군부대 가까왔던 동네에 산 까닭에 아마도 오빠들이 그런류의 잡지를 손에 넣기가 쉬웠을 것이다. 그 잡지속에 특히나 개나 말 같은 짐승들과 함께하는 장면들을 보았으니 당연히 남자들 모두가 개와 말같은 짐승으로 보일 수 밖에. 그것이 내 인생의 커다란 트라우마 같은 것이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남자를 향한. 그래서 줄창 40이 가까와지도록 짝 사랑만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지금 생각해 본다. 엄마의 그런 류의 성교육은 급기야 절대로 친구의 집에서 자고 오는 걸 허락하지 않으셨고 시골임에도 불구하고 오빠가 있는 친구집에는 출입을 금하는 것을 원칙으로 여겼다. 근데 어렸을 때 부터 쏘다니기 좋아했던 성정을 가진 아이가 어떻게 친구집에 대한 호기심을 참을 수 있었겠는가? 엄마에게 거짓말하고 친구네 집으로 놀러가곤 했지만 언제나 뒤가 캥기곤했다. 요새처럼 대중매체가 쏟아붇는 정보의 홍수 한가운데 있는 우리들은 수없이 들려오는 어린아이들이 당하는 성추행의 악행을 들어오지만 아마 내가 자랄땐 그런 일들이 알게 모르게 비일 비재했을 것이다. 다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엄마의 그런 성교육이 없었더라면 나도 어쩜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철저한 엄마의 단속이 지금 생각해보면 고마울 뿐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일이 생각난다. 난 대학교 1학년 때까지 결혼 첫날 밤에 뭐하는지도 몰랐다. 1학년 교양학부에 김상뭐뭐라는 교수님이 성교육 강의 시간에 첫날밤이야기를 하셨나보다. 강의실 학생들이 히죽히죽 끽끽거리고 있었는데 난 도무지 첫날밤이 상상에 잡히질 않았다. 당장 수업끝나고 도서관에 헐레벌떡 올라갔다. 지성인인데 강의실에 조차도 나는 그들을 이해해 동참할 수 없었던 창피함에 허겁지겁 가정백화사전을 찾았다. 첫날 밤엔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길래 저렇게 야단 법석일까. 자존심 문제였다. 참 웃긴다. 그 백화사전엔 첫날밤에 새색시는 절대 먼저 씻으려고 욕실에 들어가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신랑이 한참 꼬시고 나서야 빼다빼다 마지못해 욕실에 들어가야 한다고 쓰여져 있었다. 그뿐이었다. 참 고전적이다. 80학번이었으니 아마 그때 도서관에 비치된 가정백화사전은 60년대쯤 만들어진것이 아니었을까. 그 뒤 한참이 지나서야 친구의 입을 통해 첫날밤의 실체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야기가 잠시 곁길로 세어나갔다.
특히나 잊을 수 없는것 중의 하나가 엄마의 성교육 , 그것때문에 나는 삼십중반이 되어서야 정말 남자란 동물이 늑대만은 아니었구나 그렇게 가슴으로 깨달았으니 결혼이 늦어질 수 밖에 없었겠지. 큰딸인 난 어렸을 때 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남자는 늑대다.' 또 순진한 나는 정말 남자들은 도둑놈이고 늑대같은 동물이라고 너무 확고하게 믿었다. 그렇게 믿었던 여러가지 이유중에 엄마의 몫이 컷지만 사실 초등학교때 놀러간 친구네 집에서 너무나 야한 포로노 잡지를 본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그때 친구네 오빠들이 셋이나 되었고 한창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때 였으니 미군부대 가까왔던 동네에 산 까닭에 아마도 오빠들이 그런류의 잡지를 손에 넣기가 쉬웠을 것이다. 그 잡지속에 특히나 개나 말 같은 짐승들과 함께하는 장면들을 보았으니 당연히 남자들 모두가 개와 말같은 짐승으로 보일 수 밖에. 그것이 내 인생의 커다란 트라우마 같은 것이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남자를 향한. 그래서 줄창 40이 가까와지도록 짝 사랑만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지금 생각해 본다. 