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62살의 봄
정신을 차려보니
겹복사꽃마저 우수수
지는 것들은 지는 것대로
초록의 것들은 초록의 것대로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는데
아이고나,
난 무슨 욕심이 그렇게 많아
밤샘을 불사했을꼬?
만화방창(萬化方暢)
봄날이 가는 아쉬움을
달랠 길 없어
쉬엄쉬엄 시인의 시집을 넘기며
세월이나 낚아볼거나,
하고 집어 든
올라브 하우게의 시집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불문과 교수님인 임선기님의 중역으로 마주했다.
이 시집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사랑의 점안(點眼)으로 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고 완성된 느낌을 주는 것이 하우게 시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책 90 – 91쪽)
어떻게 해서 낯선 노르웨이의 시인 울라브 하우게를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필사를 하고 보니 기쁨이었지만
그의 시를 더 접하고 싶은데
번역본이 없다.
이중역이 아닌 번역이라면 좋겠지만,
찾다찾다 하우게의 시를 많이 번역한
영국 출신의 작가 Robin Fulton을 알게 되었다.
무조건 저질러놓고 보는 성질에 따라
덥석 그의 번역본을 구했다.
그리고 첫 장의 시를 번역해보았다.
글자 자체만의 번역일 수밖에 없어
그 숨은 뜻을 찾을 수 없다.
Black Crosses에 뭔가 숨은 뜻이 있을까?
셔핑을 해봐도 찾을 길 없어, 그냥.
내 맘대로 번역?
이렇게 읽어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면
나는 비루한 낙관주의자?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렇듯 무모하게 다가가 보면
뭔가 길이 보이더라고,
또 알아?
어느 날
시가 내게로 걸어와
속삭여줄지?
Black Crosses(From Embers in the Ashes/1946)
Black crosses
in white snow
stooped in rain, awry.
Here came the dead
over the thorny moor
with crosses on their shoulders
and laid them by
and went to rest
under each icy tussock
검은 십자가
흰 눈 속에서
비를 맞으며 서 있네
여기 죽은 자들이
가시투성이 황무지를 넘어
어깨 위에 십자가를 지고
얼음 덤불 아래
휴식을 취하려
비스듬히 몸을 눕히려
왔네
The birch(from beneath th crag/1951) 자작나무
birch
in pinewood
- a green banner
when spring is young
But the pine is
dark and sad
the birch
persists
- is at last
a bright blaze.
But the pine is no
less heavy.
Then the birch drops
the yellow leaves
and is left there
cold
with rime
on naked twigs
초록 입을 단
소나무 숲속에
자작나무 한 그루
이른 봄이 왔건만
어둡고 슬픔에 찬 소나무들
마지막까지
밝게 빛나려 한
자작나무지만
우울하기만 한 소나무때문일까
노란 잎을 떨군
나뭇가지에
서리를 얹은 채
추위에 떨고 있네
출판사 제공 책소개
현대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시인 중 한 명인 울라브 하우게(Olav H. Hauge, 1908-1994)는 고향 울빅(Ulvik)에서 평생 정원사로 일하며 400여 편의 시를 쓰고 200여 편의 시를 번역하였다. 그는 매일 노동했으며 가장 좋은 시는 숲에서 쓰였다. 그는 북구의 차가운 조용함 속에서 한 손에 도끼를 든 채 시를 썼다. 그렇게 꿈꾸고 그렇게 존재를 열면서 당시 시의 코드에서 자유롭게 벗어났다.
하우게의 시는 쉽다. 그가 브레히트의 시에 대해 말했듯 그의 시도 “현관에 놓인 나막신처럼 바로 신으면” 된다. 바로 신으면 세계에 숨어 있는 듯한 크랜베리들, 들장미 열매들, 떨어질 듯 개암들, 블랙베리들이 곁에 있음을 보게 되고 알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혼자 있지 않음을, 우리가 이 세계의 형제임을 말하게 된다.
하우게의 말은 피오르의 얼음처럼 신선한 식탁보가 열리면 날아오는 새와 같다. 그 말은 또한 실존적 상황을 건너게 해주는 돌이다. 그에게 말은 무용한 것이 아니다. 바람도 새도 없는 척박한 현실에서 말은 북위 61도의 푸른 사과와 같다.
비 오는 날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서서 날이 어찌될지 내다보며 기다리며 이해하는 시인은 한 그루 나무 같다. 그는 영성의 시인이면서도 언제나 지상의 일을 걱정하는 우리의 시인이다.
시선집의 시들은 시인이자 언어학자인 임선기가 시인의 눈으로 보고, 시인의 마음으로 공감하고, 시인의 말로 번역했다. 400여 편의 시들 중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시들, 우리 독자와 소통이 가능한 시 30편을 골랐다.
