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앨범 셀로니어스 몽크의 Brilliant Corner(1957년)은 www.jazzwisemagazine.com이 발표한 세상을 뒤흔든 100개의 재즈 앨범에서 6위에 오른 앨범이다. 레이블 리버사이드를 통해 발매한 몽크의 레이블을 위한 세 번째 앨범으로 이전 두 앨범과 달리 5트랙 중 네 개의 트랙이 몽크의 오리지날로 구성되어 있다.
피아노에 몽크를 비롯하여 녹음당시 클리포드 브라운의 사망 때문에 대체되었던 소니 롤린즈는 막스 로치 5중주단에서 활동했지만 이 녹음 세션에 참가했고 찰리 파커의 후계자라고 호칭되었던 재키 맥린에 필적할 실력을 갖추었던 알토 섹소포니스트 Ernie Henry 는 몽크의 정류 4중주단의 멤버였으며 티격타격할 때를 제외하고는 몽크가 사랑했던 베이스 연주자 페티포드등의 세션이었지만 곡의 어려움과 녹음 당시의 불만으로 마지막 곡은 헨리 대신에 클락 테리와 페티포드 대신에 폴 챔버스가 녹음했다고 한다. 또한 트랙 "I Surrender, Dear" 은 몽크의 솔로 피아노 버전이다.
위키에서)
오늘의 앨범 Brilliant Corners 은 미국 재즈 음악가인 Thelonious Monk의 스튜디오 녹음이다. 이 앨범의 레이블 Riverside Records를 통해 발매한 세 번째 앨범으로 몽크의 오리지널 작품으로 레이블을 위해 발매한 첫 앨범이다. 다소 복잡한 타이틀 트랙은 스튜디오에서 12번 이상의 녹음이 요청되었으며 그의 가장 어려운 작곡들 중의 하나로 여겨졌다.
녹음
앨범은 1956 년 후반에 3 개의 세션으로 2 개의 다른 5 중주로 녹음되었다. 몽크는 셀레스타 피아노로 "Ba-lue Bolivar Ba-lues-Are" "Pannonica“를 10 월 9 일에 색소포니스트 Ernie Henry 와 Sonny Rollins, 베이스에 Oscar Pettiford,와 드럼에 Max Roach와 함께 녹음했다. 이전의 작곡은 후원자며 작가였던 Pannonica de Koenigswarter가 살고 있는 Bolivar Hotel을 언급한 "Blue Bolivar Blues"의 몽크의 과장된 발음의 표음으로 묘사되었다.
몽크는 1954 년에 유럽으로 첫 여행을 갔을 때 그녀를 만났다.
10 월 15 일, 몽크는 4 시간 동안 동일한 밴드로 타이틀 트랙을 녹음하고자 시도했다. 타이틀 트랙의 복잡성은 몽크의 세션맨들에겐 도전이 되었고 25번의 시도는 그와 거의 정신적으로 붕괴에 직면했던 헨리, 세션동안에 몽크와 입씨름을 교환했던 페티포드 사이에 긴장감이 흘렀다. 몽크는 그의 알토 솔로 연주동안에 헨리에게 연주하지 말고 쉽게 하려고 노력했다. 테이크 중의 하나 동안에 프로듀서였던 Orrin Keepnews과 컨트롤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페티포드의 연주를 들을 수 없었고 베이스 마이크의 오작동을 확인했으마 궁극적으로 그는 연주를 하지않고 하는 척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완전한 싱글 테이크 없이 Keepnews는 여러번의 테이크 끝에 여러 버전을 앨범에 함께 결합했다.
12 월 7 일 "Bemsha Swing"은 베이스에 Paul Chambers, 트럼펫에 헨리를 대신한 Clark Terry가 녹음했고 몽크는 "I Surrender, Dear"를 솔로 피아노 버전으로 녹음했다.
