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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송, 국내가요 등

죽음으로 깨친 황제의 진면목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09. 11. 16.

김혜리의 카페 뤼미에르 /

청중 앞에서 끝내 성사되지 못한 콘서트를 스크린으로 관람하는 일은, 흡사 영혼결혼식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이것이 바로 그것이다. 마이클 잭슨마지막 커튼콜이다. 정확히 말해 마지막 커튼 콜-50회로 예정됐던 런던 콘서트-의 리허설이지만, 잭슨의 돌연한 죽음이 개인 아카이브에 소장될 필름을 최후의 커튼콜로 바꿔놓았다. <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 > (이하 < 디스 이즈 잇 > )은 다큐멘터리라기보다 편집기사 네 명의 손으로 조립된 오마주다. 카메라는 잭슨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전신 숏에 머무른다. 서둘러 축조된 기념비에서 풍겨 나오기 마련인 상업성의 냄새도 감출 수 없다. 그럼에도 < 디스 이즈 잇 > 은 일깨운다. 누구도 마이클 잭슨만큼 뛰어나게 동시에 노래하고 춤추고 작곡하고 무대를 연출하지 못했다는 엄연한 사실을. 죽음은 마이클 잭슨에게 존엄을 돌려주었다.

< 디스 이즈 잇 > 의 첫 번째 충격은 콘서트를 준비하는 잭슨의 긍정적이고 활달한 모습이다. 타블로이드 언론이 암시했던, 우격다짐으로 컴백을 준비하는 노쇠한 스타는 영화 속 어디에도 없다. 쉰 살 잭슨이 시연하는 특유의 춤동작은 너무도 자연스러워 그의 신체에서 곧장 연역된 것처럼 보인다. 한편 우리는 사후 흘러나온 정보에 의해 당시 잭슨이 수면장애로 고통받았고, 24시간 처방을 위해 의사가 대기하고 있을 만큼 연약한 상태였음을 안다. 그런 상황에서 고도로 쪼개진 비트에 조응하는 안무를 부드럽게 소화하는 잭슨의 모습은 그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규율이 얼마나 초인적이었을지 숙연히 짐작하게 만든다. 두 번째로 < 디스 이즈 잇 > 은 마이클 잭슨의 종합예술가적 풍모를 깨우친다. 잭슨의 콘서트는 녹음된 트랙과 라이브가 오버 더빙될 때가 많았고 특수효과와 무대장치, 보조영상이 합주하는 거대한 오케스트레이션이었다. 공연을 구성하는 무수한 요소를 머리에 넣고 각 파트의 악기가 표현해야 하는 정서까지 조목조목 챙기는 영화 속 잭슨은 엔터테이너인 동시에 종합예술의 총감독이다.

세 번째 감흥은 < 디스 이즈 잇 > 이 잭슨이 살아 있었더라면 결코 공개하지 않았을 미완의 연습이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서로 다른 테이크를 이어 붙이긴 했으나, < 디스 이즈 잇 > 은 필시 화려하게 파편화된 숏들을 매끈히 봉합해서 세상에 나왔을 콘서트 디브이디와는 가공의 정도를 비할 바가 아니다. 특수효과 없는 무대에 점퍼를 걸치고 서서 리듬을 타는 잭슨은 그의 퍼포먼스가 기술이 덧씌운 환상 없이도 환상적임을 증명한다. 그는 버스터 키턴과 동류의 재능을 타고난 예술가였다. 너무 많이 보고 들어 당연시되고 급기야 화석 취급 받았던 잭슨의 음악과 춤은, 그가 불멸이 아님을 모두가 깨닫자 다시금 기적적인 경이로 살아 돌아왔다. < 디스 이즈 잇 > 은 그 부활의 의례다. 김혜리 < 씨네 21 >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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