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노동후의 쾌감은 샤워 후 꿀잠이다. 간혹 너무 이른 잠을 자게 되면 새벽녘 잠을 설치게 된다. 나이 탓일까? 새벽녘에 깨어 듣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나뭇잎이 바람에 바스락거리는 소리, 자박거리는 사람들의 발자국소리가 정겹다.
나지막한 소리들을 배경삼아 사념에 빠지다보면 어느 새 희뿌연 아침이 지척이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산책길에 나선다. 흥천사 앞 산책길은 처음으로 발견한 산책로이다. 고즈넉하다. 이른 아침이어서도 그렇겠지만 아마 아는 사람만 즐길 수 있는 코스일 것 같다. 나도 이제야 처음으로 걸어보는 길이다. 성질 급한 놈들은 벌써 나목이 되어 쓸쓸하지만 이제 막 이파리를 떨어뜨리고 있는 은행잎들 위에 내 발자국을 살살 찍어본다. 사각거린다. 아니 내 맘으로 스며드는 소리다.
"사각, 사각, 또르르, 또르르……."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다람쥐며 청솔모라도 한 마리 마중을 나올 것 같은 기대감에 두리번거린다. 요놈들도 오늘 아침은 몸을 사리는가? 어제 아침보다 바람이 차다.
한 숨을 돌리려 고개를 돌려보니 서해바다와 금강의 황톳물이 만나는 지점이 지척이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한껏 바닷물이 넘실댄다. 사진 몇 장를 담아보며 쉬엄쉬엄 산길을 오른다. 새벽녘에 읽은 문장들을 되새김질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 자체의 무게에 짓눌려 사랑의 대상을 취소하게 되는 언어의 폭발. 사랑의 고유한 변태성에 의해, 주체가 사랑하는 것은 사랑 그 자체이지 대상이 아니다.
로테는 무미건조하다. 주체인 베르테르의 저 강렬하고도 번민하는, 불타는 듯한 연출에 의해 무대에 올려진 한 초라한 인물일 뿐이다. 주체의 자비로운 결정에 의해 이렇듯 보잘것없는 한 인물이 무대 한가운데 놓여지고, 수많은 기도문과 담론으로 뒤덮인 채 찬미와 봉헌 혹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마치 정신 나간 수비둘기가 그 주위를 빙빙 도는데도 깃털 속에 웅크린 채 꼼짝 않는 한 마리의 둔중한 암비둘기라고 할까?
이 취소된 대상으로부터 내 욕망을 욕망 그 자체로 옮기기 위해서는, 어느 섬광 같은 순간에 그 사람을 일종의 무기력한, 박제된 사물로 보기만 하면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내 욕망이며, 사랑의 대상은 단지 그 도구에 불과하다. 나는 이런 대의명분에 열광하며, 내가 구실로 삼은 사람을 뒤로 멀어지게 한다. 나는 상상계를 위해 이미지를 희생한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그 사람을 정말로 단념해야 하는 날이 오면, 그때 나를 사로잡는 격렬한 장례는 바로 상상계의 장례이다. 그것은 하나의 소중한 구조였으며, 나는 그를 잃어버려서 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여기 사랑에 의해 취소된 그 사람이 있다. 이 취소로부터 나는 하나의 확실한 이득을 취하기도 한다. 어떤 우발적인 상처가 나를 위협하면, 이내 나는 그 상처를 사랑의 감정의 현란한 추상성 안으로 흡수하여, 부재하기 때문에 더 이상 나를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을 욕망하면서 마음을 진정시킨다. 그렇지만 또 그 사람이 이처럼 작아지고 축소되어, 그 자신이 야기한 감정에서조차 제외되는 것을 보면서 이내 괴로워한다. 그리하여 그를 버린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며 비난하다. 하나의 역전이 이루어진다. 나는 그 사람을 취소하는 것을 취소하려 하며, 또 자신을 괴로워하게끔 강요한다.<롤랑 바르트 - 사랑의 단상 56쪽>
바람과 햇빛이 나르는 사념을 추스리다 보면 내 욕망은 한 번도 상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사랑한 것은 아닌지... 가슴이 저릿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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