하우게의 이 시인선에는 오슬로 출신의 세계적인 사진가 폴 헤르만센(Pal Hermansen)의 노르웨이 풍경 사진 일곱 점이 들어 있다.
The river girl
On bright spring nights
when the sap is rising
in the birches
she tosses her hair
and sing
and dances before the mountain
Now her game is over
with white arms she hugs
the iron grey cliff
in a long
sucking ice – kiss
자작나무 숲에
수액이 올라오는
화사한 봄밤에
그녀는 산 앞에서
머리칼을 날리며
춤추고 노래하네.
이제
회색빛 단단한 절벽에
오랫동안
얼음같이 차가운 키스를 하던
그녀의 시대는 끝났네.
I shake snow off young trees
What is one to do when
it comes down on one,
heave clumsy spears
at the dancing
tumbling flocks,
or hunch shoulders
and take what comes?
In the twilight I bounce
through the garden
with a pole,
to help.
It takes
so little;
a charp tap
with the pole
or a jerk
in a twig – end -
you have the loose snow
all over you while
the apple – tree has sprung
back up
straight agein
They’re so proud, young trees,
they haven’t learned
to stoop
to anything but wind -
and it’s all
just fun
and a thrill
Trees thant have borne crops
can take an armful of snow
and think nothing of it.
어린 나무에서 눈을 털어주다
눈이 내릴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춤추며 떨어지는 눈송이를 향해
또는 어깨를 구부려
서툰 창을 들어 올릴 것인가
별빛이 내리는 밤
나는 막대기를 가지고
정원을 돌며
어린 나무들을 돕기 위해
낙대기의 날카로운 끝으로
나뭇가지에 끝에 매달린
눈을 조금씩 털어낸다.
이제 어린 나무들은
좀 가벼워지고
사과나무가 다시 가지를 뻗어 튀어 오르며
그것들은 자랑스러운 듯
바람 이외에
무엇에도 지지 않겠다는 것을 배웠다.
다만 눈을 맞는 다는 것은
그저
재미있는 놀이일 뿐이라는 것을
이제 나무들은 가지에 한 가득 눈을 이고도
부담 없이,
아무 생각 없다
Thin ice
The fjord had stilled
after the autumn storm.
Now it lay mirroring
spaces and stars,
and the moon spread it
with gold
And one night
the black shining depth
took a covering of steel
- for shelter.
Bore birds
and thrown stones
and let snow lie.
What was land,
what waw water?
Till winter storm
and deep currents
suddenly splintered
the steel surface
and pounded it to mush.
Mind, where is your peace,
your purposes, your ties?
Thin ice
on a sleeping sea.
피요로드는
가을 폭풍후엔
잠잠해졌지
이제 피요료드는
우주와 별과 달빛을
황금색으로 반사하고 있어
그리고 어느 날 밤
그것은 대피소가 되기 위해
강철과 같은 단단함으로
검고도 깊게 빛나지
지루해진 새들과
던져진 자갈들과
눈이 쌓이고
육지인지
물인지 모를 지경이 되지
겨울 폭풍이 오자
갑자기
깊은 해류는
강철 같은 표면이 쪼개지고
으깨져 버렸어
마음아,
너의 평안은 어디에 있니?
너의 목적들과 너의 관계들은
잔잔한 바다 위에
살얼음들은
Beneath the crag
You live beneath a crag,
knowing you do.
But you sow your acre
and make your roofs fast
and let your children play
and you lie down at night
as if is weren’t there.
One summer evening
perhaps
as you lean on your scythe
your eye will skim
across the crag
where they say
the crack is,
and perhaps one night
you’ll lie awake
listening for
a falling stone
And when the rock – slip comes
it will not be a surprise,
But you’ll set to and clear
the green patch
beneath the crag
as life allows.
바위아래
당신은 당신이 아는 바처럼
바위 아래에 살고 있어요.
당신은 땅에 씨를 뿌리고
지붕을 재빠르게 얹으며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하죠
그리고 밤이 되면
당신은 마치 거기에 없는 것처럼
드러눕게 되죠.
어느 여름 저녁
당신은 아마
낫에 기대어
바위를 살펴보노라면
거기 갈라진 틈이 있다는 것을
어느 날 밤 사람들이 말할지도 몰라요.
당신은 돌멩이가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깨어날 수도 있어요.
바위가 살짝 미끄러질 때조차도
놀랄만한 일은 아닐거예요.
그러나 당신은 삶이 허락하는 한
거기 바위 아래애도
녹색의 조각들을(식물이 자란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 차릴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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