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죽산 ‘책밭 오느른’에서
요즈음 효녀 여동생 덕분에 아흔이 된 엄마의 팔짱을 끼고 이곳저곳 봄나들이를 다닌다.
어제는 김제 금구 예촌에서 국수를 먹고 김제 죽산을 향했다. 하늘은 맑았고 논 위로 바람이 낮게 흘렀다. 그 바람 끝에 ‘책밭 오느른’이 있었다.
옛 농가를 리모델링 한 듯 흙과 나무로 지어진 작은 집, 문 옆의 녹슨 철판에는 ‘책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밥처럼 책을 나누는 곳이 아니라, 흙처럼 책을 심는 곳. 이름부터 이곳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었다.
문을 열자, 세상이 종이와 잉크로 가득했다. 천장과 벽, 기둥까지 빽빽하게 붙은 손 글씨들. 누군가의 하루, 다짐, 고백이 종이 위에 눌러 앉아 있었다. 그 수많은 문장들이 서로 기대어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처럼 보였다. 마치 흙이 꽃이 되는 순간처럼, 이곳에서는 말이 풍경이 되고 마음이 공간이 되었다.
책밭의 방들은 작고 따뜻했다. 오래된 책들이 나무 선반 위에 줄지어 앉아 있었고, 창가에는 두 개의 의자와 작은 테이블이 있었다. 햇살이 들어와 책장을 비추면 글자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창가에는 말린 식물과 오래된 재봉틀, 그리고 누군가의 손길이 남은 찻잔이 있었고 창밖으로 보리밭이 펼쳐진 김제 평야가 보였다.
벽에 붙은 포스터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이곳이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삶을 묻는 공간이라는 걸 알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서로의 이야기를 남기는 일. 그것이 오느른의 방식이었다.
엄마와 팔짱을 끼고 천천히 흙 위에 발자국을 남겼다. 흙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재료다. 어제의 오느른은 그런 흙 위에서 피어난 문장 같은 곳이었다.
김제의 바람과 햇살이 너른 초록색 들판을 맴돌아 우리 곁을 스쳤다.















#책밭오느른 #김제여행 #죽산마을 #책공간 #여행에세이 #봄나들이 #엄마와함께 #평야풍경 #책과삶 #문학여행 #작은서점 #삶을묻는공간 #여행기록 #책밭여행 #전라북도여행 #책과사람 #흙처럼책을심다 #책밭풍경 #여행산문 #책밭일기 #월명서가 #lettersfromatraveler
'여행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부안 '달빛윤슬' (0) | 2026.04.14 |
|---|---|
| 공감 선유를 거닐며^^ (0) | 2026.04.13 |
| 부안 수성당 (0) | 2026.04.07 |
| 하동 구재봉 자연휴양림 (0) | 2025.11.12 |
| 옥구향교 (0) | 2025.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