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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세계 문학사와 지정학: 권력의 지형 위에 새겨진 언어의 궤적>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5. 6. 9.

 

 

 

 

 

문학연구방법론

 

<세계 문학사와 지정학: 권력의 지형 위에 새겨진 언어의 궤적>

 

1. 개관

세계 문학사와 지정학(geopolitics)은 겉보기에 서로 다른 학문 영역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문학은 언제나 구체적인 장소와 시대, 권력 구조 안에서 생산되고 소비되어 왔으며, 그 내부에는 세계 질서의 흐름, 지역 간 위계 관계, 이념의 충돌과 같은 지정학적 요소들이 깊이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문학사는 단지 언어 예술의 변천사이자 양식의 진화 과정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권력의 이동, 경계의 재편, 그리고 문화적 충돌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은 문학과 지정학이 역사적 흐름과 지역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맞물려 왔는지를 시대별로 정리한 것이다.

고대 문명기에는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 중국 등 주요 문명권에서 서사시와 종교 문헌이 중심을 이루었다. 길가메시 서사시, 리그베다, 주역등은 단지 신화와 종교의 전달 매체에 그치지 않고, 그 문명을 지탱하던 신정 체계, 농경과 제의, 지리적 고립과 교역로의 변동 속에서 태어난 세계관의 문학적 표현이었다. 고대의 문학은 곧 제국의 통치와 사상의 확산을 위한 수단이었으며, 언어의 경계는 곧 문화 권력의 경계를 의미하였다.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제국기의 문학은 문명의 교차와 팽창을 배경으로 한다. 고대 그리스의 시와 희곡, 철학은 로마 제국에 의해 라틴어로 수용되며 새로운 문학 양식으로 재구성되었다. 호메로스, 소포클레스,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 등의 문학은 당대의 문화 정치 중심지인 지중해를 매개로 하여 교류되었고, 이러한 해양지정학적 공간은 문명의 확산과 사유의 전파를 가속화하는 통로가 되었다. 문학은 곧 제국의 정신을 전파하는 매개로 기능하였다.

중세에 들어서며 유럽에서는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라틴어 문학이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문학은 성경 주석, 성인전, 종교극 등 신학적 질서 속에서 생산되었다. 동시에 이슬람 세계는 아라비아 반도에서부터 북아프리카, 스페인까지 확산되며 아라비안 나이트와 같은 서사문학, 페르시아 시 등 독자적인 문학 전통을 발전시켰다. 이슬람 문명의 확산과 십자군 전쟁 등의 지정학적 충돌은 서로의 문학에 영향을 미쳤으며, 유럽 기사문학 속에는 이슬람에 대한 동경과 공포가 복합적으로 드러났다.

르네상스에서 계몽주의 시기에 이르기까지 문학은 다시 인간 중심의 사유로 회귀하면서, 동시에 유럽 중심의 제국주의 담론을 내면화하기 시작하였다. 인쇄술과 대항해 시대는 문자와 지식의 세계화, 나아가 유럽 언어 중심의 문화 확산을 가능하게 했다.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괴테, 몽테뉴 등의 작품은 단지 문학적 창작물이 아니라, 국가의 정신과 시민 정체성을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 시기부터 오리엔탈리즘 문학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타자에 대한 상상은 유럽 제국주의의 문화적 기반이 되었다.

19세기는 본격적인 제국주의의 시기였으며, 문학 또한 이와 맞물려 민족 문학의 형태로 제도화되었다. 유럽 제국의 확장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을 미쳤고, 이에 따라 주변 지역의 문학은 두 갈래로 나뉘게 되었다. 하나는 제국의 시선을 내면화하여 문명을 수용하는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지배 담론을 해체하고 저항하는 식민지 문학의 흐름이다. 타고르(인도), 루벤 다리오(라틴아메리카) 등의 작가들은 민족 정체성과 문화적 자율성을 문학적으로 구현하며, 제국주의적 언어 질서에 도전하였다.

20세기는 문학이 지정학적 격변과 이념 대립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시기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핵무기 투하, 대규모 이주와 난민의 발생 등은 인간의 존엄과 존재 조건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촉발하였고, 이는 문학의 내용과 형식 모두에 커다란 전환을 불러왔다. 조지 오웰, 카뮈, 엘리 위젤, 오에 겐자부로, 황석영 등의 작가는 전쟁과 이념, 폭력과 윤리의 문제를 다루며 불편한 진실을 드러냈다. 냉전기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실존주의·모더니즘 간의 미학적 대립이 존재했으며, 문학은 체제 경쟁의 일환으로도 기능하였다. 동시에 치누아 아체베, 프란츠 파농, 사이다만 후세인과 같은 탈식민 문학의 작가들은 식민지 언어로 식민 체제를 고발하고 해체하는 문학적 전략을 실천하였다.

