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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현대철학자들 개관

★현대의 스토이시즘★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6. 4. 4.

★현대의 스토이시즘★

나는 오랫동안, 적어도 80년도 이전 여고 시절부터 내 인생의 책으로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붙들고 살아왔다. 그 어린 시절은 철학이란 단어에 마냥 설렜던 시절이었고, 넓고 깊게 알지 못했지만 명상록의 문장들을 하나하나 마음에 새기며 내 인생의 지침서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하던 시절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어쩌면 내가 조금은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명상록 속 글들의 힘이 아니었을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제 이순을 넘은 시점에 다시 철학사를 들여다보고 철학의 흐름을 이해하면서 왜 스토아 학파의 출현이 시대적 부름이었는지 깨닫게 되었고, 현재에도 그 흐름이 면면히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만 하다.

 

스토이시즘은 기원전 3세기 제논이 시작한 스토아 철학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간이 외부의 혼란과 운명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내적 태도와 마음가짐은 스스로 다스릴 수 있다는 가르침을 핵심으로 한다. 감정의 동요를 넘어 평정심을 유지하고, 자연과 이성의 질서에 따라 사는 삶을 강조하는 철학이다.

 

여기서 그동안 내가 모르고 있었던,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는 스토이즘 운동에 대해 잠깐 살펴보려 한다.

 

현대 스토이시즘 운동은 크게 두 방향으로 살아 있다. 대중적 확산과 학술적 엄밀성. 그리고 이 두 방향은 한 사람씩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라이언 홀리데이(Ryan Holiday, 1987~ )의 출발점은 철학이 아니었다. 그는 미국의 마케팅 전략가로 경력을 시작했고, 미디어 조작과 허위 정보 유포를 서슴지 않는 홍보 전문가였다.

 

그 자신이 쓴 첫 책 『거짓말쟁이를 믿어라: 미디어 조작자의 고백』은 자신의 비윤리적 경력을 폭로한 책이었다. 그런 그가 스토아 철학에서 전환점을 찾았다는 것 자체가 스토아적 역설이다. 그는 대학 중퇴자로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말한 '펜과 잉크의 철학자', 즉 독학으로 철학을 탐구하는 사람임을 자처한다.

 

주요 저작은 역경을 기회로 전환하는 방법을 다룬 『장애물이 곧 길이다』(2014), 에고의 위험성을 분석한 『에고라는 적』(2016), 366개의 일일 명상을 담은 『데일리 스토익』(2016), 그리고 고요함의 가치를 말한 『고요함이 핵심이다』(2019)가 있다.

 

이 책들은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수백만 부가 팔렸다. 그의 방식은 명확하다. 팟캐스트, 소셜 미디어, 오디오북 등 현대인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모든 채널을 통해 스토아 철학을 전파했다. 장거리 트럭 운전사가 호주를 가로질러 달리면서 에픽테토스를 듣는 것, 그것이 그가 원하는 스토아의 모습이다.

 

그는 말한다.

 

“아마도 역사상 가장 큰 스토아 공동체가 지금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나 비판이 따른다. 가디언의 한 비평가는 그의 책이 고대 철학의 일관된 맥락을 전달하기보다 인용구와 개념을 자유롭게 뽑아 현대 사례에 무작위로 붙인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비평가는 그가 스토아를 야망 있는 21세기 자기계발 독자들을 위한 격언과 일화로 축소시킨다고 비판했다. 이 비판은 정당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질문을 남긴다. 철학이 강단 밖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느 정도의 단순화가 불가피한 것 아닌가. 제논도 회랑에서 시민들에게 철학을 열어놓았다. 홀리데이는 그 회랑을 인스타그램으로 옮겨놓은 셈이다.