작곡
타이틀 트랙은 표준 곡 형식과 블루스 구조뿐만 아니라 몽크의 아프리카 계 미국인 음악 뿌리 에서 벗어난 독창적인 곡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세 가지 형식 은 8 바 A 섹션과 7 바 B 섹션 및 수정 된 7 바 A 섹션을 사용하며 각 두 번째 합창과 이중 리듬 액센트의 더블 타임 테마를 특징으로 한다.
중요 리셉션
Down Beat 잡지에 따르면 Brilliant Corners 는 1957 년에 가장 비평받는 앨범이었다. Nat Hentoff ( 잡지 편집인)는 현대 리뷰에서 5 개의 별을 주며 "Riverside의 가장 중요한 현대 재즈 LP"라고 했다.
재즈 작가 David H. Rosenthal은 나중에 하드 밥의 세션의 "고전"라고 불렀다. 음악 평론가 Robert Christgau는 그의 1959년 라이블 앨범 Misterioso와 함께 앨범 Brilliant Corners 는 몽크의 미학적인 전성기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언급했다. 올뮤직의 Lindsay Planer)는 별 다섯을 주며 "제 2 차 세계 대전 후 미국 재즈의 알파와 오메가로 간주 될지도 모른다. 어느 앨범도 이것보다 더 중요한 컬렉션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언급했다.
2003 년에 앨범 Brilliant Corners는 그 해에 미 의회 도서관에서 선정한 50 개의 녹음 중 하나였으며 National Recording Registry에 추가 되었다. 리뷰어 Andrew Gilbert가 "몽크의 첫 번째 작곡가로서의 귀환"이라고 말하면서, 당신이 죽기 전에 들어야 할 참고서 1001 앨범 에도 포함되어 있다. 역사적인 중요성 때문에 앨범은 1999 년에 Grammy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Thelonious Monk의 앨범 - Brilliant Corners(1957년)
레이블: Riverside
녹음일: 1956년 10월 15일과 12월 7일
발매일: 1957년
길이: 42:47
스타일: Hard bop
프로듀서: Orrin Keepnews
Track listing(언급된 곡 이외에는 모두 Thelonious Monk 작곡)
1. "Brilliant Corners" 7:42
2. "Ba-Lue Bolivar Ba-Lues-Are" 13:24
3. "Pannonica" 8:50
4. "I Surrender, Dear" (Harry Barris) 5:25
5. "Bemsha Swing" (Thelonious Monk, Denzil Best) 7:42
Personnel
Musicians
Thelonious Monk – piano; piano and celeste on "Pannonica", solo piano on I Surrender Dear
Ernie Henry – alto saxophone on "Brilliant Corners", "Ba-lue Bolivar Ba-lues-are" and in ensemble on "Pannonica"
Sonny Rollins – tenor saxophone (except "I Surrender Dear")
Oscar Pettiford – double bass on "Brilliant Corners", "Ba-lue Bolivar Ba-lues-are" and "Pannonica"
Max Roach – drums (except "I Surrender Dear"); timpani on "Bemsha Swing"
Clark Terry – trumpet on "Bemsha Swing"
Paul Chambers – double bass on "Bemsha Swing"
셀로니우스 몽크(Thelonious Monk/1917-1982년생)는 미국 재즈 뮤지션이다.
재즈 피아노의 기인(奇人) 셀로니어스 몽크는 재즈사에 있어서 독보적인 위치의 피아니스트이다. 무대 위에서 신비로운 광기를 발산하는 그는 1917년 10월 10일 북캐롤라이나주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자라면서 피아노를 시작하였다. 6세 때 처음으로 피아노를 만지기 시작한 몽크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여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우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했다. 어느 정도 연주가 무르익을 무렵인 10대 시절에는 복음을 전도하기 위해 전도사들과 연주 여행을 다니며 각지의 피아노 연주 스타일을 어린 나이에 익혔다. 유년 시절 집안의 형평이 좋지 못하자 돈을 벌어야 했고 하는 수 없이 17세의 나이에 클럽을 전전하며 일거리를 찾아 나서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가 몽크에게는 많은 연주 스타일을 배우는 일종의 전화위복이 되었다. 이렇게 클럽을 전전하며 일을 하던 몽크는 23세가 되어서야 클럽가에서 이름을 떨치게 되었고 유명 연주인들의 사이드맨으로 활약하게 된다. 몽크가 연주하던 클럽은 당시 이름을 떨치던 민턴즈 레이하우스(Minton's Playhouse)라는 곳으로 이곳에서 하우스 밴드(House Band)라 불리우는 고정 밴드에서 피아니스트 테디 윌슨(Teddy Wilson) 밴드에서 리듬 파트를 담당하며 연주 생활을 하게 된다.
