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왔나, 정말로?
서늘함이 스며든 새벽 공기에
문득
사랑을 말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란!
내 사랑은 어떤 얼굴이어야 할까?
묻고, 또 다시 묻는다.
하지만
답이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렇게 묻고 사유하고
다시 묻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마치 그것이
사랑에 대한
나의 가장 진실한 자세인 것처럼,
나의 가장 아름다운 의무인 것처럼.
가을 바람이
낙엽을 흔들듯
내 질문들도
끝없이 떨어지고
또 피어나겠다.
『그림자 되어』
나는 그림자가 되어
그의 등에 찰싹 붙는다.
그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그가 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나는 그의 등에 업혀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그의 발걸음에 맞춰 흔들리고,
그의 숨결에 따라 일렁이며,
그의 웃음에 함께 떨리고,
그의 한숨에 함께 무너진다.
때로는 아파서
눈물이 흐를 날도 있겠지만,
때로는 기쁨에
온몸이 빛날 날도 있겠지.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웃을 날이 더 많을 것이라고.
행복한 순간들이
아픈 기억들을 덮어줄 것이라고.
해가 기울어도,
밤이 깊어져도,
나는 그 곁에서
사라지지 않는
그림자로 남기를!!!
21세기, 랭보의 사랑 재발명론을 다시 묻다.
아르튀르 랭보가 『지옥에서의 한 철』에서 던진 “사랑은 재발명되어야 한다”는 선언은 19세기 말 부르주아 사회의 경직된 사랑 개념에 대한 강렬한 도전이었다. 그로부터 150여 년이 지난 21세기, 우리는 다시 한번 사랑의 재발명이라는 과제 앞에 서 있다. 다만 이번에는 부르주아적 관습이 아니라 디지털 혁명과 개인주의 문화, 그리고 자본주의적 소비 논리가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사랑의 위기 앞에서 말이다.
랭보가 비판한 19세기의 “제도화된 사랑”은 오늘날 더욱 정교하고 은밀한 형태로 진화했다. 현대의 사랑은 우선 디지털 매개의 감옥에 갇혀 있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랑은 점점 더 가시적이고 수치화된 형태로 변모했다. '좋아요' 개수로 사랑의 깊이를 측정하고, 프로필 사진으로 상대를 판단하며, 메시지의 즉답 여부로 관심도를 가늠한다. 이는 랭보가 말한 “어리석음이나 이기심”의 21세기 버전이다. 진정한 만남과 교감 대신, 우리는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최적의 매치'를 찾아 헤맨다.
동시에 현대 사랑은 소비주의적 로맨스의 감옥에도 갇혀 있다. 현대 사랑은 끊임없는 소비 행위로 포장된다.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데이, 기념일마다 반복되는 의례적 선물 교환, 인스타그램에 올릴 '완벽한' 데이트 코스 연출. 사랑은 상품이 되었고, 연인은 소비자가 되었다. 이런 사랑에서 진정한 감정의 교류는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현대인들은 사랑조차 효율적으로 관리하려 한다. 연애 앱의 필터링 시스템, '스펙'에 따른 상대 선택, 투자 대비 수익을 계산하는 연애관. 이는 사랑의 신비와 우연성, 그리고 불합리한 아름다움을 제거해버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랑을 재발명해야 할까? 랭보의 정신을 이어받되, 21세기적 맥락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 현존하는 사랑의 회복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것, 메시지 대신 직접 만나 대화하는 것, SNS에 올리기 위한 사진 촬영 대신 그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는 것. 이는 단순한 복고주의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에 더욱 소중해진 인간적 접촉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일이다.
현존하는 사랑은 또한 느린 사랑을 의미한다. 즉석에서 판단하고 스와이프로 선택하는 속도의 논리를 거부하고, 상대를 천천히 알아가는 과정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는 현대 사회의 속도 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다. 소셜미디어 시대는 우리에게 완벽한 자아를 연출하도록 강요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서로의 불완전함과 상처를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 자신의 약점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용기, 상대의 결함을 포용하는 관대함이 필요하다.