 

마시모 피글리우치(Massimo Pigliucci, 1954~ )의 출발점은 정반대다. 그는 뉴욕 시립대학 철학 교수로, 전공은 진화생물학과 과학철학이다. 그는 신무신론에 짜증을 느꼈고, 불교는 너무 신비주의적이었으며, 세속적 인본주의는 과학에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보았다. 그러다 스토아 철학에서 이성적이고 과학 친화적이면서도 영적 차원을 품은 실용적 철학을 발견했다.

 

그의 대표작 『스토아주의자가 되는 방법』(2017)의 구조가 독특하다. 에픽테토스와의 상상적 대화 형식으로 쓰였다. 독자는 피글리우치와 함께 에픽테토스를 동시대의 대화 상대로 만난다. 이 형식 자체가 스토아적이다. 고대의 텍스트를 박물관에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질문 앞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는 스토아를 단순히 복원하지 않고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업데이트하려 한다. 예컨대 ‘통제의 이분법’은 스토아의 핵심 개념이지만, 현대 신경과학은 우리의 판단이 스토아가 상정한 것보다 훨씬 덜 통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피글리우치는 이 불일치를 솔직하게 직면하고, 스토아를 수정 가능한 열린 체계로 본다. 스토아는 신앙이 아니라 이성에 기반하기 때문에, 과학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면 그에 맞게 조정될 수 있다는 것이 그가 스토아를 선택한 핵심 이유였다.

 

홀리데이는 스토아를 삶의 도구로 만들었고, 피글리우치는 스토아를 삶의 언어로 만들었다. 도구는 쓰기 편하지만 닳는다. 언어는 배우기 어렵지만 더 깊은 곳을 말한다.

 

현대 스토이시즘 운동은 이 두 방향의 긴장 속에서 살아 있다. 그리고 그 긴장 자체가, 철학은 삶 속에서 울려야 한다고 말했던 제논의 질문을 아직 끝내지 않았다는 증거다.

 

스토아는 위기의 철학이다. 혼란한 시대마다 인간은 이 철학을 다시 집어 들었다. 기원전 3세기의 회랑에서 시작된 그 목소리가, 오늘날 팟캐스트와 학술서라는 전혀 다른 두 형태로 동시에 울리고 있다는 것. 그것이 2300년의 생명력을 설명한다.

 

여고 시절, 철학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뛰며 『명상록』의 문장을 따라가던 그때의 나와, 지금 이순을 넘어서 다시 철학사를 들여다보는 나 사이에는 긴 세월이 놓여 있다. 그러나 그 세월을 관통해 흐르는 것은 한 가지다. 혼란 속에서도 마음을 붙잡아 주는 문장, 시대마다 다른 모습으로 되살아나는 스토아의 목소리다.

 

오늘날 누군가는 SNS 속 짧은 격언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학술서의 정밀한 논증으로 스토아를 만나고 있다. 나에게는 『명상록』의 문장이 그 역할을 했듯, 지금의 세대에게는 다른 형식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그 철학이 여전히 인간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 연속성 속에서 위안을 얻는다. 철학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이어지며 다시금 내 삶을 비추어 주고 있다.

 

새벽녘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빗방울 소리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막 꽃망울을 터트린 여린 벚꽃잎들이 생각났다. 좀 춥지 않을까, 옹송거리며 떨고 있을 것들에 마음이 쓰였다. 그러나 너희들도 이 봄비를 견디면 더 활짝, 너의 망울들을 맘껏 세상에 펼치겠지. 그런 위로가 찾아왔다. 바로 내 마음의 흐름이었다. 철학이 내게 가르쳐준 평정심은 이렇게 계절의 리듬 속에서도 다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삶은 언제나 불안과 위기의 그림자를 드리우지만, 동시에 꽃망울처럼 터져 나오는 희망을 품고 있다. 철학은 그 희망을 붙잡아 주는 언어이고, 계절은 그 희망을 보여주는 무대다. 나는 오늘도 이 작은 리듬 속에서 삶을 예찬한다. 혼란 속에서도 피어나는 꽃처럼, 우리의 하루도 견디고 나면 더 깊고 넓게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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