엄마의 그런 류의 성교육은 급기야 절대로 친구의 집에서 자고 오는 걸 허락하지 않으셨고 시골임에도 불구하고 오빠가 있는 친구집에는 출입을 금하는 것을 원칙으로 여겼다. 근데 어렸을 때 부터 쏘다니기 좋아했던 성정을 가진 아이가 어떻게 친구집에 대한 호기심을 참을 수 있었겠는가? 엄마에게 거짓말하고 친구네 집으로 놀러가곤 했지만 언제나 뒤가 캥기곤했다. 요새처럼 대중매체가 쏟아붇는 정보의 홍수 한가운데 있는 우리들은 수없이 들려오는 어린아이들이 당하는 성추행의 악행을 들어오지만 아마 내가 자랄땐 그런 일들이 알게 모르게 비일 비재했을 것이다. 다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엄마의 그런 성교육이 없었더라면 나도 어쩜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철저한 엄마의 단속이 지금 생각해보면 고마울 뿐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일이 생각난다. 난 대학교 1학년 때까지 결혼 첫날 밤에 뭐하는지도 몰랐다. 1학년 교양학부에 김상뭐뭐라는 교수님이 성교육 강의 시간에 첫날밤이야기를 하셨나보다. 강의실 학생들이 히죽히죽 끽끽거리고 있었는데 난 도무지 첫날밤이 상상에 잡히질 않았다. 당장 수업끝나고 도서관에 헐레벌떡 올라갔다. 지성인인데 강의실에 조차도 나는 그들을 이해해 동참할 수 없었던 창피함에 허겁지겁 가정백화사전을 찾았다. 첫날 밤엔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길래 저렇게 야단 법석일까. 자존심 문제였다. 참 웃긴다. 그 백화사전엔 첫날밤에 새색시는 절대 먼저 씻으려고 욕실에 들어가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신랑이 한참 꼬시고 나서야 빼다빼다 마지못해 욕실에 들어가야 한다고 쓰여져 있었다. 그뿐이었다. 참 고전적이다. 80학번이었으니 아마 그때 도서관에 비치된 가정백화사전은 60년대쯤 만들어진것이 아니었을까. 그 뒤 한참이 지나서야 친구의 입을 통해 첫날밤의 실체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야기가 잠시 곁길로 세어나갔다.
내가 엄마를 싫어한 이유중에 또 하나는 엄마가 너무 유난스러웠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부터 동네에서 계왕주를 오랫동안 해 오셨다. 동네의 모든일들이 엄마의 손에서 해결되는 걸 종종 보아왔다. 어떤 날은 동네에서 아줌마들 싸움이 있다해서 싸움구경하러 열나게 뛰어가면 엄마가 그 주인공이었을 때의 그 참담함과 부끄러움. 그럴 때 내 자아속의 또다른 나는 틀림없이 저분은 내 진짜 엄마가 아닐 거야 수없이 되뇌이곤 했다. 일년이면 데 여섯번씩 동네아줌마들하고 떠들썩 모래찜질이다 해수욕장이다 단풍구경이다 요란하게 치장하고 나서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난 절대 저렇게는 안살아 초등학교때부터 다짐하곤 했다. 또 양춤을 배운다고 저녁 숟가락 놓자마자 설겆이를 내 몫으로 남겨놓고 총총 내 빼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양춤 배운다는 동네 어떤집을 찾아가서 확 불을 놓아버릴까 혹은 경찰에 신고할까고 갈등했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의 짙은 화장이 싫었고. 나들이 할때 같이 걸어가면 사람들이 이모냐고 물어볼땐 아니에요 우리엄마예요.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을 때가 어디 한 두번 이었겠는가. 고등학교때 엄마하고 무슨 일인가로 대판 싸운적이 있었다. 아빠에게 무릎을 끊고 앉아 진짜 우리엄마를 찾아 달라고 대성통곡하고 매달렸던 기억도 난다. 난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지금도 그대로 믿어버리는 어리섞음이 있다. 어렸을 때는 그것이 좀 심해서 동네어른들이 날 다리밑에서 줒어왔다고 놀릴땐 그 다리밑이 어디냐고 울면서 따졌던 기억도 난다. 그 동네엄마들이 내가 울고 불고 하는 모습이 재밋어 꺼떡하면 놀리곤 했나보다. 근데 문제는 내가 그말이 진실이라고 믿었다는 사실이다.
