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는 개가 사라진 공원 앞에 미니 쿠퍼를 세워놓고 개를 기다렸다. 기다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 개, 늙은 스피츠종은 모녀에게 전부였으니까. 너무 소중해서 그 개는 다른 이름 대신 그저 개라고 불렸다. 거의 모든 밤 취해서 귀가한 그녀가 개야, 개야, 부르면 개는 종일 늘어져 있다가도 비틀비틀 걸어왔고 축축한 혓바닥으로 그녀의 손바닥을 핥았다. 백내장으로 오른편 눈을 잃은 개는 편향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확실히 몸이 왼편으로 기울었고 사물의 위치를 왼쪽에 가깝게 인식했다. 개는 똑바로 걷지 않고 물결무늬를 연이어 그리는 듯한 비칠거림으로 목적지에 도달했다. 그마저 정확하지는 않아서 개는 도착하고 나서도 멀뚱히 허공을 보곤 했다.
그녀는 피아노 레슨을 그만둔 날 충동적으로 그 개를 샀다. 개는 생후 팔 개월이 지나 팔려가기는 다 틀려서 매장 한편에 매여 있었다. 그녀가 펫숍으로 들어갔을 때 개는 꼬리를 흔들지 않았고 불쌍한 몸짓을 하지도 않았다. 다만 조용히 지켜봤고 그녀가 구입을 결정하자 거미줄이라도 털어내듯 몸을 흔들었다. 품위가 있는 개라고 생각했다. 자존심이 무엇인지 아는 개라고 생각했다. 마치 자기가 개가 아닌듯 하잖아. 그런 개에게 개라고 이름 붙인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을까. 그녀는 개를 잃어버리고 나서 여러 번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붙여줄 수 있는 최선의 이름이었는데, 뽀삐, 바둑이, 복슬이, 메리 같은 흔한 이름은 개를 담아내지 못했다. 오직 개라는 이름만이, 특징적인 형상과 품성을 암시하지 않는 그 불친절하고 표정 없는 단어만이 개에게는 어울렸다. 그런 개를 잃어버리다니, 그녀는 차 쪽으로 걸으면서 눈물을 닦았다. 엄밀히 말하면 그녀가 잃어버린 것이 아니지만 .
개는 그녀의 엄마가 잃어버린 것이었다. 디자인 스쿨에 다녀볼까해서 그녀가 외국에 나가 있을 때였다. 엄마는 혼자서 개를 찾아보려다가 한 달이나 넘겨서 그녀에게 개를 잃어버렸다고 고백했다. 무엇을? 개를? 개를 어쩌다? 거짓말! 그녀가 소리질렀다. 그럴 리가 없어. 다 거짓말이지! 급하게 비행기 좌석을 구해 그녀는 귀국편에 올랐다. 중국어와 인도어로 된 영화를 보았다. 그녀가 지금 맞닥뜨린 불행만큼이나 외국어들은 난해하고 낯설었다.
공원 앞에 노상 서 있는 외제 차란 누구에게나 이상한 것이었다. 창에는 선팅이 짙게 되어 있고 와이퍼를 작동하거나 라이트를 밝힐 때를 제외하고는 차에는 통 움직임이 없다. 사이드미러를 접은 채로, 온순한 동물처럼 조용히 공원 정문을 지키고 있다. 버려진 차가 아니다. 누가 있기는 한 건가, 조깅복 차림의 남자들, 드물게는 여자들, 자주는 청소부들이, 폐품을 모으는 노인들과 전도에 나선 종교인들이 차에 접근했다. 오래 머물면 차창이 조금 내려가고 "무슨 일이시죠?" 하고 그녀가 물었다. 사실 상대방이 그렇게 묻고 싶을 테지만 일단 그녀가 먼저 물으면 아무도 되묻지 않았다.
그녀가 차문을 열자 "없었니?" 하고 엄마가 묻는다. "없어." "왜 없을까?" "모르지." 그녀는 어제 제보받은 동영상을 떠올리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거리가 좀 멀긴 하지만 이 공원에서 촬영한 영상이었고 개를 꼭 닮은 개가 있었다. "배고프니까 우선 밥 먹자." 엄마가 보스턴백에서 찬합을 꺼냈고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빈 종이박스를 올렸다. 그녀는 엄마가 준비한 구운 생선이나 장조림, 샐러드에는 손도 대지 않고 콩자반만 집어서 밥을 먹는다. 시선은 창밖에 둔 채 젓가락으로 밥을 마고 헤집으면서.