21세기에는 세계화와 지역화의 긴장이 문학 속에 다층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디아스포라 문학, 포스트식민·젠더·퀴어 문학, 난민·이민자 문학이 부상하면서, 문학은 정체성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경계 위의 주체들을 드러내는 공간이 되었다. 지정학적으로는 중동 분쟁, 기후 위기, 중국-미국 간의 패권 경쟁과 같은 글로벌 이슈들이 문학의 주제와 감각을 재구성하고 있다. 영어권 문학의 헤게모니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제 그것은 비영어권 작가들인 카즈오 이시구로, 첨아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한강 등에 의해 갱신되고 있으며, ‘누가 세계문학을 쓸 것인가에 대한 지정학적 질문이 문학 이론과 비평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문학은 세계지도 위의 권력 분포와 긴밀하게 얽혀 있는 담론적 실체이다. 문학사는 단지 텍스트의 발전사나 예술 양식의 변화사가 아니라, 전쟁과 제국주의, 이념 대립과 저항, 언어와 권력의 비대칭성이 어떻게 인간의 언어와 상상력 속에 침투했는지를 보여주는 문화 지정학의 기록이다. 한 작가가 쓴 한 편의 소설에는 단지 허구적 서사만이 담긴 것이 아니라, 그가 발 딛고 선 땅의 역사적 조건과 사용된 언어의 식민적 맥락, 그리고 제국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긴장과 갈등이 응축되어 있다. 문학은 언제나 특정한 지리적, 정치적, 언어적 위치에서 발생하며, 그 속에는 세계 체제의 권력 지형과 문화적 응답의 방식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따라서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곧, 그 언어가 발화된 장소의 지정학과 역사, 그 속의 침묵과 목소리, 저항과 재현의 궤적을 함께 읽는 일이라 할 수 있다.

 

2. 공산당 선언이후, 문학과 계급투쟁의 지정학적 전환

1848,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본질적으로 계급투쟁의 역사로 규정하였다. 이 선언은 단지 정치경제학의 선언문이 아니라, 이후 문학과 예술의 해석 방식에 깊은 전환을 불러온 사유의 혁명적 기점이었다. 문학은 더 이상 고귀한 개인의 표현이 아닌, 생산 양식의 반영이며, 사회 구조 속 이데올로기의 결정체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마르크스주의 문학이론은 문학을 자율적인 미적 영역으로 보기보다는, 생산 관계와 계급 투쟁의 산물로서 해석하는 역사적 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의 관점을 도입하였다. 작품의 미학적 가치나 주제 의식은 작가의 개인적 영감이 아니라, 사회적 계급의 위치와 이데올로기적 구도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이해되었으며, 문학 텍스트는 그 사회가 숨기고 있는 계급 모순, 노동 소외, 권력의 자연화 과정을 드러내는 해석의 장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유는 러시아의 게오르그 루카치(György Lukács)와 같은 비평가를 중심으로 총체성사실주의의 개념으로 이론화되었으며, 문학은 자본주의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폭로하고, 혁명적 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는 정치적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반면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는 문학을 이데올로기를 재현하지만 그것에 대한 거리두기를 생산하는 구조적 장치로 보았고, 이는 문학이 단지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성찰하고 전복할 수 있는 잠재적 공간임을 시사한다.

19세기 후반 이후, 본격적으로 제국주의가 세계 각지로 확산되면서 문학은 더 이상 국가 내부의 내면적 사유의 반영이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형성되고 소비되는 담론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제국은 군사력과 정치력만으로 팽창하지 않았으며, 문화와 언어, 상상력의 방식까지 장악하고자 했다. 이때 문학은 민족주의의 정당화 수단,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을 정착시키는 장치, 그리고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하는 문화적 도구로 활용되었다.

특히 영국, 프랑스 등 제국 중심부의 문학은 자국의 정체성을 고양하는 동시에 타자와 주변부에 대한 서사를 생산하며, ‘문명화 사명(civilizing mission)’이라는 제국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예컨대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은 서구 중심의 시선으로 식민지를 그리면서도, 그 안에서 문명과 야만의 경계를 전도하는 서사적 모순을 품고 있어, 이후 포스트식민주의 비평의 중요한 대상이 되었다.

