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94] 4기 김은 <욕망과 구조: 라캉과 알튀세르의 실재 비교>
[원 문장]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 철학』중 루이 알튀세르, 이데올로기와 반역. 최 원 씀
“라캉의 실재와 달리 알튀세르의 실재는 잃어버린 기표가 아니라 복잡한 사회적 전체이자 계급투쟁의 구조이기 때문에 라캉의 도식과 알튀세르의 도식은 큰 차이를 보입니다. 라캉의 도식은 비록 그것이 외부적 실재를 상정하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원환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체와 주체가 상실한 어떤 대상 사이에서 쫓고 쫓기는 원환의 운동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이 원환뿐만 아니라 다른 구조가 그 외부에 또 있다고 봅니다.”
나의 문장)
라캉의 실재는 "잃어버린 기표"로, 언어나 상징으로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세계의 일부를 의미한다. 이는 주체가 결핍을 느끼며 끊임없이 추구하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대상으로,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원환 구조를 형성한다. 주체는 실재와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쫓고 쫓기는 운동을 지속하며, 이러한 과정이 라캉의 도식의 핵심이다.
즉, 라캉의 실재는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에서 작동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평생 "완벽한 사랑"을 꿈꾸며 "이 사람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완벽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연애를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대가 깨지고 불만을 느끼는 과정을 겪는다. 그는 또 다른 사람을 찾아 새로운 기대 속에서 사랑을 시작하지만, 다시 만족하지 못한다. 여기서 "완벽한 사랑"은 라캉이 말하는 "잃어버린 기표"로, 언어나 관계로 충족될 수 없는 실재이다. 이는 주체가 끊임없이 추구하면서도 도달하지 못하는 욕망의 대상으로, 이러한 과정은 원환 구조의 순환을 이루게 된다.
반면, 알튀세르의 실재는 복잡한 사회적 전체로, 계급투쟁과 같은 구조적 현실을 가리킨다. 이는 단순히 주체와 대상 사이의 심리적 관계를 넘어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구조들이 상호작용하며 형성되는 사회적 실재로 이해된다. 알튀세르는 라캉의 원환 구조를 넘어, 원환 외부에 존재하는 더 큰 사회적 구조를 상정한다.
즉, 알튀세르의 실재는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서 작동한다. "완벽한 사랑"이라는 개념은 개인의 상상력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가 만들어낸 것이다. 예를 들어, 드라마나 영화는 "진정한 사랑"이 인생의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환상을 제공하며, 결혼식 문화, 연애 코칭 프로그램, 선물 광고 등은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강화한다. 한 사람이 "완벽한 사랑"을 찾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문제로 여길 수 있지만, 이는 자본주의와 같은 사회적 구조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이 결핍을 느끼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하게 만들어 소비를 촉진한다. 따라서 "완벽한 사랑"에 대한 욕망은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 결핍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시스템이 형성한 구조적 현실의 일부이다.
이렇듯 라캉의 실재는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에서 주체의 결핍과 욕망의 순환을 설명하지만, 알튀세르의 실재는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서 구조적이고 총체적인 현실을 다룬다. 라캉은 실재를 주체 내부의 운동으로 보았지만, 알튀세르는 실재를 형성하는 외부적이고 구조적인 요인들에 주목한다.
따라서, 라캉의 관점에서 한 개인이 "나는 왜 완벽한 사랑을 찾지 못했을까?"라고 고뇌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를 추구하는 것은 그의 내면에서 결핍을 느끼기 때문이며, 이는 원환 구조의 반복적 운동에 해당한다. 알튀세르의 관점에서는 그가 "완벽한 사랑"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이유가 사회적 구조와 이데올로기가 그 개념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의 욕망이 단순히 심리적 동기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와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구조적 현실의 일부임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라캉은 개인이 "완벽한 사랑"을 끊임없이 갈망하며 만족하지 못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알튀세르는 "완벽한 사랑"이라는 개념이 사회적 구조와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한다. 이는 우리의 욕망과 갈망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맥락 속에서 형성된 것임을 드러낸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라캉과 알튀세르와의 사유를 통해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이지만, 이 둘의 이룬을 절충하여 받아들여 나의 이데올로기와 욕망에 대한 관점을 정리해 볼까한다.
첫째, 욕망은 개인의 심리적 결핍에서 출발하지만, 그 결핍의 내용과 방향은 사회적 구조와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체화된다. 인간의 욕망은 개인의 내적 요구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구조 속에서 형성되고 표현되는 것이다.
둘째, 알튀세르가 강조한 이데올로기의 호명은 라캉의 심리적 욕망 형성과 연결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개인에게 특정한 정체성을 부여하며, 개인은 이러한 정체성을 통해 자신의 결핍을 충족하려는 욕망을 느낀다. 이 과정에서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욕망을 구조화하고, 욕망은 이데올로기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셋째, 주체는 욕망을 느끼는 심리적 존재인 동시에, 사회적 구조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인식하고 행동하는 사회적 존재이다. 개인은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욕망을 추구하지만, 그 욕망의 형성과 내용은 사회적 위치와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넷째, 라캉이 말한 "잃어버린 기표"와 알튀세르가 언급한 이데올로기의 사회적 구조는 욕망이 단순한 결핍 충족의 문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가 제공하는 이상적 환상을 추구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개인은 결핍을 느끼는 동시에, 이데올로기가 제시하는 이상적 환상을 자신의 욕망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추구한다. 이러한 환상은 욕망을 유지시키는 동시에, 사회 구조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절충적 관점은 개인이 자신의 욕망이 단순히 내적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구조 속에서 형성된 것임을 자각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개인은 자신의 욕망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기존의 사회 구조를 변화시킬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나는 라캉의 심리적 욕망과 알튀세르의 사회적 구조의 관점을 결합하면, 욕망은 개인적 결핍과 사회적 구조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고, 이러한 통찰은 욕망과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사회적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기반이 되겠다는 두 철학자의 관점을 절충하는 나만의 관점을 가질 수 있겠다.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나의 일상에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먼저, 나의 욕망과 행동의 근원을 더 깊이 탐구하는 자기 성찰을 강화해야 한다.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정보와 메시지를 더욱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소비 습관을 재고하며, 관계를 재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사회 참여를 확대하고 지속적인 교육과 학습을 통해 나와 사회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날들의 나의 삶의 목표가 진정으로 나의 욕망을 반영하는지 재고해 보아야겠다. 이러한 변화들을 통해 나는 나의 심리와 사회 구조의 상호작용을 더 깊이 이해하고, 보다 의식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나의 성장뿐만 아니라 사회의 작은 변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으며 이만 총총!!!
2025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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