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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나의 소울 푸드, 똠얌꿍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3. 8. 30.

 

 

 

요즈음 도저히 화가 나서, 분노가 치밀어 올라 누르고 눌러도 잠을 설치는 날들의 연속이다. 자기애가 유난히 강하기에 사소한 일에 욱, 했다가도 쉽게 마음을 풀어버리는, 분노에 나 자신을 소모할 수 없다는 원칙을 세우고 살았는데 이번만큼은 그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상대를 향해 분풀이를 할 수 있는 용기도 없고, 할 수 있는 것이란 고작, “연락처 차단이라는 수단밖에 없으니 이 소심함의 극치에 또 자조(自嘲)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정신적인 소모에서 벗어나기위해 오랜만에 나의 소울 푸드를 찾아 태국 음식점 타이야소를 방문했다. 부드러우면서 시고, 달큰하면서도 매운 똠얌꿍 한 대접에 내 분노와 쓰라린 마음을 달랬다. 다소 아쉬웠던 것은 동반자가 여럿이어서 다양한 메뉴를 주문해 나누어 먹었더라면 더 좋았을 터이겠지만 여하튼, 맛있었고, 나의 날 선 마음을 녹여주기에 충분했다.

 

'소울 푸드란 어릴 때의 추억이나 삶의 애환 등이 담겨 있는 그야말로 영혼을 위로할 만큼의 요리를 뜻하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지극히 콩글리시적 표현으로 Soul(영혼) 이란 단어와 Food(음식)라는 두 단어의 절묘한 결합이 실제로 Comfort food(위안을 주는 요리)라는 의미의 신조어로 쓰이고 있으니 웃지 않을 수 없다.

 

누구에게나 소울 푸드가 있을 것이고 실제로 오랫동안 나에겐 녹두죽이 나의 소울 푸드였다. 어린 시절 감기에 걸려 입맛이 없어 기운이 허할 때마다 엄마가 끓여주는 녹두죽을 먹으면 입맛이 돌아오곤 했다. 반복된 경험으로 인해 내 영혼이 지쳤다고 생각되었을 때마다 난 녹두죽을 찾았고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몸과 마음이 다시 맑아지며 에너지를 얻게 된다.

 

요즈음 쓰고 있는 내 단편에 주인공이 운영하는 카페의 이름 카페 녹두가 등장한다는 사실에 깜놀하는 것은, 이 시절은 어쩌면 내가 건너야 할 불의 강같은 지점이 아닐까, 또 비약된 생각이 질주한다. 그래, 삶의 고통이란 타인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내 무의식에서 발로된 내 상처들이 덧나는 것일 뿐이란 이성적 갈무리로 이 불의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기를 …….

 

어느 새 이렇게 저렇게 세상을 떠돌다 보니 이제 똠얌꿍이란 태국 수프가 내 소울푸드 중 하나로 등극했으니 이 또한 좀 어색한 경우일지라도 무엇인가를 먹고 위안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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