이는 또한 실패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모든 관계가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때로는 아름답게 끝날 수 있는 사랑,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서로를 성장시키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알고리즘은 우리와 유사한 사람들을 추천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종종 예상치 못한 차이에서 피어난다. 다른 배경, 다른 가치관, 다른 꿈을 가진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경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는 국적, 종교, 계층, 성별, 성적 지향의 벽을 넘어서는 사랑을 통해 우리가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재발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21세기의 사랑은 두 사람만의 폐쇄적 관계를 넘어서야 한다. 우리의 사랑이 다른 생명체들, 자연환경, 미래 세대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의식이 필요하다. 이는 소비주의적 사랑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다. 물질적 과시보다는 정신적 교감을, 일회적 경험보다는 지속적 성장을, 개인적 만족보다는 공동체적 의미를 추구하는 사랑이다.
랭보가 시에서 새로운 언어를 창조했듯이, 21세기의 사랑도 새로운 언어를 필요로 한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표현하고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을 발견하는 것이다. 특히 공간과 거리에 대한 근본적 재 사유가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물리적 근접성을 사랑의 강도와 동일시해 왔지만, 진정한 사랑의 재발명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뒤집는 데서 시작된다. 때로는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으면서도 심리적으로는 멀어질 수 있고, 반대로 공간적으로는 떨어져 있으면서도 영혼의 깊은 층위에서는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는 개인적 공간과 공유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요구한다. 전통적인 사랑은 '우리'라는 공유 공간의 확장을 통해 '나'라는 개별 공간을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재발명된 사랑은 개별성의 공간을 보존하면서도 공유의 공간을 창조하는 역설적 예술이다. 두 사람이 같은 방에 있으면서도 각자의 고유한 내면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자유,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유. 이런 '함께하는 고독'과 '고독한 공유'야말로 현대적 사랑의 새로운 형태일 것이다.
언어와 소통에서도 혁신적 전환이 필요하다. 끊임없는 소통을 강요하는 시대에, 침묵의 적극적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 침묵은 단순한 말의 부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완전한 소통의 형태가 될 수 있다. 상대방과 함께 침묵 속에 머물 수 있는 능력,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깊이. 이는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소통 차원을 연다.
더 나아가 우리는 감정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들을 개발해야 한다. 언어로는 담아낼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의 결들을 전달하는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함께 같은 책을 읽되 각자 다른 속도로 읽으면서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로 소통하는 것, 상대방을 위해 준비한 음악을 들으면서 그 선율 속에 숨어 있는 마음을 읽어내는 것, 혹은 함께 요리하면서 재료를 다루는 손길을 통해 서로의 감정을 느끼는 것. 이러한 비언어적 소통의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사랑은 더욱 풍성하고 다층적인 경험이 될 수 있다.
가상 현실과 원격 소통이 일상화된 시대에, 직접적인 신체 접촉의 소중함을 재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포옹, 손잡기, 함께 걷기 같은 단순한 행위들이 가진 깊은 의미를 되새기되, 이를 의무적 행위가 아닌 자발적 선택으로 만드는 것이다.
랭보의 “사랑은 재발명되어야 한다”는 선언은 단순한 개인적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변혁의 과제였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사랑의 재발명은 개인적 행복을 넘어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디지털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새로운 소외와 분열 속에서, 진정한 사랑의 재발명은 인간성 회복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효율성과 생산성의 논리에 맞서 느림과 깊이를 추구하고, 개인주의적 성공에 맞서 관계의 가치를 옹호하며, 소비주의적 욕망에 맞서 정신적 풍요로움을 선택하는 것이다.
랭보가 19세기 말 부르주아 사회에 던진 도전장처럼, 우리도 21세기의 새로운 관습과 편견에 맞서는 사랑의 혁명가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랭보의 정신을 진정으로 계승하는 길이며, 사랑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사랑의 재발명은 결국 인간다움의 재발명이다.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행위로서의 사랑을 되찾는 것. 그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인지도 모른다.
#아르튀르랭보 #지옥에서의한철 #사랑재발명론 #철학에세이 #문학비평 #19세기문학 #현대철학 #사랑철학 #디지털시대 #소셜미디어 #스마트폰중독 #알고리즘 #소비주의 #자본주의비판 #개인주의문화 #현대사회비판 #lettersfromatraveler
'철학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평등한 재산 분배에 대한 철학적 고찰 (0) | 2025.09.26 |
|---|---|
| 안락사에 대한 철학적 고찰 (0) | 2025.09.23 |
| 자유와 평등은 어떻게 성취될 수 있는가? (0) | 2025.09.22 |
| 세 가지 윤리 이론으로 탐색하는 옳고 그름의 경계 (0) | 2025.09.21 |
| 이모티비즘으로 본 ‘옳고 그름’의 철학 (0) | 2025.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