한편, 이러한 문학 권력의 구조 안에서도 식민지와 피지배 지역의 작가들은 저항적 언어를 통해 자신의 역사와 목소리를 되찾는 시도를 펼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종종 제국의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언어 안에서 식민 체제의 모순을 폭로하고, 주변부의 경험을 중심으로 재배열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이 과정에서 문학은 더 이상 중심과 주변의 단순한 위계 구조가 아니라, 언어와 장소, 계급과 인종이 교차하는 지정학적 전쟁터로 전환되었다.

결과적으로 공산당 선언이후의 문학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구조적 인식과 이데올로기 비판, 제국주의 질서에 대한 저항과 탈주, 그리고 계급적 의식의 문학적 형상화를 중심으로 재구성되었으며, 이는 20세기 문학사 전반에 걸쳐 가장 강력한 비평적 프레임으로 작용하게 된다. 문학은 더 이상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계급과 제국, 중심과 주변, 지배와 저항 사이에서 언어로 싸우는 지정학적 실천이 되었다.

 

3. 세계문학의 구조적 불균형과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

이마누엘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은 자본주의 세계를 단일한 근대 세계체제로 파악하고, 이 체제 안에서 국가와 지역이 수행하는 경제적 역할의 차이에 따라 중심부’, ‘준주변부’, ‘주변부로 나뉜다고 주장하였다. 월러스틴은 이 구조가 단순한 경제 분업을 넘어, 정치적, 문화적 위계까지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문학과 예술의 영역에 깊은 함의를 제공한다.

3-1. 중심부, 주변부, 그리고 문학의 위계화된세계

중심부(core): 고도의 자본 축적과 문화적 권위를 가진 지역. : 프랑스, 영국, 독일, 이후 미국.

문학 생산의 중심지이며, 세계문학의 정전(canon)’이 형성되는 공간이다.

여기서 생산된 문학은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되며, 번역·교육·비평의 중심 언어(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를 통해 세계로 확산된다.

준주변부(semi-periphery): 경제적 종속과 자율 사이에 놓인 지역. : 일본, 한국, 브라질 등.

중심부 문학을 수용·번역하면서 동시에 자국 문학을 국민문학으로 제도화하려는 이중적 역할을 수행한다.

문학은 근대 국가 형성과 동일시되며, ‘모방과 차이의 경계에서 고유한 정체성을 구축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주변부(periphery): 노동력과 자원을 제공하며, 문화적 목소리가 소외되기 쉬운 지역. : 아프리카 일부, 동남아, 라틴아메리카의 저개발국.

문학 생산 조건 자체가 열악하며, 주변부 작가들은 종종 중심부 언어(: 영어, 프랑스어)로 글을 쓰거나, 중심부에서 출판되었을 때에만 인정받는 이중구조 속에 놓인다.

주변부 문학은 중심부 시각에서는 민속적’, ‘정치적으로 환원되거나, ‘이국적인 타자화의 대상이 되기 쉽다.

3-2. 번역과 출판의 지정학 문화 자본의 흐름

세계문학은 단순히 여러 언어의 텍스트가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누가 누구를 번역하는가, 어떤 언어가 중개 언어로 기능하는가, 어디에서 출판되고 비평되는가라는 문학적 지정학의 문제이다. 중심부 언어(영어, 프랑스어 등)로 쓰인 작품은 다수의 언어로 번역되며, 세계문학의 공통 화폐처럼 작용한다. 반면, 주변부 언어로 쓰인 작품은 중심부 언어로 번역되기 전까지 문학적 가시성 자체를 획득하기 어렵다.

번역 과정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문화적 필터링과 선택, 편집 이데올로기, 시장성 판단 등이 개입된다.

예를 들어,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중심부 언어(영어)로 번역되며 맨부커상을 받기 전까지는, 한국 문학 전체가 세계문학의 주변부로 인식되었다고 할 수 있다.

3-3. 문학 형식의 세계화와 불균등 발전

월러스틴의 이론은 프랑코 모레티의 형식론적 분석과도 연결된다. 모레티는 소설, , 비극, 리얼리즘 등의 문학 장르들이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확산되며, 지역적 현실에 따라 불균등하게 재창조되는 현상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확산은 단순한 수용이 아니라, 식민지적 상황, 민족주의 운동, 계급 갈등, 검열 체계 등에 따라 변형된다. 이런 맥락에서 세계문학의 구조는 단선적 보편성의 집합이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체제 속에서 불균형적으로 배치된 목소리들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3-4. ‘주변의 저항과 하위의 언어

