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결실이 다가오는 시절이 되니 가지가지 생각이 너울칩니다.
특히 요즈음엔 친구의 자세란 무엇일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한창 콸콸할 땐 진정 좋은 친구란 늘 깨어있게 자극을 주고 옆길로 새지않도록 잠시 길을 밝혀주는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혹은 나는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을 한적이 많았습니다.
이제 인생을 3분지 2쯤을 살고 나니깐 이런 생각이 듭디다.
고정되어 있는 것의 모든시선을 내가 바꾸기가 힘이 들고
상대또한 세상에 대한 모든 안목이 고정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늘상 그 프리즘이 변하긴 하지만
근본적인 인생의 신념들은 크게 바꾸지 못하는 경직상태에 드는 듯합니다.
그것이 심한 왜곡의 편견을 낳기도 합니다.
적어도 내 반경의 거리에서 선택한 친구라면
이제는 크게 믿어줘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
한때 사람들이 뒤에서는 실컷 뒤다마까다가
정작 그 사람앞에서는 바짝 꼬리를 내리는 것을 볼때는
참 참담한 기분도 아니 든 것도 아니었습니다.
비겁하단 생각까지 들 지경이었는데
또 생각해보면 그것이 약한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듭디다.
왜 관계에서 만은 다들 솔직하지 못할까고
어느날 내가 나름대로 심한 분노의 표출을 감행했을때
내 친구 마가렛은 이런 말을 합디다.
"그래 네가 하고 싶은데로 해. 화를 내.
정말 화가 나면 그 화도 다스릴려 하지 말고 품어내."
세상에 화낼일이 뭐가 있겠냐고
모든 것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할 나이가 아니냐고
다들 한마디씩 던지지만 유독 그 친구만은 그런 야길 합디다.
정말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듯 마음이 따뜻해져 왔습니다.
나에 대한 그녀의 믿음이 어디쯤에 있을까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래 이쯤의 나이가 되면
친구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내 식의 잣대를 두지말고
그냥 옆에서 머물며 든든한 지원군이 되자.
따뜻하게 기다려주고
결코 판단하며 가르치려 하지말고
스스로 알아서 깨치고 일어나도록 격려와 지원자가 되었으면,..
결국 어떤 일에 대한 분노는 자신의 문제입니다.
어떤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카메라 렌즈를 이곳 저곳으로 투영해 볼때
내가 선택한 시선들은 참 아름답디다.
세상에 있는 풀한포기, 널부려저있는 자갈 한조각
자잘자잘 기어가는 개미 같은 벌레들에
렌즈를 투영할 때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습디다.
하물며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
각각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들인지 그런 생각이 듭디다.
단지 내 렌즈의 시선을 어느 쪽에 둘지
내 시선이 편협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혹 그런 편협함에 꺽일지라도
이젠 화내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다만 내 취향이 아닌 일, 사람들에게 내 식의 프리즘을 갔다대며
내 식으로 판단을 내리는 일이 있을지라도
그냥 그사람, 그일 자체로 또 다른 것이 있겠거니
남들처럼 그렇게 이해하고 마음에 두지 않는것이 사는 이치려니
그런 생각이 드는 시절입니다.
정 내 취향이 아니면 인연이 거기까지려니 그렇게
마음이 가면 가는데로
흐르다 멈추면 멈추는 데로 그러다 또 흐르고...
가볍고 호들갑스럽지 않아
쬐끔은 답답한 것이 있을 지라도.
애써 나의 시선 나의 잣대를 휘드리지 않기를
스스로에게 오늘도 숨죽은 시월의 햇빛에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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