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검색을 하다가보니
성당포구에 대한 사진들이 무척 분위기 있어 보였다.
호기심 발동
자, 출발이다.
군산에서 출발해 하구둑을 거쳐
웅포베어리버골프장을 지나
10분쯤 달리니 성당면 지명이 나오고
곧 큰길가로 성당포구 안내판이 나오더라.
가보지 않았을 때는
꽤 큰 포구인줄 알았다.
포구라는 단어속에서 느껴지는
삶의 흔적이란 그리운 이미지 때문인지....
아마 금강뱃길이 한창 번창했을때는
틀림없이
큰 포구역할을 했으련만
지금은 소박하기 그지없는
시골 작은 마을의 강변
그자체였다.
성당포구의 상징인것처럼 느껴지는
오래된 수령의 은행나무가
잎을 모두 떨구고
다부지게 버티고있는 모습에서조차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
(성당면 은행나무와 관련된 기록이 없어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성포 별신제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1662년 조세미(租稅米)의 저장과 운반을 위해 성당창(聖堂倉)이 건립되어 마을의 안녕과 풍어의 기원, 조운선의 무사 항해를 기원하던 별신제가 행해졌다고 한다.
1895년 성당창의 조창이 폐쇄되고 별신제를 행하던 순풍당이 붕괴되고 경제사정이 악화됨에 따라
별신제 대신마을의 공터에 있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에 치성을 올리는 당산제가 행해졌다고 한다.
이 은행나무는 어머니당산으로 당시 당산제를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였을 것으로 판단되며
나무의 흉고 둘레와 크기를 고려해볼 때 조선시대 성당창이 설치(1662년)되기 이전의 것으로 수령은 약 400~5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제주에는 올레길이 있다면 익산에는 둘레길, 군산은 구불길들이 있나보다.
성당포구에도 올레길의 표시가 보이더라.
포구앞에 펼쳐진
마을의 모습이 정겹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의 모습이
쓸쓸하기 그지 없는
지금은 인적없는 포구를 그나마 멋드러지게 보이게하는 장식물같다.
성당포구를 뒤로하고 숭림사를 향했다.
숭림사는 봄 벗꽃 필때와 가을 은행잎이 질때가 가장 예뻣는데
지금은 벗꽃도 은행잎도 또 다른 시절을 기다리나 보다.
숭림사는 갈때마다 참 소박해서 좋았는데
공사가 한창이더라.
아마
관광객을 위한 탬플스테이 프로그램을 계획중이라서
시끌벅적한 포크레인의 출현이 좀 안타깝더라.
가을은행잎이 마당가득 떨어져있던
고즈넉한 숭림사는 이제 안녕인가보다.
난 불교신도도 아닌데 고즈넉하고 소박한 사찰들이 참 좋다.
여기 불주사가 있다.
숭림사는 익산권이고 불주사는 군산권인지 구불길 리본이 불주사 잎구까지 따라온다.
오랫만에 와보는 까닭에 구불구불 길을 헤메며 찾아왔더니
노승의 독경소리가 먼저 우릴 맞는다.
살금 살금 이쪽 저쪽을 기웃거리며
고즈넉한 사찰이 내미는 만찬을 즐긴다,
시내에서 삼 사십분 거리건만
앞에 보이는 만산들이
심산유곡을 펼쳐내며 마지막 가을 빛으로 불주사를 감싸는 듯
세상풍파에 어지러운 우리의 맘까지도 달래준다.
불주사만큼은 지금 이대로 남아줬음 좋겠다.
불주사 가는길 안개낀 올망졸망한 산등성이들이 내뿜는 운치로 한 컷 짜 - 안
익산 성당포구
익산 성당포구마을의 유래는 백제시대로 거슬려올라간다.
서쪽으로는 금강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끼고 있으며, 고려에서 조선후기까지
세곡을 관장하던 성당창이 있던 곳으로 聖堂浦혹은 성포라 불리우고 있다.
백제시대 감물아현으로 불리다가 신라 경덕왕때 함열현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익산군에 포함되었으며
1995년 도. 농 통합으로 익산시 성당면 성당리 성포마을로 조성되었다.
숭림사
숭림사(崇林寺)는 신라 경덕왕(742~764)때에 진표율사가 금산사와 함께 창건했다는 설이 있으나, 「익산지」에 보면 고려 충목왕 원년(1345년) 을유년에 행여(行如)선사가 중건했다는 시록과 명문기와가 현재 보관중이며 익산 지역의 대표사찰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때 「보광전」만 남고 불타버렸으며 이후 1697년(숙종 23년) 우화루와 영원전을 새로 창건하고 이후 나한전을 지었으며, 1987년에 주지로 부임한 지광스님께서 범종각, 산신각, 일주문 요사인 안심당과 해탈교, 세심교를 신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숭림사」라는 이름의 연원은 남천축의 달마대사가 중국의 숭산 소림사에서 면벽9년의 좌선을 행한 고사를 기리는 뜻에서 숭산(崇山)의 숭(崇)과 소림사 (少林寺)의 림 (林)자를 따서 선종사찰인 「숭림사」라 하였다고 한다.
* 문화재
1) 보광전 - 보물 825호 2) 청동은입문 향로 - 도 유형문화재 67호 3) 목조 석가여래좌상 - 도 유형문화재 188호 4) 목조 지상보살 외 25권속 - 도 유형문화재 189호
불주사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117호 불주사는 백제 의자왕 때 창건된 절로 전해지는데, 본당인 대웅전에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다. 높은 기단 위에 위치하고 있는 대웅전은 팔작지붕에 주심포 양식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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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에 대웅전을 보수하던 중 ‘崇禎三年二月(숭정삼년이월)’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막새기와를 발견하여 이 건물이 조선 인조 8년(1630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임을 밝혀냈다.
관음전(벽안당)의 주존불인 불주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1647년에 조성되었는데, 조선 후기 불상의 귀중한 자료로서 시도유형문화재 제 193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 내부는 천장을 우물 모양으로 평평하게 만들고 바닥마루 역시 우물마루 모양으로 만들었다. 1716년에 지었으나 건물이 무너질 위험이 있어 1911년에 웅진전, 벽안당과 함께 다시 지었다. 대웅전을 보수하던 중 “崇禎三年二月(숭정삼년이월)”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막새기와를 발견하여 이 건물이 지금으로부터 370년 전인 조선 인조 8년(1630) 이전에 지어진 건물임을 알 수 있다. 대웅전 전면 귀퉁이를 받치고 있는 기둥은 지붕의 붕괴를 막기 위해 근래에 설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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