어쩌면 바보 같은 일일지도 몰랐다. 개를 기다린다는 것은, 개가 길을 잃은 장소로 돌아올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알 수 없지만 그녀는 현수막, 동물병원, 유기동물 사이트, SNS, 블로그에 개를 찾는 광고를 내고 기다렸다. 어제의 동영상은 지금까지 제보받은 것 중 가장 신빙성 있는 것이었다. 개인 듯한 물체가 공원에서 등산로로 올라가고 있었다. 바람에 쓰레기 같은 것이 스르르 자리를 옮기는 듯한. 개치고는 좀 가벼운 움직임이었지만 그녀는 분명 개라고 생각했다. 나무 그림자 쪽으로 쏠렸다가 반대편으로 빠져나갔다가 비틀비틀했으니까. 개가 맞죠? 동영상을 보낸 사람에게 문자메시지로 물었지만 답은 없었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언덕 아래에서 경찰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경찰과는 취객을 쫒으려고 신고를 했다가 알게 된 사이였다. "수고하십니다." 경찰이 오토바이를 세우고 헬멧을 벗는다. '정지선 준수 특별 계도 기간'이라고 쓴 어깨띠가 허리까지 내려와 있다. 그녀가 차창을 조금 내리자 경찰은 그 틈으로 손을 넣어 "얼굴 좀 보여줘요. 서운하네"한다. 그녀가 도시락 뚜껑을 덮고 차창을 다 열어준다. 개를 잃어버렸으므로 그녀는 자주 울었고 부은 눈을 감추기 위해 늘 선글라스를 꼈다. 화장도 하지 않고 언제나 트레이닝복과 운동화 차림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윤기랄까, 반복된 소비에 노출되어본 사람만이 가지는 단정함이랄까, 하는 것이 있었다. 경찰은 감상하듯 뒤로 좀 물러나 그녀와 미니 쿠퍼를 지켜본다. "어제도 밤까지 차에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지 말라니깐." 시동을 걸까, 여기를 떠날까, 사람들이 성가시게 굴 때마다 그녀는 생각하지만 실행에 옮긴 적은 없다. 개를 찾아야 하니까. 개를 잃어버렸으니까.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밤에는 다른 사람이랑 교대하시죠. 아시겠지만 공원은 넓고 뒤가 산이라서 치안도 통제가 안 되고 조명 시설도 부족하고, 겁주는 건 아니고요. 걱정이 돼서. 폭력사건도 잦고 여성분들이 밤을 지새울 장소는 아니에요. 정 개를 찾아야 한다면 아버지나 동생을 불러요. 남자친구 없어요?" 아빠를 부르다니, 아직 귀국했다는 말도 못했는데. 만약 그녀가 이번에도 이룬 것 없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면 아빠는 서울로 올라와 아파트 문을 잠그고 베란다 창을 닫고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음악이나 틀고 혹시 모르니까 텔레비전도 켠 다음 그녀와 엄마를 때릴 것이었다. "남자친구 있어요? 없어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곧 찾을 테니까요. 그냥 시간이 좀 걸릴뿐이고요." 엄마가 경찰을 돌려보낼 생각에서인지, 그녀가 너무 대답이 없다고 느꼈는지 끼어들었다. "그냥 둘 수가 없는 것이, 여사님, 제가 말씀드렸죠? 여기가 한적해도 도로라 주차가 안 돼요. 여기는 주정차 금지 구역이거든요. " "아무 표시도 없잖아요?" 그녀가 무표정하게 응시하며 대꾸했다. "표시는 없어도 도로는 달리라고 있는 거지, 세워놓으라고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런 건 법으로 다 정해져 있잖아요." "네, 네. 법으로 정해져 있겠죠. 근데 우리가 어떻게 그걸 일일이 알겠어요?" 엄마가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자 경찰은 만족한 듯 자, 하면서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혹시 모르니까 제 전화번호 저장하셨죠?" 그녀가 그렇다고 하자 경찰은 "정말 했어요? 이름은 뭐라고 해놨어요. 내 이름 이수종인데 말했던가?" 물었다.
"돈을 좀 쥐여주어야 하는 거 아닐까?" 경찰이 가고 나자 엄마가 말한다. 정말 돈을 원하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지. 개를 기다리며 만난 사람들 대부분 돈을 원했으니까. 사람들은 괜히 전화를 걸어 제보랄 것도 없는 얘기를 하다가 그녀가 그런 것으로 사례금을 줄 수 없다고 하면 그녀를 비난했다. 정신 나간 년, 된장 같은 녀. 개를 찾겠다고 그깟 개를 찾겠다고 사례금을 오백씩이나 걸고 기껏 전화해주었더니 돈은 주지도 않아? 나 네년이 어디서 개를 기다리는지 다 알아. 가서 가만두지 않을 거야. 물정 모른 년. 얼빠진 년. 그전까지 그녀는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얽혀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한동네에서 아파트만 바꿔 이사 다녔고 대학 때도 동네 친구들과만 어울렸으며 직장 생활을 해본 적도 없었다. 주변 시람들의 계층이랄까, 성향이랄까 하는 게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개는 그녀의 아파트가 아니라 이 도시를 떠돌고 있으니까 아주 많은 사람들 곁을 지나야 할 것이다. 그녀가 만나본 적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사람들 곁을.
"그런데 이상하지." 해가 져서 차 안이 어두워지자 그녀가 말했다. 옆에서 졸던 엄마가 고개를 들며 깨어났다. "엄마는 왜 이렇게 먼 곳까지 산책을 온 거야? 여기는 두 시간은 넘게 걸어야 하는 거리잖아." 그 질문은 오늘만 아니라 어제도, 한 주 전에도, 보름달이 뜨던 날에도, 그 달이 줄어 상현이던 날에도, 상현이 말라가 초승달이 되던 날에도 한 것이었다. 그래도 엄마는 지겨워하지 않고 그녀가 말 걸어준 것에 반색하면서 개를 잃어버린 날에 대해 반복해 얘기했다.
그러니까 지영이, 네가 아는 것처럼 내가 자궁 수술을 받고 나서는 살이 찌지 않았니. 의사 말대로 호르몬제를 먹어도 살이 찌는 건 어쩔 수가 없더라고. 배에 말이야. 그렇게 살찐 몸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야. 그날 아침에도 생각했어. 안 되겠다, 살을 좀 빼야겠다. 엄마는 충분히 말랐어. 엄마는 사십 킬로그램이 조금 넘을 뿐이잖아. 사십 킬로 그램이 조금 넘을 뿐이지, 물론. 그녀의 엄마가 박수를 치려는 듯 양 손을 들었다가 기도하듯 맞잡았다. 하지만 네 아빠가 말하듯 작은 균열이랄까, 순간의 방심이랄까, 부지불식간의 한눈팔이랄까, 하는 것이 엄청난 불운을 가져오니까, 지겹도록 들어보지 않았니? 외국의 그 거대한 현수교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말이야. 그건 건축에서도 중요한 사건이라 전공 시험문제로도 자주 출제되었다고, 네 아빠는 그 문제를 틀렸을 거다. 그러니까 졸업도 못했지. 자격증이 없으니까 지금 하는 사무실도 김소장 명의야. 회사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네 아빠는 전혀 몰라. 현수교 이야기는 정말 지겨워. 지겹지 그럼. 엄마는 뭐가 우스운지 한참 웃었다. 그 현수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협에 놓여 있었다고 하잖아. 그런데 옷깃을 좀 여미게 할 정도릐 바람으로 무너져버렸다고. 처음에 바람은 현수교를 아주 미미하게 건드렸지만 그렇게 생겨난 현수교의 진동과 바람의 진동이 공명하면서 진동이 커지고 다리가 출렁이고 꺽이고 엿가락처럼 휘어지다 어이없게 무너지고 말았다고. 무너졌다고 하잖니. 고작 한줌으로 시작한 바람 때문에. 그러니까 정신 차려. 술에 취하면 유난히 자기 아버지처럼 군인 흉내를 내면서 네 아빠가 그렇게 말하잖니. 할아버지는 스님이지. 할아버지는 원래 군인이었대. 중좌로 만주에 있었다는데 그 얘기는 잘 안 했지. 광복하고 재산을 지키고 신분을 감출 생각에 출가를 했대. 할아버지의 얼굴은 생각나지 않지만 포천의 어느 산에 있던 사찰을 그녀는 기억했다. 단청 색이 유난히 울긋불긋하던 사찰이었다. 세월의 흔적이랄까, 기품이랄까 하는 것 없이 레고 블록처럼 인공적이고 비현실적인 인상이었다.
