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
‘남미의 목소리’로 불린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민중가수.
1960년대 데뷔한 소사는 70년대 군사정권의 철권 통치에 맞서 민중의 자유와 인권을 노래했다. 76~83년 유럽에서 망명생활도 했다. 이 때문에 칠레의 빅토르 하라 등과 함께 남미의 민중음악 혁명인 ‘누에보 칸시온(새로운 노래)’을 이끈 대표주자로 꼽힌다.
전설적인 아르헨티나 민중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사진)가 2009년 10월 4일(현지시간) 숙환으로 숨졌다고 현지 병원이 4일 발표했다. 향년 74.
소사는 지난달 18일부터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병원에서 신장과 폐질환으로 집중치료를 받아오다 이날 오전 세상을 떴다.
특유의 칠흑 같은 머리 때문에 ‘라 네그라’(검은 여인)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소사는 라틴아메리카의 민중음악 혁명인 ‘누에바 칸시온’(새로운 노래)을 이끈 대표주자다. 1935년 7월 9일 투쿠만주 산미겔에서 태어난 소사는 60년대 남편 마누엘 오스카 마투스의 도움으로 데뷔 앨범을 발표한 뒤, 65년 코르도바시에서 열린 음악 페스티벌을 통해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진보주의 활동가이기도 한 소사는 76~83년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정권 시절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다.
생전에 40장의 앨범을 낸 그는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영국 가수 스팅, 미국 가수 조안 바에즈부터 라틴계 가수인 샤키라와 카에타노 벨로조, 후안 마누엘 세라 등 다양한 음악인들과 함께 작업했다. 또 94년 로마 바티칸의 시스티나 대성당에서 공연했고, 2002년 뉴욕 카네기홀과 2004년 로마 콜로세움 공연은 전석 매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생전 “내가 평생 노래를 하며 살게 될 줄은 전혀 생각 못했었다”고 말한 소사는 라틴아메리카의 대중문화와 전통 포크송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소사의 주검은 24시간 동안 대중에게 공개된 뒤 5일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샤카리타 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장례식에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도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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