아마 나를 데리고 온곳이 팔마재 다리밑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그곳을 혼자서 20리길을 울면서 울면서 걸어 갔었던 기억도 난다. 그곳에 가면 진짜우리 엄마가 계실꺼야. 어렸을 적 팔마재철길 다리는 무척 길고 무서웠었다. 오들 오들떨면서 그 다리를 건너다 중간쯤에서 도저히 다리가 후들거려 엉거주춤 앉아서 한참을 무서워 울고 있는데 한 아줌마가 손을 잡아 건네주었던 기억.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오지만 그때 당시 나는 정말 치열한 엄마찾기였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 수능시험을 끝내고 본고사 준비할 무렵 또 한번의 엄마찾기 가출을 경험한다. 무슨일로 엄마하고 다퉛는지 지금은 기억에 없다. 단지 가출했었고 도서관에서 하룻밤 친구네 집에서 이틀밤 그리고 전주 한벽루까지 어찌어찌해서 흘러가게 되었다. 그 한벽루아래 흐르는 물은 그땐 참 깊어보였고 시커머썻다. 한벽루 바위위에 앉아 뛰어 내릴까 말까 울고 또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보니깐 문득 본고사 공부가 걱정되드라. 시인이 되고 싶어 자연반이었던 내가 문리대를 지원했는데 여기서 끝나버리면 시인이고 교수가 몽땅 아무것도 아니라는 현실감이 덮쳐왔다. 전주에서 군산, 그리고 집까지 어떻게 찾아왔는지 하나도 기억에 없다. 단지 집에 들어가기가 서먹해 한참 크리스마스 연극연습을 하던 교회엘 갔다. 가출하기전 내 역할이 마리아였는데 며칠 가출했다 와보니 동방박사 한사람으로 강등돼 있더라. 연극연습을 끝내고 동생들과 함께 묻혀서 얼랑 뚤땅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어디서 무었을 했는지 묻지 않으셨다. 지금까지도 엄마는 모르고 있을 것이다. 가출에 대한 이야기는 그렇게 묻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쯤은 엄마가 진짜 내 엄마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마음으로 그 진실을 애써 인정하지 않았다는게 문제지. 아무튼 사실은 엄마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서 감행했던 가출이었다. 우리 엄마는 정말 상처를 받았을까? 엄마에게 엄마의 일생은 몹시도 버거웠을 것 같다. 엄마없이 자라면서 아버지 언니의
가장이었고 또 결혼해서 자식넷을 둬 없는 살림 일구고 나같이 버거운 큰 딸년 상대하느라고 참 힘이 들었을 것 같다. 다행히 동생들은 지극히 온순하고 말썽이 없는 애들이었기 망정이지 나처럼 까드락시런 애를 하나 더 가졌드라면 참 마음고생도 심했을텐데 하늘도 무심치 않은지... 아무튼 이런 저런 사연들이 많은 우리모녀이다. 그렇게 대가세고 꽂꽂하고 휘오리 바람을 몰고다녔던 엄마는그 기세가 온통 사그라져 힘없고 한없이 외로와 보인다. 나의 20년후 30년후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울적할 때가 있다. 남들 엄마처럼 당당하게 자식들에게 큰소리치는 그런 엄마였으면 좋겠다. 자식들 바쁠까봐 전화한통을 두고 망설이는 엄마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내안에 고스란히 잠겨져있는 엄마의 성정들 -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엄마의 모습들을 내 안에서 발견하곤 할 땐 가끔씩 화들짝 놀라곤 한다. 생각해 보면 나의 인생에 대한 무모한 도전, 호기심, 적극성,하물며 창조적인 내 삶을 꾸려가고자하는 그 모든 열정이 고스란히 엄마로 부터 온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곤 한다. 시간은 반복되고 그 반복되는 일상속에는 결코 새로운것이 없다는 야기가 새삼 생각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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