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침에 함께 청암산 갈까? " 오우케이, 앗싸바리... 오랫만에 쉬엄쉬엄 오붓하게 데이또할 생각하니 기분 짱. "아침 9시에 가게에서 만납시다."
요사이 대화다운 대화가 그리웠던 참인데 모처럼만에 둘이서 나눌 이야기가 있으리라 설레는 맘으로 푹 자고 휘리릭 가게로 나와 밥부터 챙겨먹고... 아뿔사, 나와보니 둘만이 데이또가 아니라 5명으로 ... 울고 싶어라. 내 맘도 모르공...
암튼 둘만의 청암산 등산이 갑자기 5명의 왁자지껄한 등산이 될걸 생각하니 기분도 심드렁하고 하필이면
9시에 만나기로 했다는데 40분이 지나도 나타나질 않는구나. 오늘 한시에 지인의 결혼식이 있어 참석해야했으므로 핑계를 대고 슬쩍 혼자서 옆길로 샜다. 그래 오늘도 잠시 혼자 걷자. 수변로를 따라 걷는다.
혼자걸으면서 옥산 저수지의 아침풍경이 참 좋더이다. 산과 나무들의 그림자들을 품고 있는 저수지의 고즈넉함이 마치 오늘 내 맘에 머물고있는 풍광과 동무되어 있으니 마구 마구 셔터를 누른다.
이리저리 셔터을 누르면서 나 자신들여다보기를 합니다. 이런 고즈넉한 풍경에 마음을 뺏기는 것은 결국 내가 이런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은 아닐까? 내 성정속에 이런 호젓함을 즐기는 , 아니 운명처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점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뭐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다양한 색깔과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어느 그림이 더 좋다라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색깔과 방법으로 살 수 밖에 없는 혹은 선택한 자신의 색깔과 방법을 사랑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 그리고 나...
매번 사진을 찍을 때 마다 오른쪽 왼쪽으로 나무나 튼튼한 어떤 것을 프레임 삼아 풍경을 사진속에 담고 있는 나를 본다.
내 무의식 저편엔 아마도 누군가에게 기대 살고 싶은 그런 맘이 있는 것일까?
그래서 이렇게 나무를 감고 타고 올라가면서 살아가고 있는 인동덩쿨의 모습을 보면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일까고 피식 웃어본다. 쓸쓸한 그리움이 업습한다.
이곳까지 와서 우울모드,ㅋㅋㅋ 얼른 마음을 챙기고 요 이쁜것들에게 마음을 주어본다.
셔터를 누르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있다보니 내 30대 초반, 80년대 말의 내가 다가온다. 처음으로 돈다운 돈을 벌어 제일 먼저 샀던 것이 니콘 FM2 수동 카메라였다. 그때 내 기본급이 500불, 40만원이었는데 싱가폴 여행가서 전자상가에서 1500불, 1,200,000원짜리 카메라(렌즈포함)를 덜컥사고 얼마나 가슴이 벅찼던지... 내 월급의 3배짜리를 거침없이 장만했던 그 열정은 아마도 지금도 내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못하나보다. 요즈음 오면서 가면서 거침없이 들여대는 렌즈를 통한 내 세상, 내가 꿈꾸는, 내가 바라다보는 세상, 나만의 왜곡된 세상에 사는 즐거움을 뭐라 말할까? 지금 쓰고 있는 이 디지털카메라(10년 전쯤 50여만원)로 작고 그러나 아주 이쁜 것들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영, 초점이 안맞고 흐릿흐릿, 맨날 렌즈타령만 하게 된다.
긍게, 얼른 돈 벌어 아, 하고 싶은것이 너무 많다. 카메라도 사야하고, 캠핑용품도 사야하고, 캠핑카까지...
요원한 내 꿈들...
혼자서 쉬엄 쉬엄 온갖 해찰을 하며 걷는 수변길, 뜨리리링, 전화가 울린다.
"한시에 식사할 수 있나요?"
"제가 예식장엘 갔다와야하니 한시반 쯤엔 어떠셔요?"
"그럼, 그때 갈께요."
내 현실은 역쉬 주방아줌마, 마음이 또다시 급해지고 후다다닥 내 일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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