럭키 밀린더(Lucky Millinder)와 그리고 쿠티 윌리암스 오케스트라(Cootie Williams Orchestra)에서도 잠시연주를 하던 그는 24세가 되던 1941년, 제리 뉴먼(Jerry Newman)밴드에서 일하는 영광을 얻게된다. 이를 통해 그의 주가는 급상승세를 타고 서서히 인기 있는 연주인으로 등극했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그의 연주는 수준 이하의 연주라는 끔찍한 발언을 일삼았다. 그러나 몽크는 이에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계속 고집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몽크는 1943년에 최고의 색소포니스트인 콜맨 홉킨스(Coleman hawkins) 식스텟에 가입, 콜맨 홉킨스로부터 재즈의 기초를 다시 배운 뒤 최초의 녹음을 하게 된다. 이 녹음은 콜맨 홉킨스가 주선하게 되었고, 몽크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가르침을 준 콜맨 홉킨스에게 앨범을 헌정하여 앨범의 타이틀 역시 [Flying Hawk]라 명명하게 된다.
1947년에 접어들어 몽크는 본격적인 앨범 녹음과 활동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시기 몽크의 연주는 자신의 오래전 다듬어지지 않은 연주 스타일에서 벗어나려 많은 노력을 한 흔적이 보인다. 특히 그가 블루노트(Blue Note)에 몸담아 처음으로 녹음한 음반인 [More Genius]에는 조지 거쉰의 곡으로 유명한 ‘Nice Work If You Can Get It’과 ‘Ruby, My Dear’ ‘April in Paris’ 같은 곡들이 담겨 있으며, 트럼펫의 케니 도햄(Kenny Dorham), 드럼의 마왕 맥스 로치(Max Roach), 드럼의 신 아트 블레이키(Art Blakey), 알토 색소폰에 루 도널드슨(Lou Donaldson), 베이스의 귀재 넬슨 보이드(Nelson Boyd), 테너 색소폰의 럭키 탐슨(Lucky Thompson) 등이 대거 참여하여 당대 최고의 앨범을 창조하여 앨범의 가치를 높여 주고 있다. 이 앨범은 훗날 [Genius of Modern Music, Vol. 1 ~ 3]이라는 앨범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며 몽크의 초창기 명반으로 자리 잡는다. 이후 몽크는 밀트 잭슨과 손잡고 밀트 잭슨의 진두지휘 아래 'Criss-Cross'와 'All the Things You Are'가 담겨 있는 또 다른 명반인 [Thelonious Monk/Milt Jackson]를 1948년도에 발표하기에 이른다. 비밥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드러머인 케니 클락(Kenny Clarke), 베이스의 신동으로 불리우는 퍼시 해스(Percy Heath), 알토 색소포니스트 루 도널드슨(Lou Donaldson) 등이 참여했으며, 이 시기에 몽크는 밀트 잭슨의 비브라폰 연주로부터 색다른 연주 법을 배우게 되며 그것을 피아노에 적용시키기에 이른다.