개를 잃어버리던 날에는 네 아빠가 광양에서 올라오기로 되어 있었어. 그렇게 용건 없이 올라오는 날에는 늘 나쁜 일들이 생기니까 긴장해 있었지. 정신 차렷, 하는 아빠 말이 생각나고 살이 찌면 안 되겠다 싶어 걸었지. 아파트에서 이 공원까지. 내가 걸어올 수 있는 가장 먼 곳이니까. 개를 데리고? 그렇지. 개는 늙으면서 이제 혼자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너는 몰랐지. 너는 늘 밖에 나가 있지만 난 집에 있잖아. 개는 내가 어디를 가면 불안해서 오줌을 싸곤 했어. 카펫에 얼굴이 지금도 남아 있어. 아빠가 올라오는데 집이 더러우면 안 되잖아. 그래서 데리고 나갔지. 개는 잘 걸었어. 맹세코 여기 도착하기 전까지는 목줄을 풀어주지 않았어. 물도 목줄을 한 채로 먹었지. 개는 비스킷을 씹기도 했는데...... 몇 개나 먹였어? 세 개인가, 네 개인가? 낯선 동네에 오니까 개는 겁을 좀 먹었지. 공원까지 왔는데 개의 목이 답답해 보여서. 실제로 그렇기도 했고 알듯이 그날은 좀 쌀쌀해서 티셔츠를 입혔으니까.
"티셔츠를 입혔어?" 그녀가 조수석 쪽으로 돌아앉았다. "그 말을 왜 이제 해?" 엄마는 자기 말에 취해 있다가 얼떨떨하게 "내가 말하지 않았나?" 물었다. "말하지 않았어." 그녀가 활기를 띠었다. 흰 털의 개보다는 특정한 티셔츠를 입은 개가 눈에 더 뛸 테니까. "티셔트색이 뭐였어? 노랑이야 빨강이야 푸른색? 흰색? 무늬는. 상표는?"
"......노란색이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표정이 와르르 무너졌다. "기억이 안 나? 기억이 안 나냐구?" "미안하다, 애야." 엄마가 사과했다. 그녀가 화를 내며 두 발로 차 바닥을 찼다. "그 애기를 왜 이제야 해? 그렇게 중요한 걸 왜 기억
못해? 왜 개를 잃어버렸어. 왜 그랬어. 누가 그러랬어?" 개를 잃어버렸으므로. 그녀가 그렇게 사랑하던 개를 잃어버렸으므로 엄마는 애처로울 정도로 몸을 낯췄다. "언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어. 그때 내가 왜 목줄을 풀었을까, 갑자기 어디서 그 큰 세퍼드가 나타났을까. 무엇이 무서워서 개가 뛰었을까. 불러도 돌아오지 않았을까. 미안하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하다. 엄마는 늘 너에게 미안했지. 널 낳아놓고는 제대로 해준 것이 없어서 대학도 그렇게 가고 피아노도 그만두고. 그때도 나로서는 최선을 다해서 널 여섯 군데의 학원으로 옮기고 독서실 앞에서 새벽까지 기다리면서 어떻게든 너에게 잘해보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개나 기다리게 했구나."
개를 기다리는 일에도 규칙이 있었다. 그녀가 집에 가면 엄마가 남았다. 엄마가 차를 떠나면 그녀가 남았다. 그렇게 교대하더라도 둘 다 차를 떠나야 하는 순간은 생겼다. 그때는 차에 달린 세 대의 블랙박스가 공원을 지켜봤다. 오늘은 그녀가 집으로 가는 날이다. 가방과 모자를 챙겨 일어서자 엄마가 쉬어라, 한다. 집으로 오는 전화는 받지 말고 개를 잃어버리고 나서는 아무도 만나기 싫은데 여자들이 자꾸 전화를 한다고, 그런 여자들은 나쁜 일, 속상한 일, 불행한 일, 개를 기다리는 모녀 같은 추문들에 대해서는 유난히 관심이 많으니까 아예 받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녀가 차에서 내리자 엄마도 따라 내리려다가 눈치를 보며 다시 앉는다. 언덕을 내려가다 그녀가 뒤를 돌아본다. 엄마는 운전석 차창을 내리고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 엄마도 저기에 남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를 꺼내주고 싶지는 않다. 그녀는 나쁜 일을 겪을 때마다 엄마를 탓해왔고 이번 일은 정말 엄마가 저질렀으니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하기는 그동안 어떤 것도 용서하지 않았지. 아침에 마시는 사과주스처럼 그건 오래된 습관 같은 거였다.