중심-주변 구도는 단지 억압의 구조만이 아니라, 저항과 변혁의 가능성을 지닌 문학적 동역학을 낳는다. 주변부 작가들은 자국어 또는 토착적 형식을 통해 중심부의 미학을 해체하거나 전복하는 전략을 사용하며, 포스트콜로니얼 문학, 민중문학, 페미니즘 문학, 탈이성적 실험문학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문학은 주변부에서 단순한 이야기 생산이 아니라, 세계 구조에 대한 질문과 전복을 감행하는 언어 실천으로 기능한다. 이는 문학이 단지 문화 콘텐츠가 아니라, 지정학적 상상력의 전장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론: 세계문학은 평등하지 않으며, 지정학적 힘의 장 안에 존재한다

이마누엘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은 문학을 문화적 자유의 산물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세계 구조 속의 한 단면으로 파악하게 만든다. 문학의 위치, 언어, 유통 경로, 수용 양식은 모두 이 체제의 권력 분포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므로 세계문학은 단일한 보편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정학적 차이에 따라 고르게 들리지 않는 세계의 목소리들로 구성된 불균형한 다성성이라 할 수 있다.

 

4. 가라타니 고진,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과 지정학적 상상력

가라타니 고진은 그의 대표작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1980)을 통해, 일본의 근대문학이 단순한 문학사적 양식의 변화가 아니라, 국민국가 형성과 문학 제도의 긴밀한 결합, 나아가 서구 중심의 세계체제 속에서 준주변부로 자리매김된 지정학적 위치의 산물임을 날카롭게 진단하였다. 그는 일본 문학의 근대성은 서구의 그것을 단순히 모방한 결과가 아니라, 주체와 내면이라는 개념 자체를 발명함으로써 구성된 이념적 장치라고 주장하였다.

그가 제시한 핵심 개념은 바로 내면성의 발명’(The Invention of Interiority)이다. 서구의 근대문학이 종교 개혁과 개인주의, 계몽주의를 바탕으로 자율적·비판적 주체의 형성 과정과 함께 문학적 내면을 구축해왔다면, 일본의 경우는 메이지 유신 이후 국민국가를 창출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기획으로 내면성이 제도적으로 도입되었다는 것이다. , 서구의 주체는 역사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지만, 일본의 주체는 설계되었으며, 그것은 권력에 의해 발명되고 통제되는 내면성이었다.

이때 문학은 단지 창작의 장르가 아니라, 내면을 규율하고, 국가와 국민의 동일성을 생산하는 제도적 장치로 기능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국어교육은 말하기-듣기-읽기-쓰기를 통합된 국민의 언어 능력으로 만들며, 문학 텍스트를 통해 일본어로 사유하는 국민을 형성하고자 하였다. 문학은 이데올로기의 매개로 기능했으며, 이 과정에서 근대문학은 곧 국민문학과 동일시되었다.

가라타니는 이 구조를 분석하며, 일본이 처한 지정학적 이중성, 즉 제국의 중심인 동시에 서구 중심부에 편입되지 못한 아시아 국가라는 모순된 위치를 강조한다. 일본은 서구의 식민지 문명을 모방하면서도 아시아의 다른 지역을 식민화하는 제국으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서구의 시선에서는 여전히 아시아의 타자로 남아 있었으며, 이로 인해 일본의 문학은 모방하면서 동시에 독자성을 강변하는이중의 긴장 속에서 구성되었다. 이 모순은 문학 양식뿐 아니라, 작가의 자의식, 독자의 감정 구조, 문학 제도의 형성과 운영 방식까지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은 단지 일본의 문학사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체제 속 준주변부 국가가 자신의 문학과 주체성을 어떻게 구성하는가를 보여주는 모델로 기능한다. 일본은 중심부의 언어와 형식을 내면화하면서, 그것을 토착화하려는 시도를 문학을 통해 수행하였다. 그리고 이 문학은 단지 미학적 실험이 아니라, 정치적-경제적-제도적 통합체로서의 국민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가라타니는 이러한 문제를 문학 내면의 분석에만 머무르지 않고, 문학을 가능하게 한 제도로서의 장(field), 다시 말해 출판 시장, 교육 기관, 언론 매체, 문학비평의 구조까지를 포괄하는 정치경제학적 맥락 속에서 분석하였다. 그는 문학이 자율적인 예술이 아니라, 국가 기획과 시장 구조, 그리고 언어 정치의 교차점에서 구성된 역사적 형식임을 밝혔다.