50년대로 넘어와 몽크는 더욱 유명해 졌고, 피아니스트이자 보컬리스트로활동했던 조 터너(Joe Turner)의 프랑스 연주 여행에 동참 그 유명한 파리 라이브 [Thelonious Monk and Joe Turner in Paris]를 프랑스의 중소 재즈 레이블인 보그(Vogue)에서 발매한다. 몽크는 조 터너와의 파리 라이브를 끝내자마자 귀국하여 다시 앨범 작업에 들어가 맥스 로치와 퍼시 해스, 아트 블레이키 등과 작업한 [Monk's Moods]를 프레스티지사에서 남기게 되며, 계속해서 1952년도에 [Blue Monk, Vol. 2]와 엔지니어 루디 반 겔더의 소리의 향연이 담겨 있는 앨범 [Thelonious Monk Trio]를 발표하였다. 본 앨범은 당시 평론가들에게 52년도 최고의 앨범으로 평가 받기도 한 수작으로서 연주뿐만 아니라 앨범 재킷에서도 색다른 맛을 찾을 수 있다. 본 작품은 길 멜리(Gil Melle)라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디자인한 추상적인 앨범 재킷의 디자인으로 인하여 당시 재즈계에서는 새롭게 앨범 재킷을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표현하는 유행이 번지기도 했다. 53년도에는 천재 테너맨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를 기용 [Work] 앨범을 발표한다.
본 작품은 서양인들이 금기시 여기는 ‘13일의 금요일’에 녹음을 하였고, 몽크는 이러한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해 ‘Friday the 13th’라는 곡을 만들어 연주하였다. 몽크의 창조 정신은 끝이 없었고 53년 한 해 동안 무려 8장의 음반([We See], [The Golden Monk], [The Genius of Thelonious Monk], [Thelonious Monk Quintets], [Thelonious Monk Quintets], [Monk] 등)을 녹음하는 괴력을 보여주었지만, 그의 이러한 작업은 모두 당시에는 음반으로 발매되지 않았고 훗날 그의 연주를 기리며 발매되었다. 1955년에는 [Riverside Trios]라는 미니 싱글을 발매하였고, 역시 55년 싱글로 [Pure Monk]를 Milestone에서 발매하였다.
몽크는 재즈 사상 가장 방대한 곡을 만든 천재 피아니스트 겸 작곡자인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의 곡을 자신만의 독특한 어법으로 연주한 앨범 [Plays Duke Ellington]를 55년에 발표한다. 본작에는 비밥의 선구적 역할을 한 베이시스트인 오스카 페티포드(Oscar Pettiford)와 드러머 케니 클락(Kenny Clarke)이 함께한 트리오 연주로 50년대 중기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56년으로 넘어와 위 멤버들과 그리고 아트 블레이키를 가세시켜 몽크의 스탠다드 세계를 보여주었고, 1956년 마일스톤으로 이적하여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인 [Brilliant Corners]를 발매하게 된다. 본 작품은 몽크의 실험정신이 충만한 작품으로서 그가 50년대 이룩한 다양한 몽크적 선법을 토대로 연주한 스타일이 그대로 적용이 된 앨범이다.
50년대 후반에 들어와 몽크는 좀 더 실험적인 연주를 선보였는데 그 중 하나가 1956년도에 잠시 리버사이드사에게 양해를 구한 뒤 컬럼비아사에서 명연주가 담긴 [Straight, No Chaser]를 발매, 큰 호평을 받는다. 이후 몽크는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사단에서 마약 문제로 물러난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을 기용하여 ‘April in Paris’, ‘Round Midnight’, ‘Monk's Mood’, ‘I'm Getting Sentimental over You’ 등이 수록된 [Thelonious Himself]를 1957년 발표한다. 이 음반은 그해의 앨범으로 선정되었다. 특히 1957년에는 존 콜트레인과 많은 작업을 하면서 존 콜트레인에게 음악적 깊이를 한층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앨범 [Monk's Music], [Thelonious With John Coltrane]를 리버사이드에서, 그리고 블루노트에서는 [At The Five Spot]을 발표한다.