아파트로 돌아간 그녀는 욕조에서 스스바라는 말을 떠올렸다. 엄마의 전화를 받던 날 지역신문 기사에서 읽은 단어였다. 그 도시 말을 잘 몰라서 그녀는 아주 더듬더듬 신문을 보고 있었다. 유학생과 현지인, 경찰이라는 단어를 읽었고 그녀는 그것이 유학생들 사이에서 소문으로 돌던 살인사건에 관한 기사라고 생각했다. 자세히 읽고 싶었지만 모르는 단어가 많아서 문장은 성긴 그물을 통과하는 물고기처럼 이리저리 빠져나갔다. 그녀는 룸메이트와 섹스를 하고 좀 나른한 기분이라서 사전까지 찾아보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현지어에서는 대상의 성별에 따라 동사가 달라지는데, 여기서는 그런 것들이 왜 정확히 밝혀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대부분의 문장들이 왜 동물이나 물건에 붙는 동사 형태로 서술될까. 다운타운, 욕실, 비명 그리고 읽을 수 없는 단어 뒤에 스스바라는 단어가 괄호로 붙어 있었다. 무슨 뜻일까 상상하다가 그녀는 전화를 받았고 개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게됐다. 무슨 뜻이었을까. 그녀는 무심코 샤워 커튼을 올려다보다가 프린트된 꽃무늬가 흐릿하게 지워진 부분을 발견했다. 무뉘가 바랠 정도로 샤워 커튼이 오래되었던가. 그럴 리가 없었다. 엄마는 물건을 오래 쓰지 않으니까, 가구도 이태를 넘기지 않고 대부분 바꾸었다. 백색소파가 검정 가죽소라포, 베이지색 천소파로, 아예 없어졌다가 고급스러운 보료들로 교체되었다. 식탁은 어떻고, 몇 번의 식사를 했을 뿐인데 마치 냅킨 버리듯 버려버리곤 했다.
거실에는 개가 사용하던 자동 급식기와 물통이 그대로 있었다. 버튼을 누르자 윙 모터가 돌면서 사료가 떨어졌다. 겨우 이만큼만 개에게 먹였다니. 어린 그녀에게 그랬듯 개에게도 충분한 음식을 허락하지 않았다니. 그녀는 장식장에서 술을 꺼내 마셨다. 스스바의 뜻이 뭐지? 누가 누구룰 죽였지? 죽은 건 남자였어. 여자였어? 거실 전화기를 들었다. 코드가 뽑혀 있었다. 코드를 꽂고 룸메이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이미 다른 데이트 상대를 만났겠지. 그녀가 생각했다. 개를 찾으면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동거를 위해 룸메이트 방에 들어갔을 때 최근까지 다른 여자가 살았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전 애인에 대해 묻자 룸메이트는 영어를 써서 요리를 잘했지, 했다. "마치 어머니 같았어." "나는?" "너는 내 여동생 같고. 우리는 사이좋은 자매였어." "아버지는?" "그 인간은 개였지." 그녀와 룸메이트는 발을 까불면서 마구 웃었다. 그녀는 룸메이트가 팔을 내어주면서 "너는 나의 어머니, 여동생 같은 존재야" 하고 말하는 것을. 그때도 자기 아버지를 흉볼까. 그녀는 룸메이트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룸메이트는 그냥 클럽에서 흔한 성중독자이고.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지영이니? 지영이예요. 지영이 맞아? 왜 한국에 있니? 잃어버려서요. 잃어버렸다고? 무슨 일 있니? 나한테는 말해도 된다. 개를 잃어버렸어요. 집에 별일 없던? 누군데요? 아저씨 김소장이야. 너 출국할 때 배웅도 갔었지? 아......그날 엄마가 공항에서 만났던 남자. 출장 겸해서 그녀를 배웅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왜 반말을 할까? 그날은 아가씨, 지영씨, 하지 않았나. 엄마는 어디 있니? 아빠는? 아빠는 왜요? 그녀가 카펫의 얼룩들을 발가락으로 문지르면서 물었다. 아빠를 왜 서울 집에서 찾아요, 아저씨. 개를 잃어버렸다고요. 엄마와 나는 개를 기다리고요. 우리 개의 행방을 알아요? 개? 무슨 개를 말하니? 모르면 전화 끊을래요. 지영아, 아빠는 어디 있니? 왜 반말이야?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차비가 없으면 걸어서 가. 왜 차비 없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 그러면 가족한테 전화를 걸어야지. 개에 대해 떠들 것이 아니라!
그녀는 다음날 아침 일어나 김소장의 전화를 해보려다가 말았다. 아빠는 어디서 무얼 하는지 일일이 보고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떠난지 반년도 안 돼서 돌아왔다고 말했다간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김소장 말도 다 믿을 순 없는 게 아빠가 일부러 피하는지도 몰랐다. 아빠에게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여자들, 아빠와 연락이 끊긴 여자들은 서울 집까지 찾아오곤 했다. 그러면 엄마는 아가씨 몇 살이라고 했지, 어느 학교라고 했지, 이름이 뭐라고 했지, 물었고 잊지 않겠다는 듯 메모지에 받아 적었다. 돌아가고 나면 엄마는 여자들이 사들고 온 주스나 비타민 음료, 두유 등을 개수대에 버렸다. 종이팩을 가위로 잘라 하나하나씩. 그것을 그렇게 버리는 과정이 아주 중요하다는 듯이. 그녀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안방 문 앞에 섰다. 몇 년간 들어간 적 없던 방이다. 엄마도 아빠가 올라오는 때가 아니면 닫아놓고 살았다. 집에 별일 없냐고?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방은 그녀의 기억과 같았다. 일본도가 걸려 있고 장롱이 놓인 한 면을 제와한 벽 전체에 거울들이 붙어 있었다. 그 거울들은 아빠가 원한 것이었다. 그녀가 방에서 나가려는데 도르르 말린 개의 털이 보였다. 개는 이 방에 들여보내지 않는데 이상했다. 그녀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엎드려 침대아래를 살폈다. 거기도 개의 털이 떨어져 먼지들과 함께 말려 있었다.
