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나라에서 열심히 3년을 참 많이 벌었다. 돈을 벌고 나니깐 그 다음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국제적으로 놀려면 우선 언어가 해결돼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일했던 사장에게 돈을 빌려주고 남은 돈으로 어학코스 6개월 비자를 얻고 share room 보증금내고 비행기요금 지불 하고 남은 현금을 달러로 바꾸니 159 달러 이것을 가지고 시드니로 향했다. 빌려준 돈은 시드니에서 받기로 하고 우선 개강날짜가 바쁘니...
시드니에 도착하니 학교 교장이 공항에 마중나와서 그쪽에서 소개해준 share house로 향하니 아담한 벽돌의 타운하우스가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스트라스필드 한 러시아계 할머니 집이었다. 참 친절한 할머니는 답답하지도 않은지 떠듬거리는 나의 영어실력을 늘려주시려고 고군분투 하셨던 분이셨다. 자신의 지난 러시아생활 또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날마다 마치 자서전을 읽어주듯 펼쳐보였다. 그때는 이름도 몰랐던 세계적인 영화배우들, 또 음악가들, 화가들의 이야기와 사진을 보여주었던 기억이 난다. 참 재미있었고 생각해보면 할머니의 남편이 꽤 유명한 음악가여서 그랬는지 나름 운치있었던 분이셨다. 가끔씩 러시아식 스프나 고약한 냄세가 진동하는 치즈를 나에게 대접하곤 했는데 스프는 참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 덕분에 영어는 날로 일취월장함을 스스로도 대견스러워졌다.그런데 문제는 보내주기로 약속했던 돈이 안오니 수중에 남아있던 159달러로 한 달을 벼티기 힘들었다. 렌트비는 3달을 선입금 했지만 먹고살수 있는 방법이 참 막막했다. 그렇다고 한국으로 날아 와서 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 해결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현지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뿐. 내가 그곳에서 돈을 벌수 있는 방법이란 한국인 상대의 식당이나 카페같은데서 일하는 것 뿐이었다. 영어가 아직 서투른 단계라서 현지인들 상대하기엔 부족. 그래서 우선 교민들이 거주하는 캠시로 교민신문에 난 웨이츠레스 모집하는 곳을 몇 군데 찾아갔다. 하지만 젊지도 예쁘지도 않은 내가 채용될리는 없었다. 그런 사실을 뒤 늦게 깨닫고 식당 잡일이라면 괜찮을까 싶어 시내 관광객 상대의 식당 주방보조 모집을 찾아갔다. 주방보조면 식당의 설겆이나 청소같은 잡일을 하는 줄 알고 일을 시작했는데 그런 잡일은 입금이 싼 중국애들 몫이었고 주방보조는 모든 음식을 만드는 일이었다. 주방장인 식당주인은 간만보고 식단만 짤뿐. 어디 살림도 안해본 내가 주방보조로서 역할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일주일분 임금만 받고 쫒겨났지... 참 막막하더라. 학교는 겨우 겨우 다니고 있지만 교통비도 또 식비도 마련할 길이 너무 막막했다. 아는 사람이 학교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이국만리.지금 생각해 보면 참 나도 용감했고 한편 무모한 도전이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로선 당장 내가 그곳에서 살아야했으니깐. 이곳 저곳 막일을 하며 어찌어찌해서 어학코스 6개월을 버텼다. 어학코스가 끝나면 학생비자로 입국했기 때문에 현지를 떠나거나 혹은 학생비자를 연장하지 않으면 불법체류자가 되어 수용소에 감금되었다가 쫒겨나는 신세가 된다.
참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까지. 여기서 멈출 수 없어. 마침 최후의 수단으로 비즈네스 칼리지 1년분 과정을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 해결하니 학생비자가 자동 연장은 되었지만 그 1년을 버티고 살아야 할 길이 없어 보였다. 때마침 그런 나의 사정을 안 어떤 아이가 자기가 유학생들 상대로 작은 카페를 하고 있는데 주방에서 5시이후에 출근해 10시까지 일해 줄 수 없냐는 제의를 받았다. 하늘은 역시 무심하지 않았다. 오전에 학교에서 수업을 하다 돈이 없으니 애들하고 쏘다닐 수도 없어 집에 돌아와 있다 4시쯤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마땅한 교통편이 없어 사오십분쯤 걸어서 다닐 수밖에 없었다. 밤엔 주인애가 태워다 주니 상관없지만 더운 여름날 사오십분을 땡볕에 걷기는 좀 힘이 들었다. 물론 곳곳에 아름드리 나무가 서있어 가다 쉬고 가다 쉬면 산책하는 것 마냥 낭만도 있었겟지만 그 당시로서는 사는 일이 참 버거웠었다.
어느날 땀을 흘리면서 걷고 있는데 일본산 마쯔다 MX 뭔뭐란 로고를 단 2인승 컨버터블이 내 옆을 쏜살같이 달려가더라. 시드니에서 세계여러나라 차들의 전시장을 방불할 만큼 각종 멋있는 차들을 많이 보아 왔지만 그때 최최로 2인승 컨버터블을 보았던 순간이었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던 순간에 그놈을 만났다는게 아마도 운명은 아니었을까? 그뒤로 어찌 어찌하여 공부하면서 여행사 가이드 아르바이트로 종내는 내 여행사 운영도 할 만큼 형편이 폈지만 언젠가 나도 꼭 컨버터블을 타보리란 나름의 Bucket List를 만들었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어찌어찌하여 나의평생의 Bucket list 하나가 해결 됐다. 내 인생의 치열함에 대한 보상이랄까 아무튼 난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나름 위안을 삼고 가을 바람을 가르며 내 마음이 독수리처럼 하늘을 나르는 듯 질주할 땐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듯 착각에 빠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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