[At The Five Spot]은 당시 마약에 빠져 있던 몽크에게 출입 금지령을 내린 대부분의 클럽과 이에 격분한 몽크의 ‘다시는 뉴욕의 클럽에서 연주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의 와중에서 비롯된 것이다. 몽크가 마약에서 멀어지자 자연히 다시 클럽에 등장하게 되었고, 재빨리 블루노트사가 계약을 하여 'Five Spot'이라는 실험실 같은 클럽에서 연주 한 것을 발표한 것이 바로 [At The Five Spot]이다. 'Five Spot'은 당시 50년대 후반 시카고와 뉴욕 악파를 중심으로 연주되던 실험 정신이 강한 연주인들이 주로 모여 연주하던 아방가르드 색체가 가장 충만한 클럽이었으며, 이 연주 앨범에서는 존 콜트레인과 몽크가 주고 받는 인터플레이는 최고의 명연으로 기록된다. 58년에서 59년까지 몽크는 [Alone In San Francisco](피아노 솔로), [The Thelonious Monk Orchestra At Town Hall], [At The Blackhawk] 등의 앨범을 꾸준히 발표한 뒤에, 1961년 이태리 라이브를 [Thelonious Monk In Italy]라는 타이틀로 발매하게 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몽크의 60년대 초반의 진수는 바로 61년 발표한 프랑스 파리 실황일 것이다. [Monk In France]는 몽크의 초절기교(超絶技巧)가 모두 담겨 있는 작품으로서 텅 비어 있는 듯한 사운드, 그러나 그 속에 가득 담겨 있는 절제의 미학이 찬란히 빛난다. 이 모든 것은 몽크가 아니면 절대 이룩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몽크는 61년도에 리버사이드와 계약이 끝나자 자신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가장 환영하던 컬럼비아사와 계약을 하고 곧바로 앨범 작업에 들어가 1962년 [Monk's Dream]을 발표한다. 본 작품은 몽크의 스타일 그대로 반영된 전형적인 몽크 스타일 앨범으로서 반음계 진행의 임프로비제이션 스타일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앨범이다. 이후 몽크는 컬럼비아사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실험정신이 강하게 배여 있는 앨범들을 계속 발표하게 된다.[Criss-Cross], [Big Band And Quartet In Concert], [Solo Monk] 등을 발표한다. 위 앨범들 중 [Solo Monk]는 몽크의 콤핑 중 특히 왼손에 의한 싱커페이션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으로 피아노 솔로 작품집이다. 1967년에는 대중들에게 가장 사랑 받은 작품인 [Underground]를 발표하여 흐르는 강물처럼 평온하며 의미 없이 처대는 솔로 프레이즈가 배제된 절제의 미학을 들려주는 평범한 앨범을 발표, 화제를 모았다.
70년대에는 독일계 da Music의 계열인 Black Lion사에서 Alan Bates의 지휘 아래 [London Collection Vol. 1]을 녹음 발표한 후 건강의 악화로 인하여 더 이상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동료 연주인들의 권유로 1974년 뉴 포트 재즈 축제에 잠시 모습을 보여 연주를 한 뒤 계속되는 건강의 악화로 요양을 하며 작곡에만 전념 방대한 곡을 남기며 간간히 녹음을 하였으나 음반으로 발매된 것은 매우 드물다.
비밥이라는 재즈가 탄생한 이래 가장 독창적인 스타일을 보여준 피아니스트로서의 몽크는 연주와 작곡 양쪽에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보인 연주인으로 초창기에의 어려운 코드 체인지와 전혀 재즈답지 않은 불규칙한 싱커페이션을 선보여 실험정신이 뛰어난 아티스트로 불리운다.
몽크는 매우 극을 치닫는 연주를 보였으며, 연주시 상당히 절제된 연주를 하면서 그 속에 강한 악센트를 주면서 충격적인 음을 즐기는 스타일리스트로서 트럼펫의 마일스 데이비스와 자주 비교되기도 한다. 심미적이며 추상적인 상상을 즐기는 몽크의 연주에서는 침묵을 주테마로 사용되는 즉흥연주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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