동영상을 보낸 사람은 사흘 뒤에야 연락을 해왔다. 앳된 목소리의 여학생이었고 공원 안 인라인스케이트장에서 만나자고 했다. 약속시간까지는 한 시간이나 남았지만 그녀는 스케이트장까지 바로 뛰어갔다. 여학생은 그간의 제보자들과 달랐다. 돈 얘기부터 하지 않았고 개의 생김새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흰색이지만 머리에 좀 거뭇거뭇한 털도 있는 개잖아요. 블루 티셔츠를 입었고요" 여학생은 찬찬히 무엇인가를 따져보는 듯한 말투였다. "티셔츠?" 그녀가 놀라서 묻자 여학생이 되물었다. "체크무늬 블루 티셔츠 아니었어요?" 통화를 끝내고 그녀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개에 대해 중요한 얘기를 듣게 될 거라고 했다. "잘됐네. 이번에는 정말 개를 본 사람이라면 좋을 텐데." "확실해. 티셔츠 이야기를 하더라고, 블루라던데?" 엄마가 블루? 하더니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고 엄마를 불렀다. 으흐응, 엄마는 좋아서 웃는 건지, 억지로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뭐하고 있어? 으흐응. 백화점 나왔어. 백화점은 왜? 네가 샤워 커튼 얘기했잖아. 침대도 오래되었고. 침대는 작년에 바꿨잖아. 으흐응, 그렇긴 해. 지영이 너, 김소장 전화 받았었니? 그 사람, 아빠랑 연락이 안 된다던데? 아빠랑 연락 안 되는 사람이 한둘이니, 내 전화도 받질 않는데. 엄마가 다시 으흐응, 웃었다. 모르지, 카드 결제하면 득달같이 전화할지. 엄마가 결제를 하는지 저 세트랑 이 세트 주세요, 하고 옆 사람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좀 들뜬 목소리로 미안하다, 했다. 개도 같이 기다려주지 못하고 저녁에 엄마가 스시 사갈게. 너 요즘 너무 말랐어. 그렇게 마르면 남자들이 싫어해. 너무 쪄도 안 되지만 빠져서도 안 돼.
네시가 넘었지만 여학생은 오지 않았다. 그녀는 귀가 발갛게 얼어서 캐비닛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주인을 잃은 개가 길에서 살 수 있는 기간은 얼마나 될까. 개는 자동차와 도로, 신호등, 들고양이,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적의, 굶주림, 추위를 경험한 적이 없다. 개는 하늘에서 눈이 온다는 건 알고 있을까. 아주 작은 입자들이 모여서 결국엔 세상을 온통 덮어버린다는 것을. 그러면 도시가 아예 다른 얼굴을 한다는 것을. 눈 오는 날 데리고 나간 적이 없으니 하늘에서 그런 게 떨어진다는 것도 모를 것이다. 아무도 사료를 주지 않는 밤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다른 개들에 대해서는. 개는 개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산책길에서 다른 개가 냄새를 맡거나 장난을 걸면 응하지 않고 개들이 지나가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그건 개가 자신을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수의사는 말했다. 도그 카페 같은 곳에 가서 사회성을 기르라고, 그렇지 않으면 주인에게만 의존하게 되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런 정신 사나운 곳에 데려가는 대신 개를 더욱 사랑했다. 그녀의 아빠에게 맞으면서도 개를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소리질렀다. "가만두지 않으면?" 아빠는 술에 취하고 자신이 행한 열띤 폭력에도 취해 그렇게 물었다. "신고할 거야. 떠들어댈 거야." "......뭘?" "나를 강간했잖아." 아빠가 놀랐다. "아니야." "거짓말!" "내가 그랬어?" 아빠는 좀 얼이 빠진 채로 되물었다. "그랬어!" "아니야, 그러지 않았어." "아니야, 그랬어." "그러지 않았어, 거짓말이야." 아빠는 흥분이 가시자 나약하고 겁 많은 평소의 얼굴로 돌아갔다. "아니야, 안 그랬어. 난 그런 개자식은 아니잖아." "아니야, 그랬어." 아빠는 대리석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무릎을 끓고 머리를 두 팔로 감쌌다. "맞기 싫으면 싫다고 해. 난 그런 적이 없어." 아빠가 그렇게 애원할수록 그녀는 더 새침한 표정으로 아니야, 그랬어, 했다. "그러니 개를 건들기만 해봐. 세상에 다 떠들 거야. 엄마한테도 말할 거야." 그녀는 수건으로 머리의 피를 슥슥 닦아냈다. 개는 해독할 것이 없는 표정으로 그런 그들을 응시하고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개를 잃는 것이 두려워서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아니, 아주 거짓말이지는 않았다. 그녀는 사춘기 내내 그런 악몽에 시달렸으니까. 그런 꿈을 꾸는 것이 더럽고 싫은데 자꾸 그런 꿈을 꾸니까 어쩌면 자기는 손 쓸 수 없이 타락한 여자애가 아닐까, 그냥 죽어버릴까 싶기도 했다. 그뒤로도 그녀는 여전히 아빠에게 맞았지만 횟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참지 못해 주먹을 휘두르는 날에는 아빠는 무언가를 해소하기는커녕 더 큰 공포에 휩싸여가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여학생이 마스크와 비니를 쓰고 나타났다. 두 손을 점퍼 주머니에 넣고 추운지 다리를 동동 굴렀다. "동영상은 최근에 찍은 거니?" 그녀가 급하게 물었다. "아니요. 두 달 됐어요." 두 달...... 그녀가 눈에 띄게 실망했다. 두 달 전에 개가 이 공원에 있었다는 건 동영상이 아니라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엄마가 그때 개를 잃어버렸으니까. 그녀가 고개를 떨궜고 올이 한 줄 나가 있는 여학생의 검정 스타킹을 보았다. 여학생이 입은 바람막이 점퍼는 초겨울에 입기에 너무 얇았다. 두 달 전이라도 개가 찍힌 동영상을 손에 넣은 건 다행이 아닐까. 그녀는 여학생에게 사례를 하고 싶어졌다. "사례를 할까 하는데 번거롭겠지만 차까지 가야 지갑이 있어. 알겠지만 나는 개를 찾고 있고 개를 찾아주는 사람에게만 돈을 줄 생각이었지만 네가 찍은 동영상은 내가 간직할 것 같으니까. 차까지 가는 게 싫으며 계좌번호 있지, 은행에. 가르쳐주면 이십만원 넣어줄게." 그녀는 이렇게 어린 여자애에게 자신이 실망하고 절망했음을 들키고 싶지는 않아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단정히 묶었다. 여학생 뒤편에 스케이트장 조명이 커져서 여학생의 얼굴은 아주 새카맣게 보였다. 돈이 적다고 생각하는 걸까, 왜 말이 없을까." 가방에 수첩 같은 것 있지? 