이와 같은 그의 분석은, 오늘날 한국, 중국, 인도, 중남미 등 비서구권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가라타니는 일본 문학의 특수성을 말하고 있지만, 동시에 모든 비서구권 문학의 근대성이 서구 중심부와의 비대칭적 관계 속에서 어떻게 발명되고 제도화되었는가를 사유하게 만든다. 결국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은 문학을 통해 국가가 국민을 상상하는 방식, 그리고 그 상상이 세계체제의 위계 속에서 어떻게 결정되고 저항되는가를 밝힌 명저라 할 수 있다.

 

5. 프랑코 모레티의 세계문학론 문학의 지도 그리기

프랑코 모레티는 세계문학을 향하여(Conjectures on World Literature)를 통해 기존의 세계문학 연구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는 전통적인 비교문학의 방법, 즉 소수의 정전을 심층적으로 비교하고 분석하는 방식은 세계문학이라는 방대한 범주를 다루기엔 지나치게 제한적이고 서구 중심적이라고 비판하였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그는 비교가 아니라 거리 두기(distant reading)’를 제안하며, 세계문학을 읽지 않고, 읽는 것보다 더 멀리서 관찰하고 추론해야 한다는 도발적인 명제를 내세웠다.

모레티가 말하는 거리 두기란 개별 작품의 해석에서 벗어나, 문학 형식의 분포와 변이, 흐름과 경로를 통계적·도식적 방식으로 파악하는 방법론이다. 그는 문학을 지도(map), 트리(tree), 물결(wave)과 같은 시각적 모델을 통해 분석하려 하였으며, 이는 문학을 시간과 공간이라는 좌표 위에 놓인 시스템적 구조로 파악하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시도는 문학을 하나의 유기체처럼 보는 유럽 중심의 낭만적 관념에서 벗어나, 문학을 세계 체제 속 지식의 배치도로 읽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다.

모레티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바로 형식의 불균등 발전(uneven development of form)’이다. 그는 유럽 중심부에서 발생한 특정 문학 형식, 특히 소설(novel)이라는 장르가 주변부로 확산되며, 단순히 복제되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 현실, 민족주의 이념, 계급 구조와 정치적 검열 등의 지역적 맥락에 따라 변형되고 재창조된다고 주장한다. 이때 중심부의 형식은 문학적 근대성의 모델로 작용하며, 주변부는 이를 수용하면서도 자국의 현실에 맞는 새로운 서사 구조, 언어 스타일, 서술 전략을 발명해 낸다.

예를 들어, 유럽의 리얼리즘 소설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전혀 다른 문학적 진화 경로를 낳았으며, 동아시아에서는 가족제도, 유교적 질서, 식민지 경험과 결합하면서 혼성적 내면성과 역사적 우회를 특징으로 하는 독자적인 소설 양식이 만들어졌다. 이 과정은 단순한 형식 수입이 아니라, 문학적 충돌과 재배열, 지체와 가속이 동시에 일어나는 지정학적 생산과정이다.

모레티는 이러한 방식으로 문학 형식이 어떻게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이동하며, 이 과정에서 어떻게 세계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수렴되거나 거부되는지를 체계적으로 추적한다. 그는 이때 중요한 것은 '보편성'이 아니라, 다양한 변이들 간의 관계, 차이의 구조, 그리고 그것들이 세계문학 내부에서 어떻게 위계화되는가라고 본다. 중심부 문학은 자주 원형으로 인식되며, 주변부 문학은 변형된 사례로 간주되지만, 실상은 그 변형안에야말로 문학의 정치적 상상력과 지역적 특이성, 나아가 세계문학의 다양성이 가장 치열하게 응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또한 그는 문학의 흐름이 단선적이거나 중심에서 주변으로의 일방적 확산이 아님을 지적하며, 문학은 언제나 세계체제의 권력 관계에 따라 정치적이고 비대칭적인 경로를 가진다는 점에서, 문학 자체가 지정학적 실천의 일부임을 밝힌다. 번역 경로, 출판 네트워크, 독자층의 형성, 문학제도의 수용 방식 모두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경제적·문화적 위계 속에서 구조화되어 있으며, 따라서 세계문학을 이해하려면 문학 형식뿐 아니라 그 형식을 가능케 한 세계 구조를 함께 읽어야 한다는 것이 모레티의 입장이다.

이처럼 프랑코 모레티의 세계문학론은 단지 세계 각지의 문학을 소개하거나, 정전의 수를 늘리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문학을 권력, 공간, 시간의 차원 속에서 구조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이론적 시도이며, 세계문학이라는 개념 자체를 비판적으로 해체하고 다시 사유하려는 비평적 프로젝트이다. 그는 문학을 통해 세계를 읽고자 한 것이 아니라, 문학이라는 체계 자체를 하나의 세계로 읽고자 한 이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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