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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왕수인과 양명학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3. 5. 29.

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시리즈 45

 

 

 

 

왕수인과 양명학

명왕조가 수립(1368)1백여년 후인 1472년 지금의 저장성에 있는 여요에서 명문의 자손으로 태어난 왕수인은 11세 때 개인 교사에게 수업을 듣다가 공부의 목적은 과거 급제에 있다.”는 스승의 말에 아닙니다. 공부는 성인(성인)이 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라고 말해 스승을 당황케 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왕수인의 관심 분야가 다양했던 까닭에 그는 학문에 매진하기로 결심했고 18세에 누일재(累一齎 1422 1491)라는 학자를 만났는데 누일재도 과거 공부로서의 학문을 거부하고 평생 학문을 닦는 한 주자학자였는데 그에게 자극을 받아 왕수인은 본격적으로 주자학을 공부했다.

격물치지의 일환으로 뜰에 서 있는 대나무의 이치를 탐구하고자 7일 동안 꼬박 대나무를 바라보았지만 결국 얻은 것은 없는 채 병이 나서 실망한 그는 주자학 공부에 회의를 품었고 문학, 병법, 도교와 불교 공부 등에 마음을 쏟기 시작했다.

20대 후반에 접어든 그는 명문가 자손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압력 때문에 늦깍이로 과거 공부를 시작해 28세에 급제, 35세가 되던 1506년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다음 해 귀양을 갔다.

유배지인 용장에서 비로소 사상가로서의 틀을 잡았다.

유학이 참된 학문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주자학을 따를 필요는 없다.” 모든 것을 이치()로 파악하는 주자학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고 진정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는 것, 그러므로 대나무를 아무리 바라본들 대나무와 동떨어져 있는 자신의 마음만을 확인하게 즘(心卽理)

용장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후 다시 관리로 등용되어 한동안은 지방관으로 일했는데 그는 근무하는 한편으로 자신의 학술을 가다듬고 제자를 길렀다.

45세부터 약 4년 동안은 어사가 되어 각 지방의 도적을 토벌하는 일을 했는데 일찍이 열중했던 병법 실력을 발휘하여 매번 대승을 거둠.

무너진 향촌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한 여러 제도도 고안해서 시행하며 열 집마다 하나의 단위로 묶어 민방위와 상호 감시를 하도록 하는 십가패법, 일밤 백성을 임시 군졸로 채용하는 민병제, 명나라에서 최초로 시행한 향약 등이 있다.

심가패법은 나중에 중앙 정부에서 정식 채택하여 보갑법이 되었고 향약도 각지에서 뒤따라 실시되었다. 이처럼 행정 처리와 군사 지휘에 바쁜 가운데서도 학술과 교육에도 손을 놓지 않아 대학의 주자학적 해석을 반박하는 고본대학, 자신의 사상을 풀어낸 대표작 전습록, 주희의 사상이 만년에는 많이 바뀌었으며 자신의 양명학은 그 주희 만년의 사상을 계승한 것이라고 주장한 주자만년정론등을 펴냄

 

심즉리와 치양지(致良知)

- 세상의 이치를 직접 궁구하기보다 먼저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고 바로잡음으로써 그곳에서 이치를 밝혀내는 방식, 왕수인은 이것을 마음이 곧 이치이다.(心卽理) 세상에는 마음만이 있으며 마음 없이는 아무런 이치도 없다. ”라고 설명했다.

- 이처럼 마음을 모든 것의 중심에 두었으므로 양명학을 심학(心學)이라고도 함

- 마음의 문제는 사실 주자학에서도 중시했으나 서경의 대우모와 맹자의 사단을 해석하면 서 주희는 사람에게 선을 지향하는 마음과 악을 지향하는 마음이 함께 갖추어져 있으며 이 중에서도 선을 지향하는 마음이 더 근본적이나 욕망 때문에 가리워지기 쉬우므로 수양을 통해 선의 마음을 확줓하고 악의 마음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왕수인은 주희와 동시대인 육구연(陸九淵 1139 1192)의 사상을 본받아 사람의 마음에는 본래 선악이 없다고 보았다.

- 그런데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선택할 때 지()를 사용하는데, 만약 제대로 안다면 사람 은 언제나 선량하게 행동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 어린아이라 해도 어버이를 사랑하고 나쁜 일을 보면 얼굴을 찌푸리는 것은 바로 제대로 된 (良知)를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사람이 악한 일을 하는 것은 나면서부터 있 는 양지를 잊어버리고 어리석은지를 판단해 그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 치지(致知), 곧 치양지(致良知)는 이 본래의 지를 회복하고 마음을 가득 채운 다음 보존하 는 수양법이다.

- 사적인 욕망을 억제하고 선량한 마음을 유지하도록 힘써야 한다는 점에서는 주희와 양명 의 결론이 비슷해 보이나 이를 응용하면 큰 차이가 난다.

- 주자학에서는 마음이 두 개인데 태어날 때부터 개인별로 어느 쪽 마음의 힘이 강한지가 정해진다고 보았고 똑같은 수양을 해도 쉽게 착해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좀처럼 그렇게 못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악한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군자이며 다른 사람의 머리 위에 설 자격을 갖춘 사람이니 따라서 신분의 차이는 어느 정도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 는 것으로 해석 가능했다.

- 양명학에 따르면 마음은 어느 누구나 똑같이 선악이 없고, 양지 또한 태어날 때부터 평등 하게 갖춰진 것이므로 군자가 되는 수양 또한 주자학에서는 오랜 공부와 덕행을 필요로 하 지만, 양명학에서는 마음만 제대로 먹으면 언제라도 가능하니 따로 어려운 책을 읽으며 공 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 그래서 왕수인은 경전은 단지 참고하기 위한 자료이며 경전을 읽는다고 군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라고 했다.

- 이는 신분제가 뚜렷했던 전통사회에서는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할 수도 있는 주장이었다.

- 그래서 이른바 양명좌파라고 불리는 왕수인의 계승자 중 가장 급진적이었던 이지(李贄 1527 1602), 하심은(何心隱 1517 1579), 나여방(羅汝芳 1515 1588) 등은 배움이 많으면 오히려 혼란스러워진다. 배우지 않는 편이 치양지에 유리하다.“ ”글공부를 한다고 성인이 되겠는가? 대장장이가 되든지, 장돌배이가 되든지, 성인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없 다.“ 심지어 내 마음에 악이란 없으니 부귀영화를 욕망하거나 미녀를 욕망한다고 그것이 어찌 잘못이겠는가?“ 등의 주장을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