계좌번호를 불러줘. 이십만원이면 여기까지 온 수고값은 되겠지." 여학생이 순순히 수첩을 꺼냈고 그녀가 이름은 뭐지, 어느 은행이야, 하면서 적을 준비를 했다. "저기 언니, 있잖아요." 여학생이 한참 만에 말을 꺼냈다. "언니, 공원 입구에 차 세워놓고 있죠. 미니 쿠퍼. 친구가 그 차 비싼 거라고 하던데." 그런 걸 왜 물을까, 열다섯 살도 안 되어 보이는데 아주 닳고 닳았네,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 비싼 차야. 하지만 그렇다고 네게 돈을 더 줄 수는 없어. 그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해." 여학생은 가만히 있다가 "누가 돈 달랬어요?" 했다. "받을 거잖아." "주면 받을 건데 내가 달라고 한 건 아니라고요." 그녀는 여학생과 입씨름하는 것이 싫었다. 개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무너진데다 날이 추워서 자리를 뜨고 싶었다. "어서 계좌번호나 불러." "차에 만날 같이 타 있는 아줌마는 언니랑 어떻게 돼요? 엄마예요?" 그녀는 여학생이 그전부터 자기를 지켜봐왔다는 사실에 기분이 나빠졌다. 그러면 여학생은 뭐하러 설명도 없이 동영상만 보냈을까, 왜 여기까지 그녀를 불러냈을까. 그녀는 여학생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싶었다. 아무리 어린애라도 그런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계좌번호 모르면 나중에 문자메시지로 넣어줘." 그녀는 계단을 내려갔다.
"나 그날 봤거든요. 그 아줌나." 여학생이 그녀를 따라갔다. "내가 그날 그 아줌마 봤어요. 개도 보고요. 그 아줌마가 차에서 내렸고요, 개가 쫓아갔고요." "그래 목줄을 풀었는데 운 나쁘게 세퍼드가 나타나서 우리 개는 그런 큰 개를 본 적이 없으니까 놀라서 마구 뛰어간거야. 그게 어딘지도 모르는 채로. 나는 한 달 동안 네가 본 그 차에서 개를 기다리고 있고." 그녀는 자꾸 따라붙는 여학생이 싫었지만 쫓아 버릴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데 언니, 난 딱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동영상을 찍은 거예요. 내가 그런 감이 있거든요. 좀 있다 개 집 나가겠다 싶으면 집 나가고, 곧 얘랑 얘 한판 붙겠다 싶으면 싸움이 나고요. 이쯤 해서 얘네 부모가 나 잡으러 오겠다 하면 딱 그렇고요." "그래, 네 생각에는 우리 개가 어디 있을 것 같아? 이 동네에 오래 살았어? 어디 유기견들이 모이는 데 없니. 그런 개들을 가둬두거나 하는 사람 없어?" "오래 살았죠, 그럼요. 전 이 동네를 한 번도 벗어나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언니, 개가 어디 있는지 사실 저도 모르지만요." "그렇겠지. 그러니까 언니가 이십만원을 주겠다고 하잖아. 개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오백만원을 받는 거야. 그렇게 되어 있는 거야." 그녀가 짜증을 내자 여학생이 말을 줄였다.
그들은 겨울밤이라 인적이 더욱 드문 공원을 가로질렀다. 낡은 운동기구들은 바람에 저 혼자 움직이다가 천천히 멈췄다. 어둠 속에서 유독 화장실만 불을 밝혔다. 공원의 정문 방향으로 접어들었을 때 여학생이 "잠깐만요" 했다. 그리고 뭔가를 살피듯 살금살금 앞서더니 정문 쪽을 지켜봤다. "제가 차까지는 갈 수 없고요. 목줄이요? 세퍼드요? 그런 것 없었어요. 그 대신 저 아줌마가 뭔가 무거운 걸 들고 등산로로 갔단 말이에요. 개는 그런 아줌마를 조용히 따라가고요. 동영상을 보시면 저 앞쪽에서 걷고 있는 아줌마를 볼 수 있을 거예요. 아, 사실 감이 안 좋아서 이런 일에 안 나서려고 했는데 언니가 그렇게 오랫동안 개를 찾고 있는 걸 보니깐. 아, 저 언니는 아줌마랑은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에요. 언니,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저 아줌마가 엄마 맞죠? 나는 본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언니가 하라는대로 할게요. 돈 받고 닥치라면 닥치고 내 얘기가 더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고요. 이십만원은 좀 적기는 하지만 정당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건 언니가 알아서 해줄 것 같으니까요. 겨울이라서 사야 할 물건들이 많지만 언니가 이십만원짜리다, 하면 그렇게 알게요. 찐따 붙고 안 그럴게요. 어떻게 하실래요? 언니. 나 저 아줌마는 무서워서 저기서 보자고 한 거예요. 느낌이 딱, 뭔가 좀. 그래도 언니가 닥치라면 닥치고 나불대라면 나불댈게요. 언닌 좋은 사람이죠? 난 딱 알아요.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녀는 여학생을 떼어놓고 엄마가 타 있는 미니 쿠퍼로도 가지 않고 동네와 공원의 경계를 따라 혼자 걸었다. 공원은 아주 넓었다. 연립주택들이 밀집한 동네를 생각해보면 터무니없이 넓은 면적이었다. 인적이 드물어졌을 때 휴대전화에서 동영상을 재생했다. 어두웠고 개인 듯한 물체가 비틀거리며 S자로 굽은 등산롤르 걷고 있었다. 아주 멀게 보였다. 그녀가 유대전화 화면의 밝기를 높였다. 개가 향하는 방향으로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그림자가 서 있었다. 엄마가 거짓말을 했을까, 그녀는 만약 그것이 개이고, 그림자가 엄마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했다. 또 그것이 개가 아니고, 그림자만 엄마라면? 죽였을까? 개든, 뭐든. 그녀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지만 연결음은 정상적으로 갔다. 그건 개도 아니고 엄마도 아닐 거야. 그녀가 생각을 정리했다. 그 되바라진 계집애가 되도 않는 거짓말을 하는 거야. 돈을 얻으려고, 싸구려 화장품이나 겨울 패딩 같은 것을 사려고, 그 얇은 바람막이 점퍼를 이 겨울에 입고 다니다가, 거기에 나이키 로고 하나가 그려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미련하게 이 추위를 견디다니. 바보 같은 계집애, 얼빠진 계집에, 공원과 주택가 사이에는 이름모를로 이우러진 철말이 쳐져 있었다. 개는 어디로 갔을까. 휴대전화가 울렸다. 룸메이트였지만 받지 않았다. 지금 그녀에게 스스바라는 단어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떠나온 도시의 살인사건 같은 건 알 필요도 없다. 우선은 개를 찾아야 한다. 그녀는 생각했다. 개를 잃어버렸으니까.
그녀가 옆걸음으로 비탈길을 내려올 때 누군가가 그녀의 허리를 와락 안았다. 경찰이었다. 헬멧을 벗은 경찰이 평소처럼 히죽거리지도 눈치를 살피지도 않고 풀숲에 서 있다. "놀랐잖아요." 먼저 말을 건넨 건 그녀였다. 이 불안한 분위기. 나쁜 일이 벌어지기 직전, 어떤 긴장이 들끓는 순간이, 그래서 오히려 움직임도 소리도 억제된 는 순간이 그녀는 싫었다. "그렇게 사람을 놀라게 하면 안 되잖아요. 순찰중이에요?" 비탈 위쪽에 서 있어서인지 경찰은 평소보다 더 위압적으로 보였다. "키가 크시네요." 경찰은 한참 만에 그렇게 말했다. "차 안에만 앉아 있어서 몰랐는데 꽤 커." 그녀가 뒤로 물러났다. 경찰은 그녀를 다시 잡으려는 듯 장갑 낀 두 손을 내밀었다. "아가씨, 알려줄 말이 있어." 그녀는 경찰의 팔을 뿌리쳤다. "잡지 마요. 잡지 마." "중요한 얘기야." "필요 없어요." 그녀는 비탈을 뛰어내려갔다. 그리고 고양이들이 우는 골목과 빈틈없이 주차된 자동차들을 지나 공원으로 뛰었다. 차 안으로 들어가 시동을 걸었다. 엄마는 누군가의 전화를 하고 있다가 "무슨 일이야?" 하고 물었다. 그녀는 차를 물아 언덕을 재빨리 내려갔다. 라이트도 켜지 않은 채 속도를 점점 높여 이윽고 차는 강변의 도로를 탔다.
"이상해, 정말 이상하다고." 그녀는 경적을 울리며 가속페달을 밟아나갔다. "그러니까 엄마는, 어쩌다 그 공원까지 갔던 거야?" 엄마는 통화가 끝나지 않았는지 휴대전화를 가만히 귀에 댄 채로 그녀가 아슬아슬하게 차들을 앞질러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반대편 차선의 자동차들이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다가왔다 사라졌다. "으응, 그러니까 그게 말이야." 그녀는 엄마의 말투가 지나치게 상냥하다고 생각했다. "누구랑 전화를 하는 거야? 전화 끊어." "끊었어." 엄마는 답했다. "그러니까 지영이, 네가 알다시피 근종 때문에 제거 수술을 받지 않았니. 의사는 호르몬제들 꾸준히 복용하지 않으면." "그래, 살이 찔 거라고 경고했잖아. 그건 알아, 안다고." "알아? 지영아. ㄴ이가 들면 여자는 그렇게 된다는 걸 아니? 그래. 그래서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섰어." "엄마는 공원에 걸어오지 않았더. 이 차를 몰고 왔잖아." 엄마는 코트 깃을 올리더니 엉덩이를 앞으로 빼 시트에 완전히 기댔다. "그랬나?" "그랬잖아. 그랬어. 누가 봤댔어." "너도 날 믿지 않는구나, 네 아빠도 그랬지. 이 집안 사람들은 도무지 사람을 믿지 않아. 너 네 할아버지가 네 아빠를 무지막지하게 때리던 것을 기억하지? 불상이 모셔져 있는 그 휑하니 넓고 차가운 마룻바닥에 마흔도 넘은 아빠를 엎드리게 하고는 때렸지. 그것도 믿지 못해서란다. 자기 재산이 줄어가는 것이 네 아빠 탓이라고 말이야. 그 재산이 어떤 재산이니? 머리를 깎고 숨어살아야 지킬 수 있는 재산 아니었니. 할아버지는 만주에선 누구나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나가곤 했다고 네 아빠에게 겁을 주었단다. 중국인도 조선 사람도 일본인, 러시아인도 자기 명령이면 개죽음을 당했다고. 사실일까 싶지만 그런 얘기를 진짜 했다지 않니? 네 할아버지가 말이야, 그게 뭐 자랑이라고, 지영아. 개는 혼자 있으려고 하지 않아서 네 아빠가 올라온 날에도 안방까지 따라 들어오곤 했다. 네가 외국으로 가고 나서 개는 내 말을 더 듣지 않았어. 네 아빠는 그때마다 네 아빠답지 않게 완력을 쓰지 않고 신문지 같은 것을 말아 나약하게 위협하면서 가라, 개야, 제발 가, 내 옆으로 오지마, 했지. 얼마나 우습던지. 그날도 네 아빠는 내가 바람이 났다고 말도 안 되는 의심을 하면서 나를 때리고 일본도를 휘두르면서 발광을 했는데 개가 어떻게 했는지 문을 열고 들어선 거야. 그리고 개가 짖기 시작했저. 워우워우 왈왈 왝왝 커엉커엉 으르렁대고 경계하고 위협했어. 귀가 먹먹할 정도로 시끄럽게 짖었어. 상체만 바닥에 붙이고 그르릉그르릉거리다가 자기 몸이 막 부딪히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뛰어다녔어. 개는 아주 흥분했어." "개가 왜 그렇게 흥분했어? 우리 개는 그런 개가 아니잖아. 개는 그러지 않잖아." 그녀는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눈물이 나서 손등으로 훔쳤다. "우리 개는 그렇지 않았잖아. 그 정도는 아니었잖아." "그렇지 않지, 그 정도는 아니었지." 엄마가 그녀를 달래듯이 말했다.
아빠가 개에게 손을 댔어? 아니, 전혀 그러지 않았어. 술이 깨는지 벌벌 떨면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쪼다처럼 꿇어앉아 있었어.그런데 개근 왜 그랬어? 거울 때문이었지, 거울에는 개가 있어서 아주 여러 개로, 셀 수 없이 많은 형체로, 만화경처럼 되비친 개들이 있어서 개가 움직일 때마다 따라 움직이고 따라 짖고 따라서 위협하고 자기 몸이 상하는 것도 모르고 부딪쳐서 멍이 들고. 정말 거울에 비친 개가 싫어서 그러는지 신나서 그러는지 혓바닥으로 핥기도 하고 다시 몸을 부딪치고 발톱이 쪼개져나가고 피가 나고 끼깅끼깅 아픈지 구술프게 울면서도 기갈이 든 것처럼 멈추지는 못했던 거야. 거울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 개와 개들이, 개와 개들이 있었으니까. 자기랑 똑같이 흥분하고 똑같은 템포로 뛰고 똑같이 짖었으니까. 개 짖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공명했지. 거울의 안과 밖에서. 지영아, 엄마가 미안하다. 그 개자식이 자정마다 네 침대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도 나는 뭐가 두려운지 두려워서 나중에는 두렵다기보다는 그냥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아서, 생각해보니 또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게 일상이라서...... 거짓말! 그녀가 운전대를 내리치면서 소리질렀다. 거짓말하지 마!...... 말리지도 않고 그냥 너를 싣고 피아노 학원으로, 여섯 개의 학원으로 옮겨주었는데 너는 대학도 그렇게 가고 결국 개나 기다리게 했구나. 그런데 이제 기다리는 마, 개는 죽었지. 자기가 그렇게 될 줄 모르고 날뛰다가 죽어 버렸어.
그녀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차올라서 얼굴을 완전히 무너뜨리면서 울었다. 개가 죽었어? 죽었지, 미안하다, 엄마가. 개만 죽었어? 개만 죽었지, 죽은 것은 개였지. 개는 이제 돌아오지 않을 테니 기다리지 마. 기다려도 개는 오지 않을 테니까. 거짓말! 그녀가 소리질렀다. 거짓말하지 마!
*
외국의 도시에서 그녀는 어떤 길이든 걸어서 갔다.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디자인 스쿨에도 화첩과 화구들을 들고 걸어갔다. 가끔 룸메이트가 오토바이로 태워다주기도 했지만 바텐더인 룸메이트는 낮에는 자야 했으니까 외출할 때면 그녀는 룸메이트를 깨우지 않게 살금살금 방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이제 한국 유학생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한국계가 운영하는 교회에도 발걸음을 끊었다. 그녀는 말을, 지독하게 낯설고 난해한 말을 익히고 싶었다. 그녀는 배우고 싶었다. 새로운 말, 새로운 세계, 새로운 삶, 새로운 애착, 새로운 경계, 새로운 전망. "전망?" 룸메이트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웃었지만 "그럴 수 있을 거야"하고 말했다. "모든 전망은 아주 미미한 것들에서 시작하지. 결국 그것이 모든 것을 바꿀 거야. 이를테면 아침마다 네가 마시는 사과주스 같은 것." "현지어를 어느 정도 익히자 이 도시는 그녀가 떠나온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문을 펼치면 떠나온 도시에서 경험했던 폭력, 부정, 죽음, 방기, 빈곤 같은 불행이 마치 복사한 듯 펼쳐졌다. 그녀는 스스바라는 말이 쓰여 있던 기사를 매일 조금씩 읽어내려갔다. 말을 배워나갈수록 사건의 실체도 분명해졌는데 그건 그녀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목욕을 하다 쓰러진 익명의 주인을 개가 짖어서, 불길하게 끊임없이 짖어서, 이웃의 유학생과 경찰에 알리고 세상에 알려 살려냈다는 미담 기사였다. 괄호로 묶여 있던 스스바는 '흑모종'이라는 뜻이었다.
누가 거짓말을 한 것일까, 그녀는 생각해보곤 했다. 경찰이 하려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엄마는 정말 개가 죽는 것을 봤을까. 아빠는 왜 전화를 받지 않앗을까, 룸메이트는 그 이야기를 드고 "그것이 정말 개였어?" 하고 물었다. "네가 그곳으로 떠난 것이 정말 개 때문이었어?""그럼, 정말 개였지." "세상에." 룸메이트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난 네가 저짓말을 한다고 생각했어. 옛 애인을 만나러 간다고 오해했어."
그녀는 자신에게 비틀거리며 다가와 안기던 개를 떠올렸다. 개만이, 오직 개만이 그녀를 바르게 응시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슬퍼졌다. 이 도시에도 떠도는 개들이 있어서 걷다보면 그녀를 따라오기도 했다. 그렇게 개들을 만나면 그녀는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걸어가보곤 했다. 개들은 쫓아오다가 그녀가 모르는 사이 떨어져나가 자기들의 세상으로 돌아갔다. 사라졌다.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이 도시 어디인가에서는 개들이 수시로 짖었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녀의 표정에는 서서히 균열이 갔지만 그녀는 곧 그것을 수습한 채 전망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균열과 전망은 떼어서 생각할 수는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모두 개를 잃어버리